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40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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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창조 이력서] 연재를 마치며

나에 대한 최고의 찬사? 아이 같다, 유치하다는 말이지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저녁노을이 종소리로 울릴 때
   나는 비로소 땀이 노동이 되고
   눈물이 사랑이 되는 비밀을 알았습니다.
   낮에는 너무 높고 눈부셔
   볼 수 없었던 당신을
   이제야 내 눈높이로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너무 가까워 노을빛이 내 심장의 피가 됩니다.
   
   저녁이면 길어지는
   하루의 그림자를 근심하다가 사랑이
   저렇게 붉게 타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사람의 정이 그처럼 넓게 번지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종이 다시 울려면 바다의 침묵이 있어야 하고
   내일 해가 다시 뜨려면
   날마다 저녁노을 져야 하듯이
   내가 웃으려면 오늘 울어야 하는 것을
   이제 압니다.
   
   내 피가 생명의 노을이 되어 땅 끝에 번지면
   낯선 사람이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가족이 됩니다.
   빛과 어둠이 어울려 반음계 높아진
   노을 종이 울립니다.
   
   - 이어령 ‘노을이 종소리로 번져갈 때’


   
   11개월 동안 이어온 ‘이어령의 창조이력서’ 연재가 끝났다. 정식 인터뷰 22회, 사전 인터뷰까지 합쳐 30차례 가까이 이어령 교수를 만났다. 83세에도 창조적 사고를 멈추지 않는 노학자와의 대화는 경이로웠다. ‘빠지직’ 하고 그의 두뇌에서 섬광이 이는 창조적 순간도 몇 번 목격했다. 어찌 보면 그는 평생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면서 살아왔는지 모른다. 한번 말머리를 꺼내면 멈출 줄 모르고 이어지는 이야기의 향연은 사실, 자신이 끊임없이 새로 발견해낸 것들에 대한 근질거림이 아닐까. 그가 침묵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어령 교수의 말은 곱씹을수록 우러났다. 인터뷰 현장에서 “아!” 하고 짧은 탄식이 났다면 녹취를 풀면서는 “아~” 하고 깊숙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어령이라는 이름은 기자에게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었다. 이어령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엔 ‘오늘은 또 어떤 신세계를 만날까’ 설레었고, 나오는 길엔 늘 멍했다. 진이 쪽 빠졌다. 그가 이끄는 상상력과 지식의 여정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했다. 격주 금요일마다 끙끙 앓았다. 맥락을 좇기 버거운 탓도 있었지만, 그가 펼쳐 보인 낯선 세상이 안긴 감흥과 여운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늘 다니던 길, 늘 보던 사물, 늘 사용하던 단어들인데, 그를 만나면서 달라 보였다. 무수한 이야기를 품은 물건과 글자들이 꿈틀거리는 생명성을 가지고 말을 걸어오는 듯 느껴졌다.
   
   이어령 교수가 해온 창조이력서를 곱씹어 본다. ‘이어령의 삶은 여행자의 삶이다’라고 정의하고 싶다.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시계추처럼 쉬지 않고 오가는 여행자. 그러다 물음표에 대한 느낌표가 생기면 아이처럼 좋아하며 어찌할 줄 몰라한다. 기자의 눈엔 신기하게도 그가 점점 젊어 보였다. 83세의 노학자가 아니라, 그 노쇠한 육체 안에 시간을 거슬러 싱싱하게 살고 있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가 보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궁금해서 죽겠다며 두 눈을 반짝이는 어린아이.
   
   지난해 12월 말,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이어령 교수와 마주 앉아 연재를 마친 소회와 남은 궁금증을 물었다. 그는 이날도 예리한 지식인의 눈빛과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눈빛을 오갔다.
   
   - ‘이어령의 창조이력서’ 22회 여정이 끝났습니다. 소회 한 말씀 부탁합니다. “나는 평생 나에 관한 이야기, 자서전은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내 숨은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보니 내 자서전의 일각을 보여준 것 같아요. 약속을 깬 것 같아 허전하다고 할까? ‘결국 나도 별수 없이 자서전 같은 사적 이야기를 하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나에 대한 오해가 많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내 민얼굴을 보일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해요.”
   
