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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8호]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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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통신]“전 국민 100만원 기본소득 지급”

핀란드 복지실험의 진실

이보영  주간조선 핀란드 통신원 

▲ 핀란드 중도우파 내각을 이끌고 있는 유하 시필레 총리. photo 연합
‘핀란드, 전 국민에 기본소득 100만원 일괄 지급 결정’.
   
   얼마 전 지인이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보내온 한국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아 서둘러 읽어보니 이 제도를 왜, 그리고 어떻게 실시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분명치 않았다. 핀란드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필자에게는 현실과 바로 맞닿아있는 문제이기에 얼른 현지 신문을 찾아보기로 했다.
   
   핀란드 최대 일간지 ‘헬싱긴사노맛’에서는 우선 “외국 유수의 일간지들이 핀란드의 기본소득 일괄 지급 계획에 대해 다투어 보도하며 지구촌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긍정적인 면 위주로 다소 성급히 보도한 외국 일간지들과는 달리, 이 기사는 간과하고 있던 서늘한 ‘팩트’들도 차분히 짚어 나갔다.
   
   첫째, 전 국민 800유로(약 100만원) 기본소득 지급은 당장 실시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초기 기획 단계라는 점, 수년에 걸친 파일럿 프로그램을 거친 후에야 전격적으로 ‘실시’ 혹은 ‘비실시’될지가 최종결정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핀란드의 전문가 그룹은 입을 모아 “기본소득 지급에 대해 처음에는 사람들이 마치 유토피아가 지상에서 실현된 것처럼 혹할 수 있지만, 800유로는 현재 저소득층에 지원되는 사회보장 지원금보다 많이 모자라는 금액이며, 이 밖에도 좀 더 구체적인 실시 방법과 내용을 알게 된다면 찬성하는 숫자가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논평했다.
   
   현재의 복지정책을 다 없애고 기본소득 지급으로 복지정책을 일원화한다는 정책은 복지와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당이나 좌파 쪽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강조하는 핀란드의 중도우파 내각이 전격적으로 밀고 있는 정책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그 목적은 복지 확대가 아니라 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복지를 희생시키고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복지 확대가 아닌 복지 축소
   
   사실 핀란드는 지금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 핀란드는 유럽의 ‘New Sick Man(새로운 환자)’이라는 다소 치욕적인 별명을 얻었다. 지난 수년간 유로존에서 몰락하는 경제로 환자 취급을 받던 ‘Old Sick Man(오래된 환자)’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국가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3분기 핀란드 GDP는 0.6%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여 그리스(0.5% 마이너스 성장률)를 누르고(?) 유로존에서 최악을 기록했다. 실업률도 지난 15년간 가장 높은 9.53%라고 한다.
   
   경제 전문가들은 핀란드 경제를 수렁으로 빠뜨린 원인을 간추려 몇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핀란드의 대표 기업이었던 노키아의 몰락, 경쟁력을 잃은 높은 인건비, 러시아와의 부진한 무역과 더불어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핀란드 정부가 짊어진 막대한 사회보장 비용이다.
   
   핀란드는 GDP 대비 사회복지 비용이 31%로 OECD 국가 중 2위를 차지하고 있다.(참고로 1위는 프랑스, 한국은 10.4%로 꼴찌) 한동안 북유럽의 ‘노르딕 복지 모델’은 큰 정부와 경쟁적 자본주의의 조화로운 결합이며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성공 사례로 칭송받았었다. 핀란드는 이제 그 커다란 복지 정부에 ‘기본소득제’라는 메스를 대는 큰 수술을 실시하여 정부의 축소를 꾀하고 있다. 단순화된 복지는 국가의 사회복지 비용 지출을 줄여 줄 뿐만 아니라, 극도로 복잡하고 세세한 복지제도 운영을 위해 필요했던 공무원, 공간, 조직 등 복지 운영 예산도 자연적으로 축소시켜 준다.
   
   핀란드 인구 540만명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월 800유로를 지급할 경우,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핀란드 정부는 1년에 522억유로(약 68조원)라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2016년 책정된 핀란드 정부의 1년 총 예산은 491억유로(약 64조원)밖에 안 된다. 그러면 이런 비현실적인 계산이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을까?
   
   핀란드 정부는 중산층 이상 국민에게도 물론 기본소득 800유로를 차등 없이 지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핀란드 정부의 숨겨진 꼼수(?)는 높아진 소득세율을 통해 그 돈을 다시 국가로 회수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여러 관련 기사들을 읽으며 든 결론은 ‘앞으로 절대로 실업자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기본소득제 먹이사슬의 가장 밑에 실업자가 위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은 취업
   
   현재 핀란드의 복지제도하에서 실업자는 최소 한 달에 약 700유로(약 91만원) 정도의 실업자금을 받으며 경우에 따라서 주거비, 생활비, 자녀양육비 등도 보조적으로 받는다. 이 모든 지원금을 합치면 실업자 가정은 한 달에 2000~3000유로(약 260만~390만원) 정도까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핀란드인의 월평균 임금이 3200유로(약 417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실업자가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받는 금액과 한 달간 뼈빠지게 일한 근로자가 받은 금액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혜택에 익숙해진 실업자들은 지원금에 못 미치는 저임금 일자리에는 취업을 꺼리게 되고, 아르바이트 활동도 사양하게 된다. 일정 수입이 생기면 그만큼 정부 지원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즉 현 시스템 내에서 실업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잉여인간으로 살아가게 되며 시스템이 본의 아니게 재취업을 막는 걸림돌이 되기까지 한다.
   
   결국 기초생활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기본소득 800유로만 달랑 받게 된다면 이들에게 남겨진 선택은 단 하나, ‘취업’뿐일 것이다. 기본소득제 실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실업자를 줄여 국가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것!
   
   그런데 만약 자발적인 실업자 그룹이 아닌 적자생존에서 밀려 취업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타의적 실업자들에게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기본소득제 도입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국가 경제를 구축하려는 핀란드 정부의 뜻은 물론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동안 사회적 약자에게 내밀었던 그 ‘위대’했던 이타적 손길을 조금씩 거두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만은 없다.
   
   핀란드 정부가 도입하려는 기본소득제가 깔고 있는 복지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명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복지국가란 지금까지 동물계에 나타난 이타적 시스템 중 아마도 가장 위대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타적 시스템도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그것은 그 시스템을 착취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이기적 개체에게 남용당할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보영
   
   주간조선 핀란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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