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느슨한 실루엣의 티셔츠를 걸쳐 입고 느슨하게 가방을 들쳐 메고 느슨하게 풀어진 바지를 입고 다니는 MZ세대를, 길거리에서 목격하기란 어렵지 않다. 아니 아마 지금 골목을 다니는 MZ세대 중 한두 명은 이렇게 입고 다닐 것이다. 만약 여기서 멋을 부린다면 화려한 패턴을 덧댈 수 있다. 그러니까 편안한 핏이지만 노랗고 빨간 화려한 패턴이 새겨져 있는 셔츠를 입고 다니는 식이다. 더러 다리에 착 달라붙는 레깅스나 배꼽이 드러나는 크롭(기장이 짧은 옷) 티셔츠를 입긴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화려한 패턴의 옷을 입지 않는다. 단색의 레깅스, 무채색의 크롭 티셔츠를 입곤 한다.

요즘의 MZ세대 패션의 특징을 패션계에서 말하는 식으로 정리하자면 대략 한 네댓 개의 키워드가 떠오른다. 오버사이즈·간결한 실루엣의 스트리트 패션,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놈코어(normcore) 스타일에 화려한 패턴이나 독특한 소재의 뉴트로(new-tro) 패션, 성별에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젠더리스(genderless) 스타일 등등. 간단히 말하자면 기본적이고 평범한 옷에 한두 가지 포인트를 살린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검은색과 성(性)중립적 스타일

구체적으로 요즘 MZ세대에게서 착 붙는 H라인 스커트나 스키니진, 하이힐은 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유행을 넘어서 일반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은 것은 스트리트 패션이다. 말 그대로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타일을 일컫는 스트리트 패션은, 약간의 힙합 스타일이 섞인 편안한 실루엣의 옷들을 통칭한다. 브랜드로 말하자면 슈프림(supreme), 스투시(stussy) 같은 외국 브랜드도 있지만 커버낫(COVERNAT),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 같은 한국 브랜드의 옷은 특히 더 자주 눈에 띈다. 품이 넉넉한 상의에 더 넉넉한 실루엣의 와이드팬츠를 입으면 요즘의 스트리트 패션을 얼추 따라잡았다고 할 수 있다. 신발은 나이키, 아디다스나 반스의 운동화, 슬립온(끈이 없는 신발) 같은 것들이다. 때로 신발에 옷보다는 조금 더 화려한 무늬를 넣어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젠더리스, 즉 성(性)중립적인 스타일이 익숙한 세대가 MZ세대다. 일부러 남성이 입는 사이즈의 옷을 찾는다는 여성들도 꽤 많다. 세련되게 입기 위해서는 놈코어 스타일의 옷을 입는다. 놈코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 셔츠, 리바이스 청바지를 떠올려 보면 쉽다. 남성이라면 넉넉한 스웨트 셔츠에 청바지, 여성이라면 툭 걸친 베이지색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통이 넓은 편안한 바지)를 입으면 놈코어 스타일로 입었다고 보면 된다.

색으로 말하자면 무채색이다.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의 김지애씨가 쓴 석사학위 논문 ‘패션 스타일에 따른 MZ세대 여성의 색채 선호 특성’을 보면 MZ세대 여성이 선호하는 색과 패션 스타일을 알 수 있다. 김씨는 MZ세대 여성 220명을 상대로 선호하는 의상의 색과 스타일, 주로 구입하는 의상의 색 등을 물어보았다. MZ세대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색은 검정색, 가장 많이 구입하는 의상의 색 역시 검정색이었다. 주로 구매하는 의상의 색은 검정색, 흰색, 회색으로 무채색 계열 옷이 대다수였다.

무개성 뒤에 숨은 취향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도 색상에 어울렸다. 캐주얼, 내추럴, 클래식한 스타일의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김지애씨의 분류에 따라 이들 스타일 옷을 종합해보자면 어두운 색, 갈색이나 베이지색의 편안한 차림, 일상생활에 적합한 옷을 선호하는 MZ세대 여성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편하고 간결하며 무채색인 MZ세대의 스타일을 ‘느슨한 패션’이라고 요약해볼 수 있을 것이다.

MZ세대는 이 스타일들을 완성하기 위해 무신사(MUSINSA)를 찾는다. 무신사는 여러 패션 브랜드가 모여 있는 쇼핑몰인데 지난해 거래액만 1조2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온라인 편집숍이다. ‘무신사룩(look)’이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무신사에서 인기 있는 스타일을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MZ세대가 선호하는 스타일과 색채의 옷은 무신사에 접속하기만 해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신사 인기의 전부가 아니다. 무신사는 ‘래플’이라는 시스템으로 더 유명해졌다. 래플(raffle)이란 한정 상품의 구매를 원하는 사람을 모두 모집해 무작위로 당첨된 인원에게만 상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2019년 하반기부터 무신사에 도입되기 시작한 래플 시스템은 한정 상품 수집에 열을 올리는 MZ세대의 구매욕을 자극하면서 무신사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와 동시에 스트리트 패션에 대한 수요가 커지던 상황에서 무신사에서 주력으로 판매하는 커버낫, 디스이즈네버댓 같은 브랜드의 옷이 인기를 끌면서 무신사의 매출액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무신사의 성장은 한 업체의 성장을 넘어서 의미하는 바가 있다. MZ세대의 ‘느슨한 패션’이 왜 ‘대세’가 되었는지, 이 스타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MZ세대의 ‘느슨한 패션’은 단조롭게 보인다. MZ세대 개인의 특성이라곤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놈코어나 내추럴 스타일 패션에서는 ‘튈 만한 옷’은 입지 않는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편하게 입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만 두고 보면 MZ세대는 개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튀는 것을 싫어한다거나 단조로울 정도로 평범함을 추구하는 세대처럼 비칠 수도 있다. 실제로 극도의 내추럴 스타일을 앞세운 무인양품(MUJI)이라는 브랜드가 생겨난 일본에서는 ‘사토리세대(さとり世代)’가 청년 세대를 일컫는 고유명사처럼 쓰이던 적이 있었다. 사토리세대란 의욕 없이 무기력한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것인데 욕구가 딱히 없이 위험을 회피하고 도전하지 않으며, 그때그때의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빗댄 말이다. 이들에게는 화려한 옷이 필요하지 않다. 눈에 띄지 않게, 무기력한 모습을 담아낼 만큼 일상적인 옷을 입는 것이 자연스럽다.

