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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0호]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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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벤트’는 남북관계만 어렵게 한다

이강국  전 시안총영사  2021-08-12 오전 9:49:46

▲ 지난해 6월 북한이 기습폭파한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photo 뉴시스
지난 7월 27일 남북 통신선이 재가동됐다. 지난해 6월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단절됐다가 13개월여만에 전격 복구된 것이다. 하지만 8월11일 현재 북한은 한미 군사연합훈련을 빌미로 이틀째 불통 사태를 이어가고 있어 언제 정상 통화가 이뤄질 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번 남북통신선 복구에 정부와 여당은 들뜬 분위기부터 보였다. 지난해 6월 북한이 개성공단 내 우리 자산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기습폭파하고, 같은해 9월 연평도 해역에서 실종된 우리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사살 후 시신을 훼손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는데도 말이다. 내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마저 나온다.
   
   남북통신선이 복구되자마자 통일부는 8월 한미연합훈련 연기론을 흘렸다. 그러자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한미연합훈련 취소도 압박했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간첩잡는 일이 주 업무인 국가정보원 수장이 국회 정보위에서 “한미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을 주축으로 범(汎)여권 국회의원 74명도 지난 8월 5일,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문제는 진정성이요 북한의 비(非)핵화에 효과가 있느냐이다. 실제로 남한이 지난 8월 10일 규모를 대폭 줄인 한미연합훈련 사전연습을 강행하자, 북측은 또다시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는 김여정 부부장 명의의 담화와 함께 남북통신선 연락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과거 김여정 협박 직후 여권이 소위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통과시켜 ‘하명법’이란 비난을 받고 있는데,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김여정의 ‘하명(下命)’에 따라 움직이는 신세가 되었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민주주의 사회는 정직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매우 중요하다. 반면 공산주의 체제는 속이고 협박하는 것이 기본적인 속성이고 책략이다. 외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베이징, 상하이, 시안 등 중국 현지 공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보람된 일도 많았지만, 공산주의의 실체를 직접 겪으면서 몸서리친 적도 적지않다.
   
   베이징의 주중 대사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우리 대사관과 중국 외교부 양측이 협의하던 중에 평소 점잖은 태도를 보인 중국 측 대표가 “한국과 관계없는 제3국인 북한문제로 항의를 제기하냐”고 갑자기 고함을 질러댔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일을 당한터라 우리 측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주재 중인 입장을 고려하여 맞대응하지 않고 상황을 수습하고 나왔다. 상식적인 국가라면 “어떻게 상대국 외교관들에게 무례하게 고함을 지를 수 있느냐”고 내부에서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 외교부에서는 무용담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기만과 협박에 관해서는 북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햇볕정책’을 실시했을 때도 필자는 주중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6.25전쟁을 일으킨 주적이고 호전적인 북한을 상대로 유화적인 햇볕정책을 실시하는 데 대한 심리적 저항이 컸다.
   
   하지만 대한민국 외교관이므로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좋게 생각하다보니 얼마안가 햇볕정책 전도사가 되었다. 중국 외교관과 학자들도 “햇볕정책은 매우 좋은 정책”이라며 이구동성으로 환영했다. 중국으로서는 사실상 유일한 동맹국인 북한을 한국이 포용하고 도와주겠다하니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 결과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6.15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정상회담 대가로 남측은 북측에 수억달러를 송금했고, 정상회담 결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주요국 대사를 역임했던 한 인사는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필자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10월, 대통령 임기종료를 불과 몇달 앞두고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갖고 ‘10.4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북한은 그간 핵개발에 필요한 우라늄농축용 원심분리기에 쓰이는 고강도 알루미늄관 등 전략물자를 해외에서 조달했다. 감시를 피하기 위해 예컨대 일본에서 확보한 물자를 싱가포르나 심지어 이란으로 운송했다가 다시 북한으로 운반하고, ‘핵 암시장’에서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비용이 크게 늘어났지만, 남한을 통해 확보한 자금 덕분에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결과적으로 햇볕정책이 북핵 개발만 도와준 셈이 됐다.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개발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협박하면서 이득을 얻고, 속이면서 핵개발을 하니 북한과 협상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간 수차례 남북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는 그 해결책이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 그 사이 북한은 실제적인 핵보유국이 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에게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현실적 재앙이 올 수 있다. 북한으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생존 자체를 협박당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핵문제 해결은 절박하고 그 필요성이 자명하다.
   
   현재 국제사회는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다. 대북제재가 수년째 지속되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북한 스스로 국경을 봉쇄했기 때문에, 북한 경제는 매우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식량 사정 역시 심각한 상태로 알려진다. 이같은 북한 상황으로 보건데, 지금이 어쩌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김정은이 구명줄을 보내달라고 해도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만 가능하다”고 답해야 한다.
   
   북한이 고압적으로 나오는 것은 남한 정부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어서다. 또한 남한 정치에 개입하여 이득을 얻기 위해서다. 정부와 여당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 개최 분위기 속에서 실시된 6.13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바 있다. 지금도 북한과 이벤트를 다시 만들어 내년 대선에서 승리의 재현을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북한을 선거판에 끌어들이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훼손시키고 남북관계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북핵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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