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 영국 총리가 ‘영국은 일하는 사람에게 보상한다’는 복지개혁안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photo 연합
캐머런 영국 총리가 ‘영국은 일하는 사람에게 보상한다’는 복지개혁안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photo 연합

단독 과반수로 재집권에 성공한 영국 보수당 정부가 120억파운드 절감의 야심 찬 복지개혁법안이 지난 7월 20일 하원 제2독회에서 승인을 받으면서 개혁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찬성 308표, 반대 124표로 통과했으니 압도적 표차라 보수당은 축배를 들 만하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첫째 영국 하원 의석 650석에서 이번 투표에 참여한 숫자가 찬반 합쳐서 432표이니 의원 3분의 1이 불참석했거나 기권했다. 영국 의회 의원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기권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 야당 의원들이 자주 쓰는 ‘반대를 등록한다(register the opposition)’라는 말도 비록 자신의 반대가 과반수에 밀린다 하더라도 확실하게 반대를 표명하고 투표를 해서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결정을 했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야 할 의무를 지킨다는 뜻이다. 이런 전통은 오는 9월 대표 선출을 앞둔 노동당 의원의 20%에 해당하는 48명이 항명해서 투표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진 데서도 확인된다. 당 대표 선거가 2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당을 혼란에 빠뜨린 반란표 의원 중 한 명이 한 말 ‘유권자들은 우리를 기권하라고 의회로 보내지 않았다(We weren’t sent to Parliament to abstain)’로도 알 수 있다. 보수당 입장에서도 결코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은 승리라는 말이다.

보수당이 축배를 들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제2독회 통과는 일차 관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최종 확정되어 실행에 들어가기까지는 길고도 까다롭고 힘든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렇게 영국의 입법절차는 복잡하고 불필요한 듯한 절차를 너무 많이 거친다. 좀 길지만 한번 살펴보자.

지난 7월 20일 하원 전체회의를 통과한 이번 법은 사실상 첫 단계인 제2독회를 마친 데 불과하다. 제2독회는 법안의 상세한 내용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전체적인 법안 개요와 제정 취지만 치열하게 검토되고 토론하고 논의된다. 이 단계에서 일단 투표를 하나, 따지고 보면 상징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이후 ‘공공법사위원회’에서 조항 하나하나를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검토, 수정, 합의한 다음 법안으로 다시 완성하여 위원회 ‘보고 단계(reporting stage)’로 넘긴다. 여기서 대다수의 의원들이 발언을 하고 의견을 내고 해서 다시 수정을 거친다. 이 단계가 가장 오래 걸린다. 그 다음이 최종단계인 제3독회가 된다. 보고단계에서 수정 합의된 법안을 다시 토의 심의한다. 그러고서 재차 하원 전체회의에서 투표를 한 다음 통과되면 상원으로 넘긴다. 상원에서도 하원과 똑같은 절차를 거친다.

그렇게 해서 상원을 통과한 법안은 하원으로 돌아오고 여기서 ‘수정고려(consideration of amendments)’ 절차를 한 번 더 최종적으로 다시 거쳐야 한다. 만일 이때 조그만 수정이라도 하원에서 가해지면 법안은 다시 상원으로 돌아가고 상원이 그 조항을 다시 수정하면 하원으로 돌아오고 하는 탁구공 절차가 계속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상하원이 모든 법 조항 문구 하나까지 완벽하게 동의하면 이제 왕에게 보내져서 ‘국왕의 재가(Royal Assent)’를 거치면 법으로 완성된다.

이런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소위 토론, 반박, 협상, 양보, 타협이 여야 간에 수도 없이 이루어지므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지루하다. 이런 절차를 거치면서 결국 여야 양측은 어느 정도는 합의된 법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영국 의회의 법 제정 절차이다. 그렇게 해서 다수의 횡포로 법안을 밀어붙여 정국을 냉각시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합리적 절차이다. 이런 절차는 민주주의의 가장 취약점인 다수에 의한 일방적 결정의 오류를 막을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인내를 가지고 충분히 토의해서 가능하면 소수의 의견이 포함된 법안을 만들어 내려는 의도를 품은 제도다. 과반수의 여당도 이렇게 중복되는 제도가 만들어져 있으니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고 절차를 안 밟을 도리도 없다. 결국 민주주의는 인내와 타협과 양보의 산물임을 보여 주는 셈이다.

