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쪽 앵글에서 찍은 백두산 정상 칼데라호 천지. 백두산은 엄청난 폭발 잠재력과 함께 여타 화산과는 구별되는, 어딘지 모르게 신비롭고 차분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License, Laika ac 작품,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aika_ac_Mt._Paekdu_(7998657081).jpg
중국 쪽 앵글에서 찍은 백두산 정상 칼데라호 천지. 백두산은 엄청난 폭발 잠재력과 함께 여타 화산과는 구별되는, 어딘지 모르게 신비롭고 차분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License, Laika ac 작품,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aika_ac_Mt._Paekdu_(7998657081).jpg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이라고 불려 왔다. 해발 2750미터로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자 한반도의 지붕과도 같은 위치에 놓여 있다는, 물리적으로 압도하는 팩트가 있다. 그 외에도 백두산은 뭔가 영적으로 높은 기운의 상징처럼 우리 조상들에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전 문헌들에서 백두산은 인자하고 영험한 산신령처럼 긍정적인 이미지로 나온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매사에 부정적인 측면을 파헤치는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백두산에 대해서도, 요즘은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온통 부정적인 담론들이 무성하다. 백두산 대폭발 가능성에 대한 담론들이다.

사실 21세기에 들어 백두산은 그동안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거대 활화산으로서의 면모를 적잖이 보여줬다. 특히 2002년 후반부터 2005년 초까지, 백두산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보였다.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 인근 일대에 빈발했던 크고 작은 지진들, 뜨거운 지표면…. 심지어 온천수의 온도가 1990년대에 비해 15도 정도나 증가하기도 했다.

마침 불량국가 북한와 두 자릿수 경제성장을 보이며 달리는 중국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져 가던 때라, 백두산은 일약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무엇보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백두산이 엄청난 폭발성 분화를 했었고, 그것이 역사기록이 남기 시작한 시대에 일어난 화산 폭발로서는 거의 최대 규모에 해당된다는 사실이 재조명됐다. 세계의 지질학자들은 이 폭발에 ‘밀레니엄 대폭발’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서기 946년, 그러니까 그 천 년이 끝날 무렵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엔 거의 무관심의 영역에 있었던 한국, 일본, 중국의 백두산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대중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들은 매스컴을 통해 살짝 비틀리고 확대돼서 한층 더 극적인 긴장감이 조성됐다. 제작비를 많이 들인 재난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백두산은 마치 천 년 이상 잠들어 있다가 떨치며 깨어나는, 어마어마한 괴력의 파괴자인 것처럼 묘사됐다.

(왼쪽)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백두산은 증기를 내뿜고 지진이 일어나는 등 폭발 전조 현상을 뚜렷이 보였다. (오른쪽) 1999년부터 2014년까지 백두산 지진 발생 현황.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심각했고, 이후 잠잠해졌다. 자료 출처: (왼쪽) 픽셀 무료 이미지 (오른쪽) 부산대학교 윤성효 교수 제공 중국 국가지진국 자료 문자 부분 한글 번역.
(왼쪽)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백두산은 증기를 내뿜고 지진이 일어나는 등 폭발 전조 현상을 뚜렷이 보였다. (오른쪽) 1999년부터 2014년까지 백두산 지진 발생 현황.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심각했고, 이후 잠잠해졌다. 자료 출처: (왼쪽) 픽셀 무료 이미지 (오른쪽) 부산대학교 윤성효 교수 제공 중국 국가지진국 자료 문자 부분 한글 번역.

그런 백두산의 분화 전조 활동은 2005년 초가 지나자 갑자기 잠잠해졌다. 이후 2010년쯤, 그리고 2019년쯤 다시 살짝 고개를 들긴 했지만 역시 별 일 없이 지나가버렸다. 백두산은 왜 그랬던 걸까?

극히 최근까지도 백두산은 제대로 이해되기 어려운 조건을 여러 모로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세계의 다른 화산에 비해서 워낙 독특하다. 지금까지 화산 관련 과학이 밝힌 어떤 화산 유형의 특징과도 다른 성격을 보인다. 그러니까 백두산을 이해하려면 직접 가서 살펴봐야 할 텐데, 중국과 북한 사이에 있다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현지 연구가 어려웠다.

중국 쪽 백두산에 관한 현지 연구는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후인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부터 서서히 늘어가기 시작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다음인 2013년, 서구의 과학자들을 불러들여 북한 쪽 전문가와 함께 합동 연구팀을 꾸려 본격적인 연구를 하도록 밀어주었다.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전체에서 백두산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늘어났고 관련 연구도 많이 나왔다. 2019년엔 북한에 들어갔던 합동 연구팀이 최종 보고서를 냈고, 그 중 일부가 ‘네이쳐’(Nature)를 비롯한 서구의 학술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 Deep Dive에 소개된 서구‧북한 전문가 합동연구팀 대표 화산학자들의 사진. 양 끝의 북한 학자의 이름은 불명이며,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영국 화산학자 클라이브 오펜하이머, 세 번째가 미국 화산학자 케일라 야코비노라고 써있다. 출처: 유튜브 딥 다이브 채널 캡쳐, https://www.youtube.com/watch?v=3C2HVOB-g5s
유튜브 채널 Deep Dive에 소개된 서구‧북한 전문가 합동연구팀 대표 화산학자들의 사진. 양 끝의 북한 학자의 이름은 불명이며,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영국 화산학자 클라이브 오펜하이머, 세 번째가 미국 화산학자 케일라 야코비노라고 써있다. 출처: 유튜브 딥 다이브 채널 캡쳐, https://www.youtube.com/watch?v=3C2HVOB-g5s

