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비하르주 부다가야 시 팔구 강가에 있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 나무. 기원전 528년, 부처님 해탈 당시 나무의 5대 손에 해당되는 나무로, 많은 사람들이 이 밑에서 명상을 하기 위해 모여든다. 사진 출처: Flickre Creative License,  https://www.flickr.com/photos/queceus/15909617567 Magie Savage의 작품에서 상부 60%만 이용
인도 비하르주 부다가야 시 팔구 강가에 있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 나무. 기원전 528년, 부처님 해탈 당시 나무의 5대 손에 해당되는 나무로, 많은 사람들이 이 밑에서 명상을 하기 위해 모여든다. 사진 출처: Flickre Creative License, https://www.flickr.com/photos/queceus/15909617567 Magie Savage의 작품에서 상부 60%만 이용

한반도 동남단에 있던 살기 좋은 터전에 자리했던 나라 가야. 그 자리에선, 가야라는 나라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테다. 평민들이야 대체로 대대손손 비슷한 자리에서 삶을 이어가지만, 큰 이권이 달린 지배계급 자리는 사회경제적 격변기를 맞으면 주인이 전격적으로 바뀌는 일이 발생한다.

특히 가야는 한반도 동남단에 위치하고 있어서 북동부 연해주 지방에서 오는 세력과 남서부 남중국 지방, 그보다 더 멀리 동남아시아에서 오는 세력이 만나는 곳에 있다. 따라서 역사를 통해 상당히 이질적인 집단 사이의 세력 교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기사에서 그 과정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원전 4세기, 한반도 남쪽에 처음으로 철기를 전파한 사람들은 남서쪽 바닷길로 온 사람들이었는데, 그로부터 200년 후엔 북동쪽 연해주 지방에서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사람들이 새로운 철기 제작 기법을 갖고 들어왔다. 첨단 과학기술인 가속기 질량 분석법(AMS dating)이라는 연대 확인법으로 규명된 연구 성과다.

보통 앞선 문물, 특히 앞선 무기를 가지고 주도권을 장악한 사람들은 지배계층을 형성하며 새로운 사회 체제를 확립한다. 무수히 교체되었을 그런 프레임 중에서 ‘가야’라는 국호로 불린 집단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존재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방법을 궁리하던 중 ‘가야’라는 지명이 인도에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가야와 인도, 이 두 지역은 심심찮게 연관된다. 혹시 인도의 가야 지방이 오랜 철기 문명과 관련이 있었을까?

(왼쪽) 고대 인도의 철기 유물 출처: Public Domain, (오른쪽) 가야의 철기들 출처: 복천박물관
(왼쪽) 고대 인도의 철기 유물 출처: Public Domain, (오른쪽) 가야의 철기들 출처: 복천박물관

지난 세기 말부터 인도 북부 비하르 주 가야 시 외곽의 작은 도시 부다가야(Bodh Gaya)라는 곳에서 철기 유물이 속속 출토되고 있다는 보고서들이 꽤 있다. 2000년 인도 국립야금학연구소 바이쉬 박사 팀은 이 유물들의 연대를 분석한 결과 이곳이 기원전 1100년부터 서기 1200년까지 무려 2000년 이상, 북인도 철기문명의 중심지였음이 확인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부다가야는 갠지스 강의 지류인 팔구 강가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강둑의 보리수 나무 밑에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현재 인도의 4대 성지 중 하나로 세계적인 관광명소다. 그런데 이 부다가야에서 고대 철기 문명의 유물이 쏟아져 나와, 인도 철기시대의 역사가 새로 쓰이고 있다. 마치 한반도의 김해처럼 말이다.

인도는 지구상에서도 철기 문명이 일찍 시작된 지역 중 하나다. 지구상 철기 문명의 발상지인 지금의 터키 영토 아나톨리아 지방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구상 철기 문명의 시작은 얼마 전까지도 기원전 십 몇 세기 정도로 추정했는데, 최근 유물이 계속 발굴되면서 그 연대가 기원전 3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제철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에선 걷잡을 수 없이 환경파괴의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전통사회의 제철은 엄청난 양의 목재를 소모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금방 삼림 생태계가 결딴나고 제철인들은 인근에서 삼림과 철광석이 풍부한 곳을 찾아 이동하지 않을 수 없다.

발원지인 아나톨리아로부터 새로운 터전을 찾아 확산되는 제철인의 흐름 중 한 가닥은 동남쪽으로 향해 인도 아대륙의 북쪽으로 갔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철기 유물의 연대는 기원전 2400년까지 올라가지만, 철기 문명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1800년 무렵이라고 본다. 갠지스 강 상류,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의 고향으로 간주되는 아요디아가 있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서다.

여기서 더욱 확산된다면 인도 남부, 동남아시아, 중국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 중 인도에서 해로로 동남아시아로 가는 확산 경로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학계에선 인도 북부에서 육로로 중국에 갔을 거라는 추정에 무게가 실렸고, 동남아시아에는 서기 1세기나 되어서 전해졌다고 봤다. 중국의 ‘한서’ 등 남아 있는 기록을 바탕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2010년에 접어들며 새로운 유물이 많이 발굴되고 유물 제작 연대 확인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도에서 동남아시아에로 문명의 흐름이 그보다 훨씬 더 앞선 기원전 4세기에 시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는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문화를 전파했던 시기로, 동남아시아의 ‘인도화(indianization)’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 철기 제작법도 전해졌다는 것이다.

현재 관련 학계에서는, 동남아시아 제철의 시작을 인도화의 시작 단계인 기원전 4세기 중이었던 것으로 보는 것으로 대체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동남아시아 육지부인 미얀마나 베트남은 물론, 지도상으로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듯이 보이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도 말이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국 남해안 일대에도 동일한 남방형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역시 2010년 보고됐다.

아시아에서의 제철 확산 경로. 출처: Wikimedia Commons 유라시아 지도 위에 이진아가 표시
아시아에서의 제철 확산 경로. 출처: Wikimedia Commons 유라시아 지도 위에 이진아가 표시

지도에 표시해 놓고 보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철기 문명의 발상지와 가까운 지금의 터키 앙카라에서 인도 북부 가야 시까지는 육로 직선거리로 대략 5000km 정도 된다. 거기서 동남아시아 해안을 따라오다가 남중국해를 거쳐 한반도의 김해까지는 약 9000km에 달하는 노정이다.

철기 문명이 전자를 거쳐 전해지는데 1000년에서 1500년은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거의 두 배에 달하는 후자의 경로를 커버하는 데 단 100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얼른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수많은 유물과 첨단 과학기술이 정확하게 그 유물의 연대를 집어 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주장은 간단하게 무시됐을 법하다.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 많은 고대의 역사를 보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학문 분야의 성과가 통합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도를 놓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으로는 과거 인간의 움직임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관련 지역의 지형 및 해류, 과거의 거시적 환경 격변 사건, 고대인의 항해술 수준, 철기제작 및 유통이라는 경제활동의 특성, 그런 경제활동을 기반으로 하여 일파만파로 형성되는 정치적 파워게임 및 종교 등 이데올로기의 작용 같은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놓고 봐야,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면, 요즘 속속 출토되는 유물의 특성과 그 연대에 관한 사항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일거에 움직여 간 철기 제작인의 흔적을 따라가 보자. 재미있는 건, 이들이 갔던 루트를 따라 ‘가야’라는 지명, 혹은 그 지명의 흔적이 아직까지 상당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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