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지뢰도발로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던 지난 8월 18일 최윤희 합동참모본부의장(가운데)이 중동부전선 GOP를 방문해 적 GP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AP·뉴시스
북한의 지뢰도발로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던 지난 8월 18일 최윤희 합동참모본부의장(가운데)이 중동부전선 GOP를 방문해 적 GP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AP·뉴시스

북한의 지뢰 도발로 인해 지난 8월 4일 국군 두 명이 다리를 절단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야기된 지난 몇 주 동안의 남북한 긴장 상황은 한반도는 언제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을 다시 절감케 했다. 이번 위기로 대한민국이 얻은 교훈은 전쟁 불사의 각오로 버틸 경우 오히려 더 유리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역설적인 것이었다.

전쟁과 평화란 국가의 삶과 죽음에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상적·합리적 논리보다는 오히려 역설의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라는 금언은 로마인 베제티우스의 말이다. 현대 영어로 말하자면 ‘If you want Peace, Prepare for War’이다.

문장 구조로 따져보면 ‘If You Want A, then do B’다. A를 원하거든 B를 하라는 말인데 A(평화)와 B(전쟁)는 상호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마치 시험을 잘보고 싶으면 공부를 조금하라, 살을 빼고 싶으면 밥을 많이 먹어라라는 역설적 논리 구조다. 평화는 평화의 반대 개념인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 국제정치와 안보의 역설인 것이다.

국가안보가 역설이 지배하는 영역이 된 이유는 국제정치의 영역이 일반적인 삶의 영역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문명시대를 사는 우리는 사랑도 하고 협력도 하고 불쌍한 사람을 조건 없이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들이 구성단위가 되는 국제정치체제는 ‘동물의 왕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과 사자가 함께 평화롭게 노니는 동네가 아니라 힘이 없는 양은 언제라도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그런 세상이 국제정치의 영역이다.

인간이 만든 국가라는 조직, 그리고 그런 조직들로 구성된 국제체제가 자연 상태 혹은 동물의 왕국과 비슷하다는 점은 슬프지만 현실이다. 현대국가는 맹수와 같은 속성을 가진 조직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세계는 수천, 수만 년 동안 수많은 왕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776년 미국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왕이 없는 나라가 생겼다. 미국의 건국은 왕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도 대혁명을 통해 왕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건설했다. 이처럼 국민이 주인이 된 나라들은 과거의 왕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막강해졌다. 이들 국가를 국민국가(nation state)라 부른다. 모든 국민이 국가를 위해 싸움하러 나가는 전사가 되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니 이 시대부터 국가들의 싸움은 왕의 전쟁이 아니라 국민의 전쟁이 되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국가들은 100만단위의 대군을 가지고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수천, 수만 개에 이르렀을 것임이 분명한 지구상 국가의 숫자는 2015년인 오늘 전 세계를 통틀어 200개가 조금 넘는다. 춘추전국시대 수십 개의 나라가 진시황에 의해 하나로 통합되었듯이 지구의 수천, 수만 개의 나라 중에 약한 나라들은 다 없어지고 가장 강한 나라들 약 200개가 살아남아 있는 꼴이다. 이들은 모든 전쟁에서 승리, 오늘과 같이 강한 나라를 건설하고 살아남았다. 결국 오늘 지구 위에 존재하는 나라들은 모두 속성상 ‘싸움을 잘하는 나라’이다. 지금 남극을 제외한 지구의 모든 땅을 한 치도 남김없이 다 차지하고 있다.

18세기의 프랑스와 19세기의 독일은 전쟁 잘하는 국민국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대혁명 후 프랑스는 국민개병제를 실시한 최초의 나라가 되었고 100만대군을 거느릴 수 있게 된 나폴레옹은 기존의 구체제를 처절하게 유린했다. 5개의 막강한 왕국이 힘을 합쳐 겨우 프랑스를 제압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독일 땅에는 18세기까지도 수백 개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들을 하나로 통일한 사람이 프러시아의 재상 비스마르크였다. 비스마르크는 전쟁을 통해 독일제국을 건설했다. 독일제국의 건설은 궁극적으로 프랑스를 격파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870년 프러시아에 패배한 프랑스는 이를 갈고 있다가 1914년 1차 대전이 벌어지자 복수의 기회가 왔다고 환호했다.

모든 국가의 기본 조직은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의 확보와 유지’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현대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조세(租稅)와 징집(徵集)이다. 조세를 통해 전쟁할 수 있는 물질적 능력을 마련하고, 징집을 통해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인적 능력, 즉 군대(常備軍)를 보유한다. 현대국가는 속성상 전쟁을 잘하기 위한 조직이며, 또한 그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조세 능력과 징집 능력이 약한 정치조직은 현대국가로서 존재할 수 없다.

