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인근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인근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올해 초부터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북한과 막후 협상을 추진해왔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실제 필자가 여러 대북 당국 관계자들에게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간 남북은 우리의 국정원과 북한의 국가보위부 간 핫라인을 통해 협상을 진행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이 작년에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면서 차단했던 남북 통신연락선을 청와대가 지난 7월 27일 ‘정상 간 합의’에 따라 재가동한다고 발표한 데서 확인된다. 통신연락선이 끊긴 상태에서 북한과의 협상이 가능했다는 것은 국정원-국가보위부 비밀 라인이 가동됐다는 것을 방증한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3주년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했는데, 이후 본격 가동되어온 국정원-국가보위부 간 협상이 3개월 만에 내놓은 첫 합의가 통신연락선 복원이었던 셈이다.

국정원-국가보위부 간 핫라인 가동?

19세기 프러시아 군사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명저 ‘전쟁론’에서 막후 협상을 통해 적국을 상대로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전쟁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적국과의 막후 협상은 ‘비군사적 전쟁’이라는 의미다. 이에 비춰 보면 문재인 정부가 임기를 9개월가량 남겨둔 현 시점에서 막후 협상을 통해 북한과 비군사적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런 막후 협상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이 목적 역시 클라우제비츠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어떤 전쟁이든 국내 정치의 연장이고 또 다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정권 모두 막후 협상을 통해 남북관계 안정이나 한반도 평화라는 추상적인 목표보다는 각자의 국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문제는 남북 간에 벌어지고 있는 막후 협상이라는 비군사적 전쟁이 국가 안보상 위험하다는 데 있다. 물론 정확한 판단은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정권이 각자 추구하고 있는 국내 정치적 목적이 무엇이고, 그 목적이 어떤 지점에서 일치하는지를 확인해야만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 같은 확인 과정이 별로 진행되지 않았는데도 북한이 더 큰 ‘이익’을 챙길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런 추정이 가능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0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성명에서 문재인 정부를 향해 ‘배신했다’고 쏘아붙였다. 이와 함께 한·미 연합군사훈련 개시를 비난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문재인 정부가 그간의 막후 협상에서 북한으로부터 ‘배신’ 운운 비판을 받을 만한 빌미를 준 게 아니냐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현재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막후 협상을 통해 추구해오고 있는 최종 목표가 올 하반기 정상회담 개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코로나19의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까지 폐쇄한 김정은이 대면 회담에 나올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때문에 그동안의 막후 협상에서 이른바 ‘화상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해 왔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통신연락선 재가동 발표 이후 통일부 등 대북 부처 안팎에서는 ‘10월 화상 정상회담 개최설’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현재 국정원-국가보위부 막후 협상은 형식은 물론 하반기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어떤 최종 합의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8월 3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한 언급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관련해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서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북한의 군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잘 마무리되도록 뒷받침해야 하는 대북 정보기관 수장이 거꾸로 훈련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북한과의 막후 협상을 이끌어온 그로서는 지난 8월 1일 김여정 부부장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남북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서자 맞장구를 쳐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하반기 정상회담 성사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지난 8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박지원 국정원장. ⓒphoto 뉴시스
지난 8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박지원 국정원장. ⓒphoto 뉴시스

국정원장의 터무니없는 ‘딜’ 발언

박 원장이 이날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북한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제기한 비(非)안보적 논리는 북한 비핵화라는 큰 그림을 위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지 말자고 한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실시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동등한 위치로 놓고 비교하는 잘못도 범했다. 북한이 SLBM 시험발사를 못 하게 하기 위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취소한다면 이는 나중에 핵실험을 하지 않을 테니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는 또 다른 공갈·협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북 정보기관 수장이라면 핵실험과 SLBM 시험발사 등의 군사위협을 못 하도록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얘기해도 모자란다. 그런데도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SLBM 시험발사를 맞바꾸자는 어처구니없는 거래로 비치는 언급을, 그것도 국회에 출석해서 했다는 것 자체가 명백히 안보 기관장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다.