그래서 2020년대에 사는 우리는, 이런 첨단 정보들을 잘 규합해서 냉철하게 분석하기만 한다면 백두산에 대해 상당히 잘 이해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 백두산이 갖는 무시무시한 파괴자로서의 면모 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영험한 기운을 제공하는 산신령 같은 존재로서의 면모까지, 다 어떤 과학적 팩트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가야 이야기를 하다가 한반도 국가들이 얼마나 풍요로운 국가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백두산 이야기로 접어들게 됐다. 이유가 있다. 그렇게 밝혀진 백두산의 면모 중 긍정적인 측면에 관한 사실들이, 한반도가 전체적으로 과거에 대단히 풍요로웠고, 따라서 부강국이었을 가능성에 대한 근거도 되기 때문이다. 1200년 전 백두산 밀레니엄 대폭발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가야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였는지 얘기를 하다 보면, 불신의 시선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우리 조상들이 굶주리고 억압당하면서 살았다는 거 다 알고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듯한 눈길이다. 우리나라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행동 자체를 마약 주사를 맞는 것 같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폄하하는 표현도 있는 상황이니, 그런 시선도 충분히 나올 만하다.

얘기가 나온 김에, 왜 한반도의 과거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나오게 되는지, 그 이유를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야 가야에 대한 이야기를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연재는 한반도가 지구상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과학적 근거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고구려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고 가야사로 들어왔다. 모두 잘 나가던 나라들이다. 그보다 더 이전 고조선 때부터, 아니 그보다 더 이전인 요하문명 때부터, 한반도 국가들은 풍요로운 부강국이었다. 사실 이 땅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던 때부터 그랬을 테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여러 가지 있다. 여기에 백두산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연구들을 잘 읽어서 종합해보면, 놀라운 증거들이 더해진다. 백두산 및 그것을 생성한 인근 일대의 심층 생태계적 특성들이 한반도를 특별히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기본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음 회차부터 맥락에 따라 좀 더 자세한 얘기를 할 계획이다.

대규모의 화산 폭발은 환경에 크나큰 영향을 주어 기후변화와 지형지물의 변화를 초래한다. 오른쪽은 화산 폭발이 주변환경에 미치는 거시적 변화를 보여주는데, 최근에는 이보다 더 거시적인 환경인 지구 외부 우주구조에서의 변화가 화산 폭발에 직접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자료 출처: (왼쪽) Creative Commons License, Greg Willis 작품, https://covenantcompanion.com/2018/06/08/donations-being-accepted-for-guatemalan-volcano-survivors/ (오른쪽) Wikimedia Commons License, USGS 작품에서 문자 부분 번역,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Volcanoes_Can_Affect_Climate.png
대규모의 화산 폭발은 환경에 크나큰 영향을 주어 기후변화와 지형지물의 변화를 초래한다. 오른쪽은 화산 폭발이 주변환경에 미치는 거시적 변화를 보여주는데, 최근에는 이보다 더 거시적인 환경인 지구 외부 우주구조에서의 변화가 화산 폭발에 직접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자료 출처: (왼쪽) Creative Commons License, Greg Willis 작품, https://covenantcompanion.com/2018/06/08/donations-being-accepted-for-guatemalan-volcano-survivors/ (오른쪽) Wikimedia Commons License, USGS 작품에서 문자 부분 번역,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Volcanoes_Can_Affect_Climate.png

하지만 백두산도 자연생태계의 일부이고, 자연은 끊임없이 변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리투스가 통찰했듯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백두산 역시, 굳건하게 서 있는 그 외관의 이면에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연의 순환과 변화가 작용하고 있다. 또 그 변화는 지구 및 우주의 전체적인 변화와 맞물려 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폭발도 하는 것이다. 지금도 소소한 폭발은 불거져 나오고 있는 중인데,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을 주기로 주변 일대에서 충분히 눈에 띌 정도로 큰 폭발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세계의 지질학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1200년 전의 밀레니엄 대폭발, 즉 폼페이를 한 순간에 멸망시킨 것보다 수십 배 크며, 2010년 유럽 전체 공항을 마비시켰던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 화산의 100배가 넘는 규모의 폭발 같은 것은 자주 있는 게 아니다. 백두산 바로 밑에 엄청난 크기의 마그마 방이 존재해서 언제든지 마그마가 올라올 수 있지만, 백두산의 마그마는 점성이 커서 올라오면서 굳어져서 대폭발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연구된 백두산 분화 역사를 보면, 그 정도의 폭발은 약 8만 년에서 10만 년을 주기로 일어났다. 그러니까 앞으로 그 정도 큰 폭발이 있으려면 최소한 지금으로부터 8만 년 후의 일일 테다.

그런 폭발은 폭발 직후엔 엄청난 파괴를 몰고 오며 기존 질서를 흔들어 놓는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한반도를 부강국으로 만들어주는 조건을 두고두고 키워준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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