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도 지방의 밤하늘에 펼쳐지는 장관인 오로라는 지구자기장 활동의 산물이다. 지구자기장이 외부 우주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전자파를 막고, 일부 에너지를 극지방 상공으로 보내면, 그곳의 대기 구성 물질에 부딪치면서 나오는 빛이다. photo. Martincco 작품, Wikimedia Commons License,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urora_Borealis_-_polar_lights_3.jpg
고위도 지방의 밤하늘에 펼쳐지는 장관인 오로라는 지구자기장 활동의 산물이다. 지구자기장이 외부 우주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전자파를 막고, 일부 에너지를 극지방 상공으로 보내면, 그곳의 대기 구성 물질에 부딪치면서 나오는 빛이다. photo. Martincco 작품, Wikimedia Commons License,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urora_Borealis_-_polar_lights_3.jpg

‘총‧균‧쇠’(1997)라는, 임팩트 있는 제목의 책으로 유명한 제레드 다이어먼드 미국 UCLA 대학교 교수는 보통 환경지리학자, 혹은 환경역사학자라고 소개된다. 특정 사회가 거쳐온 역사를 과거의 환경변화와 지리적 특성을 통합해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하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 ‘붕괴’(Collapse,2005)라는 책은 문명의 흥망성쇠를 이런 새로운 관점으로 분석한 책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대 마야 문명에서 현대 중국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의 15개 사회가 거쳤던, 혹은 거쳐가고 있는 길을 환경문제 및 이웃 인간 집단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상당히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손꼽을 만한 환경역사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환경문제란 크게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기후변화, 즉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구적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거시적 환경문제이며, 또 하나는 삼림파괴나 토양오염 등 인간의 행동에 의해 환경이 악화되는 미시적 환경문제다. 사실 이것이 지금 지구촌 사회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한 시각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에서도 환경요인을 역사 분석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데 이 시리즈에서는 제레드 다이어먼드의 저서를 비롯해서, 기존의 환경역사학 연구가 다루었던 환경요인의 범주인 기후변화와 환경질 악화의 문제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려고 한다. 다름 아닌 ‘지구자기장 변화’의 문제다. 지구자기장은 지구 환경의 기본적 구성요인이며, 여기서 일어나는 변화는 인류 사회의 거시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최근 들어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 지구자기장은 지구 내부의 유동성 금속성 물질이 지구 자전으로 회전하면서 그 운동에너지에 의해 생성되어, 양극 지방에서 뿜어져 나오고 수렴되면서 지구 전체를 감싸는 자기에너지가 작용하는 공간을 말한다. (오른쪽) 지구자기장은 태양풍 등 외부 우주로부터 오는 강한 전자파를 막아 지구가 생명이 살기 적합한 환경이 되도록 해준다. 그림 출처: (왼쪽) tonynetone 작품, Creative Commons license, https://www.flickr.com/photos/tonynetone/39767042614, (오른쪽)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ovian_magnetosphere_vs_solar_wind.jpg
(왼쪽) 지구자기장은 지구 내부의 유동성 금속성 물질이 지구 자전으로 회전하면서 그 운동에너지에 의해 생성되어, 양극 지방에서 뿜어져 나오고 수렴되면서 지구 전체를 감싸는 자기에너지가 작용하는 공간을 말한다. (오른쪽) 지구자기장은 태양풍 등 외부 우주로부터 오는 강한 전자파를 막아 지구가 생명이 살기 적합한 환경이 되도록 해준다. 그림 출처: (왼쪽) tonynetone 작품, Creative Commons license, https://www.flickr.com/photos/tonynetone/39767042614, (오른쪽)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ovian_magnetosphere_vs_solar_wind.jpg

지구자기장이란 지구를 가운데 두고 거대한 도넛 모양으로 둘러 싸고 있는, 자기(磁氣, magnetic) 에너지가 작용하고 있는 공간을 말한다. 이 지구자기장이 우주의 강한 전자파를 막아주는 덕분에 지구는 생명의 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자기장의 상태는 우주에서 움직이는 다양한 에너지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변한다. 어떨 때는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급속하게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마치 짙은 연기가 깔려 있는 곳에 선풍기를 틀면, 그 바람이 가는 곳의 연기가 흩어져 밀도가 떨어지듯 말이다.

이렇게 지구자기장이 급속히 약해지는 시기엔 지구는 그야말로 ‘난세(亂世)’라고 불리는 상황이 된다. 약해진 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외부 우주의 전자파 때문이다.

우선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생명작용이 이상해진다. 광범위한 전자파의 영향으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정서가 불안해지고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쓸 데 없이 공격적이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면역력이 저하되어 질병이 창궐하기 쉽고, 후손 출생률 역시 저하된다. 식물도 마찬가지여서 스트레스 독성을 만들어내며 열매를 잘 맺지 않기 때문에 식량이 양적으로도 적게 생산될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독성 농도가 높아 먹기 적당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 돌림병이 돌아 수확량이 현저하게 떨어지기도 한다.

