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찾아간 전북 군산공항. 제주발(發) 이스타항공 보잉737 여객기가 새만금 간척지 바로 옆 군산공항에 착륙했다. 승객을 싣고 내린 여객기가 다시 떠나자 시외버스터미널만 한 단층의 공항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군산공항을 오가는 여객기는 이 비행기를 비롯해 하루에 단 2대. 군산공항에 본사를 둔 이스타항공과 대한항공이 각각 1대씩 제주행 왕복 비행기를 띄운다. 하루 2대 여객기를 처리하면 공항은 개점휴업에 들어간다. 공항과 군산시내를 오가는 1번 시내버스를 탄 사람은 기자를 비롯해 주름이 자글자글한 촌로(村老) 2명. 백발의 노파는 “버스를 잘못 탔다”고 말했다. 간간이 군산공항 활주로에서 뜬 전투기만 초음속 굉음을 내뿜으며 새만금 상공을 오갔다.

이 군산공항을 대대적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토교통부가 지지부진한 새만금 간척지 개발을 촉진할 카드로 ‘공항’을 꺼내들면서다. 국토부는 지난 5월 10일,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2016~2020)’을 발표했다. 공항개발의 기준이 되는 총설계도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새만금공항. 국토부는 “장래 새만금 개발 활성화 추이 등을 감안하여 새만금 지역 공항 개발을 위한 수요·입지·규모·사업시기 등 타당성을 검토한다”고 적시했다. 공항개발 종합계획에서 ‘새만금공항’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라북도에 따르면, 새만금공항 연구용역비로 올해 8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전북도는 “도정 역량을 결집해 공항 추진 20여년 만에 얻은 성과”라고 자축했다.

국토부의 공항건설 고질병(病)이 또 도졌다. 지지부진한 새만금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카드로 ‘새만금공항’을 만지작거리면서다. 일단은 새만금 간척지와 바로 붙어 있는 군산공항을 확장하는 안(案)이 가장 유력하다. 국토부는 “군산공항은 현재의 운영형태로 계속 사용하되 새만금지역 공항 개발 추진 상황에 따라 장래 활용계획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후보지라는 데 이견이 없다. 1934년 일제 육군항공대 비행장으로 지어진 군산공항은 현재 미 공군 관할로 민군(民軍) 겸용 공항으로 사용 중이다. 새만금개발청의 한 관계자는 “군산공항 옆으로 6㎢의 예정부지를 확보한 상태”라며 “공유수면 상태로 매립만 하면 된다”고 했다. 장항선 철도 일부를 활용해 군산공항을 통해 새만금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45㎞의 철도 역시 계획돼 있다. 새만금 간척지 인근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등 일부 지역도 제3의 후보지로 부동산 업자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공항건설은 국토부의 고질병?

문제는 군산공항을 확장하든, 제3의 장소에 별도의 새만금공항을 신설하든 모두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우선 항공수요가 미심쩍다. 새만금 주변으로는 인구 100만 이상의 광역시가 한 곳도 없다. 반면 전라북도는 지난해 ‘전북권 항공수요조사 연구용역’을 통해 2025년 190만명, 2030년 402만명이란 ‘경이적 수치’를 제시했다. 하지만 전북 유일의 공항인 군산공항의 지난해 연간 이용객은 20만명에 그쳤다. 10년 만에 10배 가까운 폭발적 성장을 해야 한다. 반면 삼성이 7조6000억원 규모의 새만금 투자를 차일피일 미루고, 지난 5월 10일에는 군산 최대 기업인 OCI(옛 동양제철화학)마저 3조4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철회하는 등 경기도 좋지 않다.

이에 “새만금공항이 자칫 김제공항의 재판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토부의 전신인 건설교통부는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새만금지역 항공수요에 대비한다며 김제공항 건설을 추진한 바 있다. 2001년 김제공항 기본계획이 고시됐고, 김제시 공덕면·백산면 일원 부지매입도 시작했다. 매입한 부지는 156만7500㎡. 축산농가 이전과 묘지 이장 등 각종 부지매입에 쏟아부은 예산만 400억원에 달한다. 2007년까지 1800m 활주로 1본을 갖춘 공항이 들어선다고 했다. 하지만 ‘사업성이 없다’는 감사원의 지적으로 공항 건설은 중단됐다.

지난 5월 17일 찾아간 김제시 공덕면 일원 공항개발 예정지에 남은 것은 너른 들판 위의 에쓰오일 공항주유소밖에 없었다. 개인택시 기사 유모씨는 “공항 들어온다고 주유소가 생겼는데, 주유소 간판만 남았다”며 “지주들만 재미봤다”고 했다. 국토부는 지난해로 끝난 ‘제4차 중장기 공항개발 종합계획’(2011~2015)에서 “김제공항 부지를 지역의 항공기 제작산업 등과 연계하여 경비행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으나 역시 공염불에 그쳤다. 그래도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식으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국토부는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을 고시하며 “새만금지역 공항개발 추진과 연계하여 기존 김제공항 개발 사업은 부지 활용방안을 별도로 검토”하기로 했다.

새만금공항과 무안공항과의 기능중복도 국토부가 답해야 할 과제다. 새만금에서 차로 1시간20분 떨어진 전남 무안공항은 ‘서남권 중심공항’으로 2007년 개항한 국제공항이다. 연간 수용능력 510만명을 기준으로 지어진 ‘서남권 중심공항’이지만, 지난해 이용객은 31만명에 그쳤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지난해 8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 무안공항은 새만금공항은커녕 인근 광주공항과의 기능통합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7년 개항한 무안공항은 목포공항과 광주공항을 대체할 서남권 신공항으로 태어났지만 광주광역시가 광주공항의 무안공항으로의 기능 이전을 반대하면서 반쪽짜리 공항으로 전락했다. 광주공항 역시 지난해 4월 호남고속철(1단계)이 개통하면서 승객 급감이 현실화 중이다. 급기야 대한항공은 지난 3월 27일, 김포~광주 노선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서도 “지자체 간 합의 여부 등에 따라 통합 시기를 검토한다”고만 밝혔다. 중앙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거중조정 기능을 포기하고 수수방관 중이다. 서남권 공항이 넘쳐나는 마당에 국토부가 재차 ‘새만금공항’까지 들고나오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새만금공항이 ‘5차 중장기 공항개발 종합계획’에서 다시 부상하자 전남도 등에서는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전남도와 광주광역시는 2011년에도 ‘군산공항의 국제선 허용검토를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공동건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광주광역시와 전남도의 자중지란에 전북도가 가세할 일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서남권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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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flatron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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