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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413호] 2016.06.27

곰인지 여우인지… 정진석 스타일

최경운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codel@chosun.com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photo 뉴시스
“두 달 동안 몇 차례 샅바를 당겨봤는데 만만치 않다.”
   
   새누리당 친박(親朴)계 한 의원이 정진석(56) 원내대표에 대해 평한 말이다. 이 말에는 최근 정 원내대표를 바라보는 친박계의 당혹감과 불만이 뒤섞여 있다. 당내 압도적 다수파인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원내대표에 선출된 그가 지난 6월 16일 친박계가 결사반대해온 유승민 의원 복당을 비대위가 전격 승인하는 과정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5월 3일 새누리당의 20대 국회 당선자 122명 중 119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선에서 69표를 얻어 집권 여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17대 국회에서 의석 수 5석의 국민중심당 원내대표를 지낸 그가 집권당 원내대표에 올라설 수 있었던 데는 당내에서 70여 의석을 차지한 친박계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한 마무리투수이자 정권 재창출의 선발투수가 되겠다”고 했다.
   
   그런 정 원내대표를 두 달여 지켜본 친박계는 정 원내대표가 자기들 뜻대로 호락호락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끼는 분위기다. 오히려 정 원내대표가 친박계의 뜻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듯한 장면도 적지 않게 연출됐다. 친박계에서 “정 원내대표의 속을 알 수 없다”며 부글부글 끓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낀박’과 ‘중앙선 정치’
   
   이런 정 원내대표를 두고 당내에선 친박계와 비박(非朴)계의 갈등 구도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자신도 “고속도로 중앙선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하고 있다. 자신을 원내대표로 세운 친박계와, ‘친박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비박(非朴)계 사이에서 끼인 신세라는 것이다.
   
   정 원내대표가 지난 5월 원내대표로 취임해서 한 첫 작업은 그를 보좌할 원내 부대표단 구성이었다. 그런데 그가 임명한 김도읍 원내 수석부대표 등 원내 부대표단 13명 중 11명이 친박계로 분류됐다. 정 원내대표는 “지역별로 선수(選數)를 고려해 뽑았을 뿐 계파 안배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당내에선 “친박계가 지나치게 많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기에 그가 차기 전당대회 때까지 당 임시지도부 역할을 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방안으로 ‘관리형 비대위+별도 혁신위’ 안을 내놓자 비박계에선 “친박계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나왔다. 관리형 비대위는 전당대회 관리 업무만 하고, 혁신위가 전당대회 때까지 당 쇄신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주도하는 이른바 ‘투트랙론(論)’은 친박계에서 주장해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친박계 뜻대로 움직이는 듯하던 정 원내대표는 혁신위원장 및 비대위원 구성에서 반전(反轉)했다. 혁신위원장에 강성 비박계의 김용태 의원을 내정하고, 이혜훈·김영우 등 비박 인사가 중심이 된 비대위원 구성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친박계는 초·재선 의원 30여명이 집단 모임을 갖는 등 강력 반발했고 결국 비대위 구성안 의결을 위한 전국위원회를 무산시키는 식으로 정 원내대표의 안(案)을 뒤집었다. 결국 친박계의 압박에 정 원내대표는 비박계의 김무성 전 대표와 친박 핵심 최경환 의원과 3자 회동을 거쳐 친박계의 뜻을 상당 부분 수용한 비대위를 구성했다.
   
   이런 그의 처지를 빗대 당내에선 ‘낀박’이란 얘기가 나왔다. 친박계와 비박계 사이에 끼여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정 원내대표가 ‘중앙선 정치’를 거론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실제 그가 당내 압도적 다수파인 친박계의 세력 앞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올 즈음 그는 또 한 번 반전수를 둔다. 친박계의 결사반대로 차기 전당대회 전까진 요원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던 유승민 의원 복당을 전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지난 6월 16일 오전 비대위 회의가 비공개로 열리는 동안에도 이날 유 의원 복당 문제에 대한 결론이 나리란 예상은 거의 없었다. 김희옥 비대위원장 등 비대위원 다수가 친박계의 의중을 대변하는 인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시간여에 걸친 회의 끝에 유 의원 복당이 표결을 통해 전격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정 원내대표가 표결에 미적거리는 김 위원장에게 ‘오늘 표결하지 않으면 중대 범죄 행위’라고 언급하며 압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위원장이 뒤늦게 당무 거부에 들어가는 등 파문이 일었다.
   
