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망사고 직후 시민토론회를 열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지난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망사고 직후 시민토론회를 열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지난 3개월간 비어 있던 서울메트로 사장에 김태호 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이 내정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메트로 임원추천위원회가 올린 복수 후보인 김태호 전 사장과 김광현 전 코스콤(한국증권전산) 대표 중 김태호 사장을 낙점했다. 김 내정자는 오는 8월 23일 시의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정식 임명될 예정이다.

김태호 내정자가 지난 8월 4일 돌연 사표를 던지고 서울메트로 사장으로 옮기게 되면서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 자리는 졸지에 공석이 됐다. 김 내정자는 2014년 8월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에 취임했고 임기 3년 중 1년이나 남겨둔 상황이었다. 이에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의 인사”라는 비난도 나온다. 서울메트로 소속 제1노조인 서울지하철노조는 ‘환골탈태 필요한 서울메트로에 땜질인사라니 실망스럽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서울시가 임기 중인 도시철도공사 사장에게 서울메트로 사장 지원을 종용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돌려막기 인사라는 혹평을 면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임기 도중 느닷없이 하차하는 사장을 바라보는 도시철도공사는 또 무슨 꼴이란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서울지하철노조의 비난처럼 이번 인사로 서울지하철 중 절반은 수장이 없는 상태로 계속 달리게 됐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각각 서울지하철 1~4호선과 5~8호선을 운행하는 서울시 산하 양대 교통 공기업이다. 서울메트로 사장 자리는 지난 5월 지하철 공사 통합 무산에 따른 책임을 지고 이정원 사장이 사퇴하면서 공석으로 있었다. 지난 5월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는 서울메트로 사장 사퇴 직후 직무대행 체제에서 터졌다. 당분간은 사장 공석이 된 5~8호선에서 무슨 사고가 터져도 책임소재를 묻기 어렵게 됐다. 지하철 5~8호선의 총연장은 162㎞로, 1~4호선(137㎞)보다 더 길다. 관리 역사(驛舍)도 5~8호선이 157개로, 1~4호선(120개)에 비해 더 많다.

교통라인 연이은 인사

서울시는 당초 이정원 사장의 사퇴 직후 조성일 전 서울시 도시안전본부장을 서울메트로 사장에 앉히려고 했다. 하지만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직무연관성을 이유로 ‘취업불승인’ 결정을 내리면서 한 차례 무산된 바 있다. 이에 인사 재공모를 추진하면서 재차 무산 가능성에 대비해 최대한 말을 아껴왔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의 이원목 교통정책과장은 “공사 사장 같은 경우 공사 내 임원추천위원회에서 결정된 사안을 가지고 시의 인사담당부서와 논의하게 된다”며 “복수 추천 인사 가운데 최종적으로 누구를 결정해서 인사청문회로 보낼지는 시 인사과에서 다룰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의 고위관계자 역시 “김태호 사장은 지원한 분들 중 한 명이다”라며 “그보다 더 좋은 분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장고 끝에 ‘돌려막기’ ‘땜질인사’란 비난을 무릅쓰고 김태호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이에 임명권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의 의도도 주목 대상이다. 김태호 내정자는 대표적인 지하철 공사 통합론자다. KT, 하림그룹, 차병원그룹 자회사인 차케어스 사장을 거쳐 2014년 민간인 최초로 임기 3년의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교통 관련 경력이 전무해 임명 당시 비전문가, 낙하산 꼬리표를 달고 다녔으나 다행히 지난 2년간 서울도시철도공사를 대과 없이 이끌었다는 평이다.

2014년 취임 직후부터는 카운터파트인 이정원 당시 서울메트로 사장과 손발을 맞춰 양대 지하철 공사 통합작업을 주도해 왔다. 이를 위해 양 공사는 지난해 각각 5억원씩을 갹출해 10억원을 들여 통합을 위한 컨설팅까지 실시했다. 박원순 시장의 기대에도 부응해 김태호 사장이 이끄는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난 3월 노조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사 통합 찬반투표에서 71.4%의 찬성을 이끌어냈다.

