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군과 예산군에 걸쳐 자리한 내포신도시는 2020년 10월 혁신도시로 지정됐다. ⓒphoto 충남도청
충남 홍성군과 예산군에 걸쳐 자리한 내포신도시는 2020년 10월 혁신도시로 지정됐다. ⓒphoto 충남도청

지난 12월 22일, 당진~영덕고속도로 감덕IC를 빠져나와 내포신도시 방향으로 향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만나는 40번 국도는 확장 공사로 분주하다. 창문을 열면 맡을 수 있는 매캐한 아스팔트 냄새는 이 일대가 발전과 확장에 몸부림치고 있다는 증거다.

도로 위 기계들이 바쁘게 오가는 지점을 지나쳐 너른 삽교 평야를 지나면 아파트 건설을 위해 서 있는 크레인들을 보게 된다. 수도권의 신도시처럼 정방형으로 뻗은 도로, 이미 들어선 아파트와 들어설 아파트 단지, 대로 건너편에 자리한 빌라촌, 그리고 상가 건물들의 밀집 지역은 수도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한 신도시의 모양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뒤 10㎞ 정도를 달려 만난 이곳이 내포신도시다. 대전 시대를 마감한 충남도청이 2012년부터 도청소재지로 삼은 곳이다.

내포신도시는 충청남도 홍성군과 예산군의 경계 위에 만들어졌다. 홍성군 홍북읍과 예산군 삽교읍 일원 995만㎡에 도시가 들어섰다. 개발 면적의 63%는 홍성군에, 37%는 예산군에 속한다. 지금 공사가 진행 중인 예산군 쪽보다는 일찍부터 개발을 시작했던 홍성군 쪽이 좀 더 번듯한 모양을 띤다. 신도시 건설 초기에는 충남개발공사에서 홍성군에 위치한 남(南)내포 지역만 1단계 사업지구로 선정하면서 예산군 쪽인 북(北)내포 지역과 개발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졌다. 홍북읍에 자리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초반에 남내포와 북내포의 인구 비율이 100 대 1까지 벌어져서 예산군의회 의원이 시위를 하는 일까지 있었다. 지금은 예산 쪽 지구에서도 아파트를 많이 올리고 있는데 여전히 인구비가 9 대 1 정도로 홍성 쪽이 개발 중심이다”라고 알려줬다.

‘신도시’가 아닌 ‘빈 도시’

지금은 도청 외에 충남교육청, 충남지방경찰청 등 대전에 있던 공공기관이 이곳으로 옮겨와 이미 자리를 잡았다. 이제 막 태동한 것처럼 보이는 이 도시는 현대식으로 잘빠진 도청 건물과 좀처럼 보기 힘든 대규모 공원, 스마트한 모습을 갖춘 충남도서관 등을 갖추며 잘 정돈돼 있지만 아직 듬성듬성한 모양새다. 구획 정리는 어느 정도 됐지만 수년째 빈 땅으로 방치된 곳이 적지 않다.

충남도청 앞을 중심으로 밀집한 상가 건물은 1층이 그나마 상황이 낫다. 2층부터는 공실로 남겨진 곳이 부지기수다. ‘신도시’가 아니라 ‘빈 도시’라는 얘기가 빈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포신도시는 이미 좀 더 촘촘하고 빽빽하며 번잡해야 했다. 2009년 6월 처음 부지조성을 시작했고 2020년 인구 10만의 자족도시를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2020년 12월 도달한 인구는 2만8000명 정도다. 목표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사실상 성공하지 못한 신도시가 됐다.

정주인구 부족은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내포신도시 주변에는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원래 신도시 주변에는 자족을 위해 ‘일자리 클러스트’를 조성하기 마련이다. 지난 12월 15일에는 진입도로도 개통했다. 양승조 충남지사가 직접 참석해 테이프를 끊었다. 정주인구 부족은 하나의 도시가 자족하는 데 있어서 만난 암초다. 홍성군 관계자는 “정주인구가 부족하면 산업단지에서 일할 일손이 부족해진다. 현지에서 어느 정도 구인이 되지 않는다면 외지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 하는데 주거비나 교통비 등이 추가로 들고 임금도 더 지불해야 한다. 산업단지를 분양받은 업체들, 특히 수도권에서 내려온 곳들은 이런 부분에서 난색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최근에는 희소식이 있었다. 일단 빈 땅을 채우는 새로운 공사들이 시작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금 내포신도시 거리 곳곳에는 수십 개의 ‘경축’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신도시에 속한 대부분의 민관 단체들은 ‘삽교역 신설’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도로변에 내걸었다. 충남 내포신도시의 고속철도 관문인 ‘삽교역’은 2025년 문을 연다. 삽교역은 지난 7월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서해 고속철(KTX)’이 반영되면서 여객 수요 증가 요인이 발생해 건설이 확정됐다. 여기에는 내포신도시가 지난 10월 12번째 혁신도시로 지정된 게 중요한 동인이 됐다.

정책 후퇴로 혁신도시 전략 올스톱

혁신도시는 국가 균형발전의 상징적 정책으로 꼽힌다. 폭발 걱정을 하는 수도권과 반대로 지방은 소멸을 걱정한다. 2019년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는 전체 인구 중 과반이 됐다. 역내총생산(GRDP)은 1000조원을 넘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중에서도 51.9%를 차지한다.

거꾸로 비수도권 지역은 사라짐을 걱정해야 한다. 그걸 막기 위해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지역발전 사업에 쓸 국가 예산을 따로 편성하기 위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생겼다. 그렇게 사용한 균형발전예산은 2005년 5조4000억원을 시작으로 점점 증가해 약 144조원을 누적 지출했다. 정주인구 증가를 위해 필수적인 일자리는 공공기관으로 해결했다. 지방 일자리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했다. 2020년까지 지방으로 내려간 153개 기관 중 112개가 2007년 지정됐던 전국 10개 혁신도시에 먼저 자리했다.

