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는 위대한 해양국가‧제철제국으로서 조건을 여러 모로 갖추었다. 또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나라로 번영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물‧기록‧구비전승, 기타 흔적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가야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활동했었는지, 다른 국가들과 어떤 양상의 관계맺음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정말 희소하게 있긴 해도, 지금까지 ‘신화’로 간주되며 무시되어 왔다.
지중해 지역의 상고대 및 고대 해양국가들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 국가가 어떻게 존재하고 활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상당히 풍부하다. 누가 봐도 신화이고 옛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여겨지는 것들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오디세이’와 ‘천일야화’, 일명 ‘아라비안 나이트’다. 전 세계인들이,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도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접해왔을 이야기다.
‘오디세이’는 기원전 750년 경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구술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내용을 나중에 기록으로 담은 서사시다. 기원전 12세기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연합군 소속이며, ‘이타카’라는 해양 도시국가의 군주인 오디세이가 전쟁이 끝난 뒤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겪는 파란만장한 일들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인도와 아랍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서기 7세기 무렵부터 하나의 흐름으로 엮여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서기 3세기부터 7세기까지 존재했던 페르시아 사산왕조의 가상 군주인 샤흐리아의 새 신부 세헤라자데가 왕에게 1001일 밤 동안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지중해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지중해는 유럽, 소아시아, 서아시아, 아프리카로 둘러싸인 커다란 연못처럼 생긴 바다다. 이 바다를 둘러싼 육지의 국가들은 크게 두 세력으로 나눌 수 있다. 유럽계와 아시아-아프리카계다. 기원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자리 잡으면서 이 판도가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교 세력의 대립으로 표현돼왔다.
유럽에서 형성된 근대 문명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주로 유럽 중심의 지중해 역사가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지중해의 역사는 이 두 세력이 번갈아 가면서 우위를 점하려 했던 경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떨 때에 유럽 세력이 득세하고. 또 어떨 때에 아시아-아프리카계 세력이 득세했을까? 지난 세기 말부터 역사변화에 있어서 환경요인에 주목하는 환경‧역사적 관점이 확산되면서, 이런 질문과 함께 그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 캠브리지대학 데이비드 아불라피아 교수의 명저 ‘위대한 바다: 지중해 2만년의 역사’가 있다. 과거 2만 년 동안, 지중해를 무대로 유럽 세력과 아시아-아프리카 세력이 일진일퇴해온 상세한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이다. 아불리피아 교수는 그 판의 승부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기후변화를 꼽고 있다. 기후변화 온난기에는 유럽 쪽이, 한랭기에는 아시아-아프리카 쪽이 승기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류의 흐름이 기후변화 주기에 따라 정반대로 바뀌기 때문이다. 지중해는 육지로 빙 둘러싸여 있는데, 오직 한 곳으로 아주 좁은 출입구가 뚫려 대서양으로 연결된다. 스페인 남쪽 해안 지브롤터 해협이다. 바다의 폭이 가장 좁은 곳에서는 13킬로미터 밖에 안 된다.
온난기에는 지구상의 바닷물 온도가 전체적으로 올라가면서 부피가 팽창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해수면이 높아진다. 바닷물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큰 대서양이 부풀면 그 해수면이 지중해 쪽보다 훨씬 높아지기 때문에, 좁은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대서양의 물이 지중해 쪽으로 콸콸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지브롤터 해협은 지중해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지중해 바닷물의 흐름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즉 유럽 쪽에서 소아시아와 아프리카 쪽으로 향한다.
따라서 그 방향으로 항해가 아주 수월해지며, 돌아오는 길은 그만큼 어렵게 된다. 그러니까 유럽 쪽에서 소아시아-아프리카 쪽으로 쳐들어가기 쉽게 된다는 얘기다. 가서는 돌아오기 힘드니까 목숨 걸고 싸울 테다. 한랭기에는 대서양 쪽 해수면이 낮아지기 때문에 그 반대 흐름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지중해에서는 인류 역사를 통해 수백 년 정도의 주기로 전혀 다른 두 문명이 세력을 폈다 접었다 해왔다. ‘오디세이’는 그 중 유럽 쪽에 속하는 그리스 해양 세력의 존재 양상을, ‘아라비안 나이트’는 아시아에 속하는 아랍 해양 세력의 존재 양상을 잘 보여준다.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내용을 통해 판이한 세계관과 우주관을 보여주지만, 정확하게 공통되는 점이 있다. 바로 해양국가의 존재 및 활동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런 부분은 마찬가지로 뛰어난 해양국가였던 한반도 가야의 존재양상을 되짚어보는 데도 상당히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먼저 ‘오디세이’에서 해양국가가 사는 방법을 보여주는 대목을 보자.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파에아키아’라는 해상 도시국가의 해변에 떠밀려 올라가게 됐다. 마침 시녀들과 아침 산책을 나온 파에아키아의 공주 나우시카가 모래사장에 쓰러져 있는 오디세이를 발견하고 사람들을 불러 그를 궁정으로 데려간다.
파에아키아의 왕 알키노우스는 정신을 차리고 피로를 회복한 오디세이를 위해 연회를 베푼다. 오디세이는 왕과 많은 신하들 앞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를 얘기한다. 그러자 왕은 말한다.
“들을지어다, 파에아키아의 명장, 고관들이여- 이 손님은 동에서인지 서에서인지 몰라도 표류 끝에 이곳에 당도하였소이다. 이 분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으니, 과거 여느 때처럼 신속히 도움을 주도록 합시다. 자, 성스러운 바다에 가장 적합한 흑선(黑船)을 띠우고 우리 땅에서 가장 우수하다 알려온 청년 쉰 하고 두 명을 골라봅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해상활동을 위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비슷한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는 이렇게 타지에서 항해해 온 사람들을 도와주는 문화가 있다는 점이다.
반면 적들의 세력도 있다. 오디세이는 파에아키아에 오기 전까지, 멋모르고 낯선 땅에 상륙했다가 마녀와 식인귀 등 다양한 위험 속에 신하를 부지기수로 잃는 경험을 한다.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세력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뱃사람들이 나중에 사람들에게 들려줄 때 흥미 요소를 덧붙이고 부풀려서 얘기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해상국가 존재 양상의 특징이 엿보인다. 이들이 항해하는 바닷길을 따라 우호적인 항구도 있었고 적대적인 항구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우호적인 곳과는 확실한 연대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필요가 있었고, 적대적인 곳은 되도록 피해가며 항해해야 했을 테다. 또 그런 부분에 대해 경험이 많은 사람을 우대해서 정보를 구하는 일이 중요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비슷한 모티브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도 다양한 맥락 속에서 등장한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