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연제에서 현역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을 꺾은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부인과 함께 당선 축하를 받고 있다. ⓒphoto 김종호 조선일보
부산 연제에서 현역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을 꺾은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부인과 함께 당선 축하를 받고 있다. ⓒphoto 김종호 조선일보

지난 19대 국회에서 30대 청년 당선자는 9명이었다. 18대 때는 7명, 17대 때는 무려 23명이었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겨우 3명이다. 그나마 비례대표 당선자 2명을 제외하면, 지역구에서 당선된 30대 정치인은 한 명이다.

부산 연제에서 당선된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그 주인공이다. 1977년생, 39살의 젊은 나이로 김 당선자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내고 3선에 도전하던 현역 김희정 의원을 꺾었다. 이변이었다. 부산일보가 선거 전인 지난 4월 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희정 의원이 37.2%, 김해영 당선자가 25.2%로 격차가 꽤 있었다. 그러던 것이 선거 당일 출구조사에서 김희정 의원 50.7%, 김해영 당선자가 49.3%로 발표됐다. 개표 결과 김해영 당선자가 51.6% 득표율을 올려 48.39% 표를 받은 김희정 의원을 따돌렸다.

수치만 놓고 보면 김해영 당선자가 서서히 기세를 올려 따라잡은 것처럼 보인다. 김 당선자는 전화인터뷰에서 “여론조사로는 지고 있다고 나왔지만, 선거 유세 현장에서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며 “유권자들이 당보다 인물을 보고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용기술 배우던 흙수저

유권자들은 김 당선자에게서 어떤 ‘인물’을 본 것일까. 김해영 당선자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가 ‘흙수저’다. 어릴 적 부모 대신 고모 손에서 자라야 했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원래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3학년 때는 진학반이 아니라 직업반에 들어가 미용기술을 배웠어요. 미용사가 되려 했습니다.”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수능시험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때의 일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믿어주신 것이 큰 힘이 됐지요.” 몇 달간을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공부한 끝에 좋은 성적을 거뒀고 부산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진학했다고 일이 쉽게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친부모처럼 보살펴줬던 고모는 김 당선자가 군대에 있을 때 돌아가셨고, 제대 후에는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께 사법시험 합격증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결국 못 보여드렸습니다.” 김 당선자의 아버지는 2007년 돌아가셨고, 김 당선자는 2009년에야 시험에 합격했다.

“힘들고 외로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이 돼야 잠재된 힘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이번 선거에서의 승리도 이런 경험들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이뤄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자신감 있고, 서민층을 대변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 신인 정치인에게 유권자들이 호응을 보내줬다. 김 당선자의 지역구가 된 부산 연제 지역은 해운대나 남포동처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 아니다. 주택 밀집 지역이고, 부산외국어고등학교나 부산교육대학교 등 학교 시설이 많은 곳이다. 부산도시정보시스템(sgis.busan.go.kr)에 따르면, 연제구 중에서도 연산1·4·5·8동과 거제1·2·4동은 부산 노인인구 비율이 평균보다 낮다. 부산 지하철 1·3호선 역을 중심으로 젊은 인구가 많이 유입됐기 때문이다. 특히 연제구의 명물이 된 온천천 일대는 하천을 따라 카페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큰 이슈가 없는 조용한 지역에서 유권자들이 선택한 것은 변화였다. “지역 유권자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니라 경력이 화려한 분이 연제에 출마했다면 오히려 당선되지 못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해영 당선자는 “유권자를 대변할 수 있으면서도 새로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많이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선거 유세 기간에는 모든 것이 다 처음이라 정신이 없었는데, 투표 다음날 도리어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차를 타고 감사 인사를 다니는데 많은 유권자들이 문을 열고 직접 나와 환영 인사를 해주시더군요. 전날 벅찬 감동을 안겼던 한 표, 한 표를 직접 만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말로만 아니라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새삼 다졌습니다.”

“열심히 하겠다” “패기 있게 할 말을 하겠다” “깨끗하게 하겠다”는 김해영 당선자의 다짐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그가 몇 되지 않는 20대 국회의 청년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제 선거 구호는 ‘믿는다 해영아’였습니다. 젊다고 못 미더워하는 분들도 분명 계셨습니다. 그분들의 손을 잡고 저는 당선될 때의 마음가짐 그대로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정치를 보이겠다고, 믿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모두가 마음 편한 세상을 꿈꾼다

그로서도 20대 국회에 청년 정치인의 수가 확 줄어든 상황은 아쉽다. “청년들을 대변할 청년 정치인을 기성 정치권에서 배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청년 후보에게 각자도생(各自 圖生)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청년 정치인이 살아남기 힘듭니다.” 김 당선자는 “나는 운이 좋았다”면서 “청년 정치인을 키우는 시스템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등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청년들을 대변하고 싶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단지 청년이기 때문에 청년을 대변하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는 줄곧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가져왔다.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 회장을 맡으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당시 공익활동을 하는 선배 변호사들을 만나며 사회부조리와 약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때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이 바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다.

“변호사의 공익활동에 대해 많은 조언을 받았는데, 그때 배려해주신 게 고마워 무엇이라도 도와야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 더불어민주당과의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를 정계로 이끈 문재인 전 대표는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 4월 11일, 부산 연제에 들러 지원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김 당선자 측에서 먼저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당 차원에서 이 지역을 전략지역으로 보고 지원 유세가 결정된 것이라는 후문이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계기인 만큼 김해영 당선자가 늘 관심을 가질 부분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것이다. “제가 대변하고 싶은 계층이 바로 사회적 약자층, 청년층입니다. 당장 국회에 들어가면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을 도입해 근로자가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 그가 꿈꾸는 세상 또한 모두가 마음 편한 세상이다. “잘 짜인 사회 안전망 속에서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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