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산 호랑이부대’로 알려진 심양군구 소속의 제16집단군 훈련 장면.
‘장백산 호랑이부대’로 알려진 심양군구 소속의 제16집단군 훈련 장면.

한 국가 정상이 이웃 나라와의 접경지역을 방문한다면 그가 무슨 의도로 왔는지 인접국은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더구나 짧은 기간에 같은 지역의 여러 도시를 잇따라 방문한다면 뭔가 특별한 목적이 있다고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나 핀란드 접경지역을 한 달 사이에 세 차례나 방문했다면, 인접국은 물론 서방 모든 나라들이 그의 행보에 바짝 긴장할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일이 지난 7월 하순 중국과 북한 접경지역에서 일어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동북 거점도시 연쇄 방문이다. 연변~장춘~심양으로 이어진 그의 동북지역 방문은 한반도와 동북아에 던지는 메시지가 심상치 않다. 특히 한국 언론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장춘(長春) 군부대 방문은 북한 김정은과 깊은 연관을 가진 행보로 보인다.

시 주석은 지난 7월 16일부터 28일까지 12일 사이에 길림성과 요녕성의 핵심 도시 3곳을 차례로 방문했다. 순서대로 보면 △7월 16~17일 오전 연변 △7월 17 오후~18일 장춘 △7월 27~28일 심양 방문 순이다. 이 중 첫 번째와 세 번째 방문 내용은 국내 언론에 자세히 보도됐다. 연변에서 시 주석은 벼가 익어가는 들녘에서 쌀농사 작황을 살펴보았는가 하면 조선족 가정을 찾아가 주민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특히 조선족 주택의 온돌방에서 양반다리로 앉은 모습은 한국인들에게도 친근감을 주었다. 세 번째 도시인 심양에서 시 주석은 리밍(黎明)항공엔진사와 화천(華晨)BMW 자동차 공장을 시찰한 것이 국내 언론에 소개됐다.

그러나 중간 방문지인 장춘에서의 활동은 국내에 간단히 사실만 보도되었을 뿐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시 주석은 7월 17일 오후 연변 방문을 마치고 장춘으로 이동해 길림성 공산당위원회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내년부터 시작되는 13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방정부의 철저한 목표수행을 강조했다고 인민일보가 보도했다. 다음 날인 7월 18일 오후 3시 시 주석이 방문한 곳은 장춘에 사령부를 둔 인민해방군 ‘제16집단군(集團軍)’이다. 관영 신화통신은 시 주석의 제16집단군 시찰이 8·1 건군절을 앞두고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8·1 건군절이란 1927년 8월 1일 저우언라이(周恩來), 주더(朱德) 등 공산주의자들이 강서성 남창(南昌)에서 국민당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해 공산정권 수립 후 제정한 기념일이다.

시 주석이 시찰한 심양군구 소속의 제16집단군은 흔히 ‘장백산 호랑이부대(長白猛虎)’로 알려져 있다. 항일전쟁 시기를 거쳐 2차대전 종전 후 제대로 된 군대의 모습을 갖춘 이 부대는 국공내전 시기 이른바 ‘류덩(劉伯承과 鄧小平)대군’으로서 정주(鄭州)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7월 한반도에 투입돼 한국군과 연합군에 총부리를 겨누었다. 이 부대는 심양군구 소속 39·40집단군과 함께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휴전협정 5년 뒤인 1958년 4월에야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반도에 관한 군사정보를 가장 많이 축적한 부대라고 할 수 있다. 심양군구 3대 집단군 중에서도 16집단군은 북한을 전담하는 부대다. 본부는 장춘에 있고, 차량으로 신속히 이동해 작전을 벌이는 보병부대(摩步師)가 장춘과 통화, 장갑사단이 매하구(梅河口)와 사평(四平), 포병이 연길과 통화, 탱크부대가 연길, 공군부대가 장춘에 각각 있다. 이 집단군은 올해 1월 7일 눈 덮인 백두산에서 동계전술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가장 먼저 투입될 부대가 바로 제16집단군이며, 시 주석이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지난 7월 18일 장춘의 제16집단군 사령부를 방문한 시진핑 주석.
지난 7월 18일 장춘의 제16집단군 사령부를 방문한 시진핑 주석.

시 주석은 이날 시찰에서 “16집단군은 홍군(紅軍·인민해방군의 전신)의 혈맥을 잇고 무수한 전투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부대”라며 “모든 장병이 군의 사명을 깊이 새기고 군인정신을 진작시켜 새로운 성과를 거두라”고 지시했다. 시 주석은 특히 간부들에게 “‘동일하지 않은 작전임무(不同作戰任務)’를 겨냥해 실전 같은 조건에서 병사를 훈련시키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전투정신을 배양하라”고 강조했다. ‘동일하지 않은 작전임무’란 예상치 못한 돌발적 상황으로서 북한 급변사태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시 주석의 군부대 방문은 결국 북한 돌발사태에 대한 철저한 대비태세를 강조하기 위해 온 것으로 봐야 한다. 또 관영언론의 보도 내용이 이 정도라면, 실제 시 주석과 현지 군간부들 간에 오간 얘기는 이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내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령 최근 북한 권력 내부상황이나 국경지대 북한군 동향, 주민동향, 경제상황, 유사시 군사작전 등이 거론됐을 수 있다.

북·중 관계는 시진핑·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냉각돼왔다. 시 주석은 백성의 굶주림을 돌보지 않고 핵무력 강화에만 몰두하는 북한 지도부에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2013년 초 자신의 국가주석 취임을 한 달 앞두고 단행된 북한의 북한 3차 핵실험은 이웃집 잔칫상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됐다. 중국과의 대화 파트너였던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에는 북·중 간 고위층 상호방문마저도 중단됐다. 양국 간에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형성됐던 빙하기와 맞먹는 냉각기가 3년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진 시 주석의 군부대 방문이 김정은에게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북한이 계속 중국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북한 유사시 중국이 북한 의사와 관계없이 군을 투입해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펼 수도 있다는 강한 암시일 수 있으며, 김정은이 위급한 상황에 빠져도 중국이 보호해주지 않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로도 해석될 수 있다. 북한 김정은으로서는 이번에 상당한 압박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지만, 북한은 겉으로는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약 열흘간의 기간 동안 북한 노동신문은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 소식은 작게라도 실었지만, 시 주석의 동정을 포함한 중국 뉴스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철저히 중국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7월 말 시 주석의 동북행은 ‘다목적 방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첫 행선지인 연변 방문은 주로 낙후한 동북지역의 발전을 촉진하여 경제성과에서 소외된 조선족 사회를 다독거리고, 이를 통해 북한 유사시 접경지역의 안정과 단결을 도모하며, 중·북·러 3국 접경지역의 경제발전을 중국이 선도하려는 목적에 주안점을 두었다. 하지만 장춘 방문은 이와 분명히 다르다. 그것은 경제개혁과 대외개방, 국제사회와의 교류, 남북한 대화를 모두 팽개치고 핵개발 노선을 고집하며 공포정치로 주민을 억압하는 북한 김정은에 대한 명백한 경고의 의미로 봐야 한다. 그 다음에 이루어진 심양 방문은 동북 노(老)공업지대의 산업 실태를 점검하고 격려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이 세 도시를 선으로 연결하면 아랫면이 긴 이등변 삼각형이 된다. 그 아랫면은 북한과 마주한 압록강과 두만강이다. 중국의 대북한 압박이 한반도 전략의 재검토로 이어질지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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