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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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씨. 그는 햇볕정책의 전도사로 각종 남북회담을 진행했으며, 개성공단과 경의선 착공과 휴전선 대북방송 중단 등 수많은 남북 합의를 이루어냈다.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그가 지난 8월 3일 중국 관영 매체와 인터뷰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북한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취한 군사적 조치”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그의 발언이 알려지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들(김대중·노무현 측 인사들)이 국가안보에 대해 주변국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며 “신(新)사대주의적 매국(賣國)행위를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정씨는 이와 관련 “외국 언론에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매국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사드 문제를) 북한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큰 틀의 동북아 정세 흐름과 연관지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그의 거침없는 사드 반대 발언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언론 기고와 인터뷰, 강연, 토론 등을 통해 그는 “사드 배치로 한·중(韓中)관계는 솔직히 끝났다고 본다”며 “경제적 측면에서 당장의 보복이 들어올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중국의 경제보복과 중·러·북의 군사행동으로 한반도 긴장은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드 배치를 통해서 북한의 반발을 유도하고, 그걸 핑계로 해서 대중(對中) 압박 전선(戰線)을 강화하는 것이 미국의 목적”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의 틀에서 사드 문제가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가 대북 강경책을 펴면서 미국의 대(對)중국 압박 전략의 그물에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의 힘으로 배치를 기정사실화해 나가려는 정부 정책을 자꾸 견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야당을 향해 “내년 말에 배치 문제가 끝나지 않도록 필리버스터를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사드 반대 진영의 대표주자로 부각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는 대표적 우파 관료였다”

그는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대선캠프 내 남북경제연합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한반도평화포럼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이 단체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임동원·이종석·이재정씨를 비롯 백낙청 서울대 교수, 문정인 연세대 교수 등이 공동이사장이나 공동대표 등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와 한반도평화포럼 등을 통해 교류하는 임동원·이종석·이재정씨 등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햇볕정책을 직접 입안하고, 추진했던 인사들이다. 또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 정상회담 수행원으로 활동했던 인사들 상당수가 18대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다.

이처럼 김대중·노무현 좌파정부 10년간 햇볕정책의 최선봉에 서 있던 정세현씨가 원래는 통일부의 대표적 우파 관료였다는 흥미로운 증언이 나왔다. 바로 박근혜 정부의 초대 대변인을 지냈던 윤창중 윤창중칼럼세상 대표(전 문화일보 논설실장)의 주장이다. 윤 대표는 지난 8월 22일 자신의 블로그에 사드 문제에 관한 칼럼을 한 편 올렸는데, 이 글의 상당 부분은 정씨의 통일부 시절 팩트들이다.

윤 대표는 1981년 정치부 기자를 시작할 무렵 당시 통일원 관료였던 정씨를 알게 됐다고 밝혔다. 윤 대표는 정씨에 대해 “요즘 좌파들이 우파인사들을 공격하는 말로 ‘극우’의 대표적 인물”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2002년 1월 김대중 정부의 통일부 장관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우파 관료’였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반공 이데올로기’를 개발해 제공하는 ‘민족통일연구원’의 정세현은북한 문제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김일성·김정일을 공격하며 흥분했다”면서 “내가 병아리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그가 DJ정권에 들어가기 전 기억하는 정세현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정씨가 김영삼 정부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서 ‘통일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조선인민군 비전향 장기수이던 이인모씨에 대한 북송 조치를 발표했는데, 청와대 통일비서관이었던 정세현씨는 대통령의 이런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북송 조치는 잘못된 것이며, 비전향 장기수를 북송하는 대가로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를 송환받아야 한다”며 흥분하던 정 비서관의 모습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윤 대표는 YS정권의 청와대 비서관이 DJ정권에서 통일부 장관을 맡는 것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그를 중용하는 것은 보수우파에서 DJ의 사상적 전력(前歷)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으니 이를 희석시키기 위한 ‘위장전술’로 생각했었다”고 밝혔다.