   - 유무형의 창조물을 많이 남겼지요. 유독 애착이 가는 창조물은 뭔가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듯,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내 생각에서 나온 창조물들은 다 애정이 있어요. 굳이 고르라고 하면 ‘쌈지공원’이나 ‘갓길’이란 용어처럼 내 전공 분야가 아닌 공공의 영역에서 한 일들이 여전히 역사와 사회의 한 공간에서 숨쉬고 있는 것들이지. 나의 손을 떠나서 여러 사람이 함께 키운 것을 보면 감동적이에요. 고속도로 가다가 ‘갓길없음’ 표시판이 나오면 갓길이 없다는 데도 기분이 좋아요. 내가 문화부 장관 할 때 이 용어로 바꾸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노견’ ‘로드숄더’ ‘길어깨’라는 용어로 쓰일지도 모르잖아.”
   
   - 의외입니다. 88서울올림픽 굴렁쇠 소년, 축소지향의 일본인, 한국예술종합학교, 디지로그 등 누구나 알 만한 굵직한 창조물들이 많은데요. “허허. 내 생각은 좀 달라요. 나는 강연할 때 ‘갓길 장관이요’ 하고 소개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머리로 한 건 갓길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겸손이 아니라, 개인적인 창조보다는 그것이 사회성을 얻고 역사성을 얻었을 때 티끌만 한 것이라도 자랑스러워. ‘창조’를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역사와 사회의 일각을 바꿀 수 있는 창조야말로 의미 있는 창조지.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 “나는 천재가 아니다. 누구나 나처럼 생각하면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다”고 했지요. ‘이어령처럼 생각하기’의 핵심은 뭔가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안 한 것뿐이야. 갓길도 그렇잖아요. ‘노견’ 하면 길가의 개 같고, ‘로드숄더’라고 하면 숄더백 같잖아.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딨어요? ‘낯익은 말로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탄생한 말이 ‘갓길’이지. 갓길이 무슨 천재적 발상이에요? 천자문도 그래.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하늘은 까맣고 땅은 노랗다’는 훈장의 말에 ‘왜 하늘이 까맣나요?’ 묻다가 첫날 쫓겨났잖아. 하늘은 보통 파란데 까맣다고 외우는 사람이 이상하지, 왜 까맣냐고 묻는 여섯 살의 내가 이상한 거예요? 안데르센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을 생각해 봐요.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외치는 어린아이가 천재예요? 아니지. 아이는 본 대로만 얘기한 거예요. 우리는 보이는 대로 보고, 생각한 대로 생각하고, 행하는 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거짓과 잘못된 옷을 입고 있는 거예요.”
   
   - 소위 ‘물음느낌표’가 선생님 창조력의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미난 말이 있어. ‘신은 어디에 있느냐’는 답은 해답 속에 있지 않고 질문 속에 있어요.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일 먹을 양식을 생각하는 사람, 또 권력에 빌붙어 출세해 보자는 사람도 있지. 왜 신이 있는지를 생각하겠어요? 영성이 없으면 이런 질문은 안 하겠지. 신을 문제시하는 마음, 그게 바로 신이에요. 내가 말한 물음느낌표도 마찬가지야. 느낌표가 해답인 줄 아는데, 물음표 없는 느낌표가 이 세상에 있을까? 의문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의문이 풀리면서 기쁨이 생기는 것이지.”
   
   - 요즘에도 느낌표를 느끼는 순간이 많은가요. “요즘도 나는 잠이 안 오면 서재에 가서 우리 안에 갇힌 짐승처럼 어슬렁거려요. 이 책 빼 보고, 저 책 빼 보다 우연히 옛날에 읽다가 만 책에서 기막힌 구절을 발견하면 입에서 ‘악’ 소리가 절로 나와. 이건 로또복권에 몇십억 당첨될 때의 기쁨보다 커요. 그 구절이 나에게 충격을 주고 글쓰기에 영향을 준다면 나는 그 책을 보기 1초 전의 내가 아니야. 다시 태어난 것이지. 이런 구절은 내가 평소에 늘 물음을 가졌기 때문에 눈에 띄는 것이지. 우리나라에서는 이걸 나쁘게 말하더라고.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거꾸로 생각해 봐요. 신선 눈에는 신선만 보이고, 정의로운 사람에게는 정의가 보이고, 우리처럼 글쓰는 사람에게는 그런 글이 보이는 거예요.”
   
