ⓒ일러스트 허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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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합계출산율, 그러니까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0.84명이다. 0.84명이 얼마나 낮은 수치인지 가늠하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합계출산율과 비교해 보면 된다. 가장 적은 수치일 뿐 아니라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인 국가는 한국 하나뿐이다. 한국을 빼고 가장 출산율이 낮다는 스페인도 합계출산율이 1.26명이다. 한국과 달리 여성 한 명이 아이 한 명은 낳는다는 의미다.

언제부터 합계출산율이 떨어졌을까. 통계 자료를 보면 1.2명을 전후로 오락가락하던 합계출산율이 내리막길 일변도로 바뀐 것은 2015년 정도부터다. 2015년 1.24명이던 합계출산율이 다음해 1.17명으로 떨어졌고, 2018년에는 0.98명으로 1명 이하로 낮아졌다.

본격적인 저출산 분위기가 감돈 것이 2010년대 중반부터라고 한다면, 지금의 MZ세대는 저출산 문제의 당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MZ세대는 저출산 문제가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36살의 비혼 여성 우민정씨는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내가 왜 나라의 저출산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거죠? 그거야말로 내 몸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요? 나는 출산해야 하는데 출산하지 않음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있을 뿐이에요.”

우씨의 말에는 MZ세대가 직면한 저출산 문제의 핵심, 원인이 담겨 있다. 좀 더 설명해 보자.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2018년 논문 ‘한국의 출산장려정책은 실패했는가?’와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국내 코호트 합계출산율의 장기 추이 분석’을 보면 저출산이 어디서 기원하는 것인지 짐작이 간다. 두 논문은 공통적으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떨어진 이유는 아이 낳지 않는 여성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한국 사회에 한해서 아이 낳지 않는 여성이 많아졌다는 말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많아졌다는 말과 다름없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혼외 출산, 그러니까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6974명으로 전체의 2.3%에 이르렀다. 역대 최고 수치인데 다른 국가와 비교해볼 때 턱없이 낮은 것이다. 2018년을 기준으로 프랑스는 60.4%가 혼외 출산아이다. 이밖에 미국 39.6%, 독일 33.9% 등이다.

혼외 출산 대국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이 많아졌다는 것은 비혼 여성이 증가했다는 말과 거의 같다. 이철희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016년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2.23명으로 2000년 1.7명에 비해 높아졌다. 다만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비율이 70.4%에서 50%대로 떨어졌을 뿐이다. 결혼을 하면 으레 아이를 낳는데 결혼 자체를 하지 않으니 출산율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게 왜 당연한지를 묻는 MZ세대

왜 MZ세대 여성은 결혼하지 않나. 그건 MZ세대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MZ세대는 일종의 ‘해체주의자’들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에 모두 의문을 표한다. MZ세대 신입사원을 처음 맞이하는 기성세대라면 잘 아는 일이다.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회식에 불참하고 회사 일보다 ‘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생애 주기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MZ세대는 ‘결혼적령기’가 되면 당연히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는 보통 삶의 과정에 ‘왜 꼭 그래야 하나’라는 질문을 한다.

더 나아가 당연하게 부여되던 개인의 역할에도 물음표를 던진다. 왜 가임기의 여성이라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일까. 아이를 낳고 나면 희생적인 엄마가 되어 육아에 온몸을 바쳐야 할까. MZ세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답한다.

대다수의 MZ세대는 아이를 낳고 나서도 ‘나’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가족의 중심은 부부가 낳은 자녀에게 있었고,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로서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MZ세대 부모는 그렇게 당연한 듯 주어지는 역할과 자신의 희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문제는 변화된 인식을 따라오지 못하는 현실이다. MZ세대는 자녀가 태어나더라도 모든 것을 희생해 자녀를 키우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MZ세대 여성은 출산 이후에도 자신의 일을 하기를 원하며 출산 이전의 대인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어 한다. 또 취미 활동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희생하지 않으면 자녀를 키우기 힘든 환경에서 MZ세대 부모들은 자녀의 성장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치게 된다.

