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경기도 오산시 한국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경기도 오산시 한국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인 ‘위드코로나’가 시작된 지 50일 남짓 만에 위기를 맞았다.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7000명을 넘는 초유의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기존의 방역 자원이 거의 포화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보건소 선별진료소 앞마다 줄이 늘어선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결국 정부에서는 다시금 거리두기를 강화했고 영업시간 제한과 함께 사적 모임 인원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는 비난의 여지가 있겠지만 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일이다.

위드코로나와 관련한 정책 혼란으로 자영업자들 역시 큰 피해를 보게 됐지만, 더 큰 문제는 실제로 사람이 많이 사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1월부터 2021년 10월 31일까지의 사망자 수는 2849명이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치인 건 맞는다. 그런데 위드코로나 시작일인 2021년 11월 1일부터 12월 21일까지의 사망자 수가 1979명이다. 2년간 3000명이 사망하도록 그렇게나 억죄며 관리했는데 고작 두 달 만에 코로나로 2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된 건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불량한 시민 때문도 아니고, 방역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상상 속의 악독한 자영업자 때문도 아니다. 코로나19 감염 후 증상이 지나치게 악화되어 위중증 환자가 된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코로나 중환자실이 충분하지 않은 게 주요 원인이다. 병상을 충분히 확보했다던 정부의 민망한 자화자찬은 뒤로 미루더라도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중증 병상을 빠르게 늘리지 못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중환자실의 핵심 인력은 고숙련 간호사

의료 분야에서 특정한 문제가 발생하면 화자로 주로 나서는 사람들은 의사다.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감염성 질환을 다루는 감염내과가 됐건, 폐와 그 관련 기관에 대해 다루는 호흡기내과가 됐건, 데이터와 서류를 다루는 예방의학이 됐건 각자 의학의 세부 분야 전문가이니 이들이 자문에 나서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언론에 의사들만 등장하는 탓에 코로나 대응에 있어서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중요성이 쉽게 간과된다는 점이다. 굳이 최근에 도입된 전문간호사처럼 특수한 수련·자격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간호사 역시 고도의 숙련도를 쌓은, 나름의 전문 분야가 존재한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똑같은 간호사일지 모르지만 주로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를 일반 병동으로 발령 내면 그가 수술실에서 쌓아온 특수한 숙련은 쓸모가 줄어든다. 반대로 일반 병동에서 오래 근무한 간호사라고 하더라도 갑자기 응급실이라는 특수한 장소에 배치되면 병동 근무에서 쌓은 경력만큼의 관록을 보여주진 못한다. 가령 안과 전문의도 넓은 분야에서의 의학적 지식을 두루 갖추고 있겠지만, 산부인과나 노인 재활의학 분야에서도 그가 눈에 대해서 갖추고 있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전문성을 가지리라 기대하긴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전 세계적으로 의료 발전이 이런 식의 분업화·전문화에 기반해 진행되다 보니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런 칸막이가 걸림돌이 된 셈이다. 위중증 환자를 다루는 중환자실 역시 별로 다르지 않다.

언론에서는 그저 중환자실이라는 넓은 범주로 눙쳐지지만 중환자실 내에서도 외과 중환자실, 내과 중환자실, 신경외과 중환자실 등 다양한 분과가 나뉜다. 거기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급격히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무턱대고 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리는 없다. 침대 몇 개 더 놓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오해할 수 있지만, 숨이 겨우 붙어 있는 환자에게 인공적으로 심장과 폐의 역할을 해주는 특수한 기계(ECMO)를 운용하려면 적어도 1년 반에서 2년의 숙련을 쌓은 간호사가 필수이다. 그런 고숙련 간호사들이 감염 차단을 위해 여러 겹의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자신의 한계까지 환자를 보는 일이 2년 동안 반복됐다. 그 긴 시간 동안 대책을 내놓지도 않다 이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안전마진 없는 간호인력 확보해야

분업화·전문화되는 의료환경에서 이와 같은 중환자실 포화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방법은 있었다. 사전에 중환자실 간호사의 수를 충분히 늘려두면 됐다. 얼핏 들으면 평시에도 불필요하게 인력을 많이 고용하는 것이라 오해할 수 있다. 그런데 평시에도 국내의 중환자실은 업무강도가 지나치게 높은 상태다. 일반 병동에서 회복 중인 환자라면 몰라도 자칫하면 숨이 넘어갈 수도 있는 중환자를 간호사 1인이 동시에 4명이나 감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환경이니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늘리려면 다른 중환자실 간호사를 차출해야 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미봉책이 전부다. 그렇다고 중환자가 코로나19로만 생기는 것도 아니니 병원에서 당장 병상을 늘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미국에서는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인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한국의 절반인 2명 수준이다. 현재 한국 중환자실이 간호사의 실질적인 한계치라고 가정한다면, 미국에서는 코로나19와 같은 급변 사태가 터지더라도 단기적으로 중환자실 환자를 평시보다 2배가량 더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법으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규정하는 캘리포니아주는 올해 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환자 수가 급증하자 이를 일시적으로 우회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발동했다. 숙련도를 쌓은 간호인력이 1인당 담당 환자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대응한 덕분에 병상 포화로 생기는 사망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간호인력의 ‘안전마진’을 상시적으로 구축해둔 덕이다.

실상이 이런데도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의 병상 부족 사태를 두고 “민간병원은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려 하지 않는다”며 사태의 본질을 흐린다. 중환자실에서 충분한 안전마진을 갖춘 간호인력을 보유할 수 있을 정도로 진료비와 인건비를 쳐줬더라면, 공공이건 민간이건 중환자를 받는 데 거리낄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의료가 가지는 공공성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인력의 안전마진을 유지하지 못하며 겨우 버텨가는 병원의 현실을 두고 희생의 부족을 이야기하는 건 공허한 일이다. 공공이니 민간이니 하는 낡은 이념 논쟁에 앞서야 할 건 최소한의 합리성이다. K방역 자찬 중에도 환자들은 계속 사경을 넘나들고 있다.

박한슬 약사·‘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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