2004년 5월 4일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해 평양에 도착한 정세현 당시 통일부 장관(왼쪽)이 인민문화궁전에서 만찬을 주최한 박봉주 내각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2004년 5월 4일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해 평양에 도착한 정세현 당시 통일부 장관(왼쪽)이 인민문화궁전에서 만찬을 주최한 박봉주 내각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대북 유화론자로

정씨는 1945년 만주에서 태어났지만 곧바로 광복을 맞아 전북 임실에서 성장했다. 이후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7년 국토통일원(통일부의 전신)의 공산권 연구원으로 특채되어 ‘4급 연구원’으로 공직을 시작한다. 세종연구소, 동북아연구소 등을 거쳐 민족통일연구원장을 지냈다.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냈으며,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초대 통일부 차관으로 발탁됐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프로필 기사(1998년 3월 9일자)를 보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대북 유화론자로 강성으로 분류되는 강인덕 장관과 정책 조화를 위해 발탁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미 그때부터 대북 유화론자로 평가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2001년 국정원 통일특별보좌역을 거쳐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통일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각종 남북 회담을 주도했다. 장관 퇴임 후에는 원광대 총장을 역임했다.

이처럼 그는 박정희 정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공직생활을 이어갔다. 장관 시절과 그 이후 그의 발언을 추적해 보면 그가 한때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보수우파 관료였다는 윤창중 대표의 말이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는 최근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의 집단 탈북 사건에 대해서 “뭔가 좀 공작이 들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종북 콘서트’ 진행으로 추방당한 신은미씨의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의 통일문화상 수상식에서 “신은미씨 책은 절대로 북한을 찬양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 바로 알리기에 일조한 책”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통일안보 민주정부에게 듣는다’ 간담회가 열린 2015년 8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새정치민주연합 ‘통일안보 민주정부에게 듣는다’ 간담회가 열린 2015년 8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과거 발언을 통해 본 정세현

2016년 1월 박근혜 정부가 북한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총선용 북풍(北風)’이라고 주장했고, 2015년 12월 제1차 남북당국회담을 앞두고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회담 의제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의 거울이다. 그가 통일부 장관 재직과 퇴임 후 했던 발언 일부를 소개한다.

“금강산 관광 대가의 군사목적 전용 의혹은 항간에 떠도는 설을 종합한 것으로 주한(駐韓)미군도 공식 부인한 적이 있다. 공장설비 등에 대한 북한의 수입량이 증가하는 것을 보면 관광 대가가 경제개발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2002년 3월 29일, 자유포럼 조찬강연회)

“대북 식량지원은 탈북자 인권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며 남북관계 안정에도 기여하는 효과적 수단이다.”(2003년 4월 18일, 통일교육협의회 조찬강연)

“북한의 핵·생화학 무기는 남한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체제방어 또는 강대국을 상대로 한 협상카드용이다.”(2002년 2월 2일, KBS 심야토론)

“김정일 위원장은 ‘북핵’이라는 무모한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다.”(2004년 6월 14일, 6·15공동선언 4주년 기념 서울신문 인터뷰)

“북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인식은 아직도 편향적이고 때로는 극단적이다.”(2003년 11월 13일, 통일한국 11월호 기고문)

“위폐 문제도 마찬가지다. 10년 넘게 조사했다는 위폐 문제를 지금 이 시점에서 터트리는 것을 봤을 때 국내 정치용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핵이든 위폐든 미국이 문제 있다고 하면 문제 있는 것이다. 미국은 출제자이자 채점자이기 때문이다.”(2006년 1월 11일, 인터넷통일언론인모임 초청간담회)

“미국의 진의가 말로는 한반도 비핵화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이 적당히 핵을 가짐으로써 한국과 일본이 더 확실한 핵우산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우리 쪽 대북지원이 핵무기 자금으로 쓰였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되는 선동에 불과하다.”(2006년 10월 28일, 프레스센터 언론광장 포럼)

“부시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정책은 그라운드 제로(9·11 사태)가 생기고 난 뒤 북한에 대해서는 악의 축으로 간주해 목 조르기 식 정책을 계속 폈고, 핵 문제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일관하다 북핵 실험이라는 벼랑 끝 위기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2006년 10월 25일, 경남 마산시청 민주평화통일 마산시협의회 강연)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현금이 건너간 것이 없다. 미국도 북한이 미사일만으로 1년에 5억달러를 번다는 걸 인정했는데, 우리 돈으로 핵·미사일을 만들었다는 말은 뭘 모르는 이야기다.”(2009년 7월 8일, 평화방송 인터뷰)

“‘1번’이니 이런 것은 북쪽이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것이다. ‘번’ 자가 일본식 용어다. 백화원도 1호각, 2호각 이런 식으로 쓴다. 1번, 2번은 일본식 단어다.”(2010년 5월 20일, 민중의소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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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흔 인터넷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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