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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0호]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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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인도에서 한반도 낙동강까지... ‘가야’가 새겨진 역사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21-08-10 오전 7:57:38

▲ 필리핀 쿠요섬 해변에 정박해 있는 전통 방식의 배. 갑판 양 옆으로 중심 잡아주는 장치가 있는 이런 배는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해역에서 기원전 3000년 이전부터 쓰여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험한 파도 속에서 균형을 잘 잡으면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거시적 환경 변화에 따라 식량, 자원, 혹은 살 만한 곳을 찾아 남태평양, 북태평양, 인도양을 가로지르며 장거리를 이동할 때에도 많이 이용되어 왔다. 출처: Flickre Creative Commons, https://www.flickr.com/photos/azwegers/48892580208 , Arian Zwegers의 작품에서 일부 사용
인도에도 ‘가야’라는 지명이 있고, 이곳이 고대 철기문명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또 궁금해졌다. 다른 곳에도 가야라는 지명이 있을까?
   
   세계의 어느 곳이든, 지명을 확인하는 건 요즘 아주 간단한 일이다. 구글 지도에서 그 지명을 입력, 검색하면 된다. 일단 인도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가야(Gaya)라는 단어를 국가명과 나란히 입력해서 검색해봤다. ‘Gaya Myanmar’, ‘Gaya Thailand’ 이런 식으로 말이다. 구글 지도에서는 지명만이 아니라 상호명도 함께 검색된다. 상호명도 문화적 영향을 확인한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없지 않다.
   
   가야라는 이름의 나라가 사라진 지 1500년, 한반도에서 그 이름이 지명으로 남아 있는 곳은 총 8개소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동이 있고, 경기도 파주시에서 경상남도 함안군까지 7개소에서 ‘리’단위에 가야라는 이름이 등장한다(경상남도 함안군이야 말할 것도 없이 김해 금관가야(가락국)의 혈맹으로 마지막까지 긴밀한 관계였던 ‘아라가야’가 있었던 곳이다. 한편 경기도 파주시 일대도 가야의 전성기에는 그 연맹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한강과 임진강으로 바다로부터 쉽게 이어지며, 이 두 강이 이루는 기름진 평야를 품고 있다. 또한 이 두 강과 함께 광주산맥의 끝자락인 광평산, 사방산 등이 삼각형을 이루며 둘러싸고 있어 천혜의 요새와 같은 지형이다. 여기 더해, 인근에 자철광이 풍부하며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지형이라, 고대 철기 제작집단이 충분히 공들였을 만한 곳이다.).
   
   그런데 상호로서 가야라는 이름이 쓰이는 곳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다. 금속가공업체에서 밀면 전문 식당에 이르기까지 ‘가야’가 새겨진 간판은 대한민국 도처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공식적 역사는 부정했지만 우리의 집단 기억 속, 거의 잠재의식 영역에 여전히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가야의 존재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가야라는 상호가 많이 나타나면, 그 역시 가야의 흔적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찾은 가야라는 이름이 붙은 곳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구글 지도에서 검색해 나오는 것만 표시한 것이고, 아마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지역에서 ‘가야’가 지명 및 업소명에 쓰이고 있을 것이다.
   
   
▲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지명 ‘가야’가 있는 곳과 상호명 ‘가야’가 다수 존재하는 곳. 출처: Wikimedia Commons 백지도 위에, 구글 지도에서 검색한 지점을 표기(일본의 경우엔 ‘가야’라는 지명으로 검색해서는 나오는 게 없었다. 대신 일본에서 가락국, 즉 금관가야를 부르던 명칭인 ‘가라’(カラ)라는 말이 붙은 지명은 다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자어와 더불어 쓰이기 때문에, ‘가라’만으로는 검색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김해와 바로 마주하고 있는 구마모토의 작은 도시는 ‘가락국 나루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가라츠’라는 이름을 갖는다. 여기에는 한자어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도 있을 수 있어 복잡해지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가야 영향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이 지도에는 표시하지 않았다.)

   인도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가면서 다수 나타나던 지명 가야는 한반도 동남단보다 위쪽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즉 한반도 북부나 연해주 지방, 또 그보다 위쪽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이 명칭의 흐름은 한반도 동남단인 낙동강 하구 지역에서 딱 멎는다.
   