‘에어조던’에 줄서고 무신사 ‘래플’에 열 올리고

한국 MZ세대의 ‘느슨한 패션’은 사토리세대의 내추럴 스타일과 얼핏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점이 존재한다. MZ세대의 느슨한 스타일에는 ‘포인트’가 존재한다. 마냥 건조하기만 한 스타일이 아니라 한 군데 취향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신발은 MZ세대가 가장 열정을 보이는 패션 아이템 중 하나다. 나이키의 ‘에어조던’, 아디다스의 ‘이지부스트’ 같은 브랜드에서 한정적으로 내놓는 운동화는 말 그대로 없어서 못 살 지경으로 인기를 끈다. 이 운동화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고, 무신사의 래플에 열을 올리는 것이 MZ세대다. 말하자면 무신사의 래플은 MZ세대의 개성을 상징하는 시스템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MZ세대는 패션을 통해 ‘무개성의 개성’을 추구한다. 전체적으로는 가급적 자연스러운, 무난한, 평범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어느 한 군데에서는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MZ세대의 세련된 스타일이다. 종종 취향은 패턴으로 드러난다. 최근 인기 있는 스타일은 기본 스타일의 옷에 화려한 패턴을 수놓은 옷을 입는 것이다. 아니면 과감하게 머리를 염색하거나 배꼽을 드러내는 식이다. 이때도 중요한 것은 포인트가 잘 살아날 수 있도록 다른 부분은 평범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푸른색 머리에 검정 일색인 옷을 입는다거나 무채색의 크롭 티셔츠를 입는 것이 그렇다. 이렇게 세련된 포인트를 넣는 것이 마냥 화려하게 입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MZ세대들은 안다.

열정이 만들어낸 평범함

그러니까 MZ세대의 ‘느슨한 패션’은 사실 여러 겹의 ‘꾸밈’이 만들어낸 무심함에 가깝다. 가끔 기성세대는 MZ세대를 개인적이거나 열정이 부족하다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주식이며 코인, 부동산 등으로 자산 형성에 열을 올리는 세대가 바로 MZ세대다. 한 번뿐인 인생을 즐겁게만 살겠다며 ‘YOLO(욜로)’를 외치고, 있는 힘을 다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MZ세대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트렌드는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해서 MZ세대마저도 미처 다 따라가기 힘들다.

사실 MZ세대의 취향은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 온갖 분야에 ‘덕후(매니아)’가 존재한다. K팝 내에서도 수많은 그룹이 있지만, 같은 그룹의 팬이라고 하더라도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다. ‘개인팬’ ‘알페스팬’ ‘올팬’ 등 각자의 취향대로 트위터에서, 커뮤니티에서, 오프라인 현장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팬질’을 한다. 세상의 모든 열차를 외울 기세인 ‘철도 덕후’도 있고 존재하는 모든 파도를 타고 싶어 하는 ‘서핑 덕후’도 있다. 덕후가 없을 것 같은 분야에도 덕후가 존재할 만큼 MZ세대는 모든 것에 취향을 가지고 있다.

MZ세대의 ‘공(公)’과 ‘사(私)’는 분명히 분리가 된다. 사적인 공간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열정적으로 쓰는 MZ세대는 반대로 공적인 영역에서는 평범해지려 애쓴다. 굳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거나 공과 사 모두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는다.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기성세대가 보는 MZ세대가 마냥 무난하고 평범하게 보인다면 그 MZ세대가 기성세대와 함께 있는 영역에 열정을 쏟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MZ세대는 그 영역이 취향이 아니라 열정을 쏟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MZ세대의 ‘느슨한 패션’이 그저 평범하고 무난한 것을 추구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을 비로소 알게 된다. MZ세대는 하나의 강조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느슨한 패션’을 추구한다. 강조점은 신발이 될 수도 있고 가방이 될 수도 있다.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외모 자체가 강조점이 되거나 아니면 아예 취향, 성격처럼 잘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강조점이기도 하다. 이 경우에는 느슨한 스타일의 MZ세대와 좀 더 가까워져야 비로소 파악할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 MZ세대의 ‘느슨한 패션’은 MZ세대 개인을 더 잘 알아달라는 어필이라고 봐도 된다. 느슨한 패션에 숨겨진 취향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스타일을 좀 더 눈여겨봐야 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뚜렷한 취향을 가진 무심한 MZ세대처럼, 느슨한 패션은 평범함 속에 가려진 열정을 상징한다.

※MZ세대: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합친 말로 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20~30대를 아우르는 말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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