올 하반기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김정은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것은 국정원뿐만이 아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통일부도 행여나 김정은의 심기를 거스를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박지원 원장은 지난 8월 3일 국회에서 7·27 남북 통신연락선 재가동 합의는 김 위원장이 먼저 요청해서 이루어졌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통일부는 문제의 언급이 나온 지 8시간 만에 청와대 국가안보실과의 협의를 거쳐 “통신선 복원은 어느 일방이 먼저 요청한 것이 아니라 양측이 서로 합의한 결과”라는 반박문을 냈다. 이는 청와대와 통일부가 박 원장의 언급이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는 말을 낳고 있다.

김정은의 심기 관리를 위한 국정원과 통일부,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이 같은 갈등이 있은 지 3일 만인 지난 8월 6일 외교부는 국정원-국가보위부 간 막후 협상에서 어느 정도 합의됐을 식량과 코로나19 백신 제공을 비롯한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를 미국과 본격적으로 협의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통화를 갖고 인도적 지원 협력 등을 통해 대북 관여를 해나간다는 데 합의한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 1월 8차 당대회와 지난 6월 당 전원회의에서 식량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국가보위부 막후 협상을 통해 북한에 식량과 코로나19 백신 제공 등 인도적 지원 카드를 제시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막후 협상이라는 비군사적 전쟁도 국내 정치의 연장이라고 본다면, 내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김정은도 식량과 코로나19 백신 제공을 약속받고 정상회담 개최에 응하는 것은 무리 없는 수순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남북 막후 협상에 응해온 배경에는 전례 없는 식량 부족 사태와 코로나19 바이러스 극복이라는 국내 정치적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국내 정치적 목적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남북 정상회담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클라우제비츠의 말대로 문 정부와 여당의 핵심들 역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상회담 개최를 원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문 대통령이 ‘마지막’ 남북 정상회담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와 그것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 달성이라는 허상이 정권 재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남북 화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사안에서는 물론 거짓말이더라도 핵실험과 ICBM, SLBM 시험발사 중단 등 군사적 사안에서까지 양보하는 쇼맨십을 연출한다면 그 같은 이벤트가 내년 3·9 대선에 미칠 영향은 실로 엄청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넘어서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켰다는 평가가 뒤따르게 될 것이고, 이와 함께 보수 후보가 당선되면 남북관계가 다시금 불안정한 상태로 후퇴할 수 있다는 여당의 주장이 먹혀들 수 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 내 친문(親文) 세력이 국정원과 통일부,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 모든 대북 부처와 기관을 총동원하면서 하반기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올인하고 있는 목적은 결국 정권 재창출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의 핵심은 막후 협상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이 끝내 올 하반기에 개최된다면 그것이 왜 위험하냐는 데 있다. 하반기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김정은이 문재인 정부와 친문 세력이 원하는 수준의 드라마틱한 쇼를 해줄 경우 김정은이 위험한 요구들을 해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남북 정상회담이 흥행에 성공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면 차기 정부에서도 김정은의 위험한 요구들을 들어주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렇게 되면 대북 안보의 근간이 되어온 많은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사전훈련이 시작된 지난 8월 10일 성명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공개 요구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photo 뉴시스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사전훈련이 시작된 지난 8월 10일 성명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공개 요구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photo 뉴시스

다시 꺼내든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

그 우려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원내 의석수가 180석이 넘는 민주당은 8월 15일 광복절을 계기로 지난해 상정해 놓은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려면 북한이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데 중심축으로 삼아온 핵무기와 ICBM 등 대량살상무기 해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전제 없이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면 유엔사령부의 존립 기반이 사라지게 되고, 전시작전권 이관 이후 유엔사의 역할을 복원해 한국군과 협력해야 할 주한미군의 입지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종전선언이 미·북 평화협정 체결 주장으로 이어질 경우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까지 사태가 악화할 수 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버젓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우리의 안보는 꼼짝없이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종속당한다.

