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등에서 출범한 사무직 노조는 새로운  노사관계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현대차 노사가  단체협상 상견례를 하고 있는 모습. ⓒphoto 현대차
LG전자,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등에서 출범한 사무직 노조는 새로운 노사관계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현대차 노사가 단체협상 상견례를 하고 있는 모습. ⓒphoto 현대차

이들은 온라인에서 만났다. “노조를 만들자”는 큰 구상은 직장인 익명커뮤니티 블라인드(Blind)에 올린 첫 글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준비돼갔다. 시작부터 설립 신청까지 모든 과정은 랜선을 타고 진행됐다. 노조 가입원을 모으는 일도,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 일도, 집행부를 모으는 일도 모두 온라인에서 이뤄졌다.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이하 LG 사무직 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는 노무사 사무실 앞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으으?’ 술 한잔 기울이며 전의를 다지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공유하는 끈끈한 아날로그 연대는 아니었다. 대신 이들은 소셜미디어(SNS) 등을 활용해 느슨한 공중전으로 공통의 이해를 갖는 연대체를 구성했다.

LG전자에는 1만명이 조금 안 되는 조합원을 거느린 기존 노조(LG전자 노조)가 있다. 제조업종이 그렇듯 노조의 중심은 현장에서 일하는 생산직이다. 반면 LG전자에서 일하는 사무직은 약 2만5000여명으로, 1만명이 조금 넘는 생산직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하지만 이들은 노조와 거리가 멀다. 보상 등을 따질 때 사측과 테이블에 마주 앉는 노조는 노조원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2만5000여명보다 1만명을 대변하는 일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런 의구심은 오랫동안 축적됐고 곪았다. 사용자와 노조,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사무직 직원들의 의문과 불만은 오랫동안 수면 아래서 잠자고 있었다.

“MZ세대 노조? 사무직 노조!”

누가 깃발을 들었든 처음부터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조직화가 성공하려면 조직 차원의 문제가 있어야 한다. 회사는 보상에 박한 것 같았다. 그 기준도 모호했다. 2020년 코로나19 상황에서도 LG전자는 최대실적을 냈다. TV사업부의 영업이익은 1조원에 달했는데, 돌아온 성과급은 연봉의 10%에 불과했다. 성과급의 책정 기준도 아리송했다. 성과급 지급 기준이 고정돼 있지 않았고 지급 전날에야 그 기준을 알 수 있었다.

공정한 분배를 대변해야 할 노조에 대해서는 기대를 갖지 않았다. 사무직도 노조에 들어갈 수 있다지만 가입한 사람은 없었다. 생산직 중심의 공고함이 노조에는 존재했다. 둘은 보상체계부터 달랐다. 생산직은 호봉제, 사무직은 연봉제를 적용받았다. 그래서 유 위원장은 사무직 노조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나름 기준을 세웠다. 500명 이상이 가입 의향을 내비치면 진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노조 신청서를 접기로 했다. 그러나 800명 가까운 숫자가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모였고 한 달 만에 가입 신청자는 3000명을 넘어섰다. 그렇게 LG전자 사무직 노조는 출발선에 섰다.

LG전자 노조가 깃발을 든 뒤 현대자동차그룹과 금호타이어에도 사무직 노조가 뒤이어 등장했다. 현대차그룹 노조를 설립하는 오픈 채팅방에는 하루 만에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들 정도였다. 노조의 수장들은 젊다. LG전자 사무직 노조의 유준환(30) 위원장은 1991년생,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의 이건우(27) 위원장은 1994년생이다. 40·50대 중장년의 조끼 입은 위원장 모습과는 사뭇 다른 리더들의 등장이다. 언론들은 새롭게 등장한 노조에 ‘MZ세대(밀레니엄+Z세대, 1980~2000년대 출생) 노조’라는 푯말을 붙였다.

“MZ세대 노조라는 표현보다는 사무직 노조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일반화된 경우가 아니라 소수의 제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세대론보다는 직종에 따른 차이로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안진수 노무사(노무법인 유앤)는 방점을 그들의 나이보다 ‘화이트칼라’에 찍는다. 최근 사무직 노조가 생기는 사업장은 생산직 노동자 중심의 노사관계의 흐름을 이어온 곳들이다. LG전자도, 현대차그룹도, 금호타이어도 그랬다. 안 노무사는 “노조가 만들어지는 건 불안이 생기는 데서 기인한다”며 이런 분석을 했다. “가장 큰 불안은 고용불안이다. 다음은 보상정책 등 공정성으로 인한 불안이다. 여기에는 외부적인 공정과 내부적인 공정이 있다. 다른 기업에서는 성과급을 주는데 우린 왜 안 주는가를 묻는 건 외부적인 거고, 직무에 따른 보상의 격차를 정하는 기준이 올바르지 않다고 묻는 건 내부적인 거다. 기존의 노조가 고용불안의 대응책으로 노조를 활용한다면 사무직 노조는 두 가지 공정에 관한 대응책이라고 볼 수 있다.”

사무직 노조는 20·30대의 가입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회사 내 종사자 연령 구성과 크게 어긋나진 않는다. 하후상박(下厚上薄)의 피라미드형 연령 구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다. 과거와 다른 점은 그들의 접근법이다. 과거에도 공정하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다. 다만 사무직 노조의 중심 세대들은 참지 않기로 했다는 게 다르다. 이 다름을 보통 이 세대의 특성으로 해석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공정은 개인의 노력 혹은 능력으로 얻는 성취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20·30대에게 승진과 같은 시간이 걸리는 보상은 너무 먼 이야기다. 위 세대는 회사의 정체성과 자신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는 경우가 많았고 직장생활에 그대로 투영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들은 다르다. 더 나은 직책을 얻기 위해 부당함을 참고 견뎠던 위 세대와 달리 20·30대들은 기여한 만큼의 보상을 즉시 받는 것을 선호한다.