   - 여전히 피터팬의 표정을 지녔습니다. 80대에도 인공지능을 비롯한 지식의 최전선을 꿰뚫고 있는데, 비결은 뭔가요. “신선은 노인이고, 신선 옆에 있는 동자는 아이인데 둘의 얼굴이 똑같다고 하지. 노자(老子)도 도(道)를 체득한 사람을 어린아이에 비유했고. 내 얼굴이 꼭 짓궂은 여섯 살 아이 같다, 노인 냄새가 안 난다고들 하는데 그건 물음느낌표를 갖고 지적호기심에 빛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일 거예요. 나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귀엽다는 말이야. ‘유치한 구석이 있으시네요’ ‘귀여우세요’ 하면 기분이 아주 좋아요. 반대로 ‘어른스럽다, 인격자다, 원로답다, 노숙하십니다’란 건 칭찬으로 들리지 않지. 나에게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인삼녹용이나 마찬가지예요. 초등학교 가기 전의 내가 내 상상력의 보고이고, 그때 봤던 세계가 오늘날 감성과 예술의 기반이 돼요.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봤던 햇빛, 나뭇잎을 흔들리게 하는 바람…. 그게 나에게는 최대의 자산이지.”
   
   - 문학, 건축, 디지털, 교육, 지자체 문화, 국가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업적에 비해 인정을 못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운하지는 않나요.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에요. 한국 사회의 메커니즘이나 미디어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줄 만큼 여유가 없어서지요. 나는 일본의 연구소에서 머물 때 4권의 책을 썼어요.(‘축소지향의 일본인’ ‘하이쿠의 시학’ ‘보자기 인문학’ ‘가위바위보 문명론’) 그런데 막상 국내에서는 늘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전작 작품은 거의 남기지 못했지요. 정말 쓰고 싶은 글은 항상 뒤로 미루어왔는데, 이젠 시간이 없어서 아껴둔 생각들은 그냥 머릿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는 상황이지. 그것이 참 아쉬워요.”
   
   - 후회되는 게 있다면요. “프로메테우스는 앞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에피메테우스는 항상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지. 내 몸에는 이 두 신화의 형제가 살고 있어요.”
   
   -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사실 건가요. “나는 한 번도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며 산 적이 없어요.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이라는 가정법이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요. ‘지금’과 ‘여기’가 항상 내가 서 있는 자리이자 시간이니까.”
   
   - 창조이력서에서 끝까지 밝히지 못한 게 있습니다. 창조적 영감이 끊임없이 샘솟는 사람 중에는 ‘뮤즈’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문인, 예술가에게는 항상 사랑 이야기가 따라다니지. 그런 점에서 나는 영원히 예술가 측에 못 끼는 사람 같아.(웃음)”
   
▲ 인천 정서진에 있는 노을종은 이어령 교수가 명명한 것이다.

   - 창조의 슬럼프는 없었나요. “왜 없었겄어? 문화부 장관을 그만두고 2~3년간 아주 힘들었어요. 그땐 책도 못 쓰고 아무것도 못 했지.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다시 나와 돌아오는 것도 힘들었지. 슬럼프가 닥치면 모든 것을 뒤로 미뤄요. 오늘이 없는 것이지. 시인 발레리는 글을 쓸 수 없었던 공백기에는 수학문제를 풀었다고 해요. 그 엄정성이 풀어진 정신을 조인 것이지. 슬럼프는 일종의 태엽 감는 시간인 겁니다. 나는 외국에 가서 혼자 머물면서 태엽을 감았어요. 철저하게 혼자서 내 몸을 극한 상황 속에 던지는 것이지. 누에고치에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날개를 얻어 스스로 만든 비단실의 벽을 뚫고 나오는 겁니다.”
   
