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5일 서울 성북구 서경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보험설계사 자격시험. ⓒphoto 뉴시스
지난해 4월 25일 서울 성북구 서경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보험설계사 자격시험. ⓒphoto 뉴시스

국내 생명보험업계 1위 회사인 삼성생명의 서울 영등포 한 지점은 최근 50명의 소속 보험설계사 중 90%인 45명이 외국인이어서 화제가 됐다. 이 지점은 국내 보험업계 최초로 다문화 특화 지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설계사들의 국적은 러시아, 몽골,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 6개국에 달한다는 것이 삼성생명 측의 설명이다. 이들은 실적도 우수한데, 최근 3개월간 체결한 계약만 1280건, 지난 6월에만 522건을 기록해 1인당 평균 10건 이상의 계약 실적을 달성했다고 한다. 전체 설계사 평균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성과를 낸 것이다.

삼성생명과 함께 생명보험업계의 빅2로 꼽히는 한화생명 역시 최근 외국인 보험설계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보통 생명보험사는 삼성-한화-교보 순으로 업계 빅3로 꼽힌다. 한화생명의 한 관계자는 “영등포광명지역단은 설계사 절반이 중국 동포 혹은 화교”라며 “서울역이나 영등포, 동대문 쪽에 화교 설계사들 인원을 늘려 분할 점포를 두 개로 나눈 경우가 꽤 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국내 인구가 줄면서 정부는 정책적으로 이주 외국인들의 숫자를 매년 조금씩 늘리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11년 139만명에서 지난해 203만명으로 46% 증가했다. 삼성생명의 외국인 고객 계약 건수 1만7725건이었던 2018년에 비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는 1년간 3만2992건에 달했다. 약 2년 반 동안 86% 급증한 셈이다.

이처럼 국내 체류 외국인들의 숫자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국내 보험 산업도 변화하고 있다. 장기 체류 외국인이 증가하면서 자연히 자녀를 낳고 정착하는 가구도 늘고 있고, 이에 따라 이들을 위한 맞춤형 재무 컨설팅과 보험 상품의 필요성이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외국인 보험설계사는 외국인 고객을 상대로 한 상품 설명, 계약 관리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X계약에 유리한 외국인 설계사들

보험업계에서는 업계 수위권 회사들이 외국인 설계사 양성에 적극적인 이유는 이외에도 또 있다고 본다. 외국인 신인 보험설계사를 뽑을 경우 단순히 외국인 고객을 상대로 한 계약에 유리한 것 외에 보험업계의 수익 구조와 연관해서도 강점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험업계에서 꾸준히 신인 설계사를 창출해내려는 이유는 보통 신인 설계사가 보험 계약을 잘 따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통상 보험업계에서는 보험계약을 설계사와 가입자의 친소관계에 따라 ‘X계약’ ‘Y계약’ ‘Z계약’으로 분류해 부른다. X계약은 가족·지인을 대상으로 한 보험 계약, Y계약은 지인의 지인 계약, Z계약은 지인의 지인의 지인 계약을 말한다. Z계약은 사실상 생판 모르는 남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설계사들이 Z계약을 해야 할 때까지 보험설계사 신분을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보통은 설계사들이 X계약, Y계약을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인 설계사의 역량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면 한 설계사가 성사시킬 수 있는 X계약은 끝난다고 한다. 생명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그래서 대다수 생명보험사는 13회 차, 25회 차 식으로 모집자 신분을 계속 유지하면 회사가 축하 파티를 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신인 설계사가 X계약으로 최소 10건은 하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신인만 계속 창출하면 X계약만으로도 꾸준한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에서는 지점장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속적인 신인 설계사 창출’을 꼽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점장 역량의 7할이 리쿠르팅”이라고도 표현했다. 쉽게 말해 꾸준히 신인 보험설계사를 제때 양성하는 것이 지점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외국인 보험설계사는 회사 입장에서 여러 강점이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외국인들은 다른 회사와 이미 보험 계약을 맺었을 확률이 내국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으니 X계약을 할 수 있는 여지도 많고, 신인을 모집하기도 내국인들보다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다만 설계사의 정착률 측면에서는 외국인 설계사들이 내국인에 비해 낮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특성상 외국인 설계사들이 내국인 설계사들에 비해 Y계약이나 Z계약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강점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외국인 설계사들에게 Y계약, Z계약까지 기대하기보다는 주로 ‘지인들, 아는 사람들만이라도 가입을 시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생명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그래서 본질은 외국인 설계사가 많고 적고의 문제라기보다 사실은 신인 창출의 블루오션이라는 게 더 크다”라며 “새로운 X계약만이 보험회사가 살길인데 외국인 설계사들은 이 점에서 가장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보험회사와 지점 입장에서는 외국인 계약자를 늘리면서 신인 설계사도 육성할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고’라는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우리 회사 기준으로 지점장이 한 달에 신인을 2명 이상 등록하지 못하면 압박을 받는다”며 “근데 신인을 등록시키려면 그것도 보통 한 달은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설계사는 ‘꿩 먹고 알 먹고’ 격

이처럼 외국인 설계사가 늘어나면서 남산, 영등포 등 일부 지역에서는 분할을 통한 영업소의 증가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보험업계에서는 분할이 상당히 중요한 지표로 통한다. 특성상 보험영업은 설계사가 많아야 영업이 수월한데, 설계사 1명이 계약자 최소 10명을 데려오기 때문이다. 영업소를 분할하는 기준은 회사마다 다르다. 예컨대 설계사가 30명이었던 곳이 설계사 60명이 되면 분할을 하는 식이다. 지점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 지역 설계사와 고객이 모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삼성·한화·교보생명에 이어 사세가 확장 중인 신한라이프는 아직까지 외국인 설계사들이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신한라이프 소속 한 설계사는 “삼성이나 한화생명은 외국인 설계사가 많은 것으로 아는데, 아직까지 우리 회사는 외국인 설계사가 체감할 만큼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매달 신입이 들어오면 회사 전체 채널에 신입 소개가 뜨는데, 이름을 보고 외국인임을 유추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체감이 될 만큼 많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이 설계사는 “아직까지 우리 회사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전용 상품은 따로 없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동일하게 가입하는 것으로 안다”고도 했다. 2년 전 신한금융지주가 오렌지라이프를 인수하면서 현재 신한라이프도 생명보험업계 5위권 내 규모로 꼽힌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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