늦게나마 새롭게 혁신도시 대열에 합류한 내포신도시는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122개 공기업 및 공공기관의 추가 이전을 기대했다. 공공기관의 이전은 외부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기회다. 충남도·홍성군·예산군은 사활을 걸고 공공기관 맞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족할 수 있는 계기이자 인구를 늘릴 수 있는 동력으로 봤다.

“무조건 오라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이동할 수 있다. 결혼 준비를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홍성을 지역구로 둔 조승만 충남도의원은 내포신도시에 공공기관이 내려오도록 하기 위해 준비했던 과정을 직접 참여해 지켜봤다. 공공기관 리스트를 짜고 그중 내포신도시에 들어올 만한 곳 20개를 목표로 삼았다. 그는 “이게 선택과 집중, 그리고 물밑 접촉이 필요하다. 20개 기업을 목표로 했지만 실질적으로 올 수 있는 것은 한 12~13개 정도로 봤다. 겉으로 드러내면 타 시도와 경쟁이 붙을 수 있으니 아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추진해야 할 문제였다”라고 말했다.

의욕 넘치던 내포신도시의 전략은 현재 모든 게 멈추었다. 정부가 지방이전 공약을 스스로 폐기하는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기류가 달라졌다는 추측성 이야기는 이미 흘러나오고 있다. 임기 말 반발 혹은 저항이 있을지 모를 공공기관 이전을 하기에는 동력이 부족하다는 점,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이 대규모로 이전할 경우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부담이 커진다는 점, 유치 경쟁이 격화되면서 혁신도시에서도 반감이 생길 수 있다는 점,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인데, 이런 전망을 현실로 못 박은 건 김부겸 국무총리였다. “다음 정부가 오면 딱 넘겨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그의 ‘임기 내 공약이행 불가’를 외친 발언은 확인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앞선 10개 혁신도시는 이미 배정받은 공공기관이 있지만 새롭게 추가된 내포신도시는 혁신도시라는 이름만 얻었을 뿐, 얻은 게 없다.

“정부의 얄팍한 셈법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충남도의원은 “지역 여론이 부글부글한다”라며 정부의 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충남도 관계자는 “2차 공공기관 이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전 여부 확정이 지연되니까 유치 작업도 제대로 못 하고 멈춰 섰다. 허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원도심 인구 빨아들이는 아이러니

혁신도시와 공공기관의 이전은 소멸을 걱정하는 지방에 그나마 손에 잡히는 대안이다. 내포신도시를 일부 품은 예산군도 이미 소멸 위험을 안고 있다. 지난 10월 18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소멸위기를 맞고 있는 충남 지자체는 9곳인데 이곳들의 인구 총합은 10년 새 약 10%가 줄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산군도 포함돼 있다. 내포신도시를 품은 삽교읍만 내포신도시 영향으로 2111명 늘었을 뿐, 나머지 11개 읍면은 모두 감소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혁신도시와 공공기관 이전이라는 해법의 효과다. 오용준 충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포신도시를 두고 이렇게 조언한다. “1기 혁신도시 성과를 평가해 보면 공공기관을 유치하더라도 기업유치 실적은 그리 탐탁지 않았다. 공공기관이 내려오더라도 그 도시의 정주환경이나 일자리 등에 따라 가족이 모두 내려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공기관이 유치되어도 혁신도시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경우는 드문 상황이다.”

혁신도시가 만능키가 아니란 것은 실증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내포신도시보다 먼저 혁신도시가 된 10곳 가운데 당초의 계획인구를 달성한 곳은 단 두 곳에 불과하다. 대부분 정주인구가 부족한 상황이라 2차 공공기관 이전이 전국 곳곳에 ‘혁신도시’가 아닌 ‘유령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윤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은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효과 및 정책 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2021년 6월 기준 계획인구 목표에 달성한 혁신도시는 부산·전북뿐”이라고 밝혔다. 특히 같은 충청권인 충북 혁신도시(진천·음성)의 경우 계획인구 달성률은 80%를 밑돌았고, 가족동반 이주율은 혁신도시 중 유일하게 40%대에 그쳤다.

실제로 공공기관 이주 초반인 2014~ 2015년에는 수도권으로부터 혁신도시로의 인구유입은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2016년 이후에는 유입인구가 감소하고 2018년에는 반대로 인구가 순유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인구유입 효과가 제한적인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 건 민간 일자리의 부재다. 공공기관이 옮겨오면서 혁신도시 내 제조업과 지역서비스업 고용은 증가했지만 지식기반산업 고용 창출은 확인되지 않았다.

혁신도시는 지역사회에서 인구증가를 낙관하게 만드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빨대효과를 발휘하며 주변 면 단위 공동화를 가속시킬 수 있는 ‘동전의 양면’이다. 예산군과 달리 홍성군은 소멸위험 지역이 아니다. 홍성군도 1965년을 정점으로 40년 이상 인구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2011년 9만명 아래로 떨어졌던 홍성군의 인구는 2020년 10만102명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 결과는 내포신도시에 포함되는 홍북읍이 주도하고 있다.

도청 이전 전인 2011년, 5000명에 미치지 못했던 홍북읍의 인구는 현재 3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내포신도시의 인구유입을 살펴보면 홍성군과 예산군 등 인근 지역에서 유입된 비율이 높다. 내포신도시 인구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홍북읍의 인구증가는 홍성군 내 홍성읍과 광천읍의 인구감소와 맞물려 돌아가기에 ‘아랫돌 빼내 윗돌 괴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수도권’이라는 블랙홀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혁신도시가 자기 주변 원도심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는 건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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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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