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카본 및 한국화이바 창업자 조용준 회장. ⓒphoto 한국카본
한국카본 및 한국화이바 창업자 조용준 회장. ⓒphoto 한국카본

“남이 하는 것 베껴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독창력이 힘입니다.”

대표적 국내 복합소재 업체인 한국카본 조용준(90) 회장은 최근 경남 밀양 공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조 회장은 독학으로 1960년대부터 유리섬유 등 국산 복합소재를 연구, 개발해 발전시킨 선구자이자 개척자로 꼽힌다. 그가 1970~1980년대 설립한 한국카본과 한국화이바는 유리·탄소 섬유 등 복합소재 분야에서 독보적인 국내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상용 제품은 물론 한국군 대표 전략무기인 현무 지대지 미사일의 소재(연소관 등)도 군에 납품하고 있다. LNG운반선 화물창 설치 패널의 핵심인 가스 차단용 복합재 알루미늄 시트는 세계 유일의 독점 기술로 알려져 있다.

그가 1984년 설립한 한국카본의 경우 자동차·항공기·선박에 사용되는 탄소·유리 섬유 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510명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고 지난해엔 매출액 4116억원, 영업이익 757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첨단소재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비중도 높은 편이어서 매출액 중 5.52%(227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독창력과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조 회장의 철학은 한국카본 공장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본사 입구엔 그가 직접 나무를 심고 돌을 옮겨 가꾼 정원인 ‘녹산원’이 있다. 여기에 ‘독창력’이란 글이 새겨진 큼지막한 자연석이 서 있었다. 회사를 찾는 외빈들이 꼭 사진을 찍어야 하는 ‘포토존’이라고 한다. 회사 역사관 입구엔 조 회장의 흉상과 그의 의지가 담긴 어록이 전시돼 있었다. 어록은 한글과 영어로 “나는 평생 복합소재 한 분야만 매진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복합소재 하나로 세계 최고기업이 되겠다는 꿈만 있었을 뿐이다. 기술 개발은 언제나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후에야 성공으로 연결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그의 자서전 제목도 ‘독창력만이 살길이다’다.

조 회장은 이른바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으로 자수성가했다. 그는 자서전 서문에서 ‘내가 살아온 인생의 3분의1은 참으로 고난의 연속이었다’며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형제도 없이 늦둥이로 태어나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혈혈단신 미아처럼 떠돌면서 살았던 지난날의 기억은 지금 떠올려도 아릿한 아픔으로 가슴 한편에 전해온다’고 적고 있다.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시대 소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게 학력의 전부다. 집안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갈 수 없어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교실을 빠져나와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다. 상급학교를 진학할 수 없어 병원에서 사환으로 일했는데 일어로 된 의학서적을 독학으로 공부해 의학지식을 쌓았다. 조 회장은 “약리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결과 열여덟 살 때 병원 약제실 책임자가 됐는데 약제실의 250가지 약 이름과 용도 등을 달달 외울 정도였다”고 했다.

조용준 회장(오른쪽)이 탄소섬유 고속열차 TTX 제작을 점검하고 있다. ⓒphoto 한국카본
조용준 회장(오른쪽)이 탄소섬유 고속열차 TTX 제작을 점검하고 있다. ⓒphoto 한국카본

인생 항로를 바꾼 검은색 낚싯대

그런 그의 인생 행로를 바꾼 것은 검은색 낚싯대였다. 1962년 그가 근무하던 병원 원장이 당시 쌀 한 가마 값을 주고 낚싯대 하나를 구입하는 것을 보고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조 회장은 “‘도대체 저 낚싯대가 무엇으로 만들어졌기에…’ 하는 강한 호기심이 나를 유리섬유라는 재료에 관심을 갖게 했고 국내 최초로 유리섬유 원사를 개발하게 했다”고 말했다.

당시 산업기반이 거의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유리섬유 등 복합소재 분야는 불모지였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서 독학으로 해결했던 그의 소질과 집념이 복합소재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잡게 했다. 낚싯대를 개발하던 초창기에는 주로 중고서점에서 찾아낸 일본 전문서적으로 공부했다. 당시 중고서적도 살 형편이 아니었던 그는 “책방 주인에게 담배 한두 갑을 사주고 양해를 얻어 책방 구석에서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그의 복합소재에 대한 공부는 일본에서 매월 발간되는 ‘공업재료’란 전문잡지와 관련 협회가 발간하는 자료 등을 40년 이상 탐독하는 등 일상이 됐다. 그의 사무실에는 40여년간 구독해온 일본 ‘공업재료’ 잡지가 연도별로 서가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시행착오 끝에 1년여 만에 유리섬유 낚싯대를 개발한 그는 낚싯대가 불티나게 팔려나가자 1966년 투자를 받아 ‘은성사(銀星社)’라는 낚싯대 회사를 설립한다. 일제 낚싯대의 절반 이하 가격이었던 은성사 낚싯대는 국내 시장을 석권한다. 조 회장은 이어 낚싯대 제조에 필요한 유리섬유 소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1972년 한국화이바공업사를 창업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

그의 수많은 도전 중엔 한때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지만 상업화까지는 진전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가 개발한 틸팅(tilting)열차와 굴절버스, 초저상버스 등이 대표적이다.

‘틸팅열차(탄소섬유 고속열차·TTX)’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복합소재를 이용해 길이 23m의 거대한 차체를 한 덩어리로 제작한 것이다. 틸팅이란 원심력을 줄이기 위해 기존 철로의 곡선구간에서 안쪽으로 열차를 기울게 만들어 제 속력을 내는 기능이다. 조 회장은 자체 기술로 만든 대형 성형기(오토 크레이브) 안에 복합소재를 넣고 고온과 고압으로 마치 오븐에서 빵을 구워내듯이 틸팅열차 1량을 한 번에 뽑아냈다고 한다. 이렇게 제작된 6량의 틸팅열차는 2007년 3월부터 시험 운행에 들어갔고 기술적 하자는 없었다. 차량이 가벼워 전기로 운행할 때 에너지 절감 효과도 있었고 철로 마모를 줄이면서 지반을 보호하는 등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이 열차는 경제성이 없다며 생산이 중단됐다.

조 회장은 도로와 궤도 양쪽에서 모두 운행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인 ‘굴절버스’도 제작했다. 네덜란드 APTS사와 기술 제휴로 차체와 내장재 일체를 자체 제작하고 엔진의 조립까지 한국화이바가 맡아 2009년 출시했다. 이 버스는 동력원을 연료전지나 천연가스를 사용해 대기오염이 없는 친환경 차량이었지만 역시 시장성이 없어 생산이 중단됐다. 2010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식이 열려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남산 전기버스도 그의 작품이다. 수년간 시범운행이 이뤄졌지만 후속 사업은 실현되지 못했다.

고체연료 우주발사체에 도전

최근 조 회장은 미래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UAM(도심항공모빌리티)과 인공위성, 우주발사체 등에 빠져 있다. 이들 모두 탄소섬유와 미래 소재인 탄화규소 등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조 회장의 큰아들인 조문수(63) 한국카본 대표는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소재를 현재의 4분의1 가격으로 만들 수 있어 국제 위성발사 시장에서도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조 회장에 대해 김한경 방위사업학 박사는 “독학으로 평생을 바쳐 우리 소재산업의 한 획을 그은 대단한 분”이라며 “세계적인 일본 학자가 놀랄 정도로 성취를 이루고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자세는 후배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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