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와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오른쪽). ⓒphoto 뉴시스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오른쪽).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발동을 건 100% 재난지원금 지급에 인천광역시까지 가세했다. 민주당 소속 박남춘 인천시장이 지난 10월 6일 인천시의회에서 “인천시민 1인당 10만원씩 ‘일상회복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다. 소득하위 88%로 결정된 중앙정부 방침과 달리 전 주민 대상 100%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광역지자체는 경기도, 충청남도에 이어 인천시가 벌써 세 번째다.

이재명 지사는 박남춘 인천시장의 이 같은 언급이 나온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기도의 100%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 이후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들의 차별 없는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이 계속되고 있다”고 감사의 뜻을 표명했다.

이재명 지사의 언급처럼 기초지자체 중에서도 기획재정부의 방침(소득하위 88% 대상)과 달리 전 주민 대상 100%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곳은 이미 17개 시군에 달한다. 하지만 당장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가 잇달아 예정된 상황에서 각 지자체장들이 매표성으로 의심될 수 있는 재난지원금을 코로나19 피해 상황과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살포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 지자체가 전 주민에게 100% 재난지원금을 뿌릴 만큼 재정여력이 충분한지도 의문이다. 행정안전부 지방재정 통합공개사이트인 ‘지방재정365’를 이용해 100%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각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조사한 결과, 재정자립도가 바닥을 맴도는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재정자립도 6.96%도 100% 지급

그나마 100% 재난지원금의 신호탄을 쏜 경기도(본청 기준)의 경우, 관내 인구(1340만명)와 산업체가 많은 관계로 재정자립도 49.05%로 다른 광역지자체에 비해 높은 편이다. 경기도와 같은 다른 도(道)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33.31%에 그친다. 광역지자체 가운데 경기도에 이어 두 번째로 소득상위 12% 주민들에게까지 100%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한 충남도만 해도 재정자립도가 31.33%로 유사 자치단체 평균(33.31%) 이하다. 광역지자체 가운데 세 번째로 전 주민 대상 100% 재난지원금 지급을 앞둔 인천시도 재정자립도가 47.53%에 그친다. 유사 단체인 다른 특별시와 광역시 평균(56.14%)에 비해서 재정자립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100% 재난지원금 지급을 일찌감치 결정한 기초지자체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100%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전북 장수군과 강원도 화천군은 재정자립도가 똑같이 한 자릿수인 6.96%에 그친다. 100%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17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장수와 화천의 재정자립도(6.96%)는 각각 전북과 강원도에 속한 다른 시군의 평균 재정자립도에 비해서도 열악하다. 전북과 강원도의 기초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7.7%와 8.69%에 달한다.

100%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기초지자체 중 재정자립도가 10%가 채 안 되는 지자체는 장수와 화천 외에도 강원 철원, 전북 무주, 충북 단양, 전남 함평, 전북 남원, 강원 인제, 강원 양구, 전북 정읍 등 모두 10개 지자체에 달한다. 100% 재난지원금을 지급키로 한 기초지자체 가운데 가장 상황이 나은 곳은 전남 광양이지만 이마저 재정자립도가 23.22%에 그친다. 이쯤 되면 각 지자체가 관내 주민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이 자기 시군에서 거둔 세금을 아껴 만든 돈인지, 다른 시군 주민들이 낸 세금을 관내 주민들에게 퍼주는 돈인지 헷갈릴 정도다.

100%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20개 광역·기초지자체장 가운데 15명은 이재명 지사와 같은 민주당 소속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그간 이재명 지사의 100% 재난지원금 지급을 ‘포퓰리즘’으로 비판해온 국민의힘 소속도 더러 보인다. 100% 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선 강원도 화천군과 철원군, 충북 단양군은 모두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장이 이끌고 있다.

철원군의 경우, 지자체장이 국민의힘 소속인 데 반해 재난지원금에 이재명 지사의 대표 브랜드인 ‘재난기본소득’이란 이름까지 붙이고 있다. 기본소득, 기본대출, 기본주택 등 소위 ‘기본’ 시리즈 정책을 연거푸 내놓았던 이재명 지사는 “같은 내용에 대한 비슷한 말 같지만 두 단어(지원과 소득)에는 주체와 내용 지향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며 “재정지출은 국민이 대상으로서 도움받는 ‘지원’이 아니라 주체인 국민이 당당하게 권리로서 요구할 ‘소득’”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지금껏 ‘재난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세 차례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해 왔다.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이 이끄는 지자체들 역시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편이다. 반면 정부는 ‘재난지원금’ 또는 ‘국민지원금’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지자체 자치권 회수 검토해야

자연히 재정자립도도 열악한 상황에서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매표성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이들 지자체의 자치권을 회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재정자립도가 열악해 사실상 중앙정부의 보조금으로 시청과 군청 살림을 유지하면서, 중앙정부가 재정 상황을 감안해 결정한 소득하위 88% 지급방침과 별개의 지원금을 뿌리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다.

재정자립도가 높으면서도 100%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다른 지자체와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광역지자체 중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서울(77.28%)만 해도 100%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시군 주민들 입장에서는 “우리만 세금 내는 봉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월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미 국회와 중앙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국민지원금 범위(소득하위 88% 대상 1인당 25만원)가 있는데, 그것을 존중하지 않고 이렇게 하는 것은 재정당국으로서는 자제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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