반면 카운터파트인 이정원 당시 사장이 이끌었던 서울메트로는 양대 노조인 서울지하철노조와 서울메트로노조가 각각 51.92%, 52.65%로 반대표를 던지는 바람에 무산됐다. 상대적으로 인력이 많은 서울메트로는 통합 시 구조조정 가능성을 염려해 반대를 했고, 상대적으로 임금과 복지 수준이 낮은 서울도시철도는 통합 시 처우개선 등을 기대하며 찬성표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이후 재투표를 실시하려던 계획마저 서울메트로 소속 서울지하철노조 대의원들의 반대로 좌절된 상태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은 여전히 양대 지하철 공사 통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박 시장은 찬성표를 많이 이끌어낸 김태호 사장을 반대표가 많이 나왔던 서울메트로 사장으로 자리바꿈해 또 한 번 양대 지하철 공사 통합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시장이 지하철 공사 통합카드를 처음 꺼낸 것은 2014년 12월이다. 이명박 전 시장 때인 2004년 전격 단행된 버스 위주 대중교통개혁 10주년에 맞춘 시점이었다. 버스중앙차로제 도입과 환승체계구축 등 버스체계 혁신은 이명박 시장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며 대통령이 되는 데 일조했다.

당시 대중교통개혁 작업은 이명박 시장의 핵심 측근이던 음성직 교통정책보좌관이 총괄했고, 그 공로로 음성직씨는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으로 영전해 6년간 연임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명박 시장이 대중교통개혁을 앞세워 대통령이 됐듯이, 박원순 시장은 지하철 카드로 차기 대선을 겨냥하려는 포석”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단행된 서울시 교통라인에 대한 일련의 인사 조치는 이를 반영한다. 박원순 시장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직후인 지난 6월 신용목 도시교통본부장을 경질하고 그 자리에 은평구 부구청장으로 있던 윤준병 전 도시교통본부장을 불러 재기용했다. 도시교통본부장은 인구 1000만 수도 서울의 교통정책을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다. 윤준병 본부장은 고건 전 서울시장이 아끼던 인사로 교통기획과장·교통기획관 등을 지내며 교통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박원순 시장 취임 초 도시교통본부장을 맡아서 지하철 9호선의 주주를 교체하는 재구조화를 이끌며 박 시장으로부터 ‘시민의 영웅’이란 칭찬을 들은 바 있다. 시의회와 마찰을 빚어 잠시 한직에 나가 있다가 지하철 통합 무산과 구의역 사망사고 직후 박원순 시장의 SOS를 받고 화려하게 복귀한 것이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과 양대 지하철 공사 사장은 시장의 정책기조를 잘 구현할 수 있는 최측근이 줄곧 맡아온 것이 관례다. 결과적으로 박원순표 지하철 공사 통합은 윤준병 본부장, 김태호 사장 라인에서 재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박진순 지하철혁신추진반장은 “공사 통합 무산 직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의회에서 ‘통합에 준하는 혁신을 하겠다’고 발언을 한 바 있다”며 “현재 그 기조를 유지 중으로 통합에 준하는 계획을 만드는 중으로 발표 시기는 좀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양대 지하철 수장 공석 사태를 빚은 김태호 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왼쪽)과 이정원 전 서울메트로 사장. ⓒphoto 뉴시스
서울시 양대 지하철 수장 공석 사태를 빚은 김태호 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왼쪽)과 이정원 전 서울메트로 사장. ⓒphoto 뉴시스

의도적으로 분리한 도시철도공사

사실 철도·전력·통신과 같은 네트워크산업에서 통합운영이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책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실제로는 조직 비대화로 인한 비효율, 경쟁이 없는 데서 나오는 서비스 품질 저하 등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특히 총파업과 같은 특수상황 시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일평균 이용객만 680만명에 달하는 서울지하철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도로에 비해 수송분담률이 낮은 일반철도에 비해서도 상황이 심각하다. 서울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은 36.5%로 버스(27.6%)와 택시(8.4%)를 월등히 앞선다.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5~8호선과의 통합이 아니더라도 2014년 9호선 2, 3단계 구간 운영사업권을 따내는 등 줄곧 덩치를 키워왔다. 특히 9호선 운영권 획득은 같은 해 5월, 서울메트로 소속 지하철이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부상자 238명을 낸 추돌사고를 일으킨 직후라 선정 과정에 의문도 제기됐다.

또 서울시 산하 지방 공기업임에도 불구하고 2010년부터는 부산~김해 경전철까지 자회사를 세워 위탁운영하는 등 오지랖 넓은 경영을 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메트로의 한 개 역당 관리인원은 15명으로 서울도시철도공사(11명), 9호선 운영(7명)에 비해 많다. 서울메트로의 ㎞당 운영인원도 65명으로 서울도시철도공사(42명), 9호선 운영(26명)에 비해 많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이런 서울메트로를 견제하기 위해 태어난 조직이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서울메트로와의 경쟁촉진 등을 위해 애초부터 분리운영을 염두에 두고 출범했다. 더 큰 목적은 지하철 총파업 시 전면적인 교통마비를 막고 파업동력을 구조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일례로 서울메트로는 일평균 수송인원만 420만명으로 서울도시철도공사(260만명)에 비해 월등히 많다. 서울메트로가 파업으로 발목이 잡히면 교통이 마비된다.

