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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 다른 인류사]  기원전 350년 인도-베트남-한반도 '제철인 핫라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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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71호]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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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기원전 350년 인도-베트남-한반도 '제철인 핫라인'의 탄생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21-08-17 오전 7:54:13

▲ 동남아시아 사후인 문화의 대표적 토기 유형. 단아한 모양과 빗살무늬가 왠지 친숙한 느낌을 준다. 베트남 하노이 국립역사박물관 소장품. photo. 퍼블릭 도메인
지난 세기까지 철기문명은 중국에서 온 것으로 설명하는 게 대세였다. 한반도와 관련해서도 그랬지만 동남아시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육로로 중앙아시아로부터 제철을 전파받은 중국이 한(漢)왕조기에 영토와 해상 교류 루트를 확장하면서 해안 인접 해로로 전했다는 것이다. 서기 111년부터라고 했다.
   
   물론 ‘한서’ 등 중국의 기록을 근거로 구성된 설명이다. 그런 식으로 기록에만 의존하는 역사 고증의 한계에 대해선, 이 시리즈에서 누누이 언급해왔다. 그 한계는 이제 쉽게 극복될 것처럼 보인다. 21세기 들어 새로운 유물 발굴이 이어지고 유물 연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 샤오춘 훙(Hsiao-chun Hung) 박사팀의 2016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에 있어서 철기문명의 시작은 그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다. 베트남 동남부 해역을 중심으로 한 철기문명 사회 ‘사후인 문화’(Sa Huỳnh culture)가 제철을 시작한 것은 기원전 500년 이전의 일이다. 기원전 350년부터는 동남아시아 전역, 그리고 타이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제철 흔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 (왼쪽) 동남아시아 철기 문명의 전파 경로. 기원전 350년의 해로는 중국 기록에 나타나는 해안선 경로보다 450년 이상 일찍 이용됐으며, 최근까지 발굴된 철기 유물 소재지를 모두 섭렵한다. (오른쪽) 베트남 사후인 유적지에서 발굴된 의례 및 생활 도구. 빠른 철기의 전래로, 동남아 지역에서는 석기, 동기, 철기 유물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곳이 많다. 출처: (왼쪽) 온라인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 사이트(2016.11.21)에 등재된 Hsiao-chun Hung 외 논문 게재 지도 2편의 내용을, 위키미디어 커먼즈 백지도 위에 표시.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antiquity/article/abs/taiwans-early-metal-age-and-southeast-asian-trading-systems/537248BA13D2AA5276F083F4919239F8 (오른쪽) 퍼블릭 도메인

   위 왼쪽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철기 전파의 경로는 중국 한왕조 상인들이 이용했던 해안선을 따라가는 뱃길이 아니다. 그보다 450년 이상이나 앞선 옛날, 이 철기제작인들은 연안류뿐 아니라 대양 해류도 이용해 훨씬 넓은 해역을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여갔다.
   
   훙 박사팀에 따르면, 새롭게 발견된 이 전파 패턴에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타이완에 이르기까지, 기원전 350년 무렵에 동시다발적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 둘째는 그 흐름이 중국 본토를 향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속도 빠른 움직임이 정확히 같은 시기에 한반도 남해안에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중국과 함께 일본도 건너뛰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일본에서의 제철 시작은 500년 이상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철기문명의 전파는 한 곳의 목재가 다 소진되고 생태계가 악화되어 더 이상의 제철작업이 불가능해졌을 때, 그 곳으로부터 가까운 거리에서 제철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지역으로 확대되어 가는 패턴을 갖는다. 전파 속도는 그 경로상의 제철작업지 환경 및 사회적 여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한 곳에 몇 백 년 정도는 머물게 된다.
   
   그런데 기원전 350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수 천 킬로의 해역을 그렇게 이례적인 속도로 뻗어 나갔을까? 또 중국과 일본은 왜 건너뛰었을까?
   
   주어진 사료와 유물 자료만 놓고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을 때, 과거의 거시적 환경변화 등 다른 요인을 함께 살펴보면 의외의 시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자.
   
   
▲ 아시아 제철 시작 시기의 환경변화와 시기별 중심지의 위치. 인도 북부 가야에서 기원전 1500년 출발한 철기문명은 기원전 500년 사후인 문화(베트남)로 전해졌고, 기원전 350년, 기타 동남아시아 지역, 타이완, 한반도 등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출처: (왼쪽) Randy Mann & Cliff Harris의 기후변화 그래프(2017)를 기반으로 작성, (오른쪽) Wikimedia Commons 백지도를 기반으로, 최근 연구 결과들을 통합하여 기재.

   기원전 1800년, 위 그래프 및 지도에서 A로 표시된 부분이다. 한랭기이며, 화산폭발 등 지각활동이 특히 심했던 시기를 거치고 난 직후다. 인도 제철의 초기 중심지였던 중부 텔랑가나 지방에서 목재가 부족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해당 인구집단은 바닷길을 따라 북상하면서 갠지스강 하구에서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우타르 프라데시 주 지역에 정착한다.
   
