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성희롱 예방교육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왼쪽)과 안철수 전 대표. ⓒphoto 뉴시스
지난 7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성희롱 예방교육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왼쪽)과 안철수 전 대표. ⓒphoto 뉴시스

국민의당의 실질적 ‘창업주’인 안철수 의원이 최근 홍보비 리베이트(사례금) 의혹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사퇴하면서 야권 전체의 대선 판세에 가변성이 높아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부동(不動)의 ‘투톱’이었던 안 전 대표가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박선숙 의원과 30세 비례대표 김수민 의원 등이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당의 전면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박지원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하면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유력 대선주자 안 전 대표가 이번 사건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은 감소한 상태다. 국회 내에서 원내 제3당으로서 적극적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던 국민의당이 최근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당에서는 안 전 대표의 사퇴 이후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등판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손 전 상임고문이 안 전 대표와 대선주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면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 판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최근 라디오에 출연해 “손 전 상임고문이 당으로 들어와 안 전 대표와 경쟁하는 구도가 이뤄지길 바란다”고도 했다. 공개적인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박 위원장은 “손 전 고문은 국회의원이나 당대표에 욕심이 있는 분이 아니고, 정치적으로 큰 그림을 구상하고 계시는 분”이라며 “우리 당에 와서 안철수 의원 등 당내 대선주자들과 경선을 한번 치러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남 강진에 머물고 있는 손 전 상임고문의 현 당적은 더불어민주당으로 최근 정계 복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안 전 대표도 손 전 상임고문의 영입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는 최근 주변 인사들에게 “손 전 상임고문을 당으로 모시기 위해 제가 열심히 노력해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은 “안 전 대표 본인 또한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이전부터 대선 국면을 자신이 혼자 돌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해왔다”며 “꼭 본인이 대선 후보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정치적·이념적으로 통하는 손 전 상임고문을 당으로 모셔와 함께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불붙는 ‘손학규 등판론’

문제는 손 전 상임고문의 결단이다. 손 전 상임고문은 9월쯤 전남 강진 흙집 생활을 마치고 정계 복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더민주나 국민의당 중 어느 한 정당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적은 더민주이긴 하지만 이 또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손 전 상임고문의 핵심 측근은 “제3지대에서 직접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세력을 만들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려 한다”며 “국민의당이 안 전 대표의 사퇴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도 손 전 상임고문의 큰 구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박지원 비대위원장의 역할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박 비대위원장은 당초 원내대표를 잘 마무리한 뒤, 당 대표를 맡아 내년 대선에서 ‘킹메이커’로서 결정적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었는데 안 전 대표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인해 심경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며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본인이 당을 이끌게 된 상황에서도 국민의당 중심에는 안 전 대표가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박 비대위원장은 지난 7월 6일 11명의 비대위원 인선을 하면서 “일부 호남 의원들이 이제 안철수 색깔을 빼고 호남 중심 당 구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지만 지역 안배를 통해 콤비네이션(조화)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마치 호남향우회 국민의당 지부처럼 보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또 “호남을 단결시키며 외연 확대를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과제”라며 “안철수·천정배 전 대표는 물론 박주선 국회부의장, 정동영 의원 등 중진 인사들과 미리 상의를 했다”고 했다.

실제로 호남 출신 비대위원은 예상보다 적은 3명에 그친 반면, 기존 최고위원 3명이 비대위에 다시 들어가는 등 안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이 상당수 포진했다.

박지원에게 쏠리는 관심

현역 의원 중에는 4선의 주승용(전남 여수을)·조배숙(전북 익산을) 의원과 재선의 김성식(서울 관악갑)·권은희(광주 광산을) 의원, 그리고 초선 신용현(비례대표) 의원 등 5명이 포함됐다. 원외 인사로는 최고위원이었던 한현택 대전 동구청장과 벤처기업가 출신 이준서씨를 비롯 정호준 서울시당위원장, 김현옥 부산시당위원장, 정중규 내일장애인행복포럼 대표, 조성은 다준다청년정치연구소 이사 등 6명이 임명됐다. 한 비례대표 의원은 “박 비대위원장이 지역적 안배에 상당히 신경을 쓴 것 같다”며 “원외 인사도 다수 포함돼 균형 잡힌 인선이라는 평가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한 호남 중진 의원은 “당의 존립에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는 호남 민심을 더 적극적으로 끌어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이번 비대위 인선은 그런 측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안 전 대표는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으로 큰 위기를 맞았으나 대표직 사퇴라는 정치적 승부수가 어느 정도 통하면서 지지율 하락세는 멈춘 상황이다. 여론조사전문회사 리얼미터가 7월 초까지 실시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안 전 대표는 지난번 조사보다 1.3%포인트 오른 12.8% 지지율로 3위를 기록했다. 1, 2위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23.4%)과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19.3%)였다.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시사 이후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은 3위권으로 고착화됐지만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의 여파가 예상만큼 크지는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대표직 사퇴 이후 지지율이 오히려 반등하고 있다. 국민의당 지지율도 지난 6월 마지막 주보다 1.8%포인트 상승한 17.3%로 조사됐다. 더민주에서도 서영교 의원의 ‘가족 채용’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국민의당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당 지지율은 야권의 텃밭인 호남에서도 크게 상승했다. 6월 마지막 주에 비해 12.9%포인트 상승한 37.8%로 더민주(28.2%)를 10%포인트 가까이 앞섰다.

당내에서는 안 전 대표의 사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 전 대표의 결단이 시의적절했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당 한 비례대표 의원은 “검찰 수사가 진전될수록 안 전 대표가 대표직에 연연할 경우 정치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게다가 만약 검찰 수사를 받았던 의원들에 대한 기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 지지율은 크게 반등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한 호남 의원은 “안 전 대표가 갑작스럽게 사퇴를 발표했던 당시에는 야속하다는 원망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사건에 대한 논란이 상당 부분 가라앉은 상황을 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당을 위해서나, 안 전 대표의 대선주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나 적절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의원은 “안 전 대표가 또다시 정치적 기로에서 뒤로 물러섰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며 “안 전 대표는 현실과 명분 사이에서 고민이 컸을 것”이라고 했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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