‘교섭단위 분리’라는 승부수

실증적인 조사를 보자.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은 최근 20·30대 직장인 862명을 대상으로 노조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80.6%가 ‘근로자 대변기구로 회사 내 노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노조가 필요한 이유를 묻는 질문(복수응답)에는 ‘조직문화 개선’(60.1%),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52.5%), ‘불합리한 관행 타파’(51.2%), ‘성과 평가 및 보상체계 논의’(50.1%), ‘임금격차 완화’(45.6%) 순으로 답했다. ‘정년보장 등 고용안정성 유지’란 답은 26.9%만 선택해 가장 밑단에 위치했다.

응답자 10명 중 7명(69.1%)은 노동조합의 역할로 ‘개인 성과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정년 보장’(30.9%)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응답이다. 회사에 바라는 것(복수응답) 역시 ‘공정한 성과 보상 제도’(47.1%)가 가장 많았다. 퇴사 충동을 가장 강하게 느낄 때도 ‘성과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31.1%)라는 응답이 1위였다. 이전 세대가 추구했던 직장 내 가치와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다는 걸 읽을 수 있다. 사람인 관계자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고성장을 이루었던 시대 직장인들에게는 생애주기에 최적화된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 중요한 화두였지만 저성장과 치열한 경쟁 상황에 놓여 있는 MZ세대는 자원 배분의 공정성과 현재의 보상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한 사무직 노조는 ‘교섭단위 분리’를 승부수로 내밀었다. 노조를 만들었지만 회사와 직접 교섭할 수 없어서다. 한국은 복수 노조를 인정하고 있어서 한 사업장에 2개 이상의 노조를 설립할 수 있다. 다만 현장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사용자 측은 노조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가입한 노조(교섭대표노조)로 교섭 창구를 단일화한다. LG전자의 경우 사무직 노조가 아닌 기존 노조가 대표 노조다. 기존 생산직 중심의 노조와 다른 길을 추구하는 사무직 노조 입장에서는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하는 수다.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왼쪽)과 이건우 현대자동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동조합 위원장.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왼쪽)과 이건우 현대자동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동조합 위원장.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사무직 노조를 바라보는 복잡다단한 시선

LG전자 사무직 노조에 시선이 쏠렸던 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 신청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해서였다. 교섭권이 있어야 단체행동도 힘을 얻는다. 이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는 다른 기업에서도 사무직 노조가 굴러가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노동위원회의 과거 사례는 교섭단위 분리가 쉽지 않은 장벽이란 걸 알게 해준다.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가 펴낸 ‘노동연구’ 25호에 따르면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시행일인 2011년 7월 1일부터 2012년 12월 31일까지 1년6개월 동안 교섭단위 분리 신청은 84건이었는데 이 중 분리 결정이 내려진 건 27건이었다. 제철소나 화학단지처럼 지역적으로 노동자들이 멀리 떨어진 경우, ‘정규직·일용직’처럼 계약형태가 다른 경우 등은 인정받았다. 하지만 생산직과 사무직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 3건에 관해서는 당시에도 모두 기각 결정이 나왔다.

이번 LG전자 사무직 노조의 신청은 과거의 판례를 뒤집을 수 있었을까.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이번에도 기각 결정을 내렸다. 지노위는 “교섭단위 분리 단체교섭을 인정할 정도로 근로조건이나 고용형태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사무직 노조 입장에서는 중요한 첫발부터 삐끗한 셈이다. 이 결정이 유지될 경우 사무직 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소수 노조의 이익까지 대표하는 ‘공정대표의무’를 다하는 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노무전문가는 “지노위가 과거 판례를 뒤집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기존 노조에도 사무직 노조가 가입할 수 있다는 점, 취업규칙이 전 직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 등이 판단 근거였을 것 같다. 하지만 대단위 사업장에서 사무직 노조가 만들어지는 추세는 과거와 다른 점이고, 이 변화를 좀 더 전향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무직 노조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복잡다단하다. 회사도, 기존 노조도, 양대 노총도 이들을 이질적인 존재로 본다. LG전자 사무직 노조를 대리하기 위해 새로 합류한 김기덕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는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노동조합이 신청한 교섭단위 분리 신청 사건에서 교섭대표노조는 피신청인인 사용자와 한편이다. 교섭단위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한통속으로 주장한다. 분리 신청한 노동조합의 교섭권 행사는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인정하게 되면 사업장 교섭에서 심각한 혼란이 초래된다고 주장하는데, 사용자 주장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지노위 판정 과정에는 사용자인 LG전자와 현재 교섭대표노조인 LG전자 노조가 참여했는데, 양측 모두 사무직 노조의 반대편에서 교섭단위 분리의 부당함을 항변했다.

양대 노총 역시 마찬가지다. 제1노총의 지위를 두고 조합원 숫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입장에서 사무직 노조는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었다. 특히 노조활동에 부정적인 20·30이 결성한 노조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반겼지만 지금은 미지근한 입장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생산직 중심의 기존 노조와 상충되는 성격이 있어서 같이하자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 측은 기각된 교섭단위 분리 신청에 관한 재심을 중앙노동위원회에 신청했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등 굵직한 노동 판결을 이끌어낸 김 변호사가 합류하면서 대리인단에 중량감을 더했다. 젊은 세대가 가져올 변화의 흐름은 노동계에서도 적용될까. 스노볼처럼 굴러갈지도 모를 중요한 판결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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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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