이처럼 현대국가의 탄생과 존재는 전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현대국가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깊이 연구한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틸리(Charles Tilly)는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한다(War made the state and the state made war)”라는 결정적인 언급을 남겼다. 이 세상의 강대국은 물론 대부분의 나라들도 전쟁의 산물이며 살아가기 위해 모두들 전쟁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의 산물로 탄생했고 한국전쟁을 통해 오늘과 같은 강력한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미 2500년 이전에도 존재했던 나라를 상징하는 ‘國(국)’이라는 한자가 있다. 이 글자는 땅을 상징하는 일(-), 사람을 상징하는 작은 네모 입 구(ㅁ), 창을 상징하는 과(戈)를 큰 네모(ㅁ)가 둘러싼 상형문자다. 해설하자면 ‘사람이 창을 들고 서서 지키는 큰 땅’이라는 의미다. 큰 네모는 큰 땅, 즉 영토를 상징하고 창을 상징하는 과(戈)라는 글자는 주권을 상징하며, 입 구(ㅁ) 자는 국민을 상징한다. 이 오래된 글자에 국가의 3요소인 영토, 주권, 국민을 상징하는 글자가 다 들어가 있어서 놀랍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란 ‘창을 들고 지키는 큰 땅’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 세상 온 나라가 군대를 보유하고 엄청나게 비싼 무기를 아낌없이 갖추고 있는 것 아닌가!

한국 최대의 회사인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필리핀의 국내총생산(GDP)을 훨씬 상회한다. 삼성전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 한 자루 가지고 있지 않다. 필리핀은 군함과 탱크, 전투기를 갖추고 있다. 삼성은 ‘회사’이고 필리핀은 ‘국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회사원은 회사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 국민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 국민으로서의 나, 회사원으로서의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이다.

회사의 사장과 국가의 대통령 혹은 총리는 한 가지 점에서 다르다. 대통령은 전쟁을 지휘하고 수행해야 하는 권리와 임무를 가진다. ‘나는 죽어도 전쟁을 할 수 없다’는 사람은 애초에 대통령의 자격을 결여한 사람이다. 대통령 혹은 총리는 여차할 경우 국군을 지휘해서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국가에 단 한 명밖에 없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임무는 그래서 사장님, 회장님과는 물론 시장과 도지사, 국회의원과도 질적으로 다르다.

200여개의 현대국가는 속성상 자신보다 위에 있는 나라를 인정할 수 없다. 한국은 절대로 중국이나 미국을 우리보다 ‘위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은 파나마보다 힘이 센 나라이지만 파나마보다 위에 있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주권국(主權國)이지만 파나마도 주권국이다. 파나마의 주권은 미국의 주권과 마찬가지로 대내적으로 최고이며 대외적으로는 독립적이다. 즉 국가들은 국제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국가보다 상위의 권력을 인정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주권을 양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국제정치의 영역은 무정부 상태라고 말한다. 무정부를 상징하는 영어 단어 ‘Anarchy’는 ‘왕(archy)이 없는 곳’이라는 의미다. 국내 정치를 구성하는 개인과 달리 국제정치를 구성하는 국가들은 자신보다 상위의 권력(왕과 정부)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국가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권위 있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상위의 조직이 존재할 수 없다. 국제정치에는 국내 정치처럼 경찰도 없고 법원도 없고 왕도 없다. 그래서 국가들은 자신의 안전을 자신의 힘으로 지키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국가의 죽음에 관해 연구한 미국의 여성 국제정치학자 타니샤 파잘(Tanisha Fazal)은 1816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에는 207개의 나라가 존재했었는데 2000년 당시 207개 국가 중에서 꼭 3분의 1인 66개 국가가 없어져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없어진 나라 66개국 중 75%에 해당하는 50개 국가는 이웃나라의 폭력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국제정치의 역사가 양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증명한 연구다. 죽은 나라들은 못된 나라가 아니었다. 다만 약한 나라였을 뿐이다. 타니샤 파잘 교수의 죽은 나라 목록에 조선이 들어가 있다. 파잘은 조선을 ‘1905년 일본에 의해 폭력적인 죽음을 당한 나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중 한 사람은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직무를 유기한 황당한 논리다. ‘최악의 평화’란 전쟁도 해보지 못하고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들이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당면했던 상태다. 전쟁을 벌이지 않았으니 죽은 조선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게 평화일 수 있는가? 전쟁도 하지 않은 채 김정은에 의해 통일된 한반도 상황도 ‘최악의 평화’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는 항복을 통해서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말이 맞다면 군대를 보유할 필요도 없다. 최악의 평화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이 최근 한때 그런 나라였다. 북한의 공갈 협박에 늘 당하기만 했다. 다시 일본이 공격해 온다면, 또 다시 중국이 공격해 온다면, 그리고 북한이 공격해 온다면 한국민은 죽기살기로 싸울 것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택하지,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평화’를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참한 상태에서 연명하고 사는 최악의 평화를 택하기보다는 자유와 독립을 위해 전쟁터로 달려갈 것이다.

유명한 전쟁이론가 마이클 하워드는 “전쟁을 포기한 자는 곧, 자신의 운명이 그렇지 않은 자의 손아귀 속에 들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여년 동안의 한반도 모습이 그러했다. 종합 국력이 북한보다 훨씬 막강한 대한민국이 북한에 쩔쩔매던 비정상의 시대였다. 이번 북한이 도발한 지뢰폭발 사건에서 대한민국은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정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전역을 앞둔 병사들이 전역 연기 신청을 했고 예비군들이 언제라도 전쟁터로 달려가겠다며 불러만 달라고 자신의 군화와 군복 사진을 올렸다.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을 뒤로 빼고 자신들이 앞으로 나가 싸우겠다고 했다. 오래간만에 대한민국이 나라답게 행동했다. 나라를 위해 한 목숨 바칠 각오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평화 통일을 이룩하고 대한민국을 세계 유수의 강대국이 될 수 있게 만드는 최고의 전략 자산이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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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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