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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67호] 202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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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여섯 가장 거리로 내몬 민노총의 갑질

지난 7월 12일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일동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업체 한온시스템 정문 앞. 대형 화물차들이 수시로 오가는 4차선 도로변에 파란 농성 천막이 지난 6월 18일 설치됐다. 때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도 서용호(56)씨는 이 천막 안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처음 농성하는 거 치고 여름철에 25일이나 버티는 거면 잘한 거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천막 밖에는 ‘화물연대만 생존권이 있냐’ ‘물류사는 부당 계약해지 철회하라’ ‘한온과 물류사는 부당해고 사과하라’ 등이 적힌 현수막과 피켓이 눈에 띄었다. 서씨와 그의 동료직원들이 햇빛을 피해 천막에 모여 앉으면 어느새 그늘진 공간은 꽉 들어찼다. 30도를 웃도는 날씨 속에서 이들이 의지하는 건 아이스박스와 라면을 끓여 먹을 가스버너, 의자 서너 개, 책상 정도다.
   
   서씨는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 천막에 있지 않았다. 한온시스템의 협력사인 A물류사의 19년 차 화물기사로 주로 화물차 운전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한온시스템은 A·B물류사와 협력계약을 맺고 현대기아차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해온 코스피 상장사다. 지난해에만 6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본래 서울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던 서씨는 2000년대 초 지인의 소개로 A물류사와 고정 용차 운송계약을 맺고 화물 운송업에 뛰어들었다. 그를 비롯한 화물기사들은 매일 납품 배차계획표를 전달받아 전국 곳곳의 작업장으로 부품을 실어 날랐다. 서씨는 주로 울산 지역 공장들을 책임졌다. 그가 하루 최소 주행하는 거리는 500㎞. 서씨는 “일이 좀 고되어도 틀에 갇히지 않고 정해진 시간을 내가 잘 쪼개 써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6월 18일 여느 때처럼 운송을 준비하던 서씨에게 사측이 전달한 것은 배차계획표가 아닌 ‘운송계약 해지 통보’였다. 물류사에서 사실상 해고조치한 것인데, 이날 해지 통보를 받은 건 서씨만이 아니었다. 서씨와 함께 일했던 강명복(60)씨, 김재상(65)씨, 박성욱(44)씨, 윤선기(44)씨, 이홍주(66)씨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최소 10년 차 이상의 베테랑 화물기사들이었다.
   
   그동안 일하면서 업무적으로 단 한 번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들이 이날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이유는 ‘조직’을 배신한 데에 있었다. 그 조직은 다름 아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대전지역본부 한라지부’. 이들은 모두 지난 6월 소속해 있던 민주노총 한라지부의 노조 운영 방식에 염증을 느끼고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화물운송분과로 옮겼다가 지금의 날벼락을 맞았다.
   
   
   노조 간부 비리 지적하자 되레 징계
   
   지난 6월 초 기준 A·B물류사와 용차 계약을 맺고 한온시스템의 자동차 부품을 조달하는 화물기사는 총 138명이었다. 이들은 2014년 물류사 갑질 등을 막기 위해 민주노총 화물연대 대전지역본부 산하로 들어갔다. 조합의 규모는 대전지역 작업장 중 가장 컸다. 이번에 해고된 박성욱씨는 “인력도 그렇고 한 해에 집행하는 예산도 제일 많았다. 방송차, 천막 등 인프라도 좋아 각종 집회에 많은 지원을 하곤 했다”라고 설명했다. 한라지부는 3년 주기로 노조를 이끌 집행부를 꾸렸는데, 이번에 계약 해직 통보를 받은 사람 중 윤씨를 제외한 5명은 올 1월에 새롭게 출범한 9기 집행부 구성원들이었다. 김재상씨는 지부장, 서용호씨는 복지부장, 강명복씨는 조직부장, 박성욱씨는 총무부장, 이홍주씨는 고문이었다. 서씨는 “본래 집행부 생각은 꿈에도 없었지만 김 지부장의 권유로 기사들 복지에라도 신경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처음 몸담았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출범 초기부터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노조 내부나 상위 조직의 운영 방식 등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가감 없이 지적했는데, 이들은 이것이 화근이 됐다고 보고 있다. 올 2월 이전(8기) 집행부 구성원의 회계비리 정황을 포착한 것이 단적인 일례다. 집행부는 통상적으로 매년 명절마다 조합원들에게 식료품 세트 등을 명절 선물로 준비해왔다. 서씨를 비롯한 새 집행부는 이전 집행부가 특정 업체와의 거래 과정에서 지급받은 상품권을 멋대로 집행한 정황을 발견했다. 회계규칙대로라면 상품권은 잡수익으로 처리한 후 지출 증빙을 통해 회계처리해야 하지만, 이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서씨 등은 이전 집행부 간부진을 상대로 일주일가량의 배차정지 등의 조치를 내렸다. 내부적으로 노조 간부를 문제 삼은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상위 조직인 민주노총 화물연대 대전지역본부는 진상조사를 통해 회계비리 의혹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는 이전 집행부 구성원들보다 새 집행부 구성원들에게 더 강한 징계를 내렸다. 새 집행부가 이전 집행부 간부에게 과한 책임을 물었다는 이유에서다. 화물연대본부 상벌위원회 공문 통보에 따르면 이전 집행부 3인은 1년6개월의 직무정지, 경고 정도로 그쳤지만 새 집행부 6인 중 일부에겐 3년의 직무정지까지 내렸다. 특히 임기 3년의 신임 지부장이었던 김재상씨에게 내린 3년 직무정지 징계는 더 이상 지부장직을 맡지 말라는 의미였다.
   