이 같은 막강한 힘 때문에 서울메트로는 과거 연례적으로 총파업을 실시하는 강성노조로 이름이 높았다. 복수노조 체제를 도입한 지금은 서울메트로 산하 노조만 ‘서울지하철노조’ ‘서울메트로노조’ 등 두개에 달한다. 이로 인해 지금과 같은 양대 공사 체제에서도 노조파업과 같은 실력행사 위협과 극적타협이라는 연례행사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2013년 12월 역대 최장인 22일간 계속된 코레일의 철도파업 때는 동반파업 운운하며 협상력을 한껏 끌어올린 뒤 한밤중에 극적 타협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반면 서울시는 “2004년 이후 무파업의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유지되고 있고, 관련 법에 의해 지하철 운행의 필수인력 확보가 가능하다”는 원론적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사실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는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전혀 별개의 노선을 운영하고 있는 터라 통합에 따른 실익(實益)도 의문시된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같은 선로를 공유하는 노선이 단 1㎞도 없다. 오히려 서울메트로와 코레일이 1·3·4호선에서 서울시 관내 전 구간의 선로를 공유한다. 정작 서울메트로와 코레일은 상위기관이 각각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로 다른 때문인지 통합 얘기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사실 박원순 시장이 성공적 통합사례로 제시한 2007년 홍콩의 MTR(지하철), KCR(일반철도)의 통합은 서울메트로와 코레일의 통합에 더욱 가깝다. MTR, KCR는 2007년 합병 전까지만 해도 자유로운 무료환승이 안 됐다.

지하철 공사 통합 실익 의문

하지만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이미 상호 간에 자유로운 환승을 하고 있고 동일 운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굳이 합병에 따른 실익을 찾자면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각각 운영하는 환승역사의 역무인원을 줄일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중복되는 역사관리 업무는 상호 간 개별협약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업무를 조정할 수 있는 문제다.

지금도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는 환승역으로 역사관리 업무가 중복되는 까치산역·가락시장역·오금역·연신내역 등에서 상호협의를 통해 관리 업무를 나눠 맡는 식으로 관리 부담을 줄이고 있다. 가령 2·5호선의 환승역인 까치산역은 서울도시철공사가, 3·5호선의 환승역인 오금역은 서울메트로가 각자 책임을 지고 운영하는 식이다. 민간기업 구조조정과 달리 공기업 구조조정의 경우에는 통합 이후에도 중복인력 정원을 줄이는 등의 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인건비만 상향조정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실제 박원순 시장은 2014년 12월 ‘지하철 통합’ 발표 당시 노조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밝히기도 했다.

오히려 더 시급한 것은 2014년 서울메트로가 운영권을 따낸 지하철 9호선의 업무조정이다. 서울메트로가 100% 지분을 가진 2, 3단계 구간 운영 자회사인 ‘서울메트로9호선 운영’을 비롯해 1단계 구간을 운영하는 사업시행사인 ‘서울시메트로9호선’, 운영사인 ‘서울9호선 운영’ 등 비슷비슷한 이름의 회사가 난립하는 등 권리 관계가 지극히 복잡하다. 동일노선을 운행하고 관제센터도 하나지만, 관련된 회사의 본사만 3곳이고 사장도 3명이나 된다. 심지어 같은 노선을 달리는 열차인데 고객센터 전화번호도 제각각이라 민원 호소조차 애를 먹는다. 하지만 9호선은 출퇴근 시간이면 안전사고가 우려될 정도로 ‘지옥철’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선별 책임운영제가 훨씬 시급하다는 방증이다.

서울지하철과 서울도시철도공사 통합 시 지하철 역사 간판 교체 등 수반되는 기업이미지(CI) 통합 작업에는 줄잡아 수백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통합 후 향후 10년간 1조1140억원+α의 비용이 들어갈 것”이란 지적도 박원순 시장과 같은 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우형찬 시의원의 입에서 나왔다. 일례로 서울시가 완전 별개노선을 운행하는 서울메트로 1~4호선과 서울도시철도공사 5~8호선의 통합관제센터 설치를 위해 오는 2018년까지 책정한 예산만 1900억원에 달한다. 1900억원이면 1량당 17억원에 달하는 9호선 지하철 111량을 추가로 구매할 수 있다. ‘지옥철’로 불리는 9호선 포화상태를 해소하고도 남을 만큼 큰돈이다. 어디에 예산을 먼저 써야 할지도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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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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