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6일 KAI 우주센터 내부에 있는 차세대 중형위성 2호기의 모습. ⓒphoto KAI
지난 11월 16일 KAI 우주센터 내부에 있는 차세대 중형위성 2호기의 모습. ⓒphoto KAI

“카운트다운. 10, 9, 8…1. 발사.”

지난 11월 16일 오전 11시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우주센터 내 궤도충격실험실. 이날 이곳에는 러시아 측 인공위성 기술자 10명과 KAI의 국내 연구진 여러 명이 모였다. 내년 상반기 중 발사될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중형위성 2호기의 분리충격 시험을 수행할 기술자들이었다. 차세대 중형위성 2호기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으로부터 KAI가 넘겨받아 독자 설계한 첫 번째 차세대 중형위성이다. 앞서 항우연과 KAI가 공동 개발한 차세대 중형위성 1호기는 지난 3월 러시아 소유즈 발사체에 탑재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분리됐고, 현재 상공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날 시행된 차세대 중형위성 2호기의 분리충격 시험은 위성과 발사체를 잇는 연결 부위를 화약을 이용해 분리하는, 지상에서 이뤄지는 시험 중에서는 최종 테스트 격에 해당하는 단계였다. 이 과정에서 위성과 발사체가 제때 잘 분리되는지, 위성의 설계 한도를 넘어서는 문제는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 이날 시험의 목표였다.

차세대 중형위성 2호도 발사 가시권

1시간 정도 진행된 이날 시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실험실 내·외부에 있던 국내·러시아 연구진 모두 손뼉을 쳤다. 이날 시험 과정을 참관한 한창헌 KAI 미래사업부문장(상무)은 “테스트 결과가 깔끔하게 나온 만큼 러시아 측과 발사 일정만 조율하면 내년 상반기 중에는 위성을 발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시험 과정을 함께한 러시아 연구진들은 일주일 정도 추가로 국내에 머무르면서 발사 관련 추가 시험 일정을 진행한다. 발사 일정이 확정되면 KAI는 이 위성을 카자흐스탄에 있는 발사대로 옮겨 발사를 준비할 예정이다. 궤도에 제대로 안착한 위성은 길게는 10년까지도 사용한다는 것이 KAI 측 설명이다. 설계 수명 자체는 4년 내외지만, 최근에는 기술이 발전한 만큼 위성의 궤도를 유지할 만한 추진체 연료만 충분하다면 전기 장치 등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오래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KAI는 지난 1999년 삼성항공·현대우주산업·대우중공업의 항공사업 부문이 통합돼 만들어진 국내 최대 규모 방산업체다. 사업 부문은 크게 고정익(전투기·훈련기 등), 회전익(헬리콥터), 기체(민수) 부문으로 나뉜다. 여기에 새롭게 발사체와 인공위성 등이 포함된 미래사업 부문이 추가돼 지난해 7월 우주센터가 설립됐다. 현 안현호 KAI 사장은 KAI의 대표 사업인 ‘한국형 전투기 보라매(KF-21)’ 사업 이후의 미래 먹거리를 찾다가 우주산업을 새롭게 개척하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KAI는 우리나라 위성사업의 명실상부한 중추 회사다. 군·정보기관 이외에도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 정부 각 부처가 발주하는 대부분의 위성 설계와 제작을 맡아왔다. 지난 10월 21일 전남 고흥 나로호발사센터에서 발사돼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누리호 역시 발사 1단 연료 탱크와 산화제 탱크를 KAI가 만들었고 발사체 총조립을 수행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앞으로 누리호를 5차례 추가 발사하고 2030년엔 누리호에 달 탐사선을 탑재해 발사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도 KAI의 역할이 클 전망이다. 우리나라 위성사업을 주관하는 곳이 그간의 항우연에서 KAI로 바뀐 것은 대한민국 우주산업이 그간 연구·개발 중심에서 이제는 양산을 위한 산업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의미가 된다.

인공위성은 크게 관측위성, 통신위성, 항법위성으로 나뉜다. 차세대 중형위성 2호기를 포함한 현재 대부분의 위성은 관측위성에 속한다. 군 정찰위성(SAR) 등 우리 국방과 안보를 책임질 위성 이외에도 정보 활동, 지리 정보 수집 등을 위한 여러 위성들이 여기에 속한다. KAI는 관측위성 분야에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구독 서비스와 연관지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KAI는 이를 위해 지난 9월 메이사라는 국내 스타트업의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항법위성 역시 최근 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위성 분야다. KAI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KPS(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 사업에도 참여한다.