   박성욱씨는 “사실 과거 집행부들은 민주노총 본부에 호의적이었지만 우리 집행부는 조금 달랐다. 온갖 집회에 과도하게 인력을 동원하거나 지원하는 것에 대한 조합원들 불만을 그대로 전하기도 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상벌 결과를 두고 노조 내부에선 “이때다 싶어 본부가 현 집행부 구성원들에게 징계를 강하게 내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돌기도 했다.
   
   서씨를 비롯한 집행부 구성원 5명과 일부 조합원 11명 등 총 16명은 상벌 타당성을 떠나 민주노총의 내부 자정이 힘들다고 판단하곤 지난 6월 14일 민주노총 한라지부에 탈퇴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노총 화물운송분과로 노조를 옮겼다. 여타 조합원들도 이들을 뒤따라 민주노총을 탈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강명복·박성욱·서용호·이홍주·윤선기씨가 지난 7월 12일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 화물운송분과의 최형철 본부장 직무대행의 도움을 받아 농성을 준비하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사측과 ‘해고’ 비밀 합의서
   
   일은 커지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한라지부는 노조를 옮긴 16명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한라지부 측은 6월 17일 일부 조합원들을 불러 한온시스템 출입문 앞에서 집회를 열곤 화물차 출입을 막았다.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찬반투표 없이 강행한 집회였다. 집회의 명목상 이유는 운송료 인상이었지만, 이들의 진짜 속내는 다른 데에 있었다.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화물운송분과의 최형철 본부장 직무대행은 “만약 물류 통행이 막혀 현대기아차에 부품 조달이 안 될 시에 물류사나 한온시스템이 책임져야 하는 금액은 시간당 수억원에 이르고 물류사들은 다음 입찰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민주노총은 이를 노렸다. 통행을 막아 사측을 협상 테이블로 부르려 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사측은 6월 18일 오전 민주노총과 만나 합의서를 작성했는데, 합의서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화물연대를 탈퇴한 6명에 대해 계약을 해지하고 2021년 6월 18일부로 배차를 중지한다.’ ‘계약해지된 6명이 제기하는 모든 ‘소’에 대해서는 모든 책임을 진다’ ‘이번 사태와 관련된 모든 민형사상에 대한 모든 책임에 대해 묻지 않는다’…. 본래 한라지부는 노조를 탈퇴한 16명 전원에 대한 계약해지를 요구했지만 사측이 경영상의 문제를 들어 이번에 계약해지된 6명 선에서 조율이 됐다. 이밖에도 한라지부는 사측에 ‘최근 자신들을 상대로 제기된 여타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비용과 합의까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도 요구했다. 이들이 집회 당시 요구했던 운송료 관련 내용은 합의서 하단에 간략히 적시됐다.
   
   서씨 등 6명에 대한 계약해지는 합의 즉시 이뤄졌다. A·B물류사 대표가 이들 6명을 만난 자리에서 이뤄진 녹취 내용에 따르면 두 대표는 “물건을 빨리 공급해야 하는데 비용이 계속 발생하니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며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해직자들이 두 대표에게 “인상이야 걔네들 명분이고 한노총 가입했으니 잘라 달라는 게 목적인 거 아니냐” “잘못된 결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냐”라고 질문하자 두 대표는 모두 “그렇다”라며 인정했다. 노조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이들은 지난 7월 8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근로자들의 업무수행 방식, 임금지급 방식 등을 고려했을 때 근로자로서의 지위가 보장돼야 하며 다른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이행된 해고통지는 무효라는 것이 이유서의 주된 내용이다. 이들은 원직 복직, 해고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근무했을 시 받을 수 있던 임금 상당액 지급도 함께 요구했다.
   
   해당 구제신청 대리인을 맡은 김영정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는 “올해 6월 1일 자로 계약이 갱신된 상황에서 경영상의 이유나 개인의 특정 비위 등도 아닌 다른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건 정당성이 부족하다”며 “계약해지 과정에서 한온시스템이 압력을 넣은 정황이 발견되면 향후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서 책임을 물을 여지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씨는 과거 집행부의 부적절한 회계처리와 관련해선 대전대덕경찰서에 업무상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한 상황이다.
   
