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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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계의 막내’. 20대 총선 경기 남양주을에서 당선된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에게 붙는 수식어다.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교동계 막내’라는 수식어가 ‘김대중 정신을 잇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 16일, 남양주 별내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한정 당선자의 말이다. 선수(選數)로는 초선이지만, 사실 김한정 당선자는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도 28년 전, 1988년 2월의 일이다. “운이 좋았죠. 대학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DJ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어요. 그러다가 추천을 받아 비서실 막내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정계에 입문하고 첫 6개월은 지루한 일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DJ를 위해 신문을 스크랩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업무였는데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 김 당선자의 말이다. “그래도 묵묵히 6개월 동안 신문만 잘랐습니다. 나중에는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 파악하게 됐고, 그에 맞는 내용을 발굴해내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수습 기간’이 끝나고 그는 DJ의 공보비서로 정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지냈다. 퇴임 후에도 1급 비서관으로, DJ 사후에는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로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2년 동안 낙선 인사

많은 동교동계 인사들이 선거에 출마해 각자의 정치를 펼칠 때도 김한정 당선자는 선뜻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다. “제의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출마 준비를 했다. 서울 양천을에서 출마하려 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남양주로 지역구를 옮긴 것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의 일이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남양주시장에 도전했다. “연고도 없는 남양주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를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양주는 한창 성장하는 곳이고, 주민의 70%가 외부에서 유입돼 말 그대로 신도시를 형성하는 중이라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듣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유권자는 많고, 기대도 많이 받았지만 역시 저를 알릴 기회가 부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낙선 이후 2년 동안 ‘낙선 인사’를 했다고 한다.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팻말을 들고 나가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낙선 인사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떨어진 사람이 저러는 거 처음 본다’고 신기해하던 분들이 나중에는 손을 잡아 주시더군요.” 2년의 낙선 인사를 하며 김 당선자는 “배운 것과 다른 실제 정치를 점차 익혀나갔다”고 했다. “선거 기간만큼은 아무리 오만하던 정치인도 고개를 숙이게 되잖아요. 유권자들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국민과 나라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 저절로 생겨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어떤 정치를 하고 싶어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것일까. 인터뷰 내내 김한정 당선자가 언급했던 단어는 ‘DJ 정신’이라는 것이었다. DJ 정신을 잇고, 실천하고, 다시금 한국 정치에 구현해내고 싶어 정치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DJ 정신의 첫 번째는 용서와 화해입니다. 그 시련을 겪고도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용서와 화해 정신은, DJ 정신의 핵심인 통합과 이어집니다. 분열과 반목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지 못합니다. 지역, 계파, 이념을 뛰어넘어 통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통합의 정신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 김한정 당선자의 설명이다. 본격적인 총선 레이스가 시작하기 전, 김 당선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계셨으면 분열에 일갈했을 것”이라며 “동교동계 원로들의 결정이 서운하다”고 밝혔다.

분열은 DJ 정신이 아냐

권노갑·박지원 등 동교동계 다수가 합류한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에서 놀랄 만한 성적을 거뒀다. “분열은 DJ 정신이 아니다”고 말하던 김 당선자의 생각은 어떨까. “국민의당은 DJ 정신을 잇는 당이 아닙니다.” 그는 단호했다.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경기 침체, 꽉 막힌 남북 관계, 민주주의의 위기 등에 대한 해답을 찾고 여당을 심판하려 했습니다. 분열된 야권을 바란 것이 아니지요.” 다만 국민의당이 예상외의 선전을 한 것은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여당을 심판하고, 바른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 국민들은 고통스러운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구에는 더불어민주당을 밀어주더라도 야권 패배를 막고 국민의 뜻을 전하기 위해 전략적인 투표를 했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김 당선자의 말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제1당이 되기는 했지만, 이 역시 여당과 정부에 경고를 하려는 국민들의 전략적인 선택이었을 뿐 진정한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계셨다면, 이 분열을 정말 뼈아프게 슬퍼하셨을 겁니다. 생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내 반쪽을 잃은 것 같다’고 슬퍼하셨습니다. 하나된 야당을 바라던 그분 마음이 그런 겁니다.”

그는 정권 교체를 위해서 야당이 DJ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걸 여러 번 강조했다. “정권 교체를 하라,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국민의 요구입니다. 용서와 화해, 통합, 민본주의, 혁신의 DJ 정신이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혁신은 그가 DJ 정신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김대중 정부 때 만들었던 여성가족부, IT 인프라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기적이고 새로운 눈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0대 총선 결과와 향후 야당에 필요한 자세까지 분석하는 김한정 당선자에게서는 연륜이 느껴졌다. 그러나 늦깎이 초선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당장 어떤 것인지 의구심도 들었다. “저도 초선으로서 많은 제약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당장 지역구에 산적한 문제도 많지요.” 그가 당선된 남양주을 지역구는 현역 의원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다. 현역이었던 박기춘 전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김 당선자는 당선되자마자 당선자의 신분으로도 현역 의원이 해야 할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선거 때보다 오히려 더 바쁜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제 계파가 아니라 정신으로 한데 뭉칠 때입니다. 초선인 저 혼자서는 미약하겠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 뜻을 함께하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을 스크랩하면서부터 배워 나간 DJ 정신을, 이번 국회에서 제대로 전하고 실천할 계획입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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