잠재성 높은 통신위성 시장 조준

이 중에서도 산업적 측면에서 가장 잠재력이 클 것으로 예측되는 분야는 통신위성이다. 현재 위성사업이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차세대 이동통신인 6G 통신이 위성을 이용한 통신망이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KAI 역시 이 분야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창헌 부문장은 “앞으로 가장 발전 전망이 높은 분야가 통신위성이라고 보고 있다”며 “저궤도 통신위성의 경우 기본적으로 통신망을 구축하기 위해 쏘아 올려야 하는 대수가 수천에서 수만 대에 가깝기 때문에 제대로 개발해낼 경우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6G 통신은 아직까지 기술표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저궤도 위성과 결합한 통신망이 차세대 이동통신의 중추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KAI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존의 통신위성은 정지궤도 위성이었습니다. 쏘아올리는 고도가 3만6000㎞ 내외로 높죠. 하나만 있으면 한반도 전역을 커버할 수 있어요. 하지만 거리가 멀다 보니 실제로 통신이 한 번 되려면 0.5초 정도가 걸렸어요. 기존에는 0.5초 정도의 시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향후 각광받을 것으로 예측되는 미래형 모빌리티나 에어 모빌리티는 0.5초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일이 생길 수가 있죠. 그래서 업계에서는 저궤도 위성통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습니다.”

저궤도 통신위성은 통상 순항 고도가 상공 500~1200㎞ 내외다. 기존 통신위성에 비해 전파가 오가야 하는 거리가 훨씬 줄어들기 때문에, 고속 통신에 적합한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저궤도 위성 역시 단점이 있다. 정지궤도 위성이 아니기 때문에 한 군데 고정돼 있지 않고, 위성의 위치가 자꾸 바뀐다는 점이다. 앞서 관계자는 “저궤도 위성은 특성상 지역통신망을 구축하려면 군집운용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 지구적인 통신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통신 서비스 역시 특정 지역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지역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운영하지 않으면 경제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6G 통신위성은 6G 기술 자체가 아직 걸음마 단계인 만큼, 아직까지 명확한 방향이 나오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통신 인프라가 촘촘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에 위성 인터넷의 필요성이 높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 KAI 측 설명이다. KT 등 이동통신사들이 이미 일부 위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 요소다. 다만 아시아 다른 국가들의 대부분 지역이나 미국 일부 지역 등 통신망이 제대로 깔려 있지 않은 국토가 넓은 지역에서는 이 같은 위성 통신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KAI의 위성사업과 관련한 매출은 연 1800억원 수준이다. 2~3년 내 5000억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KAI는 위성을 포함한 우주사업 매출 규모가 충분히 커지면 미래사업 부문에서 독자 사업부를 설립해 독립시킨다는 계획이다.

KAI 종포공장에 있는 산화제 탱크와 연료 탱크의 모습. ⓒphoto KAI
KAI 종포공장에 있는 산화제 탱크와 연료 탱크의 모습. ⓒphoto KAI

글로벌 우주산업 시장도 민간이 주도

KAI는 위성 외에 발사체 분야에서도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우리 위성은 러시아 소유즈 발사체에 탑재돼 발사되고 있다. 이미 1950년대 미국보다도 먼저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러시아(구소련)는 현재도 발사체와 관련해 매우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이 KAI 연구진들의 평이다. 한창헌 부문장은 “V-2로 대표되는 액체 로켓을 최초 개발한 독일 연구진을 2차대전 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이 확보했는데 미국은 이론가와 연구진에 집중한 반면 소련은 작업자 위주로 인력들을 확보했다”며 “실제 작업자들이 체화해 자기들 손으로 갖고 있던 노하우가 훨씬 더 실효성이 있었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개발한 러시아가 발사체와 관련해서는 현재도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발사체 분야에서 북한이 상당한 기술 수준을 보유하게 된 점도 이런 배경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발사체와 위성사업 부문을 담당하는 KAI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론이나 학문적으로는 서구권에 비해 뒤처졌을 수 있어도, 실제 발사 노하우를 지닌 기술자들을 대거 보유한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면서 꾸준한 발사 시험을 시행해 온 덕분이라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북한의 경우 러시아적인 체득화 과정을 거칠 기회가 많았던 만큼 발사체와 관련해서 그동안 쌓은 노하우가 현재는 폭발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에는 우주산업과 관련한 세계시장 역시 민간 주도로 바뀌면서 이 같은 추세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미국의 민간 우주업체 ‘스페이스X’의 등장 때문이다. KAI 역시 그간은 경제성과 성능 등을 감안해 러시아 소유즈 발사체를 써 왔는데, 차세대 중형위성 4호기부터는 스페이스X의 발사체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가격이 압도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대략적으로 기존 미국 업체의 가격을 100으로 봤을 때 러시아 업체 가격이 60~70원이었다면, 스페이스X 발사체는 다시 러시아 업체 가격의 60~70% 수준에 불과해 압도적 경제성을 갖췄다는 것이 KAI 측 설명이다.