   -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문명비평가이지요. 한국에 정치비평가, 경제비평가는 차고 넘치는데 문명비평가가 드문 이유는 뭔가요. “한국이 아직 살기 힘드니까 ‘삶 자체’보다 의식주와 관련된 것, 그러니까 ‘삶의 수단’에 더 관심을 갖게 되지.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삶의 밑바닥에서 며칠을 굶는 혹독한 기아체험을 했으면서도 짐승처럼 먹는 것의 덫에 걸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언제나 배고픔보다는 마음 고픔에 관심을 두었어요. 지적 호기심이지. 인간의 조건을 자연이나 사회보다는 문화와 문명의 조건으로 설정해왔어요. 내가 담배를 끊을 때에도 ‘인간이 이 하찮은 풀잎사귀에 지다니’ 하면서 담배를 눈앞에 놓고 똑바로 쳐다보며 끊었어.”
   
   - 골초셨다지요. “한때 내 글은 잉크가 아니라 담배연기로 썼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 인간의 품위를 중시하고 예술적 감성이 충만한 예술가는 자살충동을 많이 느끼는데요. “학생 시절에 읽은 책들은 대개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자극제들이었지. 베르테르 유형의 자살이 아니라, 도스토옙스키 ‘악령’의 키릴로프처럼 내가 내 생명의 주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 자유를 시험하기 위한 자살 말이야. 그런 철학적 자살의 유혹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수면제 근처도 가 보지 못했어요. 자살을 부추기는 글을 쓰면서도 막상 역병이 돌자 제일 먼저 도망친 사람이 쇼펜하우어였잖아. 내가 그런 쇼펜하우어 글을 즐겨 읽었으니 할 말 다했지.”
   
   - 철학적 자살 충동은 있었군요. “자살이라기보다 이상(李箱)이 스물일곱 살에 죽었으니까 나는 그보다 조금 일찍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대학 졸업 즈음엔 ‘아, 내 생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했어. 후후.”
   
   - 요즘에도 ‘천재는 박명이다’라는 속설을 믿나 봅니다. “20대 젊은이치고 자기가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드물잖아. 요즘엔 몰라도 우리 시절 문학청년들은 다 자기가 천재인 줄 알았어요. 나도 별수 없는 그런 문청 시절이 있었어. 대학 재학 시절부터 평론가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그런 줄 알았지. 왕자병이 아니라 천재병이 있었어요. 폐병, 창백한 얼굴이 천재의 조건이었지. 지금 젊은이들보다 몇 배나 가난했고 바닥을 치는 절망 속에서도 용케 그런 낭만이 있었어.”
   
   - 질문지 없이 어떤 질문에도 기승전결로 준비된 듯 답하는 모습에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말하면서 생각하는 거지. 축사를 하든 기념사를 하든 늘 원고 없이 해요. 연단에 올라가서도 무슨 얘기를 할지 몰라. 연단에 딱 올라가서 ‘이 아무개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하면서 관중들 얼굴 보고 분위기 보면 뭐가 확 나오는 거야. 3초 전까지도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몰라. 갑작스레 해야 뇌가 막 번쩍 하고 부딪치면서 순발력이 나오지. 미리 준비하면 다 실패해요. 머릿속에서 이 말과 저 말이 서로 사보타주를 해. ‘이 말 해, 아니야 그때 저 말 해서 박수 받았잖아. 저 말 해’ 하면서.”
   
