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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 다른 인류사]  페니키아·그리스·가야... 바다를 제패한 해양대국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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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76호]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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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페니키아·그리스·가야... 바다를 제패한 해양대국의 공통점?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21-09-29 오전 8:05:05

▲ 페니키아 본토 도시 중 하나인 비블로스에서 교역활동이 행해지는 모습을 묘사한 19세기 영국의 작가 미상 판화. 품질이 뛰어난 레바논 삼나무 목재를 구하기 위해, 지중해 전 지역에서 상인들이 고가의 특산물이나 금화를 들고 모여들었다. 한반도 낙동강 하구, 지금의 김해에 있었던 항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광경이 벌어졌을 것이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한반도 동남단의 가야는 동아시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 전체, 혹은 세계 전체로 봐서도 손꼽히는 부강국이었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한 사실을 다양한 논증 과정을 거쳐 밝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가야의 역사는 그 무수한 유물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요인을 적어도 세 가지 안고 있다.(후대에 집요하게 자행됐던 역사 왜곡은 논외로 하고 말이다.) 이 요인들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혹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가야가 신라와 백제 사이에 낀 그 좁은 영토를 기반으로 하는데, 커봤자 얼마나 컸겠냐고 생각할 수 있다. 둘째, 그 정도로 강한 나라였다면 왜 그렇게 쉽게 무너져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가 하는 의문이다. 셋째, 가야든 (고)조선이든, 과거 한반도 국가들이 한때 동아시아 최강의 국가였다면, 왜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중국에 눌려 살아왔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짚고 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가야라는 나라의 특성과 그에 따른 위상 변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검토해가면서 가야의 모습을 더듬어 보기로 하자. 다만 세 번째 질문은 좀 더 포괄적인 것이며, 이 연재물의 결론과도 직결되는 것이어서, 연재 마지막 부분에서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우선 가야의 영토기반이 대제국이 되기엔 너무 좁다는 문제제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간단히 답해서, 해양국가에 있어서 육지 영토 크기는 대제국을 이루는 데 그리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세계사에 위대한 해양국가로 남은 사례들을 살펴보자. 연구가 많이 되어 있는 지중해의 경우, 가장 국력이 강했던 예로 페니키아와 그리스를 들 수 있다. 소아시아에 기반을 둔 페니키아 쪽이 먼저 번성해서 기원전 2500년에 이미 지중해를 전체적으로 장악하고 있었고, 후발주자인 그리스도 기원전 400년대에는 제국이라는 명칭이 후세에 붙여질 만큼 큰 규모로 활동했다. 이 무렵엔 지중해를 페니키아와 그리스가 나누어 활동무대로 삼고 있었다.
   
   
▲ 기원전 6세기 무렵 지중해에서는 이미 2000년 이상 번영을 구가해온 페니키아의 세력이 쇠해지는 한편, 신예 그리스가 급성장하고 있었다. 페니키아는 지도 왼쪽의 주황색으로 표시한 좁은 본토를 기반으로 지중해 전역 이곳저곳 조건이 맞는 곳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 역시 보라색으로 표시된 본토를 기반으로 지중해 해안 북부 지역과 이집트에도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출처: www.worldhistory.org 제공 지도에서 그리스 페니키아 영토만을 표시.

   위 지도는 기원전 6세기의 지중해 판도다. 2000년 이상 지속되어 왔던 페니키아의 세력 범위가 많이 축소되고 그리스의 세력이 한참 신장하던 때의 상황이다. 페니키아는 항해거리로 5000킬로미터가 넘는 지중해 서쪽 끝까지 영토로 두고 있었지만, 본토는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작은 항구도시 4곳 및 그 배후지로 이루어진 좁은 땅이었다. 그리스의 영토는 지중해 북쪽 연안의 요지와 이집트에 이르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 넓은 제국의 본부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작은 포구 및 항구도시 십여 곳에 불과했다.
   
   한반도의 가야는 낙동강 강줄기를 따라 남해의 해안 및 도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24곳 이상의 포구 및 항구 도시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여기 포함된 육지 면적은 전성기 페니키아의 본토는 말할 것도 없고, 그보다 훨씬 넓었던 그리스의 본토보다도 어림잡아 갑절은 넓었다. 그런 가야가 동아시아 이곳저곳에 해외거주지를 두었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최근 한반도 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가야계 유물에 대해서도, 그리고 한반도 곳곳에 남아 있는 ‘가야’라는 지명의 흔적에 대해서도 답이 나온다. 가야는 해양국가여서, 원래의 베이스캠프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도 해양활동 거점으로서 조건만 맞으면 영토로 삼았기 때문이다.
   
