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시리아 화가 사이드 타흐신이 그린 제3차 십자군 원정의 종전 장면. 1192년, 유럽의 라틴 지역군 수장인 기 드 루시냥이 이슬람군 수장인 살라딘 술탄에게 무기를 바치고 있다. 당시 이슬람군은 무기의 성능면에서 훨씬 앞서 있었다. 첨단 소재인 탄소강과 첨단 주조 기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강철 제조 기술은 이 시기보다 1200년 이상 이전에 한반도 가야인이 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20세기 시리아 화가 사이드 타흐신이 그린 제3차 십자군 원정의 종전 장면. 1192년, 유럽의 라틴 지역군 수장인 기 드 루시냥이 이슬람군 수장인 살라딘 술탄에게 무기를 바치고 있다. 당시 이슬람군은 무기의 성능면에서 훨씬 앞서 있었다. 첨단 소재인 탄소강과 첨단 주조 기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강철 제조 기술은 이 시기보다 1200년 이상 이전에 한반도 가야인이 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가야’라는 국호를 가졌던 나라의 출범 시기를 가늠하려는 과정에서 뜻밖에 유라시아 대륙에 있어서 바닷길을 통한 철기문명 전파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딴 길로 빠지는 듯한 느낌도 들겠지만, 사실 이건 한반도 가야의 역사적 성격과 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과정이다. 신화 속 미미한 나라인 줄 알았던 가야에서 엄청난 양의 고퀄리티 철제 부장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사람들을 혼란 속으로 빠트렸다. 도대체 가야는 어떤 나라였을까?

현대와 마찬가지로 고대에 있어서도 한 사회의 물질적 수준은 그 사회 전체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가야가 그 정도의 물질을 누리고 살았던 나라였다면 대외적으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강국이었을 테다.

새롭게 확인된 철기문명의 전파 경로를 보면, 가야가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조건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친 김에 현재까지 확인된 철기 유물 출토지를 고려하고, 여기에 지형`지리 및 생태조건까지 통합해 아시아 지역 전체의 철기 경로를 그려보자.

지금까지의 유물 출토지와 육지 및 바다의 지형지리를 토대로 추정한 유라시아 대륙에 있어서 철기문명의 확산 경로. 이 중에서 제일 오른쪽에 표시된 한반도의 가야는 유라시아 대륙 동남단에 위치해 있어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서 철기문명 발상지인 소아시아 지역과 함께 남과 북의 물길을 연결하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해류의 흐름으로는 타지역에서 접근하기 어려웠던 중국 본토에, 이어서 해류를 가로질러 일본까지도 쉽게 접근할 길을 터서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제철 관련 물류 및 소통의 허브로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 이진아 제공
지금까지의 유물 출토지와 육지 및 바다의 지형지리를 토대로 추정한 유라시아 대륙에 있어서 철기문명의 확산 경로. 이 중에서 제일 오른쪽에 표시된 한반도의 가야는 유라시아 대륙 동남단에 위치해 있어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서 철기문명 발상지인 소아시아 지역과 함께 남과 북의 물길을 연결하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해류의 흐름으로는 타지역에서 접근하기 어려웠던 중국 본토에, 이어서 해류를 가로질러 일본까지도 쉽게 접근할 길을 터서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제철 관련 물류 및 소통의 허브로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 이진아 제공

이 지도는 지난 세기 말까지 철기문명 관련 고고학 자료에서 흔히 등장하던 경로도와 사뭇 다른 외관을 하고 있다.

