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 홍만표 변호사 / 진경준 전 검사장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 홍만표 변호사 / 진경준 전 검사장 ⓒphoto 뉴시스

구치소에서 네이처리퍼블릭의 정운호 대표와 몸싸움이 일어난 일로 정 대표를 고소한 최유정 변호사. 최 변호사는 이것이 법조로비 의혹 같은 엄청난 사건으로 확대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최유정 변호사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100억원의 수임료 사건이 불거지며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홍만표 변호사의 무분별한 사건 훑기와 엄청난 규모의 축재·탈세의 실체가 최유정 변호사 사건 수사를 통해 드러나며 한국 사회를 또 한 번 놀라게 만들었다.

공교롭게 게임사 넥슨과 진경준 검사장 사이 부적절한 주식거래 사건이 연이어 터지며 변호사 사회뿐 아니라 검찰과 법원 등 전체 법조계를 향한 국민의 불신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법조비리 혹은 법조추문사건의 전조(前兆)를 알리는 기사가 올해 봄부터 나오고 있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도 조사’가 3월 초에 발표됐다. 그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전반적 법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낙제점이었다. ‘신분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정하게 법집행이 이뤄지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10명 중 2명이 채 안 됐다. 그나마 경찰은 국민들의 24.9%가 신뢰한다고 답한 반면, 법원은 이보다 처진 24.2%, 검찰은 16.6%만 신뢰한다고 했다.

이보다 앞서 2015년 8월 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멕시코 수준이었다. 또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더 나빴다. 좌익반군과 마약조직이 활동하는 콜롬비아와 비슷한 최하위권이었다.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법조계. 도대체 무슨 이유로 지금처럼 된 것일까.

현대판 과거제도, 사법시험

한국은 고려 초기부터 과거제도를 통해 사회적 엘리트를 배출하고 충원했다. 이것은 중국에서 도입된 방식이다. 이 제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국가통치체제이고 수단이었다. 계몽주의시대 유럽에서 이를 극찬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영국이 이를 고등문관시험으로 받아들였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이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한국은 광복 후 고등문관시험을 베껴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를 두어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선발해 양성하는 제도로 활용했다.

1963년부터는 고등고시 사법과가 사법시험으로 바뀌었지만 내용은 동일했다. 한마디로 말해 현대 한국에서 사법시험은 과거 왕조시대의 과거제 역할을 해온 것이다. 어린 학생이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유수의 대학에 들어가면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모은 채 사법시험에 몰두했다. 그렇게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집안 전체의 경사였다. 그의 이름이 플래카드에 적혀 곳곳에 펄럭였고, 그 지방 군수나 경찰서장은 훌륭한 자식을 둔 집을 찾아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렇게 배출된 법조인들이 사회적 엘리트 집단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 구성원들은 겉보기에 무엇보다 예의와 염치를 중시하는 ‘젠틀맨’들이었다. 집단 내부에서는 대체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겸손의 미덕이 평화의 강을 이루며 조용히 흘러갔다.

1981년 한국에 처음으로 법조윤리를 도입해 사법연수원에서 강의를 시작한 가재환 변호사는 평화의 강에서 유유자적하던 대표적 인물이었다. 가 변호사가 서울고등법원의 부장판사로 있던 시절 필자가 그에게 인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가 부장판사는 말단의 신임 판사인 필자를 맞이하며, 벗어두었던 상의를 정중히 입은 다음 필자와 담소를 나누었다. 지성자(至誠者)로서의 면모에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졌다. 이런 고상하고 교양이 넘치는 선배들을 후배들이 기꺼이 본받으려 했다.