그런데 법 제정의 마지막 단계인 왕의 재가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국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하여 국왕의 재가도 그냥 요식행위(rubber stamp process)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정보공개법에 의한 요청에 따라 2013년 1월에 총리실이 공개한 문서를 보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법안 36개를 거부했고 심지어는 1999년 토니 블레어 정부의 이라크 참전법안에 반대해서 정부가 상당 기간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찰스 왕세자도 자신의 이해와 관련이 있는 법 20건을 거부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제2독회라는 첫 관문을 통과한 복지개혁법은 실제 모든 절차를 거쳐 법으로 시행되기 전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린다. 그래서 이 개혁안 통과에 반대한 야당들이 분노하거나 한탄하지 않는다. 앞으로 많은 내용을 얼마든지 바꿀 시간이 있다고 야당도 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노동당의 신임 당수 선거가 9월에 있는데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좌파 성향의 당 대표가 선출될 전망이어서 보수당으로서도 많은 타협과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더군다나 지난 총선에서 새로 선출된 노동당 초선의원들 절반 이상이 좌파이고 이들이 이번 항명에 대거 참여해 앞으로의 노동당의 정책 방향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희망과는 달리 좌향좌할 것임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앞으로 남은 과정을 통해 최종으로 확정된 법이 7월 20일 통과된 안에서 얼마나 달라져 있고 누더기가 되어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영국을 지탱해 오던 가장 큰 가치인 복지국가에 대한 개념을 통째로 바꾸는 이번 개혁안을 국민과 정부 혹은 국민과 사회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신계약(New Contract)’이라고까지 부른다. 이렇게 영국의 장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중요한 법안이 제정에 얼마나 걸리고 원안에서 얼마나 어떻게 변해 있을지를 지켜보는 일도 상당히 흥미로울 듯하다.

이번 제2독회의 투표과정에서 일어난 노동당 의원들의 항명 사태를 살펴보면 향후 5년간의 정치가 보인다. 노동당 임시지도부는 분명 이 개혁안이 노동당의 역사적인 전통 가치에 반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서민 노동자 계급의 복지를 해치는 것이라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반대만 할 수도 없었다. 그 이유는 현재의 복지제도는 지속 불가능해서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데 있다.

더군다나 복지 축소라는 비인기 정책을 지난 5년 동안 줄기차게 밀어붙이고도 영국의 장래를 위해 이를 지속해야 하니 자신들에게 다시 집권의 기회를 달라는 보수당의 명분을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지난번 총선에서 드러난 이런 국민 의사를 무시하고 무조건 반대표를 던질 수 없었다는 것이 노동당 지도부의 고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당 표현대로 ‘일은 하지 않는 지속 불가능한 퍼주는 복지에만 신경 쓰고 인기에만 관심 있는 무책임한 정당’이라는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보수당은 노동당이 대다수 국민에 반하는 정당이라고 몰아붙였다. 보수당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가르지 않고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로 가르며 노동당을 공략했다. 보수당의 전략은 아주 주효했다. ‘노동당은 아직도 더 많은 복지, 더 많은 공공채무, 더 높은 세금을 원하는 정당’이라고 몰아붙인 게 결과적으로 기권을 권한 게 되었다. 결국 복지개혁 중 일부는 노동당도 찬성하는 것이 있으니 일단 기권으로 의사만 표현하자는 쪽으로 당론이 모아졌다.

영국 런던에서 한 노숙자가 적선을 호소하고 있다. 영국의 노숙자는 10만명으로 추산된다. ⓒphoto mailonline
영국 런던에서 한 노숙자가 적선을 호소하고 있다. 영국의 노숙자는 10만명으로 추산된다. ⓒphoto mailonline

그럼에도 대규모 항명사태는 예견됐다. 과연 몇 명이 항명을 하고 반대 투표를 할 것인지가 관심 사항이었다. 나름대로 책임 있는 정당으로서의 체모 때문에 정한 기권 당론에 232명의 소속의원 중 거의 20%에 해당하는 48명이 따랐다. 그것도 다음 런던시장으로 확실시되는 당 중진부터 차기 당 대표 후보 한 명까지도 당명을 어기고 투표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지는 대규모 항명사태를 만들었다. 이런 노동당의 분열을 과연 9월에 선출되는 새 당 대표가 봉합할 수 있을까.

어찌되었건 이번 복지개혁법안을 대하는 노동당의 고민은 두 가지이다. 지난 노동당 정권에서 사회복지 혜택을 너무 퍼주어서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보수당 정권의 주장에 언론과 여론이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총선을 통해 드러났다. 폭발적 속도로 늘어나는 고령인구나 세계적 경제 불황으로 인한 실업자의 증가와 세수 감소가 노동당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러나 보수당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노동당의 잘못 때문이라고 하며, ‘이런 걷잡을 수 없고, 유지불가능하고 불공정한 복지제도를 물려받은’ 보수당 자신들은 어쩔 수 없이 뼈아픈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를 댄다. 문제는 노동당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뒤늦은 자성론도 나온다. 노동당 대표 후보 중 한 명은 이런 주장을 했다. “유권자들에게 우리가 변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노동당은 돈에 관해서는 못 믿겠고 복지개혁도 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지금도 복지개혁에 대해선 눈을 감고 무조건 반대만 하면서 지난 5년간 지속해온 같은 이유로 논쟁만 계속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같은 결과(총선 패배)를 만날 것이다. 보수당과 다른 믿을 만한 복지개혁안을 내놓아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동안 영국의 복지제도는 보수당 표현에 의하면 ‘거의 퍼주다시피 했고 국민들은 거기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복지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수당이 주장하는 영국 복지개혁의 이유를 전부 들 필요는 없지만 하나만 본다면 2003년 5000억파운드도 안 되던 복지 관련 금액이 2012·2013년 회계연도에는 1조1850억파운드에 도달했다. 결국 10년 만에 2배도 넘게 늘어났다. 이런 복지금액의 증가에는 노령인구의 급격한 증가도 큰 영향을 미친다. 2020년이 되면 2015년보다 70세 이상이 140만명이 더 는다. NHS(영국 국민보건서비스)에 가장 부담을 많이 주는 나이이다. 뿐만 아니라 연금을 비롯한 각종 사회복지 혜택에도 돈이 많이 든다. 이런 노령인구의 증가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현재 영국의 70세 이상 인구는 2015년 12.5%, 2020년 14%, 2025년 15%, 2030년 16.5%에 달할 전망이다.

