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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3호] 202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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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8월 종파사건’ 때 사라진 ‘反김일성파’ 신상기록 발굴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 2021-08-28 오후 12:52:05

▲ 옛 소련 출신 고려인들의 소련 국적포기 신청서. 1956년 8월 종파사건 당시 숙청된 북한 고위간부들의 신상자료가 대거 포함됐다. photo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8월 종파사건’ 65주년을 맞아 당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던 ‘소련파’의 신상기록이 대거 발굴됐다. ‘8월 종파사건’은 1956년 8월 30일, 만주파(빨치산파) 김일성을 정점으로 초기 북한정권을 떠받치던 소련파와 연안(延安)파가 김일성 절대권력에 도전했다가 대부분 숙청당하며 와해된 사건이다. 당시 소련파와 연안파를 각각 비호했던 소련, 중국의 외교개입으로까지 비화된 8월 종파사건은 김일성 절대권력을 위협했던 사실상 마지막 사건이기도 했다. 그 결과 김일성은 견제받지 않는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고, 만주파의 지원 아래 아들(김정일), 손자(김정은)에 이르기까지 3대(代) 세습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번에 신상자료가 발견된 사람은 8월 종파사건 때 반(反)김일성파의 핵심으로 숙청 뒤 사형당한 박창옥 전 부수상을 비롯, 6·25전쟁 때 인민군 총참모장과 휴전협정 북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남일 전 부수상, 8월 종파사건 직후 소련으로 망명해 김일성 비판에 나섰던 강상호 전 내무성 부상과 정상진 전 문화선전성 부상, 김일성의 러시아어 통역으로 인민군 작전국장을 지냈던 유성철, 유성철의 형으로 인민경제대학 총장을 지낸 유성훈, 비밀경찰 조직인 현 국가보위성(옛 보위부)을 설립한 방학세 전 중앙재판소장, 인민군 차수(次帥)로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지낸 김봉률, 소련파의 거두로 숙청당한 후 자살한 허가이 전 부수상의 딸 마이야 알렉세예브나 헤가이 등 소련 국적 고려인 100명 이상의 개인 신상정보다.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주요 간부만 20명 이상에 달한다.
   
   
   남일, 소련군 복무기록 없어
   
   옛 소련 출신 고려인인 이들은 북한 정권수립 초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는데, 8월 종파사건 등을 거치며 대부분 숙청 또는 의문사했다. 반(反)당·반혁명 종파분자로 몰린 까닭에 조선대백과사전 등 북한의 공식기록에서도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이에 따라 정확한 신상정보 등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소련파들의 러시아식 이름과 출생연도, 출생지(군·리 단위까지), 교육수준, 전공, 군복무 사항, 가족 및 친족정보 등 개인 신상정보를 기록한 문건과 자기소개서까지 대거 발견되면서 북한 연구에 상당한 도움을 줄 전망이다. 신상자료 중에는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부인과 자녀, 금융자료(예금, 대출) 등에 관한 내밀한 기록도 있어서 흥미를 자아낸다.
   
   이번 자료는 국민대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표도르 째르치즈스키(한국명 이휘성) 박사가 옛 소련 내각과 최고평의회의 자료를 보관하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연방 국가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해 주간조선에 제공했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이번에 입수한 신상정보는 원래 소련 국적으로 있던 고려인 북한 간부들이 소련 국적을 포기하고 북한으로 귀화할 때 작성해 소련 당국에 제출한 신상자료로 그 어느 자료보다 신빙성이 높다”고 말했다.
   
   소련 출신 고려인으로 널리 알려진 남일은 소련에 있던 처자식을 버리고 간 것이 재차 확인됐다. 남일은 6·25전쟁에 인민군 총참모장으로 참전해, 1953년 휴전협정 당시 북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인물. 자료 작성 때인 1956년 1월 30일, 당시 외무상을 맡고 있던 그의 신상자료에 나오는 러시아 이름은 ‘야코브 페트로비치’다. 교육수준은 대졸, 전공은 교직으로 적고 있다.
   
   반면 군복무 기록으로는 1937년 톰스크국립대에서 고급군사훈련 수료와 1950~1953년까지 북한 인민군 복무 사실만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일이 ‘독소전쟁’ 때 스탈린그라드전투와 베를린공방전 등에 참여했다는 소문은 과장 또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소련군 복무 사실이 있는 인사들이 국적포기 신청서에 소련군 복무 사실을 구체적인 연도와 함께 적고 있는 것과도 대비된다.
   
   소련 국적포기를 신청하면서 함께 국적을 포기할 자녀들로 아들 세 명(유리, 니콜라이, 슬라바)만 적고 있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국적포기 신청서에서 남일은 소련에 남아 있는 배우자 파이나 남과 딸 올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며 “남일이 북한으로 떠나면서 배우자와 딸을 버렸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대신 남일의 후처인 마리아 남의 국적포기 신청서는 함께 발견됐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남일의 아들들에 대한 정보는 없었는데, 이 사료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소련파인 남일은 8월 종파사건 때 김일성에 대한 충성맹세를 하고 살아남지만, 1976년 김정일이 이복동생 김평일을 제치고 김일성의 후계자로 부상할 즈음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의 동료인 나탈리아 마트베예바씨(영국 동양아프리카연구학원(SOAS) 박사·북한경제사 전공)는 “남편인 남일마저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남일의 부인 마리아 남과 주북한 소련대사관 1등서기관 티타렌코의 대화록을 주간조선에 제공한 바 있다.
   <주간조선 2575호 참조>
   
   
   김일성 비판한 강상호·유성철
   
   이번에 가장 상세한 자료가 발견된 소련파는 8월 종파사건 직후 숙청당한 뒤 소련으로 망명해 김일성 비판에 앞장섰던 강상호 전 북한 내무성 부상 겸 정치국장에 관한 자료다. 강상호는 1991년 소련 해체에 즈음하여 김일성에 대한 공개비판을 한 바 있고, 지난 2000년 사망할 때까지 국내 언론과도 만나 김씨왕조의 허구성을 폭로한 바 있다.
   