   
▲ 한반도 및 기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2번은 고천문학적 분석으로 규명된 곳, 이를 제외한 1~13번까지는 화천 출토 지역, 그 나머지 일본 열도에 표시된 곳은 제철 관련 흔적과 함께 묘켄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 밖에도 최근 가야계 유물이 출토된 지역이나 가야라는 명칭이 남아 있는 지역까지 고려하면 가야는 한반도에 더 많은 거점 점유 방식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지역들은 배후에 험산이 있고 수심이 깊은 강을 통해 바다로 쉽게 연결되며 철광과 석회암이 풍부하다는, 고대 제철기지로서의 조건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지도: 이진아 제공

   위 지도는 가야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화천’이라는 동전의 출토지를 포함, 다양한 ‘가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를 표시한 것이다. 모두 뒤로 산이 막혀 있고, 수량이 풍부한 강으로 바다에 쉽게 연결된다는 특징과 함께, 철광석과 석회암이 풍부하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이 모든 게 가야가 해양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양국가는 배를 만들 큰 나무가 많고,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강의 수심이 깊어지는 온난기에 성장한다. 배후에 높고 험한 산들이 둘러 있는 바닷가 비옥한 좁은 땅의 경우, 인구가 늘어나도 육지 쪽으로는 확산되어 가지 못한다. 이럴 땐 산에 흔한 나무를 잘라 강을 따라 바다로 나가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어디나 다 해양국가로 성공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선 교역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있어야 한다. 그걸 토대로 교역을 하며 해외거주지를 넓혀간다. 가치가 있는 자원을 더 많이 개발해서 다시 교역에 투자하여 세력을 계속 확대해가는 데 성공하면 위대한 해양국가가 된다. 그러니까 가치 있는 자원을 갖고 있으며 이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사회가 기후변화 온난기 등 환경 조건이 맞을 때, 해양국가로서 번영하는 것이다.
   
   페니키아의 경우, 비블로스, 티레, 시돈, 아라미스, 4곳의 향구도시 뒤를 병풍처럼 둘러싼 거대한 레바논산맥 및 안티레바논산맥이 있었다. 이들 산맥의 삼림 면적을 합치면 거의 남한 면적에 육박할 정도인데, 유명한 레바논 삼나무가 울창했었다. 곧고 단단하고 향기롭고 벌레가 먹지 않은 이 나무는 배와 건축의 자재로서 지중해 일대에서 최고의 품질로 간주되어 비싼 값에 팔려 나갔다. 베어내도, 베어내도, 소진되지 않을 것 같았던 삼나무 숲은 페니키아 본토 4개 도시를 역사에 남는 해양대국의 본거지로 만들어주었던 힘의 원천이었다.
   
   
▲ (왼쪽) 페니키아 본토의 위치, (오른쪽 아래) 페니키아 본토 도시들의 위치와 그 배후지인 레바논`안티레바논 산맥 지도, (오른쪽 위) 레바논 산맥의 현재 모습. 고대에는 뒤에 보이는 헐벗은 거대 산지도 모두 레바논 삼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지도: 이진아 제공, 사진: Wikimedia Commons License.

   그리스의 출발은 이보다는 소박했다. 포도주를 처음 개발한 곳이며 올리브의 원산지여서, 이것을 밑천으로 해서 근거리 교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성장하면서 도기나 공예품 등으로 품목을 확대했고, 식민지를 경영하면서는 그곳에서 나는 원자재를 가공해 더 다양한 품목을 수출해서 부를 축적했다.
   
   이렇게 뚜렷하게 가치가 높은 자산이 없어 품목을 다변화했던 그리스는 기후변화·생태계 자원 소진 등 환경여건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속적으로 교역에 기반한 경제활동을 해 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채산성 있는 삼나무가 다 사라지자 눈에 띄게 세력이 축소됐던 페니키아와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가야에서는 단연 철 및 철제품이 주요 수출 품목이었다. 유라시아 대륙 철기 확산 경로의 남쪽 라인과 북쪽 라인을 아우르는 위치에 있고,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줄기가 만나는 동남쪽 사면에 자리잡고 있었다. 가야에선 질이 좋은 철광석과 고품질 첨가물인 조개껍질도 풍부했다. 원료도 충분하고 기술 수준도 높아 탁월한 제철기지로서 입지조건을 갖추었던 것이다.
   
   여기 더해 철을 가공하고 유통시켜 부를 축적하는 경영 능력도 탁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에 대한 평판을 인정하는 데 대단히 인색한 중국과 일본의 기록, 그리고 속속 출토되는 유물로 봤을 떄 가야가 적어도 동아시아 일대에 최고 품질의 철 및 철 가공품을 공급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페니키아, 그리스, 가야를 비교해보면서, 육지에서의 영토 면적만을 따져 그 국력을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가야는 특히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철’이라는 생산품은 그 나라의 군사력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제철제국 가야는 어떤 모습으로 해외 영토를 확대해갔을까?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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