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합친 말로 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20~30대를 아우르는 말
 ⓒ일러스트 허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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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최근 들어 브랜드 이미지를 ‘친환경’으로 굳혀가는 중이다.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 빨대를 쓰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개인용 컵인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주기도 한다. 문제는 이 ‘텀블러’에 있다. 고객들이 개인용 컵을 마련해 매장을 방문하라는 뜻에서 스타벅스에서는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텀블러를 판매하는데, 때마다 그 디자인이 바뀐다. 스타벅스 브랜드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은 이 텀블러를 디자인이 바뀔 때마다 구입하곤 한다. 환경을 고려해 오래 쓰라고 만들어진 텀블러가 자주 구입하고 버리는 소비재로 탈바꿈한 것이다.

대개 MZ세대인 스타벅스 매니아에게 텀블러는 더 이상 친환경적이지 않다. 친환경 가치를 좇으면서도 반친환경 행동을 보이는 모순적인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모순을 설명하려면 우선 MZ세대가 염세주의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학습된 염세주의

요즘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용어 중 하나가 ‘착한 소비’다. 착한 소비란 환경과 이웃, 지역사회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소비를 말한다. 친환경 공법으로 키워진 애호박을 산다거나 대형마트가 아닌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 장애인 고용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나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것 등이 모두 착한 소비에 속한다. 여론조사 전문기업 한국리서치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실제로 착한 소비가 이뤄지고 있는지, 누가 착한 소비를 하는지 등을 조사해봤는데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MZ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착한 소비에 관심이 없다.

대개 MZ세대는 조금 더 진보적인 세대로 여겨진다. 친환경·공정무역 같은 사회적 가치에 조금 더 관심이 있을 것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조사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2020년 9월 실시한 한국리서치의 조사 결과에서 “의도적으로 착한 소비를 해본 적 없다”고 대답한 MZ세대는 19~21%로 다른 세대에 비해 훨씬 많았다. 트렌드모니터의 조사에서는 ‘착한 소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MZ세대는 75%를 조금 넘었다. 40대 이상이 80% 넘게 그렇다고 응답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건 미래에 대한 MZ세대의 인식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를 알기 위해서는 MZ세대의 학창 시절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MZ세대의 시작은 ‘이해찬 세대’라는 별칭에서 시작한다. 1998년 교육부 장관에 임명된 이해찬은 “특기 하나만 있어도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선언하며 교육 현장부터 대학입시제도까지 교육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만 말하자면 이해찬 세대의 수능 성적표에는 원점수 대신 영역별 표준점수가 도입되고 등급이 표기되었다. 의도는 수능을 자격시험화하자는 것이었는데, 결코 자격시험이 될 수 없는 큰 규모의 수능시험과 ‘수시제도’가 뒤섞여 대입 현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나의 노력과 ‘결과’는 별개

혼란은 매년 가중됐다. 아예 수능 성적표에 점수 대신 등급만 표기되었다가 다음해에 폐지되기도 하고, 면접과 논술전형이 강화되었다가 축소되기도 했다. 또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었다가 축소된 적도 있고 학생부종합전형이 등장했다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선택형 수능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일관성 없는 대학입시 정책은 단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혼란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었다. 혼란한 학창 시절은 MZ세대의 삶 전반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

MZ세대가 가장 자주 느낀 감정 중 하나는 불안감, 무력감이다. 이 감정들은 불확실성에서 오는데, MZ세대는 해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며 살아왔다.

만약 이 과정에서 나의 ‘노력’이 확실히 결실을 맺는 경험을 했다면 MZ세대의 감정은 조금 더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MZ세대는 입시가 다가올수록 결과를 확실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8년 펴낸 보고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방안 연구’를 보면 한 개인이 평생 동안 노력했을 때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한 MZ세대는 57%를 웃돌았다. 최소한 둘 중의 한 명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크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 생각은 MZ세대를 염세주의자로 만들었다. MZ세대 염세주의자들은 미래와 현재 사회를 보는 시선이 모두 비관적이고 비판적이다. 서울연구원에서 펴낸 책 ‘서울의 미래세대’를 보면 MZ세대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는데, 그 차이는 알려진 것처럼 계층이나 지역에 달린 것이 아니다. 강남에 살든, 강북에 살든, 대학을 졸업했건 월급이 더 많건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신 차이는 좀 더 내부적인 문제에 달려 있었다. 청년들의 꿈은 좌절감이나 자신감 같은 것에 달려 있었다.

