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위)과 전임자인 후진타오·장쩌민(오른쪽). ⓒphoto 로이터·연합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위)과 전임자인 후진타오·장쩌민(오른쪽). ⓒphoto 로이터·연합

중국에서 물러난 지도자가 국민의 관심을 끄는 ‘공개행동’을 하는 데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 1992년 1월 덩샤오핑(鄧小平)이 가족과 함께 중국 남부를 여행한 ‘남순강화(南巡講話)’가 대표적이다. 덩은 이 여행을 통해 1989년 천안문(天安門)사태 이후 커져 가던 보수파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개혁개방’의 불씨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올 초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23년 전의 덩처럼 부인, 아들, 손자를 이끌고 남부 하이난성(海南省)에 나타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도 마찬가지다. 13년 전 은퇴한 장은 가족의 부축을 받으며 하이난의 명산 동산령(東山嶺)에 올랐다. 동산령은 해발 184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기암괴석이 많아 ‘하이난 제1산’으로 불린다. 장은 이 산에 올라 “하이난의 명산에 오르지 못했다면 한(恨)으로 남았을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온 게 결코 헛걸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는 ‘관직에서 물러난 이가 동산(령)에서 재기한다’는 ‘동산재기(東山再起)’란 고사가 있다. 중화권 언론은 이 고사를 근거로 장이 국민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과 동시에 시진핑 주석을 향해 ‘내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89세인 장이 노구를 이끌고 동산령에 나타나기까지 그의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2013년 10월 지젠예(季建業) 난징(南京)시장 겸 당 부서기가 직위를 박탈당한 데 이어 이듬해 초부터 그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장쑤성 장자강(張家港) 출신인 그는 쑤저우(蘇州), 쿤산(昆山), 양저우(揚州), 난징의 당 간부로 일했다. 그는 양저우 출신인 장쩌민 전 주석이 고향에 올 때마다 수행하여 ‘장의 집사(大管家)’란 별명이 붙어 있다.

지난해 2월 중국 최고인민검찰원은 그를 수뢰혐의로 기소했다. 그의 범죄혐의 속에 장쩌민 가족과 연관된 내용이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쩌민 입장에선 또 하나의 수족이 잘린 것은 물론 터지지 않은 폭탄을 들고 있는 셈이다. 장 전 주석이 시진핑을 만나 “반부패 캠페인의 족적(足跡)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충고(영국 신문 파이낸셜타임스 보도)한 시점도 지난해 2월이다.

지난 1월 6일 중국과학원 상하이분원은 인사조정을 실시해 장‘x헝(江綿恒·64) 원장의 퇴임을 결정하고, 주즈위안(朱志遠) 부원장을 원장으로 임명했다. 장‘x헝은 장쩌민 전 주석의 장남이다. 그의 퇴임은 ‘연령상의 이유’로 발표됐지만, 정기 인사철인 3월 전인대를 두 달여 앞두고 벌어진 이 사건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장‘x헝은 상하이 푸단대를 졸업하고 1991년 미국 드렉셀대학에서 전기공정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휴렛팩커드(HP)에서 잠시 일했다. 1993년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중국과학원 야금연구소에서 반도체를 연구했다. 1997년 야금연구소장에 이어 1999년 중국과학원 부원장으로 승진한 것은 물론 중국 인터넷통신공사(CNC), 상하이자동차그룹, 상하이공항그룹 등의 이사도 겸했다.

중화권 언론은 그가 사모펀드와 정보기술(IT) 기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본다. “장‘x헝은 특히 부패·국가기밀누설 등의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아들 저우빈(周濱)과 석유사업 등에서 특혜를 받았고, 최근 체포된 링지화(令計劃) 전 통일전선부장 겸 정협(政協) 부주석의 동생 링완청(令完成)과도 상업적 이익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미국에 본부를 둔 중문뉴스 사이트 둬웨이(多維)는 보도한 바 있다. 요컨대 장‘x헝의 퇴임은 결코 ‘나이 때문’이 아니라 저우융캉-보시라이-링지화-쉬차이허우(徐才厚)로 이어지는 이른바 ‘신(新)사인방’ 가족과 연관되었기 때문으로 유추할 수 있다.

장쩌민 세력에 대한 시진핑의 압박은 군부 인맥 및 처가 쪽에까지 미치고 있다. 최근 일부 중화권 매체는 “현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부주임 자팅안(賈廷安)이 또 하나의 부패 ‘큰호랑이(大老虎)’로 낙마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자팅안은 장쩌민 중앙군사위 주석, 당총서기 시절 비서로 일한 최측근이다. 또 새해 들어 장쩌민의 부인 왕예핑(王冶坪)의 조카 왕룽(王榮) 선전시 당서기가 곧 안후이성(安徽省)의 한직으로 밀려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시진핑이 자신의 집권에 도움을 준 ‘상하이방’의 거두 장쩌민 전 주석에 대해 이처럼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시진핑에 대한 암살 시도와 관련이 있는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8월 초 한 회의 석상에서 “부패와의 투쟁에서 개인의 생사와 명예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與腐敗作鬪爭 個人生死 個人毁譽 無所謂)”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또 “현재의 형세가 매우 엄준하며 부패와 반부패 세력 간의 대치가 교착 상태에 있다”는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의 월간지 개방(開放)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2012년 말 당 총서기 취임 이후 최근까지 모두 6회의 암살 기도를 당했다고 한다.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생사론’을 수차례 언급한 것이 이 암살 기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시 주석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었다면 저우융캉의 권력기반인 공안-무장경찰-사법부의 일부 세력일 가능성이 크다. ‘개방’은 “경호부대가 시 주석에 대한 암살경보를 발령한 횟수가 16회에 달하며 모두 ‘내부자’의 소행으로 판명됐다”고 보도했다. 대대적인 부패사정을 추진 중인 시 주석은 매일 가시밭길을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우융캉의 발탁 및 후원자가 장쩌민이라는 점에서 시진핑-장쩌민 세력의 대격돌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진핑을 축출하고 보시라이를 당 총서기에 앉힌다는 ‘신사인방’의 정변설도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두 세력의 싸움은 장‘x헝을 비롯한 주변인물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역시 요즘 좌불안석이다. 공청단 출신으로 오랫동안 자신의 비서실장(중앙판공청 주임)을 해온 링지화 전 통전부장이 부정부패와 당기율위반 혐의로 지난해 말 면직된 뒤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신사인방으로 일컬어지는 링지화는 숨겨놓은 재산이 트럭 6대 분량에 달한다고 언론에서 보도한 적이 있다. 2012년 3월에는 그의 아들 링구(令谷)가 고급 스포츠카에 반라(半裸)의 여성 2명을 태우고 베이징 시내를 질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산시성(山西省) 출신의 그는 권력 내부의 ‘산시방’ 좌장으로 꼽힌다.

링지화는 후진타오 집권 10년간 최측근에서 후를 보좌한 인물이다. 그가 아들의 교통사고 이후 저우융캉 세력과 손을 잡고 보시라이를 권좌에 세우는 ‘신사인방’에 가담한 것은 후진타오에게는 엄청난 타격이다. 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후에 관한 어떤 비밀이 터져나오는지에 따라 후의 정치생명도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시진핑은 링지화를 도마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후진타오를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다. 현재로선 시진핑이 자신에게 모든 권력을 한꺼번에 물려준 후진타오까지 공격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부패척결과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구세력’에 대한 시진핑의 ‘생사를 건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시아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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