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골웨이 인근의 소규모 패총. 이같은 조개 무덤은 세계 도처에서 바다에 가까운 곳에서 발견된다. 상고대인들이 갯벌에서 채취한 조개를 먹고 버린 껍질이 쌓여 만들어졌으며, 조개껍질과 함께 생활 쓰레기들도 나와 문자가 없던 시대에 대한 귀중한 연구자료가 된다. 사진 출처: Jonathane Wilkins 작품. Creative Commons License, https://www.geograph.ie/photo/4613658
아일랜드 골웨이 인근의 소규모 패총. 이같은 조개 무덤은 세계 도처에서 바다에 가까운 곳에서 발견된다. 상고대인들이 갯벌에서 채취한 조개를 먹고 버린 껍질이 쌓여 만들어졌으며, 조개껍질과 함께 생활 쓰레기들도 나와 문자가 없던 시대에 대한 귀중한 연구자료가 된다. 사진 출처: Jonathane Wilkins 작품. Creative Commons License, https://www.geograph.ie/photo/4613658

해양대국 가야의 베이스 캠프였던 한반도 동남부는 살기 좋은 땅이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흙먼지가 많은 찬 바람이 불어오는 북서쪽을 막아주고, 거기서 발원하는 긴 낙동강이 흐르면서 구비구비마다 강과 산 사이에 비옥한 농토를 형성해주고 있다. 여기에 고대문명 발달의 토대가 되는 다양한 지하자원도 풍부하게 구비하고 있었다.

지금 낙동강 하구에는 김해 평야가 형성되어 있지만,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고대 및 중세의 기후변화 온난기의 이곳엔 넓고 깊은 강이 바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1400년 무렵부터 1900년에 이르기까지, 500년간 계속된 극심한 한랭기 동안 수심도 얕아지고 퇴적 물질이 많이 쌓여 상당 부분 육지화되던 부분이 일제 강점기 동안의 매립 공사로 완전한 육지가 되었다.

빙하기가 끝나고 기온이 상승하던 1만 년 전 이래 수백 년을 주기로 온난기와 한랭기가 교체했다. 수면이 낮아지는 한랭기에 이 지역은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면서 형성되는 생산성 높은 갯벌 생태계가 드러났던 곳이다. 거대한 패총들이 말해주는 사실이다. 수심이 깊어져 강 유역 상당부분이 잠기는 온난기에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좋은 물길을 형성해주었을 것이다.

이런 곳인 만큼 이 지역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그 중 ‘가야’라는 이름의 국격을 가진 사회는 언제부터 형성됐으며, 어떤 유래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됐을까? 가야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종전까지는 어떤 지역에 언제부터 어디에서 온 사람들이 살아서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조상이 됐는지 밝히는 작업은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렇게 어떤 사회의 기원을 밝히는 일은 유물 특성, 인골 특성, 언어 유사성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도됐는데, 새로운 유물이나 인골이 발견될 때마다 새로운 학설이 생겨, 종전의 이론들과 충돌했다.

20세기 후반부터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법 등, 유물과 유골의 연대를 어느 정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기법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이론들이 정리돼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한민족 기원학설의 대세는 북방기원론이었는데, 차츰 남방에서 유래된 영향도 인정되면서 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끝판왕’이 등장했다. 바로 유전자 과학 분야의 기술인 염색체, 즉 DNA 분석법이다.

모든 생물에게 있어서 모든 세포에 똑같이 들어 있는 염색체, 그 안에 담겨 있는 DNA에는 그 생명체가 진화해온 과정의 모든 정보들이 담겨 있다. 이를 분석하면 그 생명체의 조상이 누구였으며 어떤 이동 경로를 거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포 하나하나에 정확히 똑같이 들어 있는 이 유전자 정보의 의미를 읽어낼 수만 있다면, 누구도 왜곡할 수 없고 반박할 수도 없는 역사적 진실이 드러난다.