   
▲ 지난 7월 12일 강명복·박성욱·서용호·이홍주·윤선기씨가 한온시스템 정문 앞에서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 화물운송분과의 최형철 본부장 직무대행(맨 오른쪽)의 구호에 따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법 위 군림하는 민노총 해체시켜주세요”
   
   이들은 결국 매일 아침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온시스템 정문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직원들 출퇴근 시간에 맞춰 복직 및 민주노총의 부당성을 알리는 것이 이들의 주된 일과다. 지부장이었던 김재상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얼마 전 농성을 포기했다. 현재는 5명만이 농성장을 지키는 상황이다. 민주노총 한라지부는 이들 농성장으로부터 200m 떨어진 곳에 농성장을 차리곤 ‘투쟁에 연대해주신 한온시스템 사내하청 동지들 고맙습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한온시스템의 다른 노조원들이 이들 6명의 해고 농성자를 지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맞불 농성이다.
   
   멀쩡한 가장에서 해직자로 추락해버린 이들 농성자의 삶에 가장 마음 아파하는 것은 당연히 가족들이다. 서용호씨의 둘째 딸은 최근 아버지의 상황을 알게 된 후 청와대 국민청원에 ‘법 위에 군림하려는 민주노총 해체시켜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올리기도 했다. 7월 15일 기준 청원 동의 수는 600명을 겨우 넘겼다. 서씨는 “갑작스러운 계약해지로 가장 역할을 못 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선기씨의 중학생 아들은 서씨 딸의 글을 읽고 “내가 쫓아가서 혼내줄게”라며 윤씨를 다독였다고 한다. 윤씨와 동갑내기 친구인 박성욱씨는 “초등학생 자녀들이 지금도 내가 출근하는 줄로 알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민주노총이 이름만 ‘민주’이지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라고 푸념했다.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은 생계유지다. 매달 고정지출비로 나가는 화물차 할부 값, 기름값, 정비비 등이 만만치 않다. 할부 값만 최소 200만원이라는 것이 이들 설명이다. 서씨가 올해 큰마음 먹고 장만해 3000㎞도 안 달린 경차를 얼마 전 중고차로 판 것도 이런 어려움 때문이다.
   
   이들의 복직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물류사 측은 이들을 복직시킬 경우 민주노총 한라지부가 또다시 유사한 방법으로 자신들을 압박할 것을 염려하고 있다. 한온시스템 측은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며 협력사 일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한라지부 측은 주간조선과 만난 자리에서 “기자는 공평성을 갖고 양쪽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며 “비싼 공부, 비싼 대학 나와서 우리처럼 못 배운 기사들보다 머리는 좋아도 가슴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인들 입장이 무엇인지에 대한 취재는 수차례 거부했다. 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 화물연대본부 내 대전지역본부 또한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 지난 6월 17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대전지역본부 한라지부가 한온시스템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날 한라지부 집회로 화물차 통행이 불가했다. photo 한라지부 조합원

   민주노총의 변질된 노동운동
   
   사실 민주노총의 이런 갑질은 이곳만의 일은 아니다. SPC그룹, 삼양그룹 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의 박성욱씨는 “수면 위로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도 상당히 비슷한 사건이 많더라”며 “민주노총은 자기네 노조를 탈퇴하거나 같은 노선을 추구하지 않는 이들은 빨갱이 혹은 배신자라 부르며 쳐낸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기준 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 대전지부 한라지회 회칙에 따르면, 지회에 가입된 조합원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회를 탈퇴할 수 없다. 또 지회 전 조합원의 이익과 단체행동에 반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나 지회를 탈퇴할 경우 상집회의·조장회의를 거쳐 임시총회 상정 후 재적인원 과반수 이상의 출석과 참석인원의 3분의2 이상 찬성 시 근무하던 직장에서 일할 수 없다. 조합원들은 이를 ‘독소조항’이라 일컫는다.
   
   앞서의 최형철 본부장 직무대행은 “과거 ‘을’ 위치에서 핍박받던 노동자 권리를 되찾고자 했던 민주노총의 목표가, 최근 들어 기업보다 더 위에서 갑질하려는 행태로 변질된 데 따른 결과”라며 “내부 노조원들이야 파업 한번 하고 목소리 외치면 수년간 오르지 않던 임금이 오르니 문제임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노조로부터 예기치 못한 ‘역갑질’을 당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생애 처음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5명의 해직자는 이번 같은 일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서용호씨는 “노조는 노동자를 위해 있지 않나. 그런데 지금의 노조는 노동자를 길거리에 내몰고 여러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 이번 사태가 조금이나마 이런 잘못을 시정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박성욱씨는 “잘못에 책임을 묻고 억울한 일을 막자는 것”이라며 “복직 투쟁을 계속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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