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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2호]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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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까칠한 약국]치료제 키우다 백신 늦추더니… ‘K백신’이 던진 데자뷔

박한슬  약사·’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저자  2021-08-24 오전 10:11:25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K글로벌 백신 허브화 비전 및 전략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결국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2000명을 넘었다. 8월 11일을 정점으로 조금씩 신규 확진자 수가 줄고는 있지만 아직 1000명을 훌쩍 넘는 숫자가 매일 새로이 확진 판정을 받고 있다. 잠복기를 고려하면 광복절 연휴에 전국으로 퍼진 인파가 상대적 청정지역이었던 비수도권에 새로운 불씨를 댕길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대규모 관광객이 몰린 제주도는 8월 18일을 기점으로 거리두기를 4단계로 상향하기로 했다. 장기간 이어진 거리두기 조치에 시민들의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걸 감안하더라도 아직은 풀어지기에 위험한 시기인 셈이다.
   
   국내 상황만으로도 어려운데 예상치 못한 외부의 악재가 겹쳤다. 지난 8월 9일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미국의 바이오텍(Biotech)기업 모더나사(社)가 백신 생산량 불안정을 이유로 국내 백신 공급량을 줄이겠다는 통보를 보냈다. 정부는 긴급히 모더나 1차와 2차 간 접종 간격을 늘려 물량 부족에 대응하고, 강력한 항의 의사를 밝히기 위해 정부 대표단까지 모더나사에 파견했다. 그렇지만 아직 생산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신생 바이오텍기업에 찾아가 엄중하게 항의를 한다고 없는 백신이 새로 생기지는 않는다. 정치적 쇼잉일 뿐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최근 대통령은 국산 백신에 대한 총력 지원을 약속했다. 모더나에 대한 불필요한 대면 항의보다야 실효성이 있겠지만, 국내 백신 개발 상황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장기적인 지원 정책의 측면에서 국내 바이오기업이 mRNA 백신 등의 신기술 역량을 쌓도록 돕는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현재의 단기적인 백신 부족을 극복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소문만 무성한 국산 백신
   
   현재 국내에서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한 백신 개발사는 총 7곳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제넥신이 각각 임상3상과 임상2·3상으로 가장 앞서 있으며, 진원생명과학과 유바이오로직스, 셀리드는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큐라티스, HK이노엔은 이제 1상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정상적인 백신 개발 프로세스에 따르면 그리 느린 건 아니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긴급 사용 승인 혹은 정식 승인을 받은 백신이 19개에 임상3상에 진입한 백신 후보물질이 32개에 달하는 걸 고려하면 결코 빠르다곤 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백신 공급 병목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백신 물량 부족이 초래되고 있지만, 기승인된 백신의 생산량이 확충되고 후발 백신의 승인과 양산이 시작되면 경쟁력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물론 원론적으로만 따져보면, 조금 늦더라도 국내에서 별다른 제약 없이 사용 가능한 국산 백신이 개발되면 좋은 게 맞는다. 거창한 백신 주권 얘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신종 감염병에 대한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업이 국내에 존재한다는 건 국가적으로 큰 이점이다. 문제는 현재의 코로나19 대유행을 잡는 데 이런 접근이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는 점이다. 백신 접종자에게도 돌파감염을 일으키고 있는 델타변이를 비롯해 코로나 변이들은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오리지널 바이러스와는 구조가 달라 새로운 개량 백신을 주기적으로 만들 필요성이 크다. 그런데 대통령이 강력한 지지를 밝힌 단백질 재조합 백신은 근본적으로 이런 개량에 적합하지 않다. 임상시험이 모두 끝나고 허가를 받으면 빨라도 2022년 상반기. 개발능력과 별개로 델타변이가 주류인 시점에는 유용성이 적다.
   
   더 문제가 되는 건 현재 진행 중인 SK바이오사이언스 임상시험이 통상적인 백신 임상시험이 아닌 비교 임상시험이라는 점이다. 백신을 맞은 군(群)과 백신을 맞지 않은 군에서 발생한 코로나19 감염자 수를 비교하는 전통적인 임상시험과 달리, 비교 임상시험은 간접적인 지표를 이용한다. 감염을 막는 데 충분한 효과가 있는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지는 항체의 양이 100이라고 하자. 만일 새로 허가받고자 하는 백신을 맞은 사람에게서 만들어지는 항체 양도 100에 준하는 수치가 나온다면, 이 백신 역시 감염을 막는 데 충분한 효과가 있다고 가정하는 게 비교 임상의 논리다.
   
   신속한 허가를 위해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비교 임상 방식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한 임상시험보다는 상대적으로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며 전통적인 임상시험을 진행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주요 선진국을 제외한 국가에서는 백신은커녕 새로운 변이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부는 백신 부족에 대한 면피를 위해 빠르게 허가를 내주고 싶을 것이다. 비교 임상에 대한 지원을 하고 그렇게 개발한 백신에 대해 쉽게 허가를 내주겠다는데 제약사가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 단지 이해관계가 일치했을 뿐이다. 결국은 국민에게 이로운 일 아니냐고 변명하기에는 2020년에 우린 이미 비슷한 일을 겪었다. K방역과 함께 거론되던 항체치료제다.
   
   
   ‘항체치료제’에서 이어지는 불안감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직후 백신의 빠른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각국 제약기업들은 치료제 쪽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에서도 셀트리온에서 항체치료제를, 녹십자에서 혈장치료제를 개발하며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해당 기업들이 총력을 다해서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하던 걸 흠잡을 이유는 없지만, 당시 정부 여당 주류의 반응은 분명히 문제적이었다. 당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2020년 10월 18일 이례적으로 셀트리온을 찾아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독려했다. 그러다 11월 17일에는 당 차원에서 ‘코로나 치료제 개발동향 토론회’를 열고, 12월 22일에는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와 함께 셀트리온을 방문했다. 해외 백신 허가 상황이 너무 급작스러웠던 걸까?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임상3상 결과가 나온 게 2020년 11월 초이고, 12월 12일에는 세계 최초로 화이자 백신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긴급 승인을 받았다. 이런 상황은 국내 언론에도 수차례 보도됐다. 그렇지만 K방역의 성공에 눈이 먼 여당과 정부에서는 백신 확보보단 본인들이 수차례 방문했던 코로나19 치료제 기업들의 성공을 원했다. 해당 기업들의 성공은 정치적 치적이 되는 구조이니 합리적인 판단을 그르친 것이다. 빠르게 화이자 백신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친미 수준이 너무 높다”거나 “백신추정 주사를 검증 없이 국민에게 놓으려 한다”는 황당한 발언들이 연일 여권에서 쏟아졌다. 그 결과가 어떤지는 현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척박한 여건에서도 코로나19 대유행 극복을 위해 치료제를 개발하고, 백신을 개발하는 K바이오 기업들은 죄가 없다. 문제는 이를 대하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다. 실제로 국산 치료제와 백신이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기대감을 심고,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오면 정부는 뒤로 슬쩍 빠져 K-바이오 기업들만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기회를 잃은 건 덤이다. 장기적 육성이 필요한 백신 개발기술 지원을 두고, 당장의 대유행을 종식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는 대통령에게서 또다시 불안한 데자뷔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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