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런던 세인트폴성당에서 열린 영국 본토 항공전 75주년 기념식에서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오른쪽)가 다른 참석자들이 국가를 부를 때 침묵하고 있다. ⓒphoto AP
지난 9월 15일 런던 세인트폴성당에서 열린 영국 본토 항공전 75주년 기념식에서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오른쪽)가 다른 참석자들이 국가를 부를 때 침묵하고 있다. ⓒphoto AP

지난 9월 12일 영국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예상대로 제러미 코빈(66) 하원의원이 59% 득표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다. 노동당이 드디어 돌아오지 못할 루비콘강을 건넜고, 그 결과 노동당은 물론 영국 정치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평이 나온다. 이날 이후 영국 정치는 ‘코빈 이전과 이후’로 나눠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예상치 않은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던 영국 정계에 4개월 전 총선 때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코빈이 당 대표가 된 후 영국 정치에는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노동당 내부부터 그렇다. 코빈의 승리 발표가 나자마자 당 대표 후보 중 한 명인 이베브 쿠퍼 그림자내각 내무부 장관의 사임했다. 코빈의 승리 연설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림자내각 각료들의 사퇴가 줄줄이 이어졌다. 리즈 캔들 공중보건장관을 비롯해 재무장관, 고용연금장관, 교육장관, 사회장관, 보건장관 등 7명이 사임했다. 다른 중진들도 분명하게 “코빈의 내각에서는 일을 하기 힘들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다른 분열의 징조가 표면상으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문제는 분명 내재해 있다. 코빈이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점 때문에 반대자들이 일단 숨을 죽이고 있겠지만 머지않아 파열음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하는 당내 인사들이 많다. ‘코빈이 1년을 버티면 최고로 오래간 것’이라는 예상부터 심지어는 분당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분당이 있을 수 있다는 언급이다. 정책에 관계되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어쩔 수 없이 코빈도 타협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코빈의 행적으로는 그것이 쉬울 것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코빈이 당 대표 확정 후 그림자내각 재무장관으로 뽑은 존 맥도넬의 성향 때문에도 특히 그렇다. 맥도넬은 코빈보다 더 많이 당 지도부의 방침에 항명한 인사다. 코빈보다 더 강직한 인물이라는 평도 있다. 그가 야당에서 2인자 역할을 하는 그림자내각 재무장관에 임명되었으니 분란은 불문가지란 말이다. 맥도넬의 임명은 오래전부터 예상되었으나 그가 임명되기 직전까지도 논란이 있었다. 심지어 내각 동료들은 물론 코빈을 지지하는 노동조합들도 반대를 했다.

어찌되었건 코빈의 항해는 시작되었다. 그가 향할 바다에 어떤 난관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당선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듯하다. 코빈은 당 대표 첫날부터 일반의 예상을 뒤엎었고, 이어 ‘사고’까지 쳤다. 코빈은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바로 옆 엘리자베스컨퍼런스홀에서 당선 결과 발표와 함께 아주 격정적인 사자후를 토할 것이라는 예상부터 뒤집었다.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 평범한 연설을 한 뒤 바로 홀을 떠나 기다리고 있던 소수의 지지자들과 축배를 들었다. 철저한 채식주의자이며 절대금주주의자(teetotaler)인 코빈은 소다수를 마시면서 테이블 위에 올라 승리를 만끽했다. 그러면서 영국 사회주의자들의 노래인 ‘적기가(Red Flag)’를 불렀다. 그리고는 한 시간 뒤 바로 옆 광장에서 열린 ‘영국 정부 난민 대책에 항의하는 모임’에 참석해서 “난민들을 더 많이 수용하자”는 평소의 논지를 펴며 연설하는 것으로 첫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사고를 친 건 지난 9월 15일 런던 세인트폴성당에서 열린 영국 본토 항공전 75주년 기념식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등 참석자들이 영국 국가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Queen)’를 부르는 동안 침묵을 지킨 것이다. 영국 본토 항공전 기념식은 1940년 영국이 독일과 벌였던 치열한 공중전 희생자를 추도하는 행사다.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참석한 행사에서 국가를 안 부르고 입을 다물고 있자 보수 쪽에서는 난리가 났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거기에 대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은 ‘코빈이 국가를 모르는 것 아니냐’고도 한다. 노동당에서는 공식적으로 ‘전몰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그가 당 대표가 된 후 넥타이를 맬지 안 맬지도 세간의 관심거리였다. 당 대표 선거 전 기자들은 평소에 넥타이를 매지 않는 코빈이 의회에 출석할 때도 넥타이를 맬지 의문을 표시했고 펍에서 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당 대표로서 출근 첫날 그는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그런데 이날 보수, 노동 양당의 넥타이가 인상적이었다. 코빈은 붉은 넥타이를 매고 나왔는데 캐머런을 비롯해 의석 앞줄에 앉은 보수당 각료들은 모두 똑같이 무늬가 없는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코빈의 넥타이 색깔 비밀이 어딘가에서 샜다는 가십까지 등장했다.

