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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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일본 전문가와 기관들의 목록을 총정리한 책이 출간됐다. 제목은 ‘재팬워처-누가 일본을 보고 있는가’(도서출판 월인).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가 전례없이 경색된 가운데 나온 이 책은 국내외 일본 연구자 8363명의 이름과 직책을 비롯 최신 연구동향을 빼곡히 수록하고 있다. 한·일 관계 악화로 일본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시들해지며 외교가의 ‘재팬스쿨’마저 찬밥이 된 와중에 귀중한 정보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팬워처’를 펴낸 사람은 심규선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동아일보 도쿄특파원을 지내고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 대기자를 지낸 저자는 일본 게이오대 방문연구원,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초빙교수, 화해·치유재단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 등을 거쳤다. 지금도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 한·일포럼 운영위원, 세토(SETO)포럼 이사로 있으며 일본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2월 14일 서울 광화문의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저자는 “문재인 정부의 대일(對日)정책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실패”라면서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한·일 관계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일 관계를 회복시킬 의무가 있다”며 한·일 관계 현안에 대해 막힘 없이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책을 펴낸 계기는. “1998년 일본 게이오대 방문연구원으로 처음 일본과 인연을 맺었다. 도쿄특파원을 지낸 다음에도 운 좋게 정치부장, 논설실장, 편집국장, 대기자 등을 지내면서 일본을 계속 쳐다보고 공부할 수 있었다. 자연히 기자로서 한국에서 일본 문제를 다루는 사람이 과연 누구고 얼마나 많을까, 누가 가장 영향력이 강할까 같은 궁금증을 갖게 됐다.”

- 수록된 인명만 8363명에 달한다. “책을 다 쓰고 정리해보니 8000여명이 넘더라. 동명이인도 많고, 외국 사람도 많다. 사람은 자기 이름을 가장 중시하지 않나. 실수가 있으면 자칫 망신당할 수도 있겠더라. 책의 신뢰도를 위해 3~4개월가량 인명록을 정리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이의제기가 없다.”

-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을 총평하자면.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실패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 넘게 강경한 태도를 취해오다가 올해 1월에 말을 바꾸지 않았나.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합의는 공식적인 합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곤혹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식의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 가져왔던 입장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 한·일 관계 악화에 일본 측 책임은 없나. “왜 없겠나. 당연히 있다. 그러나 양국 간에는 지금 상대방을 비난해서 변화를 이끌어낼 만큼의 신뢰가 남아 있지 않다. 때문에 일본의 문제는 일본이 먼저 자각해서 고치라는 것이다. 일본이 변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전과 이후가 분명하게 갈린다. 그전까지는 한국이 일본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면 일본의 태도는 ‘또 그 얘기인가. 그렇지만 들어는 봐야지’라는 것이었다. 독도 방문 이후는 ‘또 그 얘기인가. 이제 그만해’로 바뀌었다. 아베든 기시다든 일본도 정치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났다. 나는 이를 ‘일본에도 국민이 있었다’고 표현한다. 이제는 일본 국민들이 ‘한국에 대해 저자세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치인들도 그것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 MB의 독도 방문이 그 정도로 충격적인가. “일본 내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에 대해 호의적 비율이 가장 높았던 것이 2011년이다. 가장 나빴던 해가 2012년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회복이 안 된다. 기시다 후미오 정권이든 다음 정권이든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북한 문제라든지 중국, 미국과 관계 등을 종합했을 때 한·일이 등을 돌리는 것이 옳다고 그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결단과 설득이 필요하다.”

- 역대 대통령 중 결단과 설득이 돋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박정희, 김대중, 박근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까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합의했다. 지금 와서 그것이 해서는 안 될 합의였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 문화개방을 단행했다. 당시 99%가 반대했지만 당시 개방으로 ‘메기’가 들어오면서 우리 문화경쟁력이 더 강해졌다. 한류(韓流)의 연원을 당시 개방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위안부 합의도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했다. 욕먹을 각오를 하면서 했던 세 번의 결정이다. 나머지 대통령은 폭탄돌리기를 했을 뿐이다.”

- 위안부 합의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의미가 퇴색했다. “묘한 것이 이 정부 사람들은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 적 없다’고 주장한다. 2017년 12월 위안부 태스크포스가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지키지 못해 잘못된 합의’라고 했다. 그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도 ‘내용으로든 형식으로든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위안부 합의의 핵심인 ‘화해·치유재단’도 없앴다. 실질적으로 파기했기 때문에 다시 원위치하려면 말장난은 그만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 위안부 등 한·일 간 현안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위안부, 강제징용,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수출규제 네 가지가 현안이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은 과거사 문제고,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는 그것에서 파생한 오늘날 문제다. 네 가지를 각자 해결해서는 안 된다. 통으로 가야 한다. 가령 수출규제를 철회하면 지소미아는 연장하는 식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우리한테 유리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주고받기 식 ‘패키지 딜’로 할 수밖에 없다. 위안부 합의는 다행히 우리 정부가 ‘파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니, 그것을 발판 삼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나.”

- 강제징용 문제는 대법원 판결까지 겹쳐 더 복잡하다. “결국 ‘문희상안(案)’으로 귀결될 것이다. 한·일 양국 기업, 한국과 일본 정부 지원금, 뜻 있는 사람들의 기부금, 이런 것들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 돈을 받은 사람은 제소를 하지 않고, 소송 중인 피해자도 화해한 것으로 간주해 소를 취하하는 것이다. 양국 기업과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 대위변제라는 말도 나온다. 일본 기업이 줘야 할 돈을 한국 정부가 먼저 주고, 한국 정부가 구상권을 행사하는 식이다.”

- 일본 기업들이 동의하겠나. “한·일 정부가 해결방안에 합의하면 일본 기업은 무조건 들어온다. 일본 기업이 사실 정부 눈치를 많이 본다. 다른 방법이 뭐가 있나. 불가능한 최선보다는 가능한 차선이 낫다.”

- 대선을 앞두고 지난 대선 때처럼 반일감정이 고조되지 않을까. “반일프레임은 이번 대선에서 별로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한·일 관계 전문가가 아니지만 한·일 관계를 회복시킬 의무가 있다. 정부를 물려받는 것은 책임까지 물려받는 것이다. 참모들이 빠른 시일 내에 한·일 관계가 악화된 이유를 설명하고, 한·일 관계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을 설명해야 한다.”

- 새 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 회복 시기를 점친다면. “새 대통령이 내년 5월에 취임한다.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일본은 7월에 참의원 선거가 있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본격 탐색하는 관계가 될 것이다. 가능하면 그전이라도 물밑접촉을 해야 한다. 대통령과 총리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8월 이후로 하되, 내년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대통령과 총리가 나선다고 해도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상황이 워낙 안 좋으니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합의만 해도 좋은 시그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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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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