지구시스템 자체도 요동을 치게 된다. 지구는 80% 이상이 금속으로 되어 있으며 그 비율은 지구내부로 들어가면 더 높아진다. 따라서 외부에서 강한 전자파가 지구에 닿으면, 그 자기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지구 내부 물질의 운동에너지가 강해진다. 그에 따라 지각 바로 밑 맨틀을 구성하는 마그마에 작용하는 압력이 높아져, 화산‧지진‧해일 등 자연재해가 빈번해진다.

그러니까 지구자기장이 약해지면 인간의 관점으로 봐서는 흉년이 계속되고, 자연재해가 빈발하며 전염병이 창궐하고, 사람들끼리 싸움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위 난세라고 하는 시대에는 흉년, 기근, 자연재해, 외적 침입, 사회 내부 갈등이 극심해지는 등 여러 방면에서 복합적으로 문제가 커지는데, 바로 이런 지구자기장의 복합적 작용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혼란한 시간을 거치는 동안 인류 사회는 문화적으로 한 수준 껑충 뛰어오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적절한 맥락에서 좀 더 자세히 보게 될 것이다.)

지구자기장 약화의 영향은 지역에 따라 시차가 있기도 하고, 같은 시기에 특히 어떤 지역이 더 집중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을 때도 있다. 약해진 부분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차이다.

미국지구물리학회가 제작한 4만000천년 전부터 3만8000년 전까지의 지구자기장 밀도 변화를 보여주는 동영상 캡쳐. 동영상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aL4UEcY_DOA&ab_channel=AGU
미국지구물리학회가 제작한 4만000천년 전부터 3만8000년 전까지의 지구자기장 밀도 변화를 보여주는 동영상 캡쳐. 동영상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aL4UEcY_DOA&ab_channel=AGU

지난 기사 ‘그리스 도시국가 테베의 건국 신화를 팩트로 다시 읽으면’에서 이해한 것을 요약해보자. 이 시기에 지구 전체적으로 지구자기장이 약해져 화산 폭발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최근의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그리스에서 식량이 궁해져 페니키아에 노략질하러 들어왔고, 페니키아에서도 이전보다는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던지라 환경난민의 흐름이 그리스 쪽으로 향했다.

카드무스 왕자로 대표되는 이 유민은 그리스 반도 서부 보에오티아 지방에 도착, 원주민과 일대격전을 벌여 어느 정도 파워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주변 지역에서 보에오티아 원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병사들이 모여들었지만 노련한 카드무스의 계략으로 결국 동족상잔의 혈투가 일어났다. 그 중 살아남은 소수를 카드무스가 장악, 친(親)페니키아 그리스 도시국가인 테베가 설립됐다.

이뿐이 아니다. 인류 역사에 기록된 굵직굵직한 공격적 사건들의 시기, 그리고 대규모 기근과 전염병의 시기는 모두 지구자기장이 갑자기, 그리고 심하게 약해졌던 시점과 일치한다.

지난 4천 년 간 지구자기장 격변(화산 등 지각활동 활발) 시기, 세계의 주요 사건. 그림: 이진아 작성
지난 4천 년 간 지구자기장 격변(화산 등 지각활동 활발) 시기, 세계의 주요 사건. 그림: 이진아 작성

기원전 1900년 무렵 지구상에서 가장 앞선 문명이었던 수메르 왕국의 몰락, 기원전 1600년 바빌론의 붕괴, 소아시아에서 제철 및 철기 제작의 시작, 기원전 350년 경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본격화, 근대로 내려와 서기 1700년에서 1900년까지 유럽의 식민지 확대 등을 위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류 역사에 상세히 기록된 최초의 대규모 전염병인 콘스탄티누스 병(선페스트)이 창궐했던 서기 550년 무렵, 유럽 인구를 3분의 1 수준까지 줄였던 흑사병이 돌았던 1300년대 역시 지구자기장 밀도가 급격히 떨어졌던 시기다. 아시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고려 충목왕 대와 그 뒤를 이은 우왕 대인 1300년대 중반, 이상기후로 인해 흉년이 이어지면서 전염병이 발생해 시체가 길을 뒤덮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구자기장 약화가 대규모 전염병, 즉 팬데믹의 발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코로나19 관련 사태를 돌파하는 데도 상당한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지구자기장의 급속 약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스컴의 무관심으로 기후변화만큼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미국 항공우주국, 유럽우주기구 등 선진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지구자기장 변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구자기장의 상태를 살피는 탐사를 시행 중인 NASA의 인공위성.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제공, 지구자기장 약화에 대한 홍보 동영상 캡쳐. <a href='https://www.nasa.gov/feature/nasa-researchers-track-slowly-splitting-dent-in-earth-s-magnetic-field' target='_blank'></div><u>▶ 동영상 보러 가기</u></a>
지구자기장의 상태를 살피는 탐사를 시행 중인 NASA의 인공위성.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제공, 지구자기장 약화에 대한 홍보 동영상 캡쳐. ▶ 동영상 보러 가기

이렇게 21세기 들어 첨단 과학으로 밝혀지는 과거 환경변화에 대한 지식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왜곡되기 쉬운 역사기록과는 달리,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이 편견을 갖고 역사를 잘못 판단하는 것도 막아줄 수 있다. 가야의 역사에 대해서도 그럴 것으로 기대된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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