‘젠틀맨’들로 구성된 법원과 검찰은 그 속에 위선이나 다른 단점이 숨겨져 있었을지언정 단일한 조직체로서 뛰어난 효율성을 낳았다. 매년 세계은행이 기업환경 연차보고서를 내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각 나라 사법부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분쟁을 처리하는지 나타내는 ‘두잉 비즈니스(Doing Business)’라는 항목을 통해 사법(분쟁해결) 분야를 거론한다. 여기에 점수와 함께 순위를 표시한다. 한국은 매년 가장 상위권에 속해 있고, 인구 1000만명 이상 국가만을 거론하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순혈이라는 단일성은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인권보장의 틀이 하급심으로 보다 빨리 퍼져나가는 긍정적 효과를 낳기도 하는 게 그 예다. 이는 미국과 같은 나라와 비교하면 잘 알 수 있다. 특히 언론자유에 대한 대법원의 강한 신념이 많은 선도적 판례를 낳으며 하급심을 강하게 계도해왔다.

폐단에 눈감은 법원과 검찰 구성원

이렇게 여유로운 평화의 강이 법조인 집단 내에서 흘렀지만, 그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지나친 엘리트의식과 일체감은 집단 밖에서 다양한 폐해를 만들어 냈다. 법원과 검찰을 구성하는 판사와 검사는 이러한 폐해에 눈을 감았고 심지어 은폐했다. 법원과 검찰의 구성원으로 있던 자가 변호사로 개업하면,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법원과 검찰이 그를 도와주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전관예우’로 연결됐다. 한국만의 현상인 ‘법조브로커’가 암약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될 수 있는 이유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심각한 사법정의가 왜곡되는 현상도 일상화되게 한 원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목소리로 “사법부나 검찰에 의도된 잘못은 전혀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고 외쳤다. 다만 시대적 변화에 따라 이에 적응해갈 과제만 주어져 있고, 사법부나 검찰이 이를 자체적으로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는 논리만 있을 뿐이다. 이런 의식을 우리는 ‘사법무결점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신화이자 집단적 무의식화 현상이었다. 구성원들은 이 신화를 신봉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려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신화의 밑에 생긴 그늘에서 독버섯들은 끊임없이 생겨난 것이다.

한국의 법원과 검찰은 엘리트 집단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혹에 빠져들었다. 이는 과도한 조직화와 관료화의 함정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생긴 숨 막히는 폐쇄성은 건전한 상식과 자유스러운 분위기의 유통을 방해했다. 법원과 검찰 조직 내부 구성원인 판사와 검사도 배겨내기 힘든 성격의 것으로 변해왔다.

그렇게 엘리트 조직체는 일반 국민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권그룹이 된 것이다. 그런 조직 속에 얼마간 몸을 담으면서 특권의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고, 인간의 평범한 삶이 안겨주는 일상의 진리와는 멀어지게 된다. 앞에서 말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법조비리가 태연하게 발생하는 건 특권의식이 팽배한 조직체의 성격상 당연한 일이다.

물론 판사나 검사 중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간과됐다. 심지어 그런 이들에게도 엘리트 집단이 만들어낸 특권을 동등하게 인정해버린 것이다. 형편없는 품성의 부장검사가 쾌활하고 성실한 한 젊은 검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일은 검찰의 일그러진 조직문화를 혁신하지 않는 한 재발될 위험성이 계속 상존할 수밖에 없다.

사법시험 체제에서 나타나는 여러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 사법개혁 작업에서 많은 노력이 벌어졌다. 그런 논의가 구체화되어가던 중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하자는 안(案)이 부상했다. 노무현 정부가 이 안을 채택하며 결국 현재와 같은 로스쿨 제도가 등장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평가와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다소 성급하게 진행된 면이 강했다. 당시는 이미 사법시험 합격자가 1000명인 때였다. 소수정예 선발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점들이 적어도 변호사 업계에서는 빠르게 희석되어가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과연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집단으로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골간을 이루는 법조 양성 제도를 책임질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없었다. 이런 고민 없이 로스쿨이 도입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로스쿨 교육이 주 교육 대상으로 삼은 이들은 ‘학부에서 법학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다. 이들에게 법학 이론교육과 실무교육을 3년 과정으로 이수시킨다는 로스쿨 과정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것은 처음 설계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로스쿨이 도입되고 7년이 지난 지금, 이 잘못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할 뿐 로스쿨 교수들조차 인정하고 있다.