   다소 주먹구구식으로 가야의 흔적을 더듬어봤지만, 그 흔적이 인도와 한반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바닷길을 따라 동남아시아 일대에 노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 사실은 지도상에서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이 노선의 형성은 상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아래 그림에서 보다시피,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해류를 고려한다면 배로 이동하기 그리 어렵지 않은 노정이기 때문이다.
   
   
▲ 아시아에서 지명 ‘가야’가 남아 있는 곳과 해류의 흐름. 오른쪽 지도 출처: Freepik License, https://www.freepik.com/free-vector/ocean-current-world-map-with-names_16510087.htm 의 세계 해류도 일부를 취해서 번역, 보완.

   여기까지 알게 된 것을 종합하면 하나의 추정이 일단락된다.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에 걸쳐 일어났다고 하는,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로 향한 문명전파의 물결이 필리핀 군도를 넘어 대만을 지나 한반도 동남단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의 주된 추동력은 철 및 철기 제작 기술이었고, 가야라는 이름이 상당 부분 함께 했을 것이다. 또한 에너지가 큰 해류를 타는 바닷길을 이용했기 때문에, 고대였지만 대단히 빠른 속도로 움직여갈 수 있었다.
   
   (분명 그렇게 빠르게 움직여가야만 했던 추진 동기가 있었을 테고, 한반도 남해안을 거쳐 동남단에 이르면서 멈추게 됐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회차에서 좀 더 자세히 보려 한다.)
   
   이 추정이 맞다면 동남아시아에도 같은 시기에 철기문명이 있었을 것이며, 이 문명은 가야라는 명칭과 상당히 관련성이 있을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철기시대에 관련된 고고학‧역사학‧문화인류학 학술 논문이 상당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동남아시아의 철기 문명에 대한 논문들 역시 한반도나 인도의 철기문명과 마찬가지로, 시간적으로 뚜렷한 불연속성을 갖고 있다는 특징을 보였다. 즉, 1990년대, 지난 세기 말까지는 천편일률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철기는 기원 이후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고 말한다. 그 후 좀 뜸하다가 2010년 경부터는 전혀 다른 학설을 내세우는 논문들이 나오고 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이 지역에서도 도로나 아파트 건설 등 대규모 토지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그에 따라 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됐으며, 그 유물의 연대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기술이 발달한 결과일 테다.
   
   
▲ 인도로부터 넘어온 문물은 동남아에 정착하면서 그 지역 특유의 색채를 띠게 된다. (왼쪽) 마법의 칼을 들고 마왕 라바나의 궁전에 도착한 원숭이 신 하누만. 힌두교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타이 버전인 콤 경전에 기록된 이 일화에 붙여진 19세기 삽화는 완전히 동남아시아적인 건물과 의상을 보여준다. (오른쪽) 13세기 건설된 타이의 수코타이 역사공원의 불상은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출처: Wikimedia Commons License, Ms Sarah Welch의 작품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19th-century_Ramayana_manuscript,_Ramakien,_Thailand_version,_Khom_script,_Hanuman_with_sword_reaches_Ravana%27s_palace.jpg / Wikimedia Commons License, Love Nystrom의 작품에서 일부 발췌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itting_Buddha_in_Sukhothai_Historical_Park.jpg

   동남아시아 철기 문명과 한반도 철기 문명에 대해서 21세기의 논문들이 말하는 새로운 사실들을 종합해서 요약해보자. 첫째, 동남아시아 철기 문명 시작은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로의 문명 전파 과정인 ‘인도화’(Indianization)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다. 둘째, 이 과정은 미얀마에서 한반도까지, 그 넓은 공간에서 거의 같은 시간대인 기원전 4세기에 나타났다. 셋째, 이 철기 문명 전파의 흐름은 중국 본토나 일본으로는 간 흔적이 거의 없고 동남아시아에서 바로 한반도로 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아시아 남쪽 해안을 잇는 광범위하고 속도가 빠른 문명 전파의 흐름이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 있었는데 여기에 중국과 일본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시아’라고 하면 일단 중국이나 일본을 앞세우기 시작하는 종전까지의 사유 프레임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해류를 봐서는 얼마든지 중국 남부 해안지방이나 일본 전역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 문명의 흐름은 두 나라를 거의 패싱하면서 한반도로 바로 왔을까?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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