코빈이 정부가 제공하는 운전기사가 모는 차를 탈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분한 의견이 있었다. 첫날 등원 때는 누군가가 운전해주는, 평소에 타던 복스홀 웨건을 타고 등원했다. 영국 야당 당수의 공식 명칭은 ‘영국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야당 대표(Leader of Her Majesty’s Most Loyal Opposition in the United Kingdom)’다. 단순한 정치단체가 아니라 공식적인 국가기관의 하나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정부가 제공하는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도 받고 의원 세비에 더해 총리와 같은 금액의 수당(7만3617파운드)도 받는다. 현재 영국 의원들의 세비는 2015년 5월 총선 기준 7만4000파운드다. 야당 당수는 영국 왕의 정치문제 자문단인 추밀원(Privy Council)의 정식 위원이 되고 국가의 안전에 관계되는 일급기밀 자료도 공유한다.

‘재야의원’처럼 행동하던 ‘야생마’ 코빈이 제도권에 들어와서 얼마나 큰 폭풍을 일으킬지는 정말 흥미롭다. 보수언론이 얘기하듯 그들만의 잔치인 ‘찻잔 속의 태풍’이 될지, 혹은 영국을 바꾸고 유럽을 바꾸고 결국 세상을 바꿀 폭풍이 될지 모두들 궁금해 한다. 앞으로의 5년이 정말 흥미로울 듯하다. 영국 정치에 이만큼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대처 이후 처음이다.

사실 코빈의 이번 당 대표 당선부터가 거의 한 편의 드라마였다.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영화 대본을 능가하는 승리(overwhelming movie script victory)’였다. 하원의원 생활 32년을 평의원으로만 지낸 무명의, 그것도 당명을 단골로 어기던 반골 중의 반골인 극좌파 의원이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세상의 기류를 거슬러 대표가 된 스토리이니 말이다. 거기다가 당 대표 입후보도 코빈 본인이 당선된다는 생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당내에서 거의 30여년을 숨죽여 있던 사회주의자들의 대표로 주위의 강권에 떠밀려서 입후보를 했다.

코빈은 한 번도 당직이나 정부관직을 맡아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묵묵히 일하고 당내 정치보다는 당 밖의 사회운동 활동에만 열중했다. 상식적으로는 믿기 어렵겠지만 의원들 사이에서도 대화를 해본 의원보다 안 해본 동료의원이 더 많을 정도였다. 코빈 당선 후 그림자내각에 입각한 동료의원 몇 명의 경우 전화로 처음 인사를 나누고 입각 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더욱이 코빈은 당 대표 입후보 마감일(6월 15일 12시) 한 시간 전까지 동료의원 필요 추천수 35개에서 7개가 모자라는 28개밖에 받지 못했다. 마감 10분 전이 되어도 3개가 모자랐다. 코빈을 지지하는 동료의원과 참모들이 아직도 다른 의원을 당 대표로 추천하지 않은 의원을 찾아 하원 사무실들을 거의 달리다시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지지는 하지 않더라도 민주정당이라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토론의 장도 열어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코빈 측의 그럴듯한 꼬임(?)에 넘어간 의원 3명이 지지를 해주었다. 겨우 시간에 맞추어 코빈 자신의 자천 1표를 더해 36명의 추천이 담긴 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다. 마지막 35번째 동의를 해준 옥스퍼드 동부지구 의원은 지금도 추천을 후회하며 동료 노동당 의원들로부터 ‘멍청이(moron)’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별명까지 얻었다고 한다. “순진하게 꼬임에 넘어가 당을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다”고. 코빈 등록 서류에 서명을 해준 35명의 의원 중 반이 사실은 코빈을 당 대표로 원하지 않았고 공개적으로도 그렇게 말했다.

노동당 대표 후보 등록을 위한 동료의원 추천은 사실 요식 행위가 아니다. 이번에 그림자내각 재무장관이 된 존 맥도넬 의원의 경우를 보자. 코빈보다 더 반골 의원인 그는 2010년 당수 선거 때 입후보하고자 했으나 동료의원 추천을 반밖에 못 받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만큼 추천이 까다롭다는 얘기다.

그런데 코빈의 경우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추천에 동의한 의원들이 거의 반이라는 사실은 운명이라고밖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코빈을 진정으로 지지해서 등록 추천에 서명한 의원은 20명에 불과했다. 영국 노동당 의원 232명 중 10%도 안 되는 숫자이다.

