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사히신문의 ‘코멘트 플러스’ 댓글 코너. 외부 전문가 27명 등 57명의 댓글 군단이 유료 회원에게 댓글 서비스를 제공한다. ⓒphoto 아사히신문 캡처
일본 아사히신문의 ‘코멘트 플러스’ 댓글 코너. 외부 전문가 27명 등 57명의 댓글 군단이 유료 회원에게 댓글 서비스를 제공한다. ⓒphoto 아사히신문 캡처

‘여성·흑인을 비롯한 인종적 소수자, LGBTQI(성적 소수자)의 이사회 임원 의무화.’

지난 8월 6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나스닥발(發) 긴급 뉴스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발표한 상장 규정으로, 앞으로 나스닥을 미롯한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될 기업이 지켜야만 할 법이다. 2021년 세계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성’의 법칙인 셈이다. 요즘 전 세계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은 ESG(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 향상의 일환 중 하나가 다양성이다. 기업이나 비즈니스에 대한 투자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ESG다. 사회적 소수자 발탁은 ESG가운데 G, 즉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위한 실천강령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뉴노멀이지만, 카리스마 가득한 경영자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던 시대는 끝났다. 아무리 경영성과가 좋아도 ESG 기준으로 보면 시대착오에 불과하다.

미국 언론에 불어닥치는 소수자 발탁

ESG 나아가 SDGs(지속가능개발 목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21세기 이념이자 실천과 행동의 강령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하는가라는 문제가 각자에게 남겨진 과제다. 모든 영역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그중 신문·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계통에서도 ESG, 나아가 SDGs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인사(人事)에 있다. 백인 남성을 대신한 여성 간부의 출현이다. 지난 5월 워싱턴포스트(WP) 144년 역사상 첫 여성 편집국장에 오른 55살의 샐리 버즈비는 좋은 본보기다. 창간 144년 만에 최초의 여성 편집장을 만들어낸 뉴욕타임스에 비해 10년이나 늦었지만, 보수적인 워싱턴의 분위기를 일신할 여성으로 기대된다. 인사라는 각도에서 미국 미디어가 추구하는 ESG의 미래를 보면 흑인 싱글마더나 성소수자 출신 편집장도 가까운 시일 내에 목격될 것이다. 미국·유럽에 밀어닥친 시대정신을 고려한다면 한국 미디어도 가까운 시일 내에 여성 최고 간부 출현이 당연시될 것이다.

‘오물’로 전락한 ‘디지털 데모’ 현장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변화의 시작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구조적 하드웨어 차원에서 이뤄진다. 인사를 통한 미디어의 변화가 먼저 시작됐지만, 하드웨어 차원이 아닌 소프트웨어 측면의 변화도 전 세계 미디어에 정착된 지 오래다. 수많은 변화 가운데 최근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댓글 영역이다. 특히 신문에서의 댓글이 주된 관심사다.

댓글, 즉 코멘트(Comment) 코너는 신문·방송 내용에 관한 독자와 시청자의 반응을 담는다. 잘 알려져 있듯이 댓글의 양은 인터넷 출현과 함께 수직 상승했다. 모두의 의견을 이해할 수 있는 민주주의 실현과 시청자·독자와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출발했다. 기자라면 자신의 글이 어떻게 비치는지, 독자라면 특정 기사나 의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 알고 싶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의 댓글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 균형감각의 도우미, 인간 사회화의 귀중한 터전이 댓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댓글의 대부분은 건전한 비판과 분석에 기초한 상식선에서 쓰여야 하지만 미꾸라지 몇 마리만 있어도 논바닥 전체를 흐리게 만들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오물(cesspool)’이라 표현할 정도로 수준 이하의 공간으로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욕, 반말, 인종차별, 인신공격에다 문법도 틀리고 엉터리 문장이 난무한다. 신앙에 가까운 일방적 이념을 강요하고, 떼로 몰려다니며 선동하는 ‘디지털 데모’ 현장이 댓글 코너다. 익명에 가려진 언어폭력 경연장으로 느껴질 정도다.

IT시대의 대세이자 정의지만, 인기 경쟁도 일상화된다.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좋아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곳곳에 출현한다. 당연히 댓글과 관련된 법정 소송도 줄을 잇는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한국은 그런 ‘오물 같은 댓글’의 현실을 가장 절감할 수 있는 나라 중 하나로 느껴진다. ‘오물 댓글’로 인해 법의 심판을 받는 정치인, 군인들이 나타날 정도다.

댓글 공간의 현실을 이해할 경우 너무도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댓글은 저널리즘과 무관하다. ‘시민 모두가 기자’라는 식의 이상론에 근거해 댓글도 저널리즘이라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공이익이나 사회적 책임’이란 측면에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부분 익명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댓글 다는 미국 TV 프로그램

그러나 흥미롭게도 최근 댓글을 저널리즘의 한 영역으로 받아들이려는 곳도 있다. 출발점은 미국의 TV 프로그램에서부터다. 방송을 보고 난 뒤의 생각이나 평가를 기자들이 디지털 댓글로 다는 식이다. 프로그램과 관련된 웹사이트 아래 댓글 코너가 기자들의 주무대다. 대부분의 신문들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이지만 ‘방송기자들’이 자사 프로그램에 댓글을 단다는 점에서 다르다. 시사 영역만이 아니라 교양·드라마·오락 모두를 포괄한다. 기자들은 개개 시청자의 댓글에도 답을 하는, 즉 댓글의 댓글을 쓰기도 한다. 기자가 임의로 선택해 시청자의 댓글에 대한 댓글을 제공하는 식이다.

