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합친 말로 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20~30대를 아우르는 말
 ⓒ일러스트 허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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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미러’에는 모든 것이 점수화된 사회가 나온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사회에서 평점은 삶의 모든 것이다. 직장을 구할 때와 같이 중요한 일에는 물론 차를 빌릴 때에도 평점에 따라 차종이 결정된다. 평점이 높은 사람들은 그들끼리 어울리고, 그보다 평점이 낮은 사람들은 그 그룹에 끼지도 못한다.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면 평점이 깎이고, 결혼식에서 친구를 위해 축사를 하면 평점이 올라간다. 오죽하면 평점을 관리해주고 좋은 평점을 받게 도와주는 컨설턴트까지 있을 정도다.

가상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결코 낯설지 않다. 이미 MZ세대의 삶 곳곳에 ‘점수’가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자주 이용하는 MZ세대에게 점수를 주는 일은 매우 익숙하다. 앱으로 택시를 호출해 이용할 때,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후기를 남길 때, ‘점수를 내 달라’는 요청을 계속해서 받기 때문이다. 미용실을 방문하고 난 다음이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점수를 남긴다. 일하고 있거나 다녔던 회사도 점수로 평가한다.

반면에 MZ세대는 점수를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단지 시험을 치르던 학창 시절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도 ‘스펙’이란 이름의 ‘점수화’된 자기 표현을 준비하는 세대가 MZ세대다. 사람을 만날 때도 MZ세대는 점수를 받는다. 한때 일부 MZ세대 사이에 유행했던 온라인 소개팅 앱 중에는 다른 이용자들에게 외모에 대한 평가를 받아 평점 3점이 넘지 못하면 가입 자체가 불가능한 앱도 있었다. MZ세대의 문화는 ‘점수화’된 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MZ세대의 삶

점수를 매기는 목적을 생각해보자.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 점수를 낸다. 그래서 일정 이상의 점수를 받은 것을 선택하거나 평가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점수에 익숙하다는 것은 서열을 매기는 데 익숙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몇 가지 MZ세대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MZ세대는 우열을 가리는 것을 좋아한다. 손흥민이 박지성보다 나은 축구선수인지,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과 BTS의 빌보드 1위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지 비교하기를 즐겨 한다. 오히려 MZ세대가 우열을 가리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전국 3대 짬뽕 맛집’이니 ‘전국 3대 빵집’ 같은 묶어 이름 짓기는 우열 가리기에 익숙한 MZ세대의 모습이다.

그런데 점수를 매기는 일도 비교가 선행되지 않으면 어렵다. 무엇을 3점으로 할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1점이나 5점짜리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비교가 이루어진다.

얼핏 MZ세대는 비교와는 거리가 먼 세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MZ세대는 어느 세대보다 타인과 비교하는 삶을 사는 세대다. 주된 원인은 소셜미디어에 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같이 MZ세대가 즐겨 하는 소셜미디어에서는 다른 사람의 단편적인 모습을 나 혹은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가 쉽다.

예전에는 나의 삶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아는 방법이라곤 대중 매체에 나오는 연출된 모습이나 주변 지인의 모습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MZ세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과도 비교를 할 수 있다. 태어난 지 6개월 된 딸을 기르는 31살 A씨가 그렇다.

“육아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인스타그램을 자주 들여다봐요. 관심사가 관심사다 보니 다른 아기들 사진이 많이 뜨더군요. 보고 있자면 ‘우리 아이는 왜 저걸 못하지’ ‘우리 아이는 왜 콧대가 낮지’ 쓸데없는 걱정이 들어요.”

문화적으로 보면 MZ세대에게 비교가 익숙한 이유는, 이들이 학창 시절부터 ‘상대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수우미양가’의 절대평가가 익숙한 기성세대에게는 낯설지만 MZ세대는 어릴 때부터 ‘등급제’가 익숙하다. 나 혼자만 잘해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동료 학생보다 ‘더 잘해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상대평가제다. 10명의 학생이 모두 잘해도 우열을 가려야 한다. 그러니 MZ세대는 어릴 때부터 남과 비교해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비교하는 일이 잦았다.

점수 매기기로 누리는 권위

한편 점수를 매긴다는 것은 일반화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같은 5점을 준 영화라도 미묘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점수만 보아서는 그 차이를 알기 힘들다. 점수를 주는 것은 자세한 리뷰를 남기는 것보다 간편하다. 그 편의성 때문에 일반화된 점수 매기기가 더 선호되는 측면도 있다.