등록은 가까스로 마쳤지만 본인은 물론 영국 언론, 노동당, 보수당까지 코빈의 당선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코빈의 측근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오죽했으면 코빈의 가장 주요한 측근 한 명이 공식 도박업장(betting shop)을 찾아가 20파운드를 걸고 코빈이 당 대표가 되는 승률을 따져봤는데 100 대 1이었다고 한다. 그 뒤 승률은 200 대 1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선거 초반 코빈 바람이 폭풍으로 바뀌기 전 네 명의 후보 중 가장 선두를 달리던 인물은 앤디 버넘 의원이었다. 그에게 영국 최대 노동조합 유나이트가 접근했다. 자신들 조합이 지지를 표명하고자 하는데 의향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버넘 후보는 노동당 정부에서 각종 장관직을 역임했고 그림자내각 현직 장관이었으니 노동조합으로는 적합한 후보였다고 여겼다. 그런데 제법 장고를 한 버넘 후보는 노동조합 지지를 받으면 자신이 좌파적인 이미지로 비칠까봐 거절했다. 그 결과 노조는 코빈을 선택했다. 물론 대중적인 지지가 코빈 당선의 결정적 이유라고는 하지만, 만일 노조가 버넘을 지지했다면 코빈이 그렇게 압도적으로 당선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언론의 논평이다. 승리는 했겠지만 박빙의 승부였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 다음에 벌어진 선거운동도 코빈 승리 드라마에 재미를 더해 줄 좋은 소재다. 가디언지는 이렇게 설명했다. “코빈의 선거운동은 지난 30년간 영국 정치 이론을 뒤집는 정반대이론(antithesis)의 실험장이었다. 용맹담은 앞으로 책으로 나올 듯도 하다. 블레어팀들의 아주 정교한 선거운동(간단한 메시지, 정교한 안무를 하듯이 사전에 짜인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연단 연설과 행동, 현장에서 바로 상대방이나 기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반응하는 위기대응팀, 연설을 BBC 주요 뉴스 시간과 맞추는 것 등)과는 완전히 다르게 했다. 코빈의 행동은 그런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연설 시간은 그냥 코빈이 저녁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맞췄다. BBC 6시 뉴스와는 상관없이 연설은 거의 6시30분이나 7시에 시작했다.” 거의 무계획의 선거운동이었다는 말이다.

코빈의 선거운동을 한 주요인물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처음에는 전혀 희망 없는 후보였고 경험이나 하자고 시작했는데 결국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초라하게 시작한 그의 선거운동이 끝날 때는 무려 1만6241명의 자원봉사자가 나서는 규모로 커버린 것이 대표적 기적이다.

그를 위해 뛰는 자원봉사자들은 13세에서 92세까지 다양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다른 자원봉사자가 만든 앱과 프로그램으로 각자 집에서 전화를 걸고 받고 듣고 기록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대규모의 자원봉사자 선거운동은 타 후보가 따라올 수가 없었다. 가장 나이 많고 가장 아날로그적이어야 할 코빈이 가장 디지털한 선거운동을 했다는 것도 참 역설적이다. 그래서 코빈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노동당 의원들 중에도 유권자들과 괴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2020년 총선에는 소셜미디어가 아주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한다. 현재 정치가 이루어지는 모습은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 의원들은 격리되어 있어 현실을 잘 모른다. 정론지 언론의 데스크는 더더욱 현실을 모른다. 그들은 지금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들은 완전히 현실 파악을 못하고 있다. 이제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신문을 사지 않는다. 그들은 온라인으로 조금 읽고 온라인 뉴스 맞춤 서비스로 좀 더 읽는다.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유권자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내 선거운동은 소셜미디어 중심으로 움직였다. 내 개인 트위터는 10만4000 팔로어가 있고 페이스북에는 12만4000개의 ‘좋아요’가 있다. 이런 숫자는 엄청난 것이다. 물론 리트윗과 리샌딩까지 치면 정말 대단하다.”

영국 유권자들의 코빈 찬반 기고

반대! / 생각도 사상도 고착… 변화에 대한 대책이 없다

메튜 버첼 홍보회사 이사·전 고용연금부 장관 특별보좌관

제러미 코빈은 노동당의 총선 승리 가능성과 신뢰성에 대해 아주 심각한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다. 코빈의 정치적 견해는 대다수 영국 유권자의 생각과 너무 다르다. 노동당이 재집권을 하기 위해서는 특히 중도 부동 유권자를 잡아야 하는데 코빈의 정책은 현실세계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코빈은 오랜 정치 생활을 통해 자신의 원칙을 일관성 있게 지켜 지지자들로부터 숭배에 가까운 지지를 받고 있지만, 그 것은 지난 30여년간 새로운 정책을 전혀 개발해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코빈은 자신이 한창 젊었을 때 받아들였던 냉전시대에나 통하던 생각과 사상에 고착되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는 바로 코빈이 냉엄한 현실세계를 받아들일 자세도 마음도 없다는 뜻이다. 코빈의 당선으로 노동당은 수년간의 정파 간 정쟁으로 내몰릴 것이 뻔하다. 그런 정쟁을 통해 노동당은 아주 오랜 기간 회복할 수 없는 명예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코빈 인기의 주요 이유들은 코빈 개인이나 정책과는 별 상관이 없다. 별로 인상적이지도 영감도 없던 당수 경쟁에서 코빈 혼자만이 확연하게 차별되는 후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도 없고 주장하는 바도 없던 데 비해 코빈은 최소한 일관성은 있었다.