이런 유전자 분석 기반 세계 지도 작성 프로젝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피 협회와 IBM이 공동 주관한 ‘게노그래픽 프로젝트(Genographic Project)’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15년에 걸쳐, 세계 140여개국에서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전자 분석을 한 데이터를 토대로 다양한 연구 결과물을 내왔다. 이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 스펜서 웰즈 박사는 “지금까지 쓰인 것 중 가장 위대한 역사책은 우리의 DNA 안에 감춰져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지의 대표적 유전자형 분포 양상 및 그에 기반해서 추정한 인구 이동 경로 지도출처: Chakazul 작성, Wikimedia commons License,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World_Map_of_Y-DNA_Haplogroups.png
세계 각지의 대표적 유전자형 분포 양상 및 그에 기반해서 추정한 인구 이동 경로 지도출처: Chakazul 작성, Wikimedia commons License,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World_Map_of_Y-DNA_Haplogroups.png

위 지도는 남성에게만 있는 Y-염색체 분석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만주에서 한반도 남단까지 거주민들의 대표적 유전자형이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좀 더 세부적으로는 남북과 동서로 움직이며 교차하고 혼입되는 다양한 패턴들이 존재한다. 이 패턴을 분석하면, 그동안 세력 관계의 변화에 따라 무수하게 변질되어 왔을 역사에 대한 담론을 가장 공정하고 과학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물론 이 연구방법 외에도, 인류의 역사에서 진실의 모습을 복원하도록 도와주는 과학 기술이 일취월장 발전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축적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정확하게 조합하고 분석할 수 있는 컴퓨팅 기술 역시 역사 왜곡의 가면을 벗기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가야 역사의 복원 작업은 이런 과학적 성과들의 도움을 통해서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야 출범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힌 유일한 기록인 ‘삼국유사’에는 서기 42년에 가야가 건국됐다고 밝힌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그동안 논증해왔던 것에 따르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일인 것으로 분석된다.

역시 첨단 과학의 도움으로 이 부분이 선명해진다. 가야가 양쯔강 중류에서 자리잡고 기원전 47년부터 약 260년 동안 안정적으로 천문을 관측했다는 사실이 첨단 과학인 고(古)천문학의 컴퓨터 데이터 분석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고천문학자 박창범 한국고등교육원 교수가, 왜곡되기 쉬운 역사 기록 중 천문에 관한 대목은 굳이 왜곡하지 않았을 거라는 고천문학계의 일반적 전제 하에 ‘삼국사기’의 일식 관측 기록을 분석해서 내놓은 결과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일식 기록을 고천문학적으로 분석, 일식이 관측된 위치를 지도에 표기한 것. 빨간 화살표는 이 시리즈의 저자가 덧붙인 것으로, 가야의 천문 관측 중심지가 양쯔강 중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도 출처: 박창범,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2002) 게재 지도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일식 기록을 고천문학적으로 분석, 일식이 관측된 위치를 지도에 표기한 것. 빨간 화살표는 이 시리즈의 저자가 덧붙인 것으로, 가야의 천문 관측 중심지가 양쯔강 중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도 출처: 박창범,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2002) 게재 지도

물론 ‘삼국사기’에선 그게 신라가 한 일인 것처럼 적혀 있다. 하지만 당시 갓 건국된 신라가 그 정도로 중국에 진출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건 다른 여러 자료들이 말해준다. 유일하게 가능한 해석은 가야를 병합한 신라가 다른 문화유산들과 함께 그 기록도 이어받아 이후로는 신라의 유산인 양 전해졌다는 것이다.

한반도 동남단에서 출범한 가야가 기원전 47년부터 중국 양쯔강 중류 일대를 안정된 해외 활동기지로 이용했다. 그렇다면 국가로서 가야의 출발은 서기 42년은 말할 것도 없고 기원전 47년보다 훨씬 이전의 일일 것이다.

그게 언제였을까?

이 시리즈에서는 기원전 350년이라고 본다. 기록에 남아 있는 것보다 400년 가까이 더 과거의 시점이다. 그때 인도 및 동남아시아 쪽에서 온 철기 제작인들이 한반도에 제철 기술을 갖고 들어오면서 낙동강 하류 유역의 지배계급으로 자리잡은 것이 ‘가야’라는 이름을 쓰는 제철 해양 연맹체의 출발이다. 앞으로 연재될 기사에서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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