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NA 방식의 모더나, 화이자 코로나19 백신. ⓒphoto 뉴시스
mRNA 방식의 모더나, 화이자 코로나19 백신. ⓒphoto 뉴시스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드디어 70%를 넘어섰다. 아직 1차 접종을 마친 사람의 숫자일 뿐이고 접종 완료자 숫자는 50%를 밑돌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수급 불안정으로 인해 미뤄졌던 2차 접종 일정도 앞당긴 것을 보면 2차 접종률 역시 가까운 시일 내에 70%를 넘어선다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이런 성취를 가능하게 한 건 단연코 mRNA 백신의 개발 덕분이다. 국내만 한정하더라도 1차 접종 완료자 중 67%가 mRNA 백신 접종자이고, 유럽연합 기준으로는 84%가, 미국 기준으로는 96% 정도가 화이자와 모더나에서 개발한 mRNA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다. 백신 접종률 자체가 떨어지는 개발도상국을 제외하면 주요 선진국 시민들은 대부분 mRNA 백신을 맞았다. 화이자와 모더나 양사는 2022년 백신 생산을 대폭 증산한다고 예고했으니, 내년 즈음에는 개발도상국도 mRNA 백신의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mRNA 백신이 빠르게 개발되어 보급되지 않았다면 코로나 감염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뜻깊은 기술이지만, 우리가 mRNA 백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유형의 치료제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응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의 의약품들로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했던 분야에서 말이다.

이론적으론 무한 가능성 가진 세포 내 ‘전령’

mRNA, 번역어로는 ‘전령(messenger) RNA’라 부르는 물질은 백신에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몸속의 세포라면 어디든 있는 흔한 물질이다.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세포 내에서 ‘전령’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 몸의 유전정보는 세포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핵(nucleus)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흔히 말하는 DNA다. 인간을 유전적으로 규정하는 중요한 존재이다 보니, 핵 속에 자리를 잡은 DNA는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해 혹시나 모를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동시에 유전 ‘정보’를 이용해서 인체 기능을 수행해야 하니, 마냥 핵 속에 모셔두고 가만히 둘 수만도 없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게 DNA에서 필요한 부분만 복사해 만든 ‘전령 RNA’, mRNA이다.

원래도 인체 내에 흔히 존재하는 물질이니 특별할 건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mRNA를 이용하는 의약품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mRNA를 외부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해서 넣어주면 인체의 유전정보 내에 존재하지 않는 ‘정보’도 단백질 형태로 발현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렇다. 원칙적으로 mRNA는 우리 몸의 유전정보를 기록한 DNA를 일부 복사해 만든 것이므로 DNA에 기록되지 않은 정보를 담을 수는 없다. 그런데 mRNA를 인식해서 그 정보를 단백질의 형태로 구현하는 세포 내의 생체기계는 mRNA의 출처를 따질 줄 모른다. 핵 속에서 빠져나온 전령이 맞는지를 확인하지 않고, 그저 전령을 만나면 기계적으로 mRNA에 수록된 유전정보를 단백질의 형태로 구현해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mRNA의 성질에 주목한 제약사들은 처음에는 유전병 치료에 주목했다. 유전병이 있는 사람은 핵 속에 보관된 유전정보인 DNA 자체에 무언가 결함이 있다 보니 그 정보를 그대로 옮긴 전령인 mRNA 역시도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 자체를 교정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만 핵 속 깊은 곳에 보관된 DNA를 수정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인 전령을 바꿔치기하는 방법이 고안됐다. 제대로 된 정보를 담은 전령 RNA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체내에 주입해 제대로 된 단백질이 발현되도록 해 신체 기능이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택하면 이론적인 가능성은 무한하다. 유전병 환자에게 정상적인 전령 RNA를 넣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사람에게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을 더 늘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가령 고지혈증 환자가 혈액 중 콜레스테롤을 세포 내로 흡수시켜 제거하는 능력을 갖춘 단백질을 발현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실제로 기술을 구현해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인위적으로 넣어준 mRNA가 발현시킨 단백질을 인체 면역계가 ‘외래 침입물질’로 인식해 공격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아직도 기술적으로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꾀를 내 전혀 다른 접근을 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몸의 면역계가 mRNA로 생성된 단백질에 적대적 반응을 보인다면, 이를 백신에 응용해보자는 것이다.

mRNA를 이용한 코로나19 백신도 이런 착안에서 시작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신의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을 이용해 인체 내로 침투하는 성질이 있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구조의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mRNA를 체내에 넣어주면 인체의 세포는 mRNA의 출처를 따지지 않고 코로나19 단백질을 만들어내게 된다.

코로나19 백신이 데려올 암 백신의 시대

앞서 설명했듯 인간의 면역계는 이렇게 생성된 단백질을 외래 침입물질로 인지하고 강력한 면역반응을 나타낸다. 덕분에 코로나19 단백질에 결합하는 항체(antibody)가 많이 생성되니, 실제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입해도 이를 막아낼 능력을 미리 갖추게 된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고도 면역력을 갖춘 비법이다.

이런 방식은 꼭 코로나19 바이러스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독감을 유발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비롯해 우리가 흔히 접종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백신은 mRNA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제작될 수 있다. 심지어 이런 백신들을 따로 맞는 게 아니라 주사 한 방에 모두 해결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mRNA가 한 번에 여러 정보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어서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여러 종류의 감염성 질병에 대한 통합 백신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실제로 모더나와 같은 기업은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 거기에 영아에 치명적인 RSV라는 바이러스를 섞은 3가지 혼합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관련 기술을 갖추지 못한 백신 개발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런 방식은 암 치료에도 응용되고 있다. 흔히 암 백신(cancer vaccine)이라 불리는 방식의 치료제는 암이 생기기 전에 이를 예방한다기보다는 인간의 암세포에 특이적인 단백질을 mRNA 형태로 가공해 인체 면역세포가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게 만든 혁신적인 기술이다. mRNA에 코로나19 단백질 정보를 담아 주입하면 면역세포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것처럼, 암세포 단백질을 주입해 면역세포가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게 성공한다면 암 정복이라는 무거운 과제에 발을 내딛는 역사적 성과를 낼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 대유행은 우리 사회에 여러 흔적을 남겼지만, mRNA를 이용해 생명공학 기술이 대폭 발전하는 계기로도 기억될 수 있다.

박한슬 약사·’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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