   - 한국인이 다른 민족에 비해 창조력이 강한 편인가요. “객관적으로 비교 증명할 수 있는 예가 많아요. 한자문화권에서 살았던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 봐요. 일본의 가나문자는 한자를 그대로 모방 변형에서 만들었지만, 한글은 한자와는 전연 다른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만든 시스템으로 돼 있지. 한글이 훨씬 독창적이야. 도자기도 그래요. 도자기는 고열을 내야 하기 때문에 과학기술과 예술이 합쳐져야 해. 그렇지 않으면 토기는 만들어도 자기는 못 만들어. 세계적 옥션에서도 인정하는 고려청자를 봐요. 베트남이 비슷한 자기를 만들었지만 비교가 안 되고, 일본은 아예 꿈도 못 꾸지. 고려청자는 중국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상감기법처럼 고유한 예술성을 지녔어요. 금속활자는 말할 것도 없고, 첨단기술의 세 자매라고 하는 IT·BT·NT의 세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이 한국이요 한국인이잖아. 그런데 아직도 누에고치 속에서 잠들어 있는 한국인의 잠재력이 많아요. 우리는 그동안 참 많은 번데기들을 먹어버렸어요. 나비, 나방이 되지 못한 고치 속의 번데기를 볶아서 먹어버렸던 거지. 이제는 아무리 배고프고 그 맛이 고소해도 그것들이 나래를 펼 때까지 참고 기다렸으면 좋겠어요.”
   
11개월 ‘이어령의 창조 이력서’가 남긴 말들
   

   “내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고 가는 삶이었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의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꺅’ 소리가 절로 나고 온몸에 전율이 인다.”
   
   “유식하다, 박식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거부감이 든다. 나는 궁금한 게 많았을 뿐이다.”
   
   “엉뚱한 질문을 한다고 혼났지만 나는 혼자 있는 게 두렵지 않았다. 지적 호기심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목마름 없는 지식은 고문이다.”
   
   “나는 80년 동안 책과 함께 살아왔다. 내 인생의 첫 책은 돌상에서 집은 책이고, 책을 읽어주신 어머니가 두 번째 책이다. 어머니가 읽어주셨던 그 많은 모음과 자음에서 상상력을 길렀다. 내 최초의 책은 어머니의 몸이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돌잡이로 집어들던 그 책,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머니의 음성으로 듣던 그 책이 내 창조력의 씨앗이 됐다.”
   
   “대부분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말을 흘린다. 스케이트 타듯이 말 위에서 미끄러지듯이. 그런데 나는 말 위에 멈춰 서서 말에 말을 건다.”
   
   “창조란 잘 달리는 수퍼카가 아니라 구닥다리 고장난 차와 같다. 남들이 정신없이 달릴 때 홀로 멈춰 선다. 그래야 비로소 보인다. 느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색(一色)이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정치·경제·사회가 다 한 가지 색이 지배하는 일색. 나는 그게 질색이다. 한국의 획일적 사회와 문화를 깨뜨리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고정관념은 상상력의 최대의 적이다.”
   
   “학교는 생사람 잡는 곳이다. 사람은 원래 백지 상태의 생것인데 학교가 이 순연의 존재를 틀에 가두고 상상력의 날개를 꺾어버린다. 가르치지 않고 방치하는 게 창조성을 죽이지 않는 방법일 수 있다. 생사람은 생각의 야성이 살아 있는 사람이다. 견고한 틀과 사고로 무장한 사회와 조직은 생사람을 잡는다.”
   
   “한국적 획일주의를 버려야 한다. 실제 무지개를 세 보지도 않고 앵무새처럼 일곱 가지 무지개라고 외우게 하는 사회에서 무슨 다양성이 나오겠나.”
   
   “나는 우물 파는 사람이다. 갈증을 씻기 위해 우물물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그 갈증으로 우물을 파는 사람. 남이 만든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내는 쪽이다.”
   
   “창조의 반대말은 파괴다. 창조와 파괴는 동전의 양면 같다. 창조를 하려면 먼저 파괴를 해야 한다.”
   
   “창조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는 견고한 땅을 파헤치는 곡괭이가 필요하다.”
   
   “문학이 언론이 되면 안 된다. 문학을 수학으로 치면 산수가 아니라 대수(代數)이고, 그것도 미지수 χ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개, 세 개 겹쳐 있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행위다.”
   
   “창조 뒤에는 늘 외로움과 정적, 그리고 암흑이 온다. 한밤의 태양이 아니라 대낮의 어둠이 있다. 딱 한 번밖에 못하는 것이기에 아름답고 절실하다.”
   