이 좌절감과 자신감은 개인적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계층이동 가능성, 기회불평등 인식 등과 관련이 있었다. 계층이동 가능성을 높게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계층이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기회불평등 인식은 단지 좋은 ‘배경’을 통해 더 좋은 기회를 얻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다.

말하자면 MZ세대의 염세주의는 경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미래에 대해 진보적인 낙관을 하는 대신 불합리와 불확실성을 먼저 인식하는 염세주의자가 된 것이다.

체념하는 MZ세대

경험적으로 학습된 염세주의자들은 노력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 그리고 하나 더, 쉽게 포기한다. ‘또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을 확신처럼 가질 때가 많다. 실패가 반복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을 한 예로 들어보자.

한국리서치에서 지난 9월 실시한 불매운동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불매운동이 기업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 긍정하는 MZ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수가 적었다. 특히 Z세대의 경우 유독 비관적인 인식을 드러냈는데 열 명 중 서너 명은 불매운동이 별다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은 지속적이지 못하다. 최근 들어 가장 강하게 일어났던 일본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 이른바 ‘노재팬’ 운동도 시간이 지나면서 동력이 약해졌다. 한국리서치의 조사를 보면 막 노재팬 운동이 시작되었던 2019년 8월만 하더라도 83%의 사람이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2021년에는 57%로 크게 떨어졌다. 특히 감소폭은 MZ세대에서 컸다. MZ세대의 20%가 넘는 사람이 불매운동을 철회한 것이다.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은 그보다 더 쉽게 실패한다.

쿠팡의 노동환경이 사회문제가 되었던 2021년 여름, 쿠팡에 대한 불매운동 여론이 형성되었지만 별다른 사회적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빅데이터 업체 모바일인덱스에서 지난 6월과 7월에 걸쳐 쿠팡 앱의 이용자 수를 조사한 바를 보면 이용자 수는 불매운동 여론이 형성된 직후 조금 떨어졌지만 이후 금세 이전의 기세를 회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매운동이 계속 실패하는 것을 본 소비자들이라면 행동에 나서는 것을 주저한다.

특히 MZ세대는 개인적으로도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수십 장의 이력서를 제출해본 적 있는 MZ세대라면 나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보는 것을 포기하면서 MZ세대는 ‘탓’을 한다.

MZ세대 염세주의자의 가장 큰 특징은 구조를 탓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노력이 잘 먹히지 않는 이유도, 실패가 반복되는 이유도 구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조성된 사회문제 때문에 결과적으로 개인이 실패한다는 것이 염세주의자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MZ세대 염세주의자가 ‘가치’에 무관심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염세주의자는 가치를 좇는 행동이 실패할 것이라 쉽게 포기할 뿐, 가치 자체의 중요성은 인정한다. 환경문제를 예로 들자면,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재활용 분리수거에 힘을 쏟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염세주의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이 과연 진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다.

착한 소비에 대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지난해 7월 조사 결과를 보면 ‘착한 소비 활동의 수혜자가 있을지 의심이 든다’고 생각하는 MZ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확실히 많았다. 40대 이상에서는 절반 이하의 사람들이 의심을 하는 반면, MZ세대는 60% 가까운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MZ세대 염세주의자는 착한 소비를 할 필요를 덜 느끼는 것이다. 착한 소비가 과연 세상을 바꿀 것인가부터 누가 착한 소비의 수혜자가 될 것인지 사회의 구조를 의심하는 것까지, MZ세대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소비를 통해 실현하는 가치

하지만 아무리 MZ세대가 염세적이라고 해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삶을 노력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맞추지 않을 뿐이다. 노력해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노력은 잠시의 위안으로만 존재한다.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그게 지속적이지는 않다는 얘기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반복해 사는 MZ세대의 소비행동을 이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텀블러를 사용함으로써 친환경이라는 목표에 참여하고는 싶지만, 단 하나의 텀블러를 가지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과연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럴 바에는 그때그때 친환경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텀블러를 반복해 구입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MZ세대는 종종 소비활동같이 실제 노력을 대체할 수 있는 행동을 통해 가치를 실현하려고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후원하는 업체의 물품을 구입하거나 독립운동가 가족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펀딩에 참여하는 식이다. 그건 실제 삶에 영향을 줘 좌절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할 위험이 없다.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에 줄곧 신경을 써야 할 필요도 없다. 염세주의자에게는 꼭 맞는 실천 방법인 것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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