   여기서 발굴되는 철기 유물은 시작된 지 300년 만인 기원전 1500년 정도면 거의 끝난다. 한랭기였던 만큼 목재 공급이 그리 길게 받쳐주지 않았을 테다. 이후 그에 인접한 하류 비하르 주 가야 시 일대에서 제철이 본격화됐다. 위에서 B로 표시된 시점 및 위치다.
   
   갠지스강을 따라 가야로 내려온 철기 문명은 오랫동안, 큰 규모로 번영할 수 있었다. 기원전 15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의 약 1000년 동안은 지구자기장도 비교적 안정된 상태였다. 세계 전체적으로 지각활동이 심하지 않았고, 온난기여서 삼림도 무성했다. 안정적인 철 생산 및 유통 활동은 이 지역에 전설적인 번영을 확보해줬다. 상고대 인도 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베다 시기’(Vedic period)다.
   
   하지만 길었던 온난기가 끝나고 갑자기 기후가 한랭해짐에 따라, 기원전 500년 무렵엔 여기서도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처음 철기문명이 정착한 곳은 기후가 비교적 온난하고, 바닷길로 접근하기 쉬웠던 베트남의 메콩강 삼각주, 사후인 문화의 베이스 캠프였다. 위 그래프 및 지도에서 C로 표시된 부분이다.
   
   이곳에 정착한 철기문명은 더 빨리 다른 곳을 찾아 나서야 했다. 우선 급격히 기온이 하강하는 한랭기가 상당기간 계속됐기 때문이다. 인도 북부보다는 삼림 여건이 나았겠지만, 급감하는 기온으로 쓸 만한 삼림이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기원전 300년대 초반부터는 갑자기 지구자기장이 불안정해지면서 화산, 지진 등 지각활동이 활발해졌다.
   
   제철은 용광로 등 규모가 큰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산업이며, 고온의 화력을 다루는 일이다. 화산이나 지진이 빈발하는 곳에서는 결코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없다. 그런데 아래 오른쪽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동남아 해안지대는 태평양 불의 고리 중 일부로, 지각활동에 특별히 취약한 곳이다. 지구자기장이 약해지며 지구 내부가 요동을 칠 때는 더욱 더 많은 지진, 화산, 해일이 있었을 것이다.
   
   인도 유래 제철인들은 필사적으로 안전한 땅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마침 동남아 대표 해양족인 사후인 사람들과 융합했던 차였고, 그들의 효율적인 해상활동 네트워크를 이용, 빠르게 움직여갈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 전 해역은 물론,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한반도 남해안까지도 불과 몇 개월 밖에 안 걸리는 바닷길이었다.
   
   
▲ (왼쪽) 중국 광둥성 선전시 인근 해변 지역. 중국 남해안에는 이처럼 바로 산지로 이어지는 곳이 많다. (오른쪽) 동남아시아 일부 해안 지방과 일본 열도의 대부분은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속하는 지역이어서, 지진‧화산 등 지각활동이 빈번하다. 출처: (왼쪽) 张元柏 작품, Wikimedia Commons License,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007_%E6%B7%B1%E5%9C%B3_%E4%B8%9C%E8%A5%BF%E5%86%B2%E7%A9%BF%E8%B6%8A_-_panoramio_(4).jpg
(오른쪽) Eric Gaba 작품, Wikimedia Commons License, file:///C:/Users/user/Desktop/Spreading_ridges_volcanoes_map-en.svg 중 동남아시아 부분

   그래도 도중에 있는 중국 남해안 지역에 상륙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남해안 지방은 대체로 해안에서 바로 고산지대에 이어져 있다. 부분 부분 해안가에, 현재의 광둥성 해안지역 같은 곳에, 사람들이 살기 좋은 땅이 형성되어 있기는 하다. 비옥하며 뒤로 병풍처럼 산이 막아주어, 탁월한 해양족들이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베트남 동남해안 출신 사후인 사람들과 오랜 경쟁 관계였다.
   
   고대 중국 문명의 터전인 황하와 양쯔강 유역으로 올라갈 수 있는 중국의 동해안에 접근하기는 훨씬 더 어려웠다. 쿠로시오 해류의 지류들은 중국의 동해안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안선을 따라 흐르는 연안류를 이용해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원전의 항해술 수준으로는 한반도 서해 연안을 거쳐 가야 한다.
   
   한편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본에는 왜 가지 않았을까? 사후인 사람들은 대단한 무역상들이었던 만큼 동남아시아 인근 해역 일대의 정보를 꿰고 있었을 테다. 따라서 일본은 애당초 목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피하려 했던 지각활동이 훨씬 더 심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또한 강철을 만드는 재료로서 적합한 철광은 거의 없고 질이 훨씬 떨어지는 사철이 흔한 곳이니 말이다. (일본에서의 제철은 웬만한 곳들이 다 소진된 이후, 업그레이드된 강철 제련 기술을 가진 가야인에 의해 서기 200년대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해서 기원전 350년, 인도에서 유래하여 베트남 동남부와 한반도 남해안을 바로 잇는 제철인 확산의 핫라인이 생겨난 것이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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