기존 관점의 특성은 아래 왼쪽 그림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이 그림은 방향성만 보여주는 단순화된 형태의 것이다. 인류의 제철 시작 시기를 기원전 1000년 정도로 보고, 중심지로부터 주변부로 일방형 방향으로 확산됐을 걸로 보며, 주로 육로를 통해 전파되었을 것으로 가정한다는 기존 설명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왼쪽) 철기문명이 확산되어 갔던 경로를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 지도. 발상지로부터 주로 육로를 통해 일방적으로 뻗어 나갔다는 기존의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네트워크 과학에 있어서 연결성의 개념도. 노드가 많이 수렴되고 확산되는 지점을 허브라고 칭한다. 자료 출처: (왼쪽) Essential Humanities, http://www.essential-humanities.net/history-overview/stone-bronze-iron-ages / (오른쪽) Wikipedia C.C. License. Carlos Castillo(2004) 'Effective Web Crawling', University of Chile 박사학위 논문 게재 다이어그램의 일부, https://en.wikipedia.org/wiki/Hub_(network_science)#/media/File:Scale-free_network_sample.png
(왼쪽) 철기문명이 확산되어 갔던 경로를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 지도. 발상지로부터 주로 육로를 통해 일방적으로 뻗어 나갔다는 기존의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네트워크 과학에 있어서 연결성의 개념도. 노드가 많이 수렴되고 확산되는 지점을 허브라고 칭한다. 자료 출처: (왼쪽) Essential Humanities, http://www.essential-humanities.net/history-overview/stone-bronze-iron-ages / (오른쪽) Wikipedia C.C. License. Carlos Castillo(2004) "Effective Web Crawling", University of Chile 박사학위 논문 게재 다이어그램의 일부, https://en.wikipedia.org/wiki/Hub_(network_science)#/media/File:Scale-free_network_sample.png

하지만 새롭게 찾아본 철기문명 해로 및 육로 전파 경로 통합 지도는 위의 두 그림에서 왼쪽 것보다는 오른쪽 것을 더 닮아 있다.

오른쪽 그림은 네트워크 과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연결성’(connectivity)의 개념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이다. 네트워크의 연결성 안에서는 모든 기본 단위, 즉 노드(node)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노드 간 소통은 양방향이다. 그 중 특히 많은 노드들과 연결되어 있는 부분을 허브(hub)라고 한다. 허브는 같은 조건에서 단일 노드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 혹은 물적‧인적 교류를 수행하게 된다.

이런 네트워크 개념을 적용해서 위의 철기 전파 경로 지도를 보자. 한 눈에 중요한 허브가 두 지점 파악된다. 하나는 철기문명의 발상지인 소아시아 지방이며, 또 하나는 한반도 동남단의 가야다.

둘 다 해로와 육로가 다 통합되는 지점에 있으며, 기본적인 줄거리 외에도 다른 방향으로 가지치기를 하기 쉬운 위치에 있다. 철기문명 발상지에서는 철기 전파 과정이 분산되어, 현재의 국가개념으로 보자면 중앙아시아의 아제르바이잔에서 지중해 연안의 시리아에 이르는 지역에 흩어져 일어났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낙동강 하구에 그런 핵심 허브로서의 기능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가야가 지구상에서도 제철제국으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을 보면서도 여전히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문명 교류가 양방향 작용이라는 설명이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지난 세기까지 우리는 학교 교육을 통해서 문명이란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보통 앞선 문물을 가진 나라가 뒤쳐진 나라에게 정복, 혹은 교류를 통해 전달하는 게 문명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교류와 마찬가지로 문명교류도 양방향 소통이다. A라는 지점과 B라는 지점 사이에 교류가 있었는데, A의 것이 B로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혹은 A의 사람이 B로 편도로 가고, 그 역방향의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철기문명 전파에서도 그랬다. 유명한 ‘다마스커스 검(劒)’ 사례를 통해, 철기 제작 기술의 양방향 교류 상황을 보자.

다마스커스 검이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 일대에서 오래 전부터 만들어져 오던 명검을 말한다. 이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서기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결 같기도 하고 잔잔한 꽃들 같기도 한 섬세한 무늬가 칼날에 가득한 아름다운 외관, 떨어지는 깃털 하나도 깨끗이 자를 수 있는 뛰어난 성능으로, 여러 가지 얘기가 전해지며 신비화되어 오고 있는 아이템이다.

이 검과 관련되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일화는 19세기 스코틀랜드 소설가 월터 스코트 경의 ‘십자군의 기사’에 나오는 것일 테다. 유럽군 수장인 영국의 리처드 사자왕이 막후 협상을 위해 이슬람군 수장인 살라딘 술탄의 막사를 방문했을 때, 서로의 검을 비교해보는 대목이다. 결과는 살라딘 술탄의 다마스커스 검의 압도적 우위였다. 저자는 이 검의 신비한 외관과 놀라운 절삭력에 대해 한동안 상술한다.

