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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호]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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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31년 지역주의 벽 넘은 김부겸의 다음 도전은

정장열  부장대우 

▲ 지난 4월 13일 밤 10시40분경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당선이 확정된 후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손을 치켜들고 있다. photo 연합
87년 체제 도입, 이른바 ‘민주화 30년’을 앞두고 한국 정치가 한 걸음 더 진전했다. 이번에 치러진 4·13 총선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로 평가받던 지역주의가 본격적으로 무너진 기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번 총선에서는 적진에서 살아 돌아온 도전자들이 숱하게 나왔다. 보수주의의 심장이라는 TK(대구 경북)의 경우 대구 수성갑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2전3기의 신화를 썼고 대구 북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고 무소속 출마한 홍의락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PK(부산 경남)에서도 이변이 속출했다. 부산에서는 김영춘(진갑)·전재수(북·강서갑)·최인호(사하갑)·김해영(연제)·박재호(남을) 후보 등 무려 5명의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고, 경남에서도 민홍철(김해갑)·김경수(김해을)·서형수(양산을) 등 더불어민주당에서 3명의 당선자가 나왔다. 반대로 ‘민주당의 아성’으로 평가받던 호남에서는 전남 순천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2014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순천 곡성)에서 4전5기의 신화를 쓴 데 이어 재선에도 성공하는 쾌거를 올렸다. 또 전북 전주을에서는 새누리당 정운천 후보가 3수 만에 지역주의의 벽을 넘었다. 철옹성 같던 영호남 지역주의의 벽도 민심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국 무너져내릴 수 있음을 이들 후보가 입증했다.
   
   이번에 지역주의의 벽을 넘은 후보들 중 가장 의미 있는 승리로 평가받는 것은 김부겸 후보의 경우다. 현 정권에서 친박(親朴)의 핵으로 평가받던 대구에서 민주당 계열의 국회의원이 탄생한 것은 31년 만의 일이기 때문이다. PK의 경우 이번에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겨 부산 사하구을에서 당선된 조경태 의원이 17~19대 부산에서 민주당 계열과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3선을 기록한 적이 있고, 호남에서도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이미 19대 국회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대구는 중선거구제로 치러진 1985년의 12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한민주당 유성환(대구 중·서구)·신도환(대구 남·수성) 후보가 당선된 이후 민주당 계열의 당선자가 처음 나왔다. 범위를 TK 전체로 넓혀도 의미가 각별하긴 마찬가지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다는 정당 후보가 TK에서 당선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노(盧)3김(金)이 각축을 벌인 1988년 13대 총선 당시 통일민주당의 오경의·신영국 후보가 각각 경북 안동과 문경·점촌에서 당선된 적이 있지만 두 후보는 DJ가 아닌 YS당 소속이었다. 대구에선 YS당조차 13대 이후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삼세판의 승부로 이끈 것
   
   오히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반(反)YS 정서가 TK를 지배했다. 3당 합당 이후 치러진 당시 총선에서 민자당 총재였던 YS가 민정당 인사들을 물갈이한 데 대한 반발로 TK 전체 32석 중 10석이 정주영 총재가 이끌던 통일국민당과 무소속으로 넘어갔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도 반YS 정서로 인해 TK 32석 중 10석이 여당인 신한국당 대신 자민련에 돌아갔다. 오히려 당시 DJ가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와 각축을 벌인 이기택 총재의 통합민주당이 안동에서 권오을 후보를 당선시키는 기염을 올렸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TK는 신한국당의 뒤를 이은 한나라당, 새누리당 외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김부겸 후보 이전에 TK 문을 기세 좋게 두드린 후보가 몇몇 있었지만 결국 지역감정의 벽을 넘지 못했다. 16대 총선에선 새천년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한 김중권 후보(봉화·울진)가 19표 차로 석패했는데, 이것이 TK에서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올린 최고의 성적이었다. 17대 총선에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 간판을 달고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차관이 구미을에 출마했지만 40.3%의 득표에 그쳤고, 2005년 10월 대구 동구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소속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출마했지만 44% 득표로 패배했다.
   
   김부겸의 도전이 시작된 것은 2012년 19대 총선부터였다. 그는 19대 총선 때 자신을 세 번 당선시켜준 경기도 군포를 떠나 대구 수성갑에 도전했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구의 경북고등학교를 나온 정통TK 출신이지만 ‘민주당 간판’으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당시 그는 “지역주의·기득권·과거, 세 개의 벽을 넘으려 한다”며 “월급쟁이 국회의원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시 득표율은 40.4%. TK 27석을 새누리당이 전부 석권한 선거에서 파란이라 불릴 만한 득표율이었다. “30%도 아니고 40% 넘는 지지를 받고 돌아서면 도망가는 거라 생각했다”는 자신의 말대로 이 득표율은 그를 대구에 계속 붙들어 맸고, 결국 그를 ‘삼세판’의 승부로 이끌었다. 그는 2014년 지방선거 때도 대구시장에 출마해 40.3%의 득표율을 올리며 이번 승리의 기반을 다졌다. 당시 그는 대구시민들에게 20년째 전국 꼴찌인 대구의 지역총생산 등 대구의 낙후성을 지적하며 “대구는 정치권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야당이 대구에서 승리해야만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된다고 믿고, 오만과 나태에 빠져 있던 국회의원들이 시민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을 지켜보며 실망한 대구 유권자들에게 그의 이런 호소가 먹혀들어간 셈이다.
   