시청한 영화에 별점을 남기는 대신 자세한 리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참여자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점수 매기기는 그만큼 간편하다. 문제는 점수 매기기의 일반화가 보편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적 문제로까지 떠오른 이른바 ‘별점 테러’ 사건들이 그 예다.

별점 테러란 서비스를 이용하고 나서 이용자가 기분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매우 낮은 별점을 주는 행동을 말한다. 굳이 ‘테러’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낮은 별점이 자영업자에게 매우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관적 의지만으로 멋대로 매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점수다. 점수의 일반화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MZ세대의 점수화는 권위적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달음식 시장을 보자. 배달음식 시장이 성장한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생활양식이 정착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배달음식 앱의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이용자들이 직접 음식을 먹어보고 남긴 별점이 쌓이는 시스템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점수를 매기는 문화다.

예전에는 점수를 매기는 역할은 어느 정도 권위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배달 앱에서는 미식가가 아니어도, 음식칼럼니스트가 아니어도 자신이 먹은 음식에 점수를 매길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배달 앱 안에서는 평범한 시민도 음식칼럼니스트가 되고 미식가가 되어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권위를 가지는 것이다.

이 같은 시스템으로 성공한 회사가 더 있다. 영화 리뷰 사이트에서 발전해 OTT 서비스까지 제공하게 된 ‘왓챠(watcha)’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 서비스와 경쟁하고 있는 왓챠는 맨 처음 영화에 별점을 매기는 사이트에서 시작했다. 누구나 전문가처럼 별점을 남기고 리뷰를 작성할 수 있는 공간은 영화에 대한 권위를 가지게 했다.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리뷰는 따로 눈에 띄는 곳에 게시되기도 했다.

점수를 남길 수 있는 곳은 이외에도 많다. 재직 중이거나 재직했던 회사에 대한 리뷰를 남길 수 있는 ‘잡플래닛’에는 거의 모든 회사에 대한 적나라한 평가가 남겨져 있다.

가볍게 보면 회사에 가지고 있던 불만을 털어놓는 자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리뷰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좀 다르다. 재직자가 아니라 회사의 경영자나 임원진처럼 회사를 바라보고 점수를 매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이 점수화된 서비스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세대가 바로 MZ세대라는 점이다. MZ세대는 윗세대가 가지지 못했던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름이 있는 권위’는 아니다. 익명이기는 해도 원하는 만큼 원하는 곳에다 점수를 매길 수 있다. 그리고 MZ세대는 은근히 이를 즐긴다.

점수 문화가 만든 ‘젊은 꼰대’들

‘꼰대’란 권위주의적인 인물이다. ‘갑질’을 행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양 강요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원래 사전적 의미가 ‘늙은이’의 은어였던 만큼 ‘꼰대’란 나이가 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새로운 용어가 생겼다. ‘젊은 꼰대’다. MZ세대이면서도 꼰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젊은 꼰대의 ‘꼰대스러운 행동’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쉽게 알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양 충고하며 가르치려는 사람이나 ‘나 때는’이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라고 하면서 결국 본인의 답을 요구하는 사람 등이 젊은 꼰대다. 가끔 보도되는 것처럼 대학 신입생을 상대로 기강을 잡는답시고 얼차려를 주거나 엄격하기 그지없는 규칙을 적용하는 한두 학번 위의 선배들 역시 젊은 꼰대다.

MZ세대에게 갑자기 서열 의식이 생기고, MZ세대가 갑자기 권위적으로 돌변한 것이 아니다. 젊은 꼰대가 생기는 원인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MZ세대의 점수화된 문화다. 점수는 비교와 우열 가리기에서 온다.

주관적인 기준만으로 일반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전에 없던 권위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점수를 매기고 점수가 매겨지는 일에 익숙하다는 것은 곧 이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MZ세대는 어릴 때부터 점수화된 문화에 익숙했다. 특히 최근 들어 누구나 별점을 매길 수 있게 되면서 점수 매기기가 갖는 성향을 실제로 내재하기 시작했다. 젊은 꼰대는 그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남과 비교하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것, 내 경험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 나의 말이 권위를 가지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모두 무엇인가에 점수를 줄 때의 부정적인 모습이다.

점수화가 특정 분야에서 특히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직군에서 점수화는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 점수가 직원의 고용안정에 긴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누군가 멋대로 ‘10점 만점에 1점’ 점수를 내린다면 인사고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MZ세대의 점수화는 간편하고 발랄한 문화적 현상으로만 볼 수 없다. 점수화된 사회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서서히 지적되고 있는 만큼, MZ세대 스스로도 점수화를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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