미흡하고 불완전한 교육밖에 받을 수 없는 로스쿨 졸업자들은 법률시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로스쿨 학생들은 그들 앞에 주어진 엄청난 학습량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힘겨운 학교생활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할아버지나 아버지 등 유력한 집안을 배경으로 한 로스쿨 출신들은 변호사 시험에 합격 후 실무 수습 과정을 보장받았다. 또 이런 배경이 이들에게 탄탄한 미래로 연결되는 길을 쉽게 만들어줬다. 바로 한국적 현실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지고 있는 로스쿨 체제의 상황이다.

로스쿨 체제가 가진 취약성으로 말미암아 로스쿨 학생이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사회적으로 경시되고 있다. 일부 호전적 로스쿨 교수들은 로스쿨 체제가 도입되며 갖게 된 그들의 기득권을 고수하려 한다. 로스쿨 학생이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로스쿨이 법조 양성권을 독점하면 그들이 법률시장에서 받을 불이익이 없어질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그렇게 로스쿨 교수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스쿨협의회와 로스쿨 학생,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삼각동맹을 형성했다. 그들은 로스쿨을 개혁하여 교육의 충실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공격한다. 로스쿨 제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어떤 것이라도 아예 철저히 봉쇄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 다른 폐단으로 이어지고 있는 로스쿨

여하튼 이들이 만들어내는 과도한 집단성에서는 위험한 요소들이 다수 나타나고 있다. 적어도 변호사업계에서 그들은 과거 ‘젠틀맨 법조 사회’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앞으로도 그들은 수적 우위를 내세우며 법조 사회 전체를 완전 장악했다고 생각할 때까지 끊임없이 전투를 벌여나갈 것이다. 로스쿨 출신의 일부 변호사에 대해 법률시장에서 지금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이런 우려는 앞으로 더욱 현재화될 것으로 보여진다. 이 점에서 우리는 엉성하고 결함 많은 로스쿨 체제가 빚어내는 기존 법조비리와는 다른 형태의 법조비리가 더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며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법원이나 검찰은 변호사 업계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국민의 상식이 미치지 못하는 철옹성 같은 조직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로스쿨 졸업자라도 판사나 검사 임관을 받고 그 조직에 속하게 되면 빠른 속도로 그 조직에 적응해 이를 옹호할 것이다. 법원이나 검찰의 조직문화를 일반 시민사회의 공기가 통하는 곳으로 빨리 개조해가지 않는다면, 오래전부터 벌어져온 법조비리 역시 여전히 계속 등장할 것이다.

법조비리를 막고 사법정의를 보다 원만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올바른 법조인을 양성하는 법조인 양성 제도가 필요하다. 사법시험 체제가 과도한 엘리트 의식, 특권의식을 키우며 각종 해악을 만들었고, 로스쿨 체제는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교육과정으로 인해 끊임없는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법조인 양성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핵심은 법조인의 전문성을 충실히 키우고, 사회와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키우는 것이다. 이에 적합한 법조인 양성 제도를 찾는 게 사실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우리와 같은 대륙법 체계를 가진 나라의 법조인 양성 제도를 잘 살펴보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또 과도한 관료화와 폐쇄성을 만들어내며 결코 정상적이지 못한 지금의 법원과 검찰의 조직문화 역시 빨리 개선해야 한다.

지금 법조 사회가 보이고 있는 암담한 모습에 한숨만 쉬며 좌절할 필요는 없다. 크게 보아 한국의 법조 사회는 계속 향상돼왔다. 앞날을 내다보며 걸어가자. 희망은 꿈꾸는 자에게 주어지고, 성과는 희망을 가지고 나아간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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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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