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5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이정현 대표가 식사를 하다 크게 웃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25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이정현 대표가 식사를 하다 크게 웃고 있다. ⓒphoto 뉴시스

새누리당 이정현(58·3선) 대표는 지난 8월 12일 서울 여의도 당사 강당에서 당 사무처 당직자들과 만났다. 당 대표 취임 이후 첫 당직자 월례 조회 자리였다. 강당에 들어선 이 대표는 당직자들을 둘러보더니 “우리 빙 둘러앉읍시다. 의식이나 절차를 생략하고 앉아 봅시다”라고 입을 뗐다. 그러고선 단상 앞에 서지 않고 양복 상의를 벗더니 간이의자를 끌어다가 당직자들이 있는 쪽에 앉아버렸다. 이 대표는 월례 조회가 시작되자 당직자들에게 “오늘은 여러분을 아우님이라 부르겠다”며 “여러분은 동지”라고 했다. “앞으로 나에게 (지나치게) 예의 갖추면 쫓아낼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이 대표를 본 당직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8월 9일 치러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이 대표가 말과 행동에서 파격(破格)을 선보이고 있다. 전당대회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다른 후보들과 달리 국회 밖에 별도 사무실 등 캠프를 꾸리지 않고 ‘나 홀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그런 이 대표의 격식 파괴가 대표 당선 이후에도 이어지는 것이다. 그는 당대표 선거 운동 때 ‘동네 이장 점퍼’로 불리는 허름한 점퍼를 입고 배낭을 멘 채 혼자 전국을 누볐다. 이동할 때도 의원 차량이 아닌 고속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집권당 대표, 특히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의 엘리트와 부유층 지지세가 강했던 새누리당 대표 후보치고는 이례적인 캠페인 모습이었다.

‘대접받는 정치인’에 대한 거부감

이 대표의 이런 스타일을 두고 당내에선 ‘머슴 스타일’이라 부른다. 이 대표 자신도 전당대회 과정에서 자신이 ‘머슴 리더십(Servant Leadership·섬기는 리더십)’을 지향한다고 했다. 호쾌하게 웃는 ‘하회탈’ 같은 인상에다 시커멓게 탄 피부, 억양 강한 호남 사투리, 여기에 시골 마을 이장을 연상시키는 소박한 옷차림에 밀짚모자를 눌러쓴 채 전국을 혼자 돌아다닌 것도 머슴 리더십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효과를 냈다.

이 대표의 이런 모습을 두고 당 관계자들은 “의도적인 연출 성격이 없지 않겠지만 그의 정치 이력과 결부돼 연출의 티를 거의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게 그의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출신과 이력 등으로 볼 때 이 대표처럼 머슴 리더십에 들어맞는 인상을 주는 정치인은 드물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표는 영남을 핵심 지지기반으로 한 새누리당에선 비주류인 호남(전남 곡성) 출신이다. 또 관료·법조인 등 엘리트 출신이 의원 다수를 차지한 새누리당에선 보기 드물게 말단 당직자 출신이다. 이 대표는 말단 사무처 당직자로 정치를 시작해 31년 만에 당대표가 됐다. 그 사이 새누리당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전남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지역구 의원에 도전해 지역구 재선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을(乙)’ 스타일이 체화됐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19대 국회 보궐선거(전남 순천·곡성)와 20대 총선(순천)에서 당선될 때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주인은 국민이고 의원은 머슴이니 마음껏 부려 먹어달라”는 캠페인이었다. 그는 2014년 7월 치러진 19대 국회 순천·곡성 보궐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한번 부려 먹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쓰레기통에 버려라”고도 했다. 그가 지난 8·9 전당대회 때 조직과 의원단 지지 확보와는 거리를 둔 채 혼자 전국을 돌며 머슴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도 이런 총선 승리 경험에서 착안한 것이란 게 이 대표 참모들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내가 새누리당에 세(勢)가 있나, 돈이 있나?”라며 “내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자신의 정치적 단점을 승리 포인트로 삼은 셈이다.

이 대표는 당대표로 취임한 이후에도 ‘민생 올인’ 전략을 쓰고 있다. 그는 앞으로 6개월간 40여개의 민생 과제 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통상 오전 9시에 시작하는 정례 당 지도부 회의도 1시간30분 앞당겨 오전 7시30분부터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민생이나 국정을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선 이른 조찬회의, 심야회의, 주말회의도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8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그는 행사 뒤 불쑥 인근 한 대형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예고 없이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인근 경희대 도서관을 찾아 연구원, 대학생들과 즉석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당 관계자는 “말단 당직자 생활을 하면서 겪은 ‘대접받는 정치인’에 대한 거부감이 민생 제일주의로 나타난 것 같다”고 했다.

박 대통령 설득 노하우

이 대표는 전당대회 직전 세월호 사건 당시 발생한 보도 개입 논란에 휘말렸다. 그렇긴 해도 현역 정치인 중 이 대표만큼 기자들과 오래 관계를 이어온 정치인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그는 18대 국회 때 당직을 갖지 않은 박근혜 당시 의원의 ‘대변인 격’으로 활동했고 현 정부 출범 이후엔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다. 한번 말을 쏟아내면 격정적으로 이어가는 달변이기도 한 그는 ‘공보(公報)’가 정치 주특기인 셈이다. 그는 당대표 취임 이후에도 주요 회의 결과를 직접 브리핑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 결과, 대표 비서실장 등 당직 인선도 직접 발표했다.

하지만 당대표 취임 이후 이 대표가 내놓은 메시지 중 정치 현안에 대한 내용은 눈에 띄는 게 없다는 지적이 적잖다. 더욱이 박 대통령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최근 각종 의혹이 제기돼 검찰에 수사 의뢰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거취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 선거 과정에선 우 수석에 대해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지만 당대표 당선 이후에는 입장 표명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우 수석 거취 문제에 대한 이 대표의 이런 태도는 박 대통령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릴 정도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이 대표가 박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데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 자신도 8·9 전당대회 당일 최종 연설에서 “모두가 저를 등 뒤에서 비웃을 때도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준 박 대통령께 감사함을 갖고 있다”고 했고, 대표 선출 이튿날엔 “대통령과 맞서는 게 정의(正義)라고 인식한다면 여당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는 애초부터 수평적 당·청(黨·靑) 관계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며 “계속 이런 기조를 이어간다면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 이 대표는 ‘청와대 당무수석비서관’이란 조롱이 터져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얼마나 독자적인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란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한 반론도 있다. 한 친박(親朴)계 의원은 “박 대통령은 설득을 하고 기다려줘야지 압박을 해서는 밀리지 않는다”며 “대통령을 설득하는 이 대표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8월 24일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우 수석 거취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주문이 이어지자 “벼가 익고 과일이 익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해와 구름, 비만 있어서는 되는 것이 아니다”며 “때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도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람은 늘상 보이지 않지만 늘상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고도 했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우 수석 거취 문제에 대해 직접적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다양한 여론을 청와대에 직간접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며 “일이 되게 하는 게 중요하지 시끄럽게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란 게 이 대표의 생각”이라고 했다.

최경운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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