KAI의 한 관계자는 “발사체의 가장 비싼 부분이 1단 발사체인데, 기존 업체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반면 스페이스X는 최대 열 번까지 재사용이 가능하다”며 “우리처럼 위성의 발사 비용을 걱정하는 입장에서는 우주로 나아가는 일종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소형위성 발사 비용이 줄어들면서 민간 영역의 우주산업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KAI의 한 관계자는 “발사체를 재사용한다는 개념은 미국 블루오리진에서 먼저 고안했는데, 실제로 이를 상업화에 먼저 적용해 성공시킨 건 스페이스X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러시아 측이 제작한 발사체는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에서 주로 쏘고, 스페이스X 발사체는 미국 플로리다 지역에서 쏜다.

구독 서비스 분야 진출 노려

KAI는 기존 위성 제작 납품 사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체 제작한 위성을 직접 운영해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의 사업 분야에도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단순히 위성만 납품하는 사업보다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업이 부가가치 창출 측면에서 훨씬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다른 산업 분야에서처럼 주변 협력업체들과의 ‘밸류체인(물류사슬)’까지 형성한다는 것이 현재 KAI 측의 복안이다.

이처럼 국내에서 우주산업 분야의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정부의 꾸준한 의지와 제도적 지원이 필수라는 것이 KAI 관계자들의 한목소리다. 위성을 포함한 우주산업 분야는 국내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인 만큼, 형식적인 경쟁보다는 집중적인 초반 투자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경남 사천시 종포산업단지에 있는 KAI 공장에서 발사체 연료 탱크 제작·운반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임감록 KAI 발사체생산팀장은 “누리호 3호기까지 예정된 연료 탱크와 산화제 탱크 제작이 모두 끝나 현재는 공장이 쉬는 상황”이라며 “아직까지 발주처가 국내에서는 정부에 한정된 만큼 국내 기술자들의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꾸준한 발주와 주문 제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 한창헌 KAI 미래사업부문장

“누리호 3단 로켓 연소 시간 아쉬워… 완성체 완성도 높여갈 것”

한창헌(52)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미래사업부문장은 지난 11월 16일 KAI 사천 본사 우주센터에서 주간조선과 만나 지난 10월 하순 발사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 발사 과정에 대해 “1·2단 로켓이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3단 페어링도 잘 분리가 되는 등 모든 기능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지만 3단 로켓의 연소 시간이 짧아 원하는 속도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연구 개발하고 KAI가 총조립을 수행한 누리호는 지난 10월 21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돼 700㎞ 상공에 도달했지만 고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추락했다. KAI는 누리호의 1단 발사체 부분에 있는 연료 탱크와 산화제 탱크를 직접 제작했고, 한화 등 협력업체들이 제작한 엔진 등 300여개의 부품을 총조립하는 마지막 과정을 수행했다. 사실상 누리호 제작의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이다.

한 부문장은 KAI의 위성·우주사업에 대해 “KAI가 그동안 잘해왔고 또 잘하는 일은 완성체를 완성체답게 만들고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라며 “협력업체들이 좋은 부품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면 KAI는 완성체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위성 서비스 분야에서 더욱 경제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절한 소재와 부품을 개발하고 공정 설계를 효율화하는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점검과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 한 부문장의 설명이다. 한 부문장은 “아직까지 국내 우주산업은 걸음마 단계인 만큼 KAI는 기술 개발과 함께 산업화를 위한 전반적인 효율화를 꾸준히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1969년생인 한 부문장은 현재 KAI의 미래사업부 부문장을 맡아 위성·우주사업 분야를 총괄 지휘하고 있다.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에서 학부와 석·박사를 모두 마친 항공우주 분야의 전문가다. 1999년 선임연구원으로 KAI에서 업무를 시작했고 회전익 분야인 LAH(소형무장헬기), LCH(소형민수헬기) 사업기획팀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 2019년 상무보로 승진하면서 개발사업관리실장을 맡았고 올해부터는 부문장을 맡고 있다. 현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위성통신포럼 산업분과위원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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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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