   이처럼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선출된 정 원내대표는 취임 이후 50여일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의 뜻을 따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행동을 번갈아 하고 있다. 또 어떤 결정이 나올 때까지 주변 사람들이 “그런 눈치를 전혀 채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속마음을 숨기고 있다. 이 때문에 친박계 내에선 “도통 그의 속내를 알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계속 저런 식으로 원내대표를 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강경 목소리까지 나온다.
   
   
▲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한 정진석 원내대표(왼쪽). 옆이 김희옥 비대위원장이다. photo 뉴시스

   “친박의 푸들은 되지 않겠다”
   
   이런 친박계의 불만에 대해 정 원내대표는 “나는 친박도 비박도 아닌 중도”라고 하고 있다. 계파에 상관없이 박근혜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란 주장이다.
   
   그를 잘 아는 정치인들은 “정 원내대표는 계파 행동이나 정치 실력자를 추종하는 정치 행태에 체질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5월 원내대표 선거운동 과정에서 친박 핵심인사와 만나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박 대통령의 성공적 국정 마무리를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대통령을 지키고 뒷받침하겠다”면서도 “그렇다고 친박의 푸들이 되길 기대하진 말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공주 출신인 정 원내대표는 1999년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의 특보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2007년 국민중심당을 탈당할 때까지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한 소수당에서 정치 생활을 했다. 그 당시에도 집단적 계파 행동보단 자기 소신을 앞세운 경우가 많았다. 국민중심당 소속이던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 소속 의원 5명 중 4명이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를 지지했을 때도 혼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하며 탈당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충청 지역의 한 의원은 “정 원내대표는 대세(大勢)에 얹혀가는 듯하다가도 주류가 추종을 강요하면 결정적인 순간 저항하는 스타일”이라며 “한국 정계의 비주류 마이너리티(소수파)에서 주로 정치를 해서인지 주류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감 같은 게 있다”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국민중심당을 탈당하고도 곧바로 한나라당에 입당하지 않고 무소속 신분으로 2012년 대선 때 지역구인 충남 공주·연기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 유세를 다녔다. 이후 2008년 1월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2010년 7월에는 3선 의원 겸 국회 정보위원장직을 내던지고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는 정무수석에 부임하자마자 이 대통령을 설득해 2010년 8월 이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독대(獨對) 회동’을 성사시켰다. 당시는 이 대통령이 추진한 세종시 수정이 박 대통령의 결사반대로 무산된 직후였다. 당시 여권 주류인 친이(親李)계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은 극에 이른 상황이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한 인사는 “정무수석에 임명된 지 얼마 안 돼 정 원내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박 대통령과의 회동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들고갔는데 이 대통령이 처음엔 거들떠도 안 봤을 정도로 여건이 녹록지 않았다”라며 “그런 이 대통령을 한 달 가까이 설득해 회동을 성사시키는 집요함이 있다”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키 183㎝에 몸무게가 90㎏이 넘는 거구다. 하지만 정치 스타일에선 “용의주도한 면이 있다”는 평도 동시에 듣는다. ‘여우 같은 곰’ 스타일이란 것이다. 이런 그의 정치 스타일은 그의 성장배경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6선(選) 의원을 지낸 고(故) 정석모 내무부 장관이다. 정 원내대표 자신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 슬하에서 정치 밥을 먹으며 컸으니 정치가 인생인 사람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런 영향인지 그는 정치적 선택에서 여론을 상당히 중시하는 스타일이란 평을 듣는다. 여권의 한 인사는 “당내 주류와 비주류의 분열과 갈등이 극대화하고 권력 재편 움직임이 이는 정권 후반기에는 주도면밀하면서도 뚝심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 여당 지도부에 필요하다”며 “친박과 비박 사이에서 때론 타협하고 때론 밀어붙이는 정 원내대표가 그런 스타일 아닌가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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