   특히 강상호에 대한 자료는 1956년 작성한 소련 국적포기 신청서와 그에 첨부된 자기소개서, 8월 종파사건 이후인 1959년 작성한 소련 국적회복 신청서와 이에 관한 주북한 소련대사관의 의견결정서, 소련 외교부와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의견서 등이 1960년 작성된 귀화허가서와 함께 상세히 발견됐다. 강상호의 망명을 둘러싸고 주북한 소련대사관→소련 외교부→국가보안위원회(KGB)→소련 최고평의회로 이어지는 소련 측 의사결정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자료라는 평가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북한 점령군인 소련군 제25군 출신 강상호는 소련으로 출국 직전 3개월간 고문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소련 국적회복 신청서에서는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며 “아마도 북·소 간 정치적 문제를 피하도록 하기 위해 그랬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러시아에 갔을 때 강상호의 딸 류드밀라 강을 만나 인터뷰했는데, 젊었을 때 유라 김(김정일)을 알았고 유라(김정일)가 그녀에게 큰 사과를 선물해 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8월 종파사건 후 소련에 망명해 강상호 전 내무성 부상, 정상진 전 문화선전성 부상 등과 함께 김일성 비판 대열에 합류했던 유성철 전 인민군 작전국장에 대한 신상기록도 나왔다. 유성철의 소련식 이름은 ‘유가이 성철’로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소련군에 복무하면서 김일성의 88독립보병여단 시절 러시아어 통역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성철은 소련 당국에 국적포기 신청서와 함께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대일전쟁 발발(소련의 대일선전포고)과 함께 김일성 그루빠(팀)와 같이 평양에 도착했다”며 “1946년까지 경무사령부에서 번역원으로 근무했다”고 적고 있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소련 지도부는 유성철을 북조선 수령 후보자 중 한 명으로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성철의 형으로 북한 인민경제대 총장을 지낸 유성훈은 소련국가은행에 예금(1415.4루블)과 대출(4000루블)이 있다고 신고해 눈길을 끌었다. 소련 국적포기를 신청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련 및 외국 은행에 예금과 대출이 없다고 신고한 것과 대조됐다.
   
   
   방학세·김봉률, 출생지 조작
   
   소련 국적포기 신청서 중에는 소련파의 거두로 김일성 당시 수상에게 수상 자리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가 8월 종파사건 직후 숙청돼 사형당한 박창옥 전 부수상과 북한의 비밀경찰 조직인 국가보위성(옛 보위부)의 창시자로 8월 종파사건에서 숙청을 피해간 방학세의 것도 있었다. 박창옥과 방학세(방 니콜라이 익나티예비치)는 각각 3명의 자녀를 거느리고 소련 국적포기를 신청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박창옥의 아들 박일산은 러시아 이름(알렉세이)이 있는데 박창옥은 러시아 이름이 없다”고 했다.
   
   방학세는 조선대백과사전(인쇄판)에는 출생지가 ‘함경남도 단천’으로 돼 있는데, 실제 출생지는 ‘연해주 바라노브카’라는 사실도 국적포기 신청서를 통해 밝혀졌다. 인민군 차수로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지낸 김봉률 역시 소련 국적포기 신청서에서 출생지가 ‘연해주 시코토브스키’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1995년 7월 김봉률 사망 당시 부고기사에서 “1917년 함경남도 단천의 빈농 가정에서 출생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방학세와 김봉률은 소련파임에도 끝까지 숙청이나 의문사를 피해간 인사들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소련 연해주 태생임에도 ‘함경남도 단천’으로 출생지를 조작한 셈이다. 정권 정통성 유지를 위해 출생지를 조작하는 것은 김정일의 사례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출생지는 연해주 우수리스크(옛 보로실로프) 인근 빨치산 야영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정권 수립 초 김일성(만주파), 박헌영(국내파), 김두봉(연안파)과 함께 4각 체제를 이루며 소련파를 대표했던 허가이의 딸인 ‘마이야 알렉세예브나 헤가이’가 1956년 소련 국적포기를 신청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허가이(알렉세이 이바노비치 헤가이)는 6·25전쟁 와중인 1953년 7월 평양의 방공호에서 자살했으나, 암살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허가이의 딸인 마이야 헤가이가 자녀(타티야나, 이리나)와 함께 1956년 4월 9일 소련 국적포기와 북한 귀화를 신청한 것이다. 이를 보면 북측이 허가이 사망 이후에도 유족들에 대한 모종의 배려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반면 조선대백과사전에서 ‘허가이’의 이름은 지워져 있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허가이의 급사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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