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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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총선에서 38석을 얻으면서 주목을 받았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리베이트’ 의혹으로 흔들리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총선 과정에서 2억382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국민의당 비례대표 김수민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고, 총선 때 당 사무총장을 맡았던 박선숙 의원과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에 대해서도 이를 사전 논의·지시한 혐의로 고발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 서부지검은 지난 6월 16일 왕 전 사무부총장에 이어 23일 김 의원을 소환해 조사했고, 다음 주에는 박 의원에 대한 출석을 요구한 상태다. 김 의원의 경우 비례대표 후보 7번으로 선정될 당시부터 30세라는 어린 나이에 소규모 벤처 광고기업을 이끌었던 점 말고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이력이 없어 안팎에서 여러 말들이 나왔었다. 그리고 박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부터 안 대표의 최측근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검찰 수사에서 선관위 고발 내용 중 일부에 대해서라도 기소가 이뤄진다면 안 대표가 입을 정치적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선관위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선거 홍보 비용으로 인쇄대행업체 A회사, 홍보업체 B회사에 각각 국고보조금 20억9000만원과 11억2000만원을 지불했다. A회사는 비례대표 선거 공보물 제작을 담당했고 B회사는 TV광고를 대행했다. 이 과정에서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이 A회사에 2억원을, 김수민 의원은 B회사에 1억원을 요구했다는 것이 선관위 검찰 고발 내용의 핵심이다. 선관위는 A회사와 B회사가 김 의원이 대표로 있던 벤처기업 브랜드호텔과 허위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으로 1억1000만원과 6820만원을 각각 건넸다고 파악하고 있다. 계약서에는 브랜드호텔이 하지도 않은 홍보 활동 내역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회사는 자기 회사 명의로 체크카드를 발급해 국민의당 홍보 TF 팀원에게 6000만원을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자금들과 관련해 선관위는 “애초 목적이었던 비례대표 공보물 제작이나 TV광고와 관련이 없는 불법 정치자금으로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했다. 이 돈이 당 운영자금으로 쓰인 것이 사실이라면 국민의당은 국고보조금으로 선거 홍보비를 내주고 해당 업체에 불법 리베이트를 요구해서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선관위는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박선숙 의원 등에 대해선 “이 돈을 수수하기 위해 사전에 논의했고, 이후에는 이 자금과 관련해 ‘공보물 발송료 등으로 썼다’며 허위 세금계산서 등을 꾸며 선거 비용 보전 청구를 한 혐의도 있다”고 밝혔다.

리베이트 사건의 진상은?

선관위는 특히 브랜드호텔이 당의 PI(상징문양)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당이 지급해야 할 비용을 A회사가 대납하게 된 것 아니냐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국민의당이 선관위에 허위로 이 금액을 보전 청구까지 했다는 혐의를 잡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PI 개발은 A사가 수행했던 선거공보 인쇄대행·배달과는 직접 연관이 없는 데다 선거 이후에도 당이 계속 사용해야 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선거자금 보전 청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서울 서부지검 핵심 관계자는 “선관위의 고발 내용 중 핵심이 국민의당의 선거자금 허위 보전 청구와 연관돼 있다”며 “브랜드호텔과 B사 간의 이상한 계약이 업체 간 ‘계약 부풀리기’ 수준이었다면 문제가 없는데 국민의당이 국가를 상대로 PI 개발 비용을 허위로 돌려받으려한 시도와 연관된 혐의가 있기 때문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은 국민의당이 지급해야 할 비용을 B사가 대신 낸 것과 선관위에 허위 보전 청구를 한 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고발에 따른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안 대표의 정치적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안 대표는 두 차례에 걸쳐 국민을 상대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사과를 했다. 6월 10일에는 “송구스럽다”며 “당헌·당규대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6월 20일에도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발언 수위가 더 강해졌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검찰 수사 결과,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있을 시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당헌·당규에 따라 엄정하고 단호하게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저와 국민의당은 국민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리베이트’ 의혹이 장기화하면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6월 2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이번 사건 관련된 발언은 하지 않았다. 안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서도 “검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혔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리베이트’ 의혹 사건에 대한 당의 초기 대응이 서툴렀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특히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 자체진상조사단을 꾸린 것 자체가 미숙한 대처였다는 말이 나온다. 검찰 수사가 아닌 이상 전방위적인 조사를 할 수 없는 데다 위법 사실이 내부적으로 밝혀진다고 해도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표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자체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밝힌 것 자체가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호남 지지율도 계속 하락

6월 20일 여론조사전문회사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유권자 2536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에서 안 대표는 12.3%로 3위에 그쳤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2.4%로 1위,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가 21.9%로 2위였다. 당초 문 전 대표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던 안 대표가 반 총장의 등장으로 3위권에 내려가더니 이번 ‘리베이트’ 의혹 사건이 불거지면서 반등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 총장이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안 대표에게 관심을 보였던 중도층의 일부가 빠져나간 데 이어 당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시작되자 안 대표 지지율이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당 지지율도 호남을 중심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어 당내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안 대표로서는 야권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호남 민심이 등을 돌릴 경우 유력 대선주자로서의 지위에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된다. 국민의당 한 전남 의원은 “안 대표가 아직까지는 검찰 수사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의외로 지역 민심의 실망감은 예상보다 크게 나타나고 있어 걱정스럽다”며 “검찰이 기소까지 하게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만약 기소를 하게 되면 안 대표와 당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정밀하게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안 대표의 최측근들 또한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고 스스로 진단하고 있다. 선관위 고발 내용 중 일부에 대해서라도 검찰이 기소한다면, 안 대표와 당의 지지율은 쉽게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제로 검찰의 기소가 이뤄질 경우 결국 반등의 기회는 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내려지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그 기간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는 게 또 문제다. 물론 검찰이 기소를 하지 못한다면 국민의당으로서는 오히려 선관위의 고발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안 대표 측은 그 기간 동안 경제·안보 등에 관한 꾸준한 정책 행보로 존재감을 유지한다는 전략이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원내 제3당으로서 각종 현안에 대해 ‘캐스팅보트’를 쥐고 중요한 역할을 했던 국민의당이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국회에서 별다른 이슈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봐도 이들의 고민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안 대표가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당내에서 엄정한 조치를 취하고 국민들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위기 탈출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당 한 광주 의원은 “안 대표가 그동안 주장했던 새정치는 부정과 비리를 없애겠다는 내용이 핵심이었기 때문에 당이 연관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그간의 검찰 수사만으로도 안 대표의 새정치 이미지는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다”고 했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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