다마스커스 칼의 뛰어난 특성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거푸집으로 모양을 잡는 게 아니라, 철괴를 무수히 두드려서 강도를 더한다는 점이다. 즉 주조식이 아니라 단조식 철기 제작이다. 둘째 그 철에는 탄소 함유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이 설명이 뭔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드시는지? 그렇다. 이 기술은 이미 십자군 전쟁 당시보다 1200년 이상 이전에 가야에서 개발됐었다. 북방식 단조 철기, 즉 뜨겁게 달군 다음 두드려서 만드는 철기 제작법과 낙동강 하류에 쌓여 있는 조개껍질을 넣어 철광석을 녹이던 탄소강 제작법이 만나서 이루어진 기술이다.

이 기술이 개발된 시점은 가야가 북방식 제철기술을 받아들였던 기원전 2세기 이후이다. 이렇게 생산된 철은 다른 어떤 제조방식의 것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탁월한 성능을 갖게 된다. 단단하고, 탄력 있으며, 잘 녹슬지 않는 강철로서 우월한 무력과 효율적인 농업 생산의 기반이 되어준다.

이 기술은 남쪽 해로를 통해 한반도에 제철 기술이 전해지던 것의 역방향으로 인도까지 전해졌다. 여기서 우츠 철강(wootz steel)이라는 이름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더 서쪽으로 퍼져갔다. 인도에서 우츠 철강을 생산하기 시작한 시기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인도의 서쪽에 위치한 서아시아에서 서기 3세기에서 7세기까지 대제국을 건설했던 페르시아 사산왕조 전성기에 우츠 철강을 대대적으로 제조해서 무기에서 생활용구까지 다양하게 활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따라서 한반도 가야의 첨단 탄소강 제작 기술이 인도에 전해진 것은 대략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2세기 사이의 일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왼쪽 위) 우츠 철로 제작된 인도의 장검. (왼쪽 아래) 칼날 표면에 미세한 무늬가 선명한 다마스커스 단도. (오른쪽) 우츠 철로 제작된 인도 전통검을 쓰는 무사의 모습 그림. 이런 칼은 절삭력이 뛰어나 대단히 부드럽고 얇은 쉬폰 천도 깨끗하게 자를 수 있다. 자료 출처: Wikimedia Commons License, Archit Patel 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ndian_tulwar_-_talwar_sword.jpg, Creative Commons License, jasleen_kaur 사진, https://www.flickr.com/photos/jasleen_kaur/4211340481 A. K. Das & H. S. Ray, The Ferrum Hunters 게재 삽화의 상부 60%, Srinivasan, S. & Ranganathan, S. (2004), India’s Legendary Wootz Steel, https://www.inae.in/pdf/India's-Legendary-Wootz-Steel.pdf에서 재인용
(왼쪽 위) 우츠 철로 제작된 인도의 장검. (왼쪽 아래) 칼날 표면에 미세한 무늬가 선명한 다마스커스 단도. (오른쪽) 우츠 철로 제작된 인도 전통검을 쓰는 무사의 모습 그림. 이런 칼은 절삭력이 뛰어나 대단히 부드럽고 얇은 쉬폰 천도 깨끗하게 자를 수 있다. 자료 출처: Wikimedia Commons License, Archit Patel 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ndian_tulwar_-_talwar_sword.jpg, Creative Commons License, jasleen_kaur 사진, https://www.flickr.com/photos/jasleen_kaur/4211340481 A. K. Das & H. S. Ray, The Ferrum Hunters 게재 삽화의 상부 60%, Srinivasan, S. & Ranganathan, S. (2004), India’s Legendary Wootz Steel, https://www.inae.in/pdf/India's-Legendary-Wootz-Steel.pdf에서 재인용

십자군 전쟁 등으로 유럽이 본격적으로 소아시아와 교류를 시작했던 11세기엔, ‘다마스커스 검’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이 전해지게 된 것이다. 즉 세계는 고대시기에 이미 양방향 교류를 활발히 하면서, 당시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제철 기술을 업그레이드해왔던 것이다.

낙동강 유역 가야는 기원전 2세기 무렵에 이미 이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관련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그간 기록을 중시하는 역사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사실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철기 유물이 대량 출토되고, 과거의 물품 연대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있는 지금, 이 사실은 여러 학술 및 탐사 논문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당연히 이 기술은 가야에게도 엄청난 힘의 근원이 되어주었을 테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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