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 대전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국 지방의원 연석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왼쪽)와 박지원 원내대표. ⓒphoto 뉴시스
지난 8월 24일 대전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국 지방의원 연석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왼쪽)와 박지원 원내대표. ⓒphoto 뉴시스

4·13 총선에서 ‘녹색 바람’을 일으키며 38석을 얻어 원내(院內) 제3당으로 입지를 굳힌 국민의당이 흔들리고 있다. 작년 말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총선 승리까지 이끌었던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안철수 전 대표의 입지도 축소되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과 안 전 대표의 위상은 쉽게 확인된다. 4·13 총선 직후 25%까지 올랐던 당 지지율은 10%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에서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도 하락세다. 4월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앞섰던 안 전 대표였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10%가 채 안 되는 수치로 3위에 머물고 있다. 7월부터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문 전 대표 양강(兩强) 체제가 굳어지는 양상이다.

국민의당이 위기를 맞게 된 표면적 이유는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사건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고발에 따라 검찰은 지난 6월 국민의당 박선숙·김수민 의원, 왕주현 사무부총장이 총선 과정에서 광고·홍보 관련 하도급 업체로부터 2억원대 불법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혐의를 잡고 수사를 해왔다. 왕 부총장은 구속됐고 박 의원과 김 의원은 불구속기소됐다. 왕 부총장의 구속 직후 안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아직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새정치’를 간판으로 내세웠던 국민의당은 대외적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박 의원과 김 의원에 대해 검찰이 두 차례나 청구했던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되면서 당이 반전(反轉)의 기회를 얻었다는 관측도 나왔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정국(政局)이 발목을 잡았다. 안철수 전 대표와 천정배 전 대표의 사퇴로 인해 당을 이끌게 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정신을 지켜야 한다며 정부의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 당론을 정하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야권과 호남의 골수 지지층에는 반가운 일이었지만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선택했던 수도권 중도층 국민들 사이에서는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던 ‘대선주자 안철수’에 대해서도 “일관성이 없다”는 회의적 반응이 나왔다. 당내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호남의 한 중진 의원은 “아무리 진보 진영의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보편적인 국민들이 우리 당에 관심을 갖게 된 근본적 이유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봤어야 한다”며 “사드 배치에 대해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여(對與) 공세 수위는 당내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친 뒤에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한다”고 했다. 한 비례대표 의원은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사건 관련해서는, 박선숙·김수민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당 입장에서는 부담을 털고 갈 수 있는 기회가 됐었다”며 “그런데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주장만 거듭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했다.

사드 국면에서 “일관성 없다” 비판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안 전 대표의 영향력도 작아지면서 당내에서는 차기 대선 구도에 대한 새로운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안 전 대표 외에 중도 성향의 다른 대선주자를 불러모아 판을 키우자는 것이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박원순 서울시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거론된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안 전 대표 한 사람만으로는 대선을 치를 수 없다”며 “우리(국민의당)가 ‘문지방’을 확 내려버려야 한다”고 했다. “손학규 전 고문이나 정운찬 전 총리가 당에 들어오면 내가 맡고 있는 비대위원장 자리부터 양보하겠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두 분이 우리 당에 오면 그분들이 비대위원장이나 당대표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외부 유력 정치인이 당에 유입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대로 ‘안철수당’이 된다”며 “그럼 ‘문재인당’인 더민주와 똑같아진다”고도 했다.

이 과정에서 문 전 대표가 ‘야권(野圈) 대선 후보 단일화론’을 들고나오자 격분한 국민의당 의원들 사이에서 중도 단일 후보론은 더욱 확산됐다. 새누리당 친박(親朴)과 더민주 친문(親文) 세력을 제외한 중도 성향 후보들을 모아서 단일 후보를 세우자는 것이다. 아예 당의 기득권을 버리고 국민의당도 제3지대로 나가서 연합을 도모하자는 ‘외부 진출론’도 거론되고 있다. 김영환 사무총장은 “이미 총선을 통해 제3당을 세웠기 때문에 친박·친노가 아닌 중도 세력이 국민의당에 집결하면 된다”고 했다. 다만 당내에서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대안론도 나오고 있다.

문병호 전략홍보본부장은 “손 전 고문 등의 인사들이 국민의당으로 직접 들어올 것 같지는 않다”며 “제3지대에 ‘빅텐트’를 만들어서 여러 후보가 모인 가운데 경선을 치르거나 이 중 일부가 독자 세력화에 성공할 경우 힘을 합쳐 제2의 창당(創黨)을 하는 시나리오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최원식 국민소통본부장은 “최근 안 전 대표를 만나 ‘내년 대선은 중도 개혁 세력 단일화라는 큰 틀에서 봐야 성공한다’는 제안을 드렸다”고 했다. 이태규 의원도 “안 전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버리고 다시 여야의 중도 성향 후보들이 경쟁하는 큰 판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국민의당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움츠러들지 말고 외부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상돈 의원도 “야권의 비노는 물론이고 친박에 실망한 여권 성향 인사들까지 끌어들여서 판을 키워 집권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확산되는 중도 단일 후보론

국민의당이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지만 그래도 당의 구심점은 유력 대선주자인 안 전 대표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 한 비례대표 의원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도 안 전 대표의 뚝심이 ‘야권이 연대하지 않으면 필패(必敗)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프레임을 이겨냈었다”며 “지금도 잠시 당과 안 전 대표가 위기를 맞고 있지만 점점 더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 호남 의원은 “지금 호남 민심이 안 전 대표 외에도 다른 야권의 여러 대선주자를 놓고 ‘저울질’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미 한 차례 호남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던 안 전 대표가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도 맞다”며 “기반은 마련돼 있기 때문에 정책적 비전을 구체화하고 정치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온 힘을 쏟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다”고 했다.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사건의 여파가 거의 사라졌다고 판단하고 있는 안 전 대표의 움직임도 최근 바빠졌다. 과거 자신을 도왔던 인사들을 만나며 세력을 정비하고, 당의 지역적 기반인 호남 민심(民心)을 다시 끌어모으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최근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 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진을 재편했다. 새로 이사가 된 인사 중 이성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비례대표 순번 배치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으며 거리가 생겼지만 안 전 대표가 수차례 찾아가 마음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은 “이 전 부사령관처럼 지난 대선 혹은 창당 과정에서 우리를 도왔지만 지금은 관계가 소원해진 분들을 안 전 대표가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며 “대선 과정에서 이분들이 큰 역할을 해주시길 바란다는 요청을 드리면서 ‘삼고초려(三顧草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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