코빈의 인기는 영국 전체를 뒤덮고 있는 정치에 대한 영국인의 반감과도 연관이 있다. 사람들은 기득권 체제 자체를 발길질하고 싶어하고 나라를 이끌어 가는 소수의 유복한 엘리트 정치인들을 회초리로 휘갈기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그런 사람들의 욕망이 표출되는 계기를 코빈이 후보로 나섬으로써 제공해 준 셈이다.

코빈은 카리스마가 있는 정치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차라리 그 반대이다. 코빈이 좌파로서 열성적으로 행해 온 모든 정치적인 활동과 노선이 코빈의 강점이자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코빈은 자신의 확실한 좌파 정책을 주저하지 않고 명백하게 사람들에게 말해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코빈의 지지자들은 일반 영국인 유권자들에 비하면 너무 좌편향적이다. 또 코빈의 정책 논점은 선거에서는 해악이 될 요소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동시에 코빈이 말하는 많은 것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세금 문제나 경제 문제는 거의 몽상에 가깝다. 그리고 정치적 선택의 문제에 닥치면 어떤 결정도 하길 회피한다.

지난 30여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코빈은 영국 유권자들의 생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정책을 만들어 왔다. 코빈의 외교 문제에 관한 입장은 특별한 감시를 받을 정도였다.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혼란한 행동이나 입장 때문에 그가 계속해서 곤경에 처할 위험은 가정이 아니라 당장의 문제인 듯하다.

지지! / 지배권력 눈치 보지 않고 술수 쓰지 않는 정치

게리 쇼 목수·모자이크 예술가

코빈의 인기가 오른 이유는 나를 비롯한 많은 유권자들이 현재 영국 정치를 잡고 있는 정치꾼들(crop of politicians)에 의해 무시당하고 있거나 그들이 우리를 대표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코빈은 술수를 쓰지 않는다. 코빈에 대해 요즘 악담을 한 사람은 결국 본인이 악담을 돌려받게 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코빈의 인기가 더욱 올라가게 될 것이다. 코빈은 다른 노동당 당수 후보들보다 더 철두철미한(radical) 생각을 말한다. 더군다나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 때보다 낮은 지금, 코빈이 무엇보다 우선해서 모든 사람들을 솔직하고 진지한 애정 어린 관심으로 대하는 것이 인기도가 높은 이유이다.

나는 노동당이 본연의 좌파적 위치에서 중도노선으로 이동한다면 보수당의 적수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아주 오래전에 코빈씨(Mr Corvyn·영국인은 잘 안 쓰는 호칭이지만 이 경우에는 최고의 존경의 표시다)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나는 그를 지지하고 있다.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그의 정직성과 열정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지금은 나 말고도 연령을 불문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엄청난 수의 젊은 세대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 그는 특히 현 직업정치인들은 열정이 전혀 없다고 느끼는 젊은이들, 첫 투표를 하는 젊은이들로부터 대거 지지를 받고 있다. 그들의 부모도, 코빈씨가 자신이 속한 정당 정책을 격렬하게 지탄했던 것처럼, 이라크전쟁을 반대해 길거리로 나섰던 세대들이다.

그는 모든 사람의 인권을 위해 투쟁한 이력을 갖고 있다. 강대국 지배세력이 자행하는 전쟁에 반대해 위축되지 않고 진실을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 그의 자세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랫동안 그를 따르게 만들었다. 이제 막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코빈 현상’이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전에는 정치술수에만 능란한 주류 정치인 모두에 무관심했었다.

전혀 의심할 여지없이 그에게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그의 정책 때문이다. 코빈씨 한 사람만이 노동당 당수 경쟁에서 완전한 목소리를 냈다. 또 그는 소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보다 정당한 나라에서 살기 위해 실시되어야 할 정책 방향에 대해 누구보다도 명확하고 보다 훌륭한 개혁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그가 보좌관이나 홍보전문가를 두고 있지 않다는 점도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다. 그가 하는 말은 연설대필가가 써준 걸 그대로 읽는 게 아니라 모두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정한 평등과 인권의 세상이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코빈씨는 소수 지배권력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을 결코 무서워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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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영국인 재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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