친북 성향의 진보 정부와 여당이 위험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만큼 우려스러운 것은 여기에 정교하게 대응해야 할 보수 정치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1 보수야당인 국민의힘 국회의원들도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 성장한 정치인들이긴 하지만 최근 문재인 정부의 대북 기조에 대한 일관된 비판을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사실 ‘위험 선’을 넘나들고 있다는 경고를 받을 만하다. 지난 7월 27일 청와대가 통신연락선 복원을 발표했을 때부터 8월 3일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반대한다는 국정원장의 발언과 같은 날 불거진 연락선 복원 합의 배경과 관련한 국정원과 통일부의 입장 차이, 그리고 8월 6일 한·미 외교장관 간 대북 인도적 협력 합의 등은 남북관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이와 관련해 제대로 된 비판의 목소리가 국민의힘에서 나오지 않았다. 초선 의원인 배현진 최고위원이 지난 8월 2일 여당의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 추진을 비판한 것이 거의 유일해 보인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성사시키기 위해 지난 4년여 유지해온 외교 기조까지 여반장(如反掌)처럼 뒤집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2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바이든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대중 견제를 위해 강화해온 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 간 동맹인 ‘쿼드(the Quad)’를 지지함으로써 기존에 친중(親中)·격미(隔美) 기조로 평가받아온 대외 정책 기조를 단숨에 바꿨다. 문 정부의 이 같은 대외 기조 전환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 성사의 전제 조건인 대북 식량 지원과 코로나19 백신 제공 등의 인도적 협력에 미국의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된다.

2월 동계올림픽 기간도 주목해야

문재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개최 시기를 올 하반기로 잡기가 쉽지 않다면 내년 2월 열릴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중 남북 정상회담과 함께 남·북·중 3국 정상회담까지 가짐으로써 그 효과를 더욱 높이려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남북한 막후 협상이라는 비군사적 전쟁이 중국까지 참여한 국제전으로 확전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남북 정상회담에 올인하는 문재인 정부를 길들이려는 김정은의 각오 역시 간단치 않아 보인다. 지난 8월 10일 북한은 통신연락선을 다시 차단했다. 통신연락선이 재개통된 지 2주 만의 일이다. 국정원-국가보위부 협상은 비밀 라인을 이용하기 때문에 통신연락선이 잠깐 끊긴다고 해서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통신연락선이 다시 먹통이 된 이날 김여정 명의로 발표된 두 번째 대남 비난 담화 내용은 수위가 만만치 않았다. 김여정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이 담화에서 “내외의 한결같은 규탄과 배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남조선군은 끝끝내 정세 불안정을 더욱 촉진시키는 합동군사연습을 개시하였다”면서 “조성된 정세는 우리가 국가방위력을 줄기차게 키워온 것이 천만 번 정당하였다는 것을 다시금 입증해주고 있다”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맹비난한 뒤 급기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그는 ‘위임에 따라 나는 이 글을 발표한다’고 덧붙임으로써 담화가 김정은의 뜻임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은 지난 8월 1일 김여정의 첫 번째 담화를 통해 한·미 연합군사훈련 취소를 요구했을 때 자신이 정상회담 개최에 동의해주면 남한이 이 정도 요구는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여정이 지난 8월 10일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한 데서 엿보인다. 이 같은 비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취소하라는 김여정의 8월 1일 담화 속 요구를 문 정부가 들어주지 않은 데 실망했으며, 앞으로 계속 이렇게 협조하지 않으면 정상회담 개최에 응하지 않을 수 있다는 협박으로 읽힌다.

이후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김여정의 두 번째 담화를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는지 급하게 움직였다. 북한이 이번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응해 도발을 할지 모른다면서 지난 8월 10일 오전 대통령과 수석비서관급 참모 간 회의 때 서훈 안보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김여정의 2차 담화 내용과 그에 따른 우려를 보고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같은 상황은 임기를 9개월 남겨둔 현 정부가 남북 이슈를 차기 정부로 넘기지 않고 무리하게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대북 군사 공격을 전제로 한 훈련도 아니고 북한의 침략에 맞선 방어 훈련에 집중된, 더구나 축소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빌미로 김정은이 핵무기와 ICBM 등을 개발해온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문 정부는 한마디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정부가 국정원-국가보위부 간 막후 협상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대가로 대북 안보 체제와 관련해 어디까지 북한에 양보할 수 있을지 국민적 의혹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여동생을 통해 1차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개시됐다고 ‘배신’ 운운하며 협박을 일삼는 것 자체가 임기 말 ‘위험한’ 정상회담 개최에 매달려온 결과 대북 안보 체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만약 김정은이 조만간 핵실험이나 ICBM 또는 SLBM 시험발사 등 군사 도발을 하면서 그 명분을 ‘남한이 막후 협상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뭐라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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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 한국국가대전략연구원장·전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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