방송기자들을 동원한 TV 프로그램 댓글 참가는 크게 두 가지 목적에서 시도됐다. 기자 자신의 생각도 밝히면서, 시청자들에게 댓글의 방향을 미리 알려주자는 것이다. 핵심은 막말이 아닌, 존경어와 문법에 맞는 댓글이다. 어떤 점이 더 궁금한지, 무엇이 아쉬웠는지, 틀린 것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견을 품격 있는 댓글로 보여준다. 댓글 쓰기에 참가한 개개인에게 질문을 던져 상대방의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댓글 코너의 가이드 겸 기율반장이라 볼 수 있다.

미국 텍사스대학의 ‘미디어 관여 센터(www.mediaengagement.org)’에 따르면 방송기자의 댓글 참여는 댓글 공간 전체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물론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욕과 반말이 사라지고 인종차별·정치편향에 관한 댓글도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말 일본에서도 미디어 댓글에 관한 ‘획기적인’ 시도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저널리즘의 한 부분이자 ESG와 SDGs 영역으로까지 확장한 프로젝트다. 아사히(朝日)신문에서 선보인 ‘코멘트 플러스(コメントプラス)’란 댓글 코너다. 유료회원에게만 제공되는 서비스로, 전부 57명의 댓글 군단으로 구성된 새로운 영역이다. 신문사 내에서 논설위원급 30명, 신문사 밖에서 전문가 27명을 영입해 출발한 아사히의 야심적인 기획이다. ‘해설·관점·제안’이란 3가지 프레임을 기초로 ‘다양성·SDGs·노동·교육·어린이·국제’라는 여섯 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댓글 달기가 시도되고 있다. 주로 아사히신문 기사나 오피니언에 대한 각자의 소감을 담고 있다.

‘코멘트 플러스’의 외부 댓글 필진들

필자가 놀란 것은 외부에서 영입한 27명의 댓글 필진들이다. 일본에서 최고로 통하는 인물도 있지만 환경·교육·문화와 관련해 21세기 가치관에 맞춰 살아가는 선구자적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아사히신문의 고정 논객만이 아니라 영상·출판·강단을 통해 낯이 익은 필진들도 많다. 외무성 출신 작가이자 오피니언 리더로 활동 중인 사토 마사루(佐藤優), 유엔 사무차장으로 군축을 담당하고 있는 나카미쓰 이즈미(中滿泉), 웹 정치 관련 전문가 쓰다 다이스케(津田大介)를 필두로 다양한 분야의 필진이 포진하고 있다. 성별과 세대, 국가를 넘어선 인선으로 미국인과 한국인도 댓글 군단 속에 들어가 있다. 미국 출신으로 도쿄대학 교수를 역임한 로버트 캠벨(Robert Campbell)과 빈곤아동 지원 관련 NGO를 운영하는 한국인 이형식은 외국 국적 필진이다.

일본 미디어의 특징이지만 메이저 언론의 경우 댓글 코너가 아예 없다. 야후(Yahoo)와 같은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한 웹사이트 뉴스에는 댓글이 허용되지만 전국지 수준의 신문은 인터넷에 들어가도 댓글 코너가 없다. 일본은 한국처럼 주민등록번호나 개인식별 ID가 없다. 태평양전쟁 당시 개인을 옥죄던 군국주의 망령으로 인해 개인을 국가적 차원으로 관리한다는 데 대한 반감이 강하다.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지만 개인 인증이 안 된 상태에서 터져나올 익명의 중구난방을 고려해 아예 처음부터 댓글 코너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코멘트 플러스’는 그 같은 배경에서 등장한 것으로, 독자를 대신한 전문가가 기사와 오피니언 아래에 댓글을 단다. 따라서 크게 보면 아카데미즘에서 말하는 ‘유식자(Pundit) 저널리즘’ 영역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아사히는 리버럴 매체로 분류된다. 단카이세대(団塊世代)가 플랫폼 미디어로 활동해온 곳이 아사히다. 그러나 21세기 단카이가 현역에서 퇴장하면서 부수와 영향력도 급감한다. 한국에서처럼 종이가 아닌 디지털 정보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이 등장하면서 신문의 미래도 어둡게 변해간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현재 아사히는 불안한 신문 산업의 내일에 맞서 싸우는 ‘창조의 미디어’로 변신해가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속속 등장한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기자 이벤트(記者イベント)’는 대표적인 본보기다. 국경을 넘어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불러 대담을 갖는 것은 물론 기자 스스로가 이벤트 주도자로서 외부로 나가 활동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외국인 취업자나 불법 거주자 문제를 파헤치기 위해 현장의 외국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대안과 현상을 전하는 식의 이벤트다. 시사 문제만이 아닌 만화·예술·노래 등과 관련된 이벤트도 주기적으로 벌어진다. 기자 겸 영상프로듀서로서의 활약인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아직은 인터넷 속 영상으로만 진행되고 있지만 언젠가 현장에서 이뤄지는 라이브 이벤트가 될 것이다.

‘코멘트 플러스’는 아사히가 만들어낸 수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다. 욕, 반말, 이념 차별과 같은 막장 댓글과 전혀 무관한, 각계각층 57명의 잔잔한 소감을 통해 신문 기사와 오피니언에 대한 제3자적 관점이 솔직히 표현된다. 언젠가 댓글 코너를 독자 모두에게 열 경우 참가자들의 댓글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아사히는 ‘코멘트 플러스’ 필진의 수를 점점 더 늘려갈 것이다. 분야도 다양하게 구성하고 국내 거주 일본인만이 아닌 해외 거주자와 외국인 필진들도 속속 등장할 것이다. 정보와 생활, 상호교류와 다양성에 기초한 ESG와 SDGs로서의 기획인 셈이다. 언론인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공동으로 펼치는 댓글 저널리즘의 내일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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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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