   “우리 것만 고집해서도, 외국 것에만 경도되어서도 안 된다.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이 합쳐져야 한다. 일명 글로컬리즘(glocalism). 극과 극의 것을 배척하지 않고 끌어안아 결합시켜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내 아이디어의 팔 할은 조상님한테 받았다고 했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나와 다른 뇌가 만나야 창조가 나온다. 결국 창조의 원천은 문화적 유전자가 다른 두뇌, ‘에일리언 인텔리전스(Alien intelligence)’가 만나야 한다. 바깥을 상정하고 바깥을 의식해야 내가 누군지 알게 되고 네가 누군지 알게 된다. 나와 다른 존재를 아는 것, 그게 창조의 시작이다.”
   
   “나와 우리에 갇히면 안 된다. 우리(we)라는 우리(cage)에 갇혀버리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 있으면 점점 확신이 생기면서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 누구든, 어떤 집단이든 마찬가지다.”
   
   “새가 둥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멀리 날기 위해서다. 조국은, 민족은 가장 따뜻한 둥지이지만 날지 않을 때에는 감옥이기도 하다.”
   
   “창조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생활의 밑바닥에서 창조적 상상력이 우러나올 때가 많다. 문화는 일상 속에 스며 있는 작은 감동과 아름다움이다.”
   
   “(초대 문화부 장관 시절) 장관이 가진 힘은 인사권인데, 나는 일절 인사권 행사를 안 했다. 2년 내내 그대로 끌고 갔다. 인사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조직 내에 암투가 벌어지고 청탁이 생기기 마련이다.”
   
   “문화에 목마르게 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문화정책이다. 목마를 때 물을 마셔야지, 목마르지도 않은데 물을 먹이면 그게 바로 물고문이다.”
   
   “흔히들 음악하는 사람도 일반교양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모르는 소리다. 음악영재들은 음악을 통해서 철학을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사고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런 아이들한테 철학 가르치고 물리 주입시키다 보면 재능의 날이 다 무뎌져버린다.”
   
   “예술가는 무인도에서 상처를 끌어안고 혼자 괴로워하는 존재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마찬가지다. 그 괴로움의 상처를 받아주지 않고 그의 활만 탐내는 사회는 절대로 풍요로운 사회를 이루지 못한다. 신궁의 파워와 함께 그 상처까지 포용하는 사회와 역사만이 승리와 행복의 영광을 얻는 문화국가가 되는 것이다.”
   
   “‘있다’는 존재론이고, ‘되다’는 생성론이다.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만들어진 것은 이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다르다. 모든 것이 ‘되는’ 생성론이다. 어린아이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상징이다. 시작하는 것보다 무서운 힘은 없다. 생성의 힘이다.”
   
   “‘위기는 기회다’라고들 한다. 왜 한국인은 위기가 닥쳐야만 기회를 찾으려 할까? 정말 창조적인 건 위기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궁즉통’이 통할 때가 많았다. 다 쓴 치약을 쥐어짜듯 하면 안 된다. 창조는 천재적인 것이 아니다. 미리 대비하고 분석하다 보면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나오는 법이다.”
   
   “창조적인 사람이 한 사람이면 왕따를 당해서 안 된다. 창조적인 세력이 많아야 한다. 서로 네트워크를 맺고 교류를 해야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다.”
   
   “남이 안 하는 일을 하려는 독창성에는 늘 리스크가 따른다. 장애물을 돌파하지 않으면 창조적 상상력은 뜬구름이 되고 김 빠진 맥주가 된다.”
   
   “세계에서 아이큐 제일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데 한국의 문화풍토와 사회환경, 그리고 톱다운식 교육체계 때문에 천 리는커녕 백 리도 달려 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천리마들, 한국의 숨은 피카소, 아인슈타인이 얼마나 많을까? 미국이 아직도 기회의 땅인 것은 천리마를 알아보고 천리마를 맘껏 달리게 해주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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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창조이력서 연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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