다른 예를 들면 노동 가능한 연령의 가족을 가진 가구가 받아가는 복지혜택이 1980년에는 전체 공공예산의 8%였는데 2010년에는 거의 13%까지 왔다. 결국 총액이 20억파운드이고 25만가구 한 집당 8000파운드에 해당한다. 또 영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1%에 불과한데 세계 부의 4%를 가지고 있고 세계 복지예산 총액 중 7%를 쓰고 있다. 세계 평균으로 볼 때 7배는 많은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뜻이고 동시에 개혁되지 않으면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제도라고 보수당은 말한다. 자신들이 집권하던 2010년에는 영국의 20%의 가정에 아무도 일하는 사람이 없었다. 140만명이 지난 10년간 일해 본 적이 없었고 당시 공공임대주택 단지에 사는 가구의 거의 반이 아무도 일을 안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런던 밖의 가구 중 40%는 연수입이 2만파운드가 안 된다. 그래서 영국 가정 20%에 해당하는 가정에 연간 지급되는 복지혜택 총액을 런던 내는 2만3000파운드, 런던 밖은 2만파운드로 줄여서 정했다. 일하는 사람들보다 복지혜택을 더 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생활비가 모자라면 나가서 일을 하라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가정보다 복지혜택에 기대어 잠자는 가정을 일깨워 일자리로 보내겠다는 보수당의 생각이 담긴 게 복지혜택 개혁 법안이다. ‘복지의존의 악순환에 갇힌’ 영국을 어떤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구해 내겠다는 사명감과 확신에 가득 찬 정책이다. 보수당 골수분자들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살아야지 누군가에게 기대어 산다는 것은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고까지 극단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최근 선출된 자민당 당수는 이 법안을 “불공정하고 현명하지도 않고 비인간적이기까지 하다”고 비난했다. 심지어는 보수당의 이번 개혁을 ‘새로운 얼굴을 한 계급투쟁’으로까지 보고 있다. ‘정의가 아닌 이념이 만들어 낸 복지축소’라고도 한다. 이렇게 보수당의 복지개혁안에 반대를 하는 측의 말도 들어볼 만하다. 이들의 주장은 보수당의 개혁안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지지기반이 아닌 계급을 공격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의 가장 그늘지고 허약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직접적 혜택을 줄여서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항변한다.

상세한 내용을 보면 주로 각종 장애인과 빈곤층에 돌아가는 복지를 20%, 노령인구 간호에 필요한 지방정부 예산을 40%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축소금액 120억파운드 중 39%가 영국 인구 중 20%에 해당하는 빈곤층에게, 29%가 인구의 7.7%인 각종 장애자에게, 15%가 2%에 불과한 중중장애자에게 돌아갈 혜택에서 줄인 금액이다. 그래서 이번 개혁으로 보통 사람들이 1년에 467파운드의 복지혜택이 감소되는 데 비해 빈곤층은 2195파운드, 장애인이 4410파운드, 중중장애인인 8832파운드를 잃는다. 이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빈곤층이 5배, 장애인이 9배, 중중장애인이 19배나 더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이 말이 바로 자민당 새 당수가 말한 “불공정하고 현명하지도 않고 비인간적이기까지 하다”에 해당한다.

거기다가 복지혜택 부당청구는 조세범죄의 6%, 탈세금액의 1%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복지혜택 축소 금액은 복지부당청구 금액 총액의 22배나 된다. 복지 위에서 잠자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사회를 일하는 사람들이 더 정당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유와 상반되는 정책이다. 결국 지금까지 복지혜택은 받을 만한 사람들이 받았고 보수당이 소위 말하는 부당한 복지 수령자는 정말 적다는 통계이다. 또 매년 복지수당 미청구 금액이 170억파운드나 된다. 제도가 복잡하고 청구절차가 어려워서 찾아갈 사람들이 못 찾아가고 있는 혜택이다. 이는 조세범죄 금액의 17배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정말 이것저것을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영국 정부의 복지개혁 문제도 정말 한눈에 파악이 되지 않는다.

키워드

#런던 통신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영국인 재발견’ 저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