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달러 지폐 앞면의 앤드루 잭슨.
20달러 지폐 앞면의 앤드루 잭슨.

미국 화폐 유통에서 약 11%를 차지하고 있는 게 20달러 지폐다. 이 지폐는 1928년 전면에 앤드루 잭슨 7대 대통령, 후면에 백악관이라는 도안으로 결정된 이래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약간의 변화는 백악관 주변의 나무가 성장한 것을 반영하는 정도에 그쳤다. 가장 최근의 업데이트는 2003년에 이뤄졌다. 바로 이 20달러 지폐에 잭슨 대통령을 밀어내고 등장할 인물이 여성, 그것도 흑인 여성이다. 2020년 이후, 우리는 해리엇 터브먼이라는 흑인 여성 민권 운동가의 초상이 새겨진 20달러 지폐를 보게 될 것이다.

잭슨의 흔적은 의외로 많은 곳에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도시 멤피스, 미국의 젖줄 미시시피가 낳고 키운 음악의 도시다. 무려 1000여곡에 등장하는 이 도시는 1819년 3명의 토지 투자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도 그중 한 명이다.

앤드루 잭슨은 워싱턴, 링컨과 같은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지는 않지만 역대 미국 대통령 랭킹에서 언제나 톱 10에 들어가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대통령이다. 영국 식민시대의 끝무렵에 태어난 그는 시대 환경에 걸맞게 출생지가 불투명하다. 주간(州間) 경계가 모호했던 시기에 죽은 아버지를 매장하고 오는 길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즉 그는 유복자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설이 분분하다. 후에 잭슨 스스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이라고 밝힌 적이 있지만 이것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연방 안에 두려는 그의 정치적 발언이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서로 자기 주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잭슨은 13살에 바로 위 형과 함께 미국 독립전쟁에 전령으로 참여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구두를 닦으라는 영국군의 지시를 거부하자 영국군이 칼로 잭슨을 내리쳐 이때 입은 왼손과 얼굴의 흉터를 평생 달고 다녔다. 포로로 잡혀 있던 중 천연두에 걸려 자신은 살아났지만 형은 죽었다. 병원선(船)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어머니조차 그가 14살 때 콜레라로 사망한다. 고아가 된 것이다. 독립전쟁 와중에 형과 어머니를 잃은 잭슨은 영국을 평생 원수로 기억하게 된다.

잭슨을 전국적 인물로 만든 사건은 ‘1812년전쟁’이다. 제2 독립전쟁이라고고 불리는 이 사건은 프랑스와 연대하려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이 아메리칸인디언과 협력하여 미국을 공격함으로써 발발하게 되었다. 잭슨과 인디언의 불편한 이야기는 바로 이 전쟁 때문에 나온 것이다. 1813년 크리크 인디언이 밈스요새를 공격하여 백인 정착민과 그들의 노예 400여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Fort Mims Massacre). 잭슨이 이끄는 민병대가 이듬해 크리크 인디언 800여명을 사살하고, 생존자들을 플로리다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인디언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어서 1815년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자기가 이끄는 군대보다 1.5배나 많은 영국군을 궤멸시키는 대승을 거둔다. 이렇게 현재의 미국 남부 대부분, 그리고 플로리다를 미국에 합병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앤드루 잭슨이다.

중앙 정계를 떠난 지 25년 만인 1823년 상원의원으로 워싱턴으로 돌아와 1824년 대통령에 도전한다. 2대 대통령인 아버지 존 애덤스에 이어 대통령에 출마한 존 퀸시 애덤스를 비롯 3명이 출마한 이 선거에서 일반 투표와 선거인단 투표에서 모두 다수표를 획득하였으나 하원의 결정에 의해 낙선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어 벌어진 1828년 선거에서는 애덤스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며, 연임에 성공하였다.

그는 국가의 중앙은행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은행이라는 존재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잭슨의 영향으로 미국의 중앙은행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리를 잡는다. 나아가 종이로 된 화폐 발행을 반대하였고, 퇴임할 때는 국민에게 각별히 종이화폐를 조심하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게 은행과 종이화폐를 반대한 잭슨이 미국에서 가장 활발히 유통되고 있는 종이화폐에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다. 잭슨이 처음 이 지폐에 등장한 것은 1928년으로 그가 대통령에 선출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였다. 그가 등장하기 전에는 22대와 24대 대통령이었던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이때 새로 발행된 20달러 지폐는 앞면에 앤드루 잭슨을, 뒷면에는 백악관을 그려 넣었다. 약간의 도안 수정이 있었으나 이 기본적인 틀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60만명 설문조사로 선정

민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 ⓒphoto AP
민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 ⓒphoto AP

그런데 이 100년 지폐는 곧 새로운 디자인으로 변경될 예정이다. 잭슨의 자리에 흑인 여성이 들어가고 백악관이 그려져 있던 뒷면으로 잭슨이 옮겨 가게 된 것이다. 여성참정권 100주년이 되는 2020년에 20달러 지폐에 여성 초상화를 넣자는 ‘Women on 20’s’라는 캠페인의 결과다. 미국에서 여성에게 최초로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제19차 수정헌법이 채택된 1920년이었다.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화폐, 그것도 회전율이 가장 높은 지폐인 20달러에 여성의 초상을 넣자는 이 캠페인은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총 15명의 예비후보 중 선정위원들을 통해 3명이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다. 해리엇 터브먼, 엘리너 루스벨트, 윌마 맨킬러가 그들이다. 엘리너 루스벨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으로 여성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윌마 맨킬러는 체로키 인디언의 최초 여성 족장으로 남성을 능가하는 용맹으로 이름을 떨쳤다. 60만명 이상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해리엇 터브먼이 가장 많은 11만8000명의 지지를 받아 2015년 5월 12일 최종 후보로 공식 발표되었다.

캠페인의 당초 방향과는 달리 잭 루 재무부 장관은 터브먼을 10달러 지폐에 넣는다고 발표하였다가 미국 조야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였다. 그 이유는 바로 미국 은행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알렉산더 해밀턴의 초상이 거기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해밀턴의 10달러 지폐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고 20달러에 터브먼을 넣되, 잭슨을 기존의 백악관이 그려진 곳으로 이동하고, 백악관은 삭제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나게 되었다.

1822년 메릴랜드에서 노예의 딸로 태어난 터브먼은 1849년 필라델피아로 탈출하여 도망 노예 신세가 되었다. 자유를 찾은 그녀는 가족을 제일 먼저 구출했다. 이후 한 가족씩 노예에서 벗어나도록 도왔고 그녀가 안내한 모든 가족은 자유를 되찾았다. 화가 난 백인 노예주들이 그녀를 잡거나 사살하는 데 현상금을 걸기도 하였는데 이에 대항하여 스스로 무장한 채 농장을 습격하는 등 노예해방을 위해 인생을 바쳤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자원 입대하여 처음에는 요리병, 간호병으로 근무하다가 이후 700여명의 해방 노예를 이끄는 최초의 여성 장교가 되었다. 1913년 사망한 그녀는 미국의 자유와 용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최초로 지폐에 여성이 등장하는 것과 함께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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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현 경기텍스타일센터 뉴욕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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