아직 아이를 낳지 않은, 결혼을 하지 않은 MZ세대는 이런 현실을 보고 지낸다. 육아정책연구소가 펴낸 보고서 ‘청년층의 비혼에 대한 인식과 저출산 대응 방안’을 보면 청년들에게 기혼자의 이미지에 대해 물어본 조사 결과가 있다. 기혼자들이 ‘행복해 보여서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대답한 청년은 48.4%에 그쳤다. 오히려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힘들어 보여 안쓰럽다’에는 58.4%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응답률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훨씬 강하게 나타났는데, MZ세대 여성이 남성보다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해 더 부정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다시 말하면 MZ세대는 출산과 육아, 더 넓게는 결혼 생활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에 의문을 표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희생이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주변에서 보고 듣는 희생적인 부모의 모습에 거리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신 나의 모습을 지키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태어나 행복하게 자랄 권리를 묻다

언론 등에서는 자주 저출산을 ‘취업 실패’ ‘경제적 어려움’ 같은 비관적인 단어와 연결시키곤 한다. 의향은 있으나 경제적 준비가 되지 않아 임신·출산을 미룰 수밖에 없는 사연들도 자주 소개된다. 그러나 실제로 비혼·비출산이 ‘좌절의 선택’인 것만은 아니다.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송민호씨가 소셜미디어 트위터에 게시된

1만2000여건의 저출산 관련 메시지를 분석해본 결과도 그렇다. ‘트위터를 활용한 저출산 커뮤니케이션의 의미연결망 분석’이라는 논문의 내용을 보면 트위터 이용자들이 저출산과 함께 게시한 단어는 ‘비혼’ ‘독신’ 같은 단어였는데 이는 ‘욜로’ ‘행복’ ‘선택’ ‘미래’ ‘꿈’ 같은 단어와 자주 언급됐다. 비혼·비출산은 ‘미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결과다.

한 가지 통계 자료를 더 살펴보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2018년 보고서다. ‘자녀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미혼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가장 많은 응답자가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라고 답했다. 경제적 여유나 부부만의 생활 같은 문제는 그 뒤를 이었다. 문정희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의 보고서 ‘가치관 분석을 통한 저출산 대응방안’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왔다.

요즘 몇몇 MZ세대에게 한 가지 공유되는 생각이 있다면 자신의 출생을 ‘태어남을 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누가 낳아달라고 했느냐’는 말은 단지 MZ세대의 반항 섞인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태어나 자라는 것 이상으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이 MZ세대가 강조하는 바이다. 이런 생각이라면 MZ세대는 아이를 낳기 전, 아이가 태어나 자라기 좋은 환경인지를 계속 점검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문제뿐만이 아니다. 정서적·사회적으로도 아이가 행복해지기 힘든 환경이라면 ‘낳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MZ세대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출산과 육아가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 ‘행복’과 이어져야 하는 선택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다.

무엇이 ‘내’가 행복해지는 길인지를 MZ세대는 생각한다. 예전처럼 때가 되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대신에, 나를 희생해 자녀를 키운다고 해서 행복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생각만큼 변하지 않은 현실을 목격할 때, 그러니까 이미 결혼해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고 들을 때, ‘나는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결혼과 출산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생각은 곧 결혼을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 더욱이 아이가 없더라도 결혼이 곧 행복과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는 MZ세대가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앞선 보고서를 보면 부부의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여성들이 뚜렷하게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잘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과반이 넘는 여성이 ‘찬성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현실은 인식과 다르게 구성돼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 시간을 보면 남성이 쓰는 시간은 54분에 그치는 데 반해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187분이나 된다. 여성가족부의 ‘가족실태조사’에서는 결혼한 여성의 친정과 시집에 모두 도움이 필요할 때 시집을 먼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20%에 달했다. 이 차이는 결혼 생활이 막연히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런 걸림돌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저출산 극복 정책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원금을 늘리고 제도적 지원을 추가한다고 해서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MZ세대가 생각하는 ‘행복’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되묻고 ‘그게 과연 행복해지는 길인지’를 묻는 MZ세대가 늘어날수록 비출산을 선택하는 MZ세대 또한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저출산 정책은 MZ세대는 물론 MZ세대가 낳을 자녀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자녀를 낳고 기르더라도 부모의 삶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 자녀가 원하는 진로를 설정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방법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출산 극복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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