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18일 회장 선거를 앞둔 서울 명동 한성화교협회. 뒤로 중국대사관 정문이 보인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오는 7월 18일 회장 선거를 앞둔 서울 명동 한성화교협회. 뒤로 중국대사관 정문이 보인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오는 7월 18일 한성화교(華僑)협회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재한(在韓)화교들 사이에 세(勢) 대결이 격화하고 있다. 한성화교협회는 1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재한화교의 대표 조직. 특히 재한화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만(중화민국) 국적 화교 중 일부는 선거를 앞두고 “친중(親中)파 화교들이 화교협회를 장악하려고 한다”며 경계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재한화교 최초로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친중파로 알려진 이충헌 전 한성화교협회장(19대)이 선거를 통해 화교협회 감사로 복귀할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화교협회의 한 관계자는 “회장이 감사로 복귀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중화총상회 회장을 지내며 ‘세계화상(華商)대회’를 유치한 바 있는 원국동 에버리치홀딩스 회장과 짝을 이뤄 화교협회 복귀를 타진 중인 이충헌 전 회장은 ‘하림각’ ‘희래등’과 함께 서울 3대 중화요릿집으로 불렸던 ‘동보성(東寶城)’을 운영하는 화상이다. 서울 남산의 케이블카정거장 맞은편에 있는 중국대사관 영사부가 옛 동보성 건물이다. 이충헌 전 회장은 “회장 출마도 할 수 있지만 후배가 나와서 밀어주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했다.

특히 원국동·이충헌 조가 “중국 본토 출신들을 화교협회에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구(舊)화교들 사이에 긴장감도 감돈다. 재한화교는 2만2000명가량으로 추산되지만, 최근 수년간 귀화 등으로 숫자가 1만5000명 선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만 국적 구화교에 더해 1992년 한·중수교 후 중국에서 건너온 신(新)화교도 협회에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원국동 후보(2번)는 “정치적 이유로 지난 70년간 새 이민을 못 받아 재한화교들은 ‘라스트 모히칸’이 됐다”며 “한국으로 이민 온 지 30년 이상 된 신화교들을 매년 2000~3000명씩 받아들여 회원을 늘릴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이보례 현 한성화교협회 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손육서 후보(1번)와, 수석부회장을 지낸 이중한 후보(3번)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손육서 후보는 “본토 출신들과 왕래는 할 수 있지만 협회로 받아들이는 것은 안 된다”며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교들로, 본토 출신들은 ‘중국재한교민협회’라고 별도 조직이 따로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중한 후보 역시 “중국 교포들을 협회에 받아들이는 것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구화교와 신화교 간 관계 설정을 놓고 각 진영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셈이다.

화교협회, 반관반민 성격

선거전이 과열되면서 과거 국민당 정권 시절 정치개입으로 악명 높았던 대만 최대 폭력조직 ‘죽련방(竹聯幇)’이 선거에 개입하는 징후도 포착된다. 인천화교 출신으로 죽련방 산하 행동대인 뇌당(雷堂) 당주로 알려진 장(張)모씨가 특정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다.

한성화교협회장 선거에 죽련방까지 거론되는 것은 화교협회 자체가 단순 친목조직이 아니라 대만 정부로부터 영사업무 일부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다. 서울의 한성화교협회를 비롯해 지방의 화교협회는 재한화교들을 상대로 출생 및 사망신고는 물론 각종 증명발급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

화교협회가 실질적으로 관리운영하는 화교 재산도 상당한 수준이다. 서울 명동의 한성화교협회 빌딩(옛 중정도서관)을 비롯해 명동 한성화교소학교(초등학교), 수표동(청계천) 화교사옥, 연희동 한성화교중학교(중고등학교) 등이다. 비록 이들 화교 재산은 과거 박정희 정부 때 화교들의 경제력을 억누르기 위해 외국인(화교) 명의 소유권 등기를 원천금지했던 탓에 명의상 중화민국(대만) 또는 주한 타이베이대표부 소유로 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재한화교들의 고유재산으로 취급돼왔고, 화교협회 역시 이들 재산의 관리와 운영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선거전에서 불거진 최대 이슈 역시 재산처리 문제다. 화교 재산 중 가장 알짜라는 서울 명동의 한성화교소학교는 재건축 과정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공사비 체납 문제가 불거져 한 건설업체가 신축 교사에 현수막을 걸고 유치권을 행사 중이다. 이에 더해 학교 교문 부지를 둘러싼 재한화교 간 소송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이에 명동 한성화교소학교 측은 공사비 문제 해결을 위해 교비 인상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교 학부모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후보 측은 한성화교소학교 수석부이사장으로 있는 이충헌 전 회장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만과 중국도 선거 결과 주시

한성화교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대만과 중국 측도 선거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거 대만 국민당 정부는 재한화교들에게 영사업무 일부를 넘겨주는 등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하면서도 재한화교를 사실상 ‘2등 국민’ 취급해왔다. 재한화교는 과거 냉전 과정에서 대만(자유중국) 국적으로 일괄 편입됐지만, 대만 국내 신분증 번호가 없어 사실상 시민권이 없다. 대만 여권을 발급받기는 하지만, 대만과 무비자 협정을 체결한 국가들에서 인정을 못 받는 소위 ‘깡통여권’으로 취급된다. ‘깡통여권’ 문제로 재한화교들은 해외 출장과 여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호소해 왔고 이 때문에 국적을 바꾼 화교 3~4세도 적지 않다.

반면 대만 정부는 재한화교들이 줄기차게 제기해온 ‘깡통여권’ 문제에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해 재한화교들의 적지 않은 반감을 사고 있던 터였다. 이에 이보례 현 회장은 대만 정부 측과 적극적으로 협상하는 방식을 통해 재한화교들의 ‘시민권’ 문제를 풀어오고 있었다. 화교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보례 회장은 대만 정부 측에서 어떤 요구를 해오면 ‘이번에는 시민권을 몇 개 내달라’는 식으로 접근해왔다”며 “이런 점에서 보면 민진당이 국민당보다 재한화교 처우개선에 더 적극적인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이보례 현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손육서 후보 역시 이런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감사 후보로 출마한 이충헌 전 회장은 한성화교협회장으로 있던 2014년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방한에 맞춰 서울 광화문빌딩에 있는 주한 타이베이대표부 앞에서 대만 정부의 시민권 정책을 성토하는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에 대만 정부 측과 조금 껄끄러운 관계로 알려진다. 이충헌 전 회장은 “중국과 대만 양쪽 다 잘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틈새를 이용해 중국 역시 재한화교 사회를 적극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사실 재한화교들은 출생은 한국, 국적은 대만이라지만, 뿌리는 대부분 중국 산둥성에 두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화교협회 역시 급격히 친중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화교협회의 한 관계자는 “중국영사관이 있는 광주화교협회는 친중화한 지 오래고, 인천화교협회도 급속히 친중화하고 있다”며 “한성화교협회 역시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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