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글로벌 제약회사 머크가 개발한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몰누피라비르. ⓒphoto 뉴시스
미국 글로벌 제약회사 머크가 개발한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몰누피라비르. ⓒphoto 뉴시스

지겹게 이어지는 코로나19 대유행도 어느새 1년 반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꽉 막혔던 국내 백신에 숨통이 트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11일을 기점으로 1차 접종자 숫자가 전체 인구의 78% 정도에 해당하는 4000만명을 넘어섰고,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인구도 전체 인구의 60%인 3000만명을 넘었다. 속단은 어렵지만 일일 신규 확진자 숫자도 1000명대 초반으로 내려왔으니, 4차 대유행의 고비는 어느 정도 넘어선 것으로 짐작된다.

정부에서는 높은 백신 접종률에 힘입어 단계적 일상회복 정책(위드 코로나)을 시행하겠다는 예고를 내놨다. 백신 접종 비율이 충분히 늘어난 만큼 확진자 수가 급증하더라도 위중증으로 전환되는 수가 많지 않을 거란 기대 때문인데, 문제는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백신 접종자야 코로나19에 감염되더라도 가볍게 앓고 넘어가면 그만이라지만, 미접종자는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들이 무증상 상태로 감염을 옮기고 다닌다면 미접종자는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똑같이 코로나19 이후의 일상을 즐기는데도 위험이 비대칭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건 백신을 맞는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한 가지 희망이 생겼다. 새로운 코로나19 치료제가 규제기관의 문턱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글로벌 제약회사 머크(Merck)는 입으로 삼켜도 약효를 발휘하는 코로나19 치료제인 몰누피라비르(Molnupiravir) 개발을 마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긴급 사용승인을 신청했다. 허가되면 FDA에서 허가받은 두 번째 코로나 치료제가 된다. 최종 승인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먹는 치료제의 등장은 코로나 대유행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약의 작용원리와 관련된 쟁점을 살펴보자.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닌 ‘감염성 입자’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이전에도 FDA에서 허가받은 코로나19 치료제는 이미 존재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회사 길리어드(Gilead)에서 개발한 최초의 코로나19 치료제인 렘데시비르(remdesivir)다. 2020년 내내 코로나19 종식을 불러올 것이라 기대를 받았던 약이지만, 약효에 대한 시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약을 투여했을 때 환자의 입원기간을 줄이는 효과는 입증했지만, 위중증 상태로 접어든 환자의 사망률을 유의미하게 낮추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약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바이러스 감염의 공통적인 특성에 가깝다. 현재까지 개발된 거의 대부분의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의 증식을 더디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위중증 상태로 접어든 환자는 이미 바이러스 수가 매우 많이 늘어난 상태라 그런 효과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바이러스(virus)는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기생충이나 세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 자체를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보기 힘들다. 산길을 걷다 보면 옷에 잔뜩 달라붙는 도깨비바늘이 그 상태로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보긴 힘든 것처럼 바이러스도 이리저리 옮겨붙으며 감염을 일으키는 일을 반복할 뿐 살아있는 상태는 아니다. 면역세포나 항체 같은 단어들이 나오지만, 도깨비바늘을 옷에서 떼어내듯 바이러스 입자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을 지칭하는 게 전부다. 근원적으로는 도깨비바늘을 만드는 풀을 뽑아내는 것이 해결책이겠지만 주변의 풀숲이 모두 도깨비바늘로 뒤덮인 상태라면 그때 가서 제초제를 치는 건 즉시적 효과를 보기 힘들다. 항바이러스제를 감염이 심각해지기 전에 써야 하는 이유다.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해 머크에서 개발한 항바이러스제는 중증으로 전환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던 렘데시비르와 달리 중증으로 전환될 위험성이 높은 경증 환자들을 약의 사용 대상으로 삼았다. 비만·60세 이상의 고령·당뇨병·심장질환과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코로나19 감염 시 예후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게 1년여간의 코로나19 대유행을 통해 충분히 규명됐다. 따라서 혹여나 감염이 발생하더라도 이들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약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임상시험 중간결과(interim result) 내용을 살펴보면 중증으로 전환될 위험이 큰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해당 약을 사용했을 때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할 위험을 50% 감소시켜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증인 상태에 사용했으니 효과가 더 좋아야 하는 건 맞지만 항바이러스제의 작용방식을 생각해보면 렘데시비르와 비교해서도 지나치게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는 건 이례적이다. 비밀은 바로 작용방식에 있다.

RNA 자체를 불량으로 만들어버리는 방식

코로나19를 일으킨 코로나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RNA를 복제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역할을 수행하는 단백질은 다행히도 바이러스에만 존재한다. 그러니 이 단백질만 고장 내면 바이러스는 더 이상 증식할 수 없다. 이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 최초의 코로나19 치료제인 렘데시비르이다. 렘데시비르는 RNA 복제 단백질이 사용하는 재료인 핵산(nucleotide)과 유사한 형태를 가진 일종의 ‘가짜 핵산’인 핵산유사체(nucleotide analogue)이다. 렘데시비르와 같은 가짜 핵산을 넣어주면 RNA 복제 단백질은 말 그대로 고장이 나서 서버린다. 증식이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점이 발견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RNA 복제 단백질은 고장이 나서 복제 과정이 멈추더라도, 복제 과정을 역으로 되돌려 문제가 된 부분을 잘라내고 다시 복제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공장에 비유하면 기계에 불량 재료가 걸려 멈추더라도, 컨베이어벨트를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문제가 된 부분을 빼내고 다시 기계를 가동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공장이 잠시 멈출 수는 있지만, 영원히 멈추는 게 아니니 약효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렘데시비르를 투여할 시 입원 기간은 줄어들지만 최종적인 사망을 줄이지 못했던 결과와 일치한다.

몰누피라비르는 핵산 유사체라는 점은 같지만, 렘데시비르와는 조금 다른 방식을 택했다. RNA 복제 단백질을 멈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복제된 RNA 자체를 불량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 노린다. 몰누피라비르가 끼어든 RNA는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다음번 RNA를 복제하기 위해 RNA 복제 단백질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원래 설계대로 넣어야 할 핵산 대신 엉뚱한 핵산을 넣어버리는 식으로 마구 돌연변이를 일으켜버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바이러스는 열심히 자신의 RNA를 복제하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면 모두 불량품뿐인 최악의 상태를 맞게 된다. 몰누피라비르가 뛰어난 효과를 낸 이유다.

현재까지의 임상시험 결과로는 별다른 중대한 위험성이 보고되지 않았고, 효과 역시 충분하니 몰누피라비르가 허가되면 코로나19 치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처럼 생활치료센터나 병원에 입원하는 대신 자기 집에서 약을 먹으며 치료할 수도 있다. 다만 우려할 부분은 있다. RNA 복제 단백질은 바이러스에만 있지만, 핵산은 인간에게도 유전자 복제와 전달에 사용하는 물질이라는 점이다. 현재까지 성인을 대상으로 특별한 돌연변이 유발 등은 보고되지 않았지만 가능성을 열어두고 면밀한 관찰을 해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박한슬 약사·’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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