   특히 이번에 김부겸 후보에게 금배지를 달아준 대구 수성갑 지역구는 지난 대구시장 선거 당시 김 후보에게 50.1%의 지지를 보낸 바 있다. 수성갑 득표율만 따지면 당시 승자인 현 권영진 대구시장을 김부겸 후보가 앞섰다. 수성갑은 전체 유권자(20만594명) 중 40대 이하가 59.46%(11만9306명)로 대구 전체의 40대 이하 유권자 비율인 56.03%보다 높다. 그만큼 ‘야성(野性)’이 강한 지역구가 이번에 이변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수성갑은 이번에 68.2%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대구에서 김부겸 후보가 당선된 것은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에 의해 호남 지역주의가 깨진 것과 비교해도 의미가 더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남을 ‘변화’라고 한다면 대구는 ‘혁명’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호남 현역들이 중심이 됐던 국민의당 후보들이 호남을 석권한 것은 지역주의의 또 다른 변형이었다는 점에서 김부겸의 대구 당선이 돋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동국대 정치학과 박명호 교수는 “영남 패권주의는 우리 정치에서 호남 패권주의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하고 수적으로도 우세하다”며 “충청 등과 짝을 이루지 못하면 홀로서기를 할 수 없었던 호남 패권주의에 비해 혼자서도 강력한 정치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영남 패권주의가 이번에 김부겸의 당선으로 결정적 균열이 일어났다는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 적지에서 승리한 주요 당선자들. 왼쪽부터 새누리당 이정현(전남 순천), 정운천(전주을), 더불어민주당 김영춘(부산 진갑), 김경수(김해을).

   TK 출신이라는 장점
   
   김부겸 당선자는 지역주의의 마지막 철옹성으로 불렸던 대구의 벽을 깨뜨림으로써 야당의 새로운 차기주자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또 그의 개인 정치 이력에서 볼 때 이번 승리는 그를 만년 비주류에서 주류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치인생 대부분을 ‘경계인’으로 살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서울대 정치학과 76학번인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 정치권으로 들어갔다. 그는 1978년 유신반대 시위를 하다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1년 징역형을 살았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그는 복학생 신분으로 사자후를 터뜨리며 학생들을 거리로 이끌었다. 그의 리드미컬한 대중 연설 솜씨는 그때부터 정평이 났다. 그가 정치인이 된 것은 이른바 양김(兩金) 정치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1987년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로 노태우 정권이 탄생하자 그는 보스정치, 지역주의와 싸운다며 정치에 입문했고 그런 명분을 지키느라 내내 비주류 정치 인생을 살았다. 당초 DJ와 함께 정치를 시작했지만 DJ의 정계복귀 후에는 이에 반대해 ‘통추’에 몸담았고, 이어 통추 멤버들과 한나라당에 들어가 2000년 16대 선거에서 첫 금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대북송금 특검에 반대하며 이른바 ‘독수리 5형제’(이부영·이우재·김부겸·김영춘·안영근)와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해 17대 총선 때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재선에 성공했고, 18대 때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3선까지 지냈다. 하지만 ‘여당 내 야당’ ‘야당 내 여당’이라는 경계인으로서의 정치인생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이런 독특한 위상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10월에 나온 정치 대담집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에서 문화칼럼니스트 김태훈씨는 그에 대해 “어느 한쪽의 손도 무조건 들어주지 않는 냉철한 중립자” “양쪽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노련한 통역가”로 평가했다.
   
   향후 차기주자로서의 행보와 관련해 당장 주목되는 것은 그가 곧 있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에 나서느냐 여부다. 이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본인은 대권 도전에 대해서 아직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당권 도전에 뛰어들지 않고 바로 대권주자로서 행보를 시작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당권 도전에 나설 경우 자신의 색깔을 잃고 거센 싸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으로 더불어민주당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의 상황을 맞은 게 사실이다. 현 김종인 대표를 비롯해 종로에서 살아돌아온 정세균 의원 등 그가 당권 도전에 나설 경우 넘어야 할 산들이 만만치 않다. 그가 차기주자가 되기에는 아직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기주자로서 공부에 전력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가 당권 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본인 스스로 당권 도전을 거부한다고 해도 주변에서 그를 또 한 번의 도전으로 밀어넣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호남은 버렸지만 수도권에서 압승하면서 오히려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맞은 더불어민주당이 한 번 더 외연 확장을 하기 위해서는 TK 출신의 그를 간판으로 내세우는 게 적격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역시 총선 과정에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야당의 체질 변화를 강조해 왔다. 그는 지난 1월 폴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민주·반민주 시대에 형성됐던 야당의 역할과 철학에 안주해서는 안 될 것 같다”며 “야권을 확대·재구성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떨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가 야권의 체질개선과 재편을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비쳐진다. 그는 이번 당선 소감을 밝히면서도 “공존과 상생의 정치를 열어가겠다”며 “보다 책임성이 높은 정당체제가 재구성돼야 한다”며 더불어민주당의 변화를 촉구했다. 대구에서 지역주의의 가장 높은 벽을 넘는 데 성공한 그가 자신의 말대로 새로운